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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학규 평론

손바닥으로 문학을 보다
2017년 11월 19일 12시 12분  조회:911  추천:1  작성자: 장학규

평론

손바닥으로 문학을 보다
박일 선생의 오백자소설 묶음을 읽고
 
장학규

 
 
  올 하반년 들어 흑룡강신문 문학면이 갑자기 볼거리가 더 늘어났다. 박일 선생이 느닷없이 벽소설 묶음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뭐 별거 아닌 걸 가지고 괜스레 오두방정을 떠냐 그럴 사람들이 많을 거 같다. 하긴 새삼스럽지는 않다. 벽소설 하면 모르는 사람도 없을 거고 또 우리 문단에서는 대접도 잘하지 않는다. 

  요즘 좀 평론인의 구실을 해보려고 간만에 근간에 출간된 “중국조선족”이란 어마어마한 타이틀을 달고나온 소위 “우수작품선”들을 뒤져보니 례외없이 벽소설은 전혀 취급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솔직히 놀라지는 않았다. 그럴려니 하고 미리 마음속으로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다른 거 같다. 그저 벽소설이였다면 아마 필자도 대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칫 지나쳐버렸을 것이다. 문제는 박일 선생이 “오백자소설”이란 “아이콘”을 들고나온 것이다. 

  오백자소설?
  오백자소설!

 
  벽소설에는 명칭이 엄청 많다. 서양에서는 플래시 픽션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손바닥소설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소소설 또는 미형소설이라고 지칭하는 반면 우리는 여직껏 벽소설로 더 익숙한 거 같다. 오백자소설이란 명칭은 그만큼 많이 생경하다. 

  압축성이 강한 표의문자인 한자에 반해 표음문자인 한글은 서술적으로 길어질수밖에 없는 특성을 가진다. 오백자는 많은 경우 배경을 깔기에도 채 미치기 어려운 분량이다. 거기에 사건의 기승전결과 인물의 심리 갈등을 내포하자면 아무리 언어의 고수라 해도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박일 선생은 우리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벽소설 대가로 현재까지 2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벽소설집만 이미 3권을 출간했다. 다년간 벽소설 창작만 고집해오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며 문단에 벽소설이란 쟝르를 정착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해왔다. 평생 신문업에 종사해오면서 터득한 신문의 특성과 벽소설의 기술을 접목하여 한때 “신문소설”이란 타이틀을 달고 1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예를 들면 사스가 한창 살판칠 때 “요즘 녀자들”이란 제목으로 사스에 관한 벽소설을 내놓았으며 신문에서 사람들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경만 하고 구하지 않았다는 기사를 보고 “?”란 신문소설을 발표하기도 하여 작품이 시대와 밀접히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오백자소설도 우리문단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당연이라는 표현도 생략하는 리유는 박일선생이 우리문단에서 벽소설가로는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5백자도 세계적으로 보면 긴 픽션일지도 모른다. 일례로 여섯 단어로만 이루어진 헤밍웨이의 “아기 신발을 팝니다. 한번도 안 신었어요”가 유명하다. 언어를 통한 재창조가 문학의 속성이라고 할때 이 소설은 많은 상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팩트는 아니다. 

  그러므로 작자가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주제를 완벽하게 소화한것이 이번 오백자소설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얽음새에서 소설의 프레임을 구성한것이 먼저 돋보인다. 

  “그때 그 할머니”는 2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오백자내에 담아내고 있어 놀라움을 자아낸다. 딸애의 고중시절 학부형 회의에 참석했다가 주석대에 앉은 할머니의 자식교양담을 듣게 된다. 두 아들을 모두 청화대학을 졸업시키고 박사로 키워 해외로 진출시킨 할머니의 경험담은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수수하게 공부를 하는 자식들이 부모곁에서 효도를 한다”였다. 그 소리를 듣고 허탈에 빠진 학부형들이 교장을 찾아 항의하기도 한다. 그런데 20년후 “나”의 딸도 명문대를 나와 독일류학을 떠나 그곳에 정착하면서 외손주가 열살이 되도록 두번밖에 만날수 없는 현실에 그때 그 할머니의 감수를 체험하게 된다. 

  “어떤 부부”는 가히 최고의 액션이라 부를만 하다. 이 소설은 아라비아수자 1,2,3,4,5까지 동원하여 다섯장으로 단락을 나누어 주식시장에서 거금을 날린 안해가 속이 재가 되여 담배를 입에 붙이게 되는 속사정과 안해의 동창생인 “애금”이와 단둘이 두번이나 술을 마신 남편의 죄의식을 모순의 단초로 만들어 핍진하게 기술했다. 오백자소설로서는 한계에 도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류형이나 특성의 글은 이외에도 반년간 운남에 출장 갔다가 에이즈에 걸려 돌아와 마침내 심리적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속세와 담을 쌓았다는 “출가”, 대학 다닐 때 친구의 밥을 훔쳐 먹기를 일삼던 “진규”가 후에 대성하여 큰 연구단위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한다는 “게으른 친구”, 평소 수자도 쓸줄 모르는 네살난 딸애가 인터넷 쇼핑에 빠진 엄마를 지켜보다가 어느날 인터넷으로 우산을 샀다는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사연을 다룬 “인터넷 쇼핑” 등을 들수 있다. 이 소설들은 하나같이 생활의 편린이나 단면을 카트에 담을수밖에 없겠다는 벽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리해 또는 상식을 깨드린 공동성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묘한 결말로 앞의 서술을 한꺼번에 커버해버린 작품들이다. 

  “랭동실”은 수산물회사 김과장이 랭동실에 들어갔다가 갇히면서 동사한 사건을 쓰고 있다. 령하 30도에서 꼼꼼한 김과장은 문이 열리지 않아 밖으로 나갈수 없다. 추워서 입술이 떨리고 온몸이 오그라든다. 손가락마저 얼어서 글을 쓸수 없다고 얼어죽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날 전기 고장으로 랭동실은 작동을 멈추었고 동태상자들이 오히려 녹아버렸고 김과장의 시체도 전혀 얼지 않았다. 이 소설은 인간의 자기 최면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명약”도 비슷한 루트다. 삼복철에 로인협회에서 잡은 개고기를 방아집 할머니만은 전혀 드시지 못한다. 그런데 며느리가 한번 다녀간 후 방아집 할머니는 갑자기 흥분제를 주사 맞은듯 입맛이 살아나 “국에다 밥을 말아 한사발을 다 잡숫더니 반사발 더 달라”고 한다. 며느리가 틀이를 가져오면서 맛갈스러운 보신탕을 들게 되였다는 시나리오이다. 

  이와 류사한 소설로 길에서 만난 두 로인이 전혀 동에 닿지 않는 대화를 서로 주고받다가 그중 한 사람이 보청기를 끼지 않았다고 사죄하면서 오해가 풀리는 “두 로인”, 출장 갔던 아들이 어머니를 주려고 사온 목도리를 할머니, 안해, 손녀가 모두 손녀의 선물로 잘못 알면서 서로 다른 감수를 느끼는 “목도리”, 평생 남편에게 10원이상 술을 사준적이 없는 안해가 조카들의 타발에 큰 마음 먹고 100원짜리 술을 사다주지만 언녕 길들여진 남편의 입에는 8원짜리가 더 좋다는 “말자선생” 등이 속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것처럼 상식도 어떤 때는 외곡이 된다는 설명이다. 

  세번째로는 작가의 의도가 파묻혀 거듭 읽으면서 사색을 하게 만드는 소설들이다. 

  “돌”은 딸애가 김의사네 진렬대에서 “사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돌을 가만히 가져오는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 돌은 딸애가 김의사의 아들 천식이가 군에 가기전에 선물했던 것이다. 왜서 그 돌을 딸애는 되찾아왔을가? 작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해졌다. 젊은 남녀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을거다. 아니면 처녀가 너무 총각이 그리운 나머지 가슴에 품고 자려고 가져왔다. 또는 소중한 사랑의 상징물이 오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게 싫어서였다. 여러 각도로 읽힐수 있다. 

  “잘못 온 문자”는 개그맨 친구 흥수한테서 온 위챗 문자로부터 시작된다. “흥수”는 “태수”인 “나”를 “진수”로 잘못 알고 “나”의 흉을 본다. “내”가 돈 오백원을 꾸고 갚지 않았다면서 그런 실속없는 “나”와 사귀는 녀동생을 잘 단속하라고 “진수”에게 주의를 준다. 이 위챗 문자가 정말로 잘못 온것인지 아니면 “흥수”가 묘하게 연출한 극본인지는 작자가 밝히지 않았기에 알바 없다. 

  이 부류에 속하는 소설로 비행기에서 흑인청년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면서도 잠을 자는지 반항이 없는 서양처녀를 묘사한 “비행기에서”, 한국에서 귀국한 친구를 미국에 있다면서 만나러 오지 않는 사연을 다룬 “전화” 등이 있다. 

  끝으로 생활 일반사를 그린 소설들로 남의 흠만 잡고 자기 잘못은 모르는 “동료사이”, 다 키워놓았더니 이제는 부모를 외면하고 남자친구 말만 듣는 딸애의 인지상정을 묘사한 “못난 계집애”, 앞으로 의사가 될 딸애더러 하모니카를 계속 불고 춤도 더 배워 환자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천사가 되라는 “의사”, 시골총각들의 지꿋은 장난질을 지혜롭게 막아냈다는 “천식이” 등이 있다. 

  시험성을 띤 동기치고는 20편에 가까운 분량은 별로 방대해보인다. 내용은 물론 형식도 각각이다. 례사롭지가 않다. 꼭마치 하나의 프레임으로 굳히고싶어하는 눈치이다.

  평자가 주목하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평론이니만큼 작품에 대한 조명에 많은 필묵을 들였지만 사실 미안하게도 평자의 관심은 작품의 내용에서 언녕 떠나있었다. 내용에 대한 리해는 적당한 선에서 그치면 그만이다. 

  솔직히 디지털 시대를 맞으면서 문학의 재편성은 불가피해졌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위챗의 부상으로 말미암아 어떤 형식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더 빨리 다가가고 접수되냐를 분석해보지 않을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오백자소설이 좋은 표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본다.

  생활절주가 빨라지면서 요즘 사람들은 두터운 책을 듬직하게 들여다보기에는 무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좀 여유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일을 나가서는 식사도 스낵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손님 접대나 쉽지 않게 회식이 차려져 포식에 만취하는 상황도 없지는 않다. 글 읽기도 대체로 비슷하다면 억지는 아닐것이다. 분주히 동서남북을 오가야 하는 현대인에게는 함께 이동하는 스마트폰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문학을 접목하여 스낵처럼 틈틈의 시간을 타서 소비하고 소화하게 하는것이 요즘 문학의 사명이라면 또다른 궤변이 될가?!

  그래서 오백자소설이 하나의 대안이 될거라고 판단해본다. 나중 이불속에 들어가 책을 들거라는 섣부른 믿음보다 일단 먼저 독자들의 핸드 즉 손바닥에 문학을 심어야 할 것이다. 

  박일선생만이 할수 있는 선구자적 노력에 감사하고 박수를 보낸다.


부록

박일 오백자소설 3편

어떤 부부 
       1
 안해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2
 -왜 피워?
 -그저!
 안해의 입에서는 대답대신 뽀얀 담배연기만 나왔다.  
      3 
그러다가 안해는 몸져누웠다. 
동창생 애금이가 보러 오겠다고 전화오는걸 안해는 “오지 마!”하고 소리를 질렀다. 
남편은 속이 꿈틀했다.
(정말 귀신같은 녀자네. 내가 애금이와 단 둘이 딱 두번 술을 마셨는데 그걸 어찌 알가?) 
      4
 -담배를 끊어!
 -왜요?
 -미안해! 잘못했어! 
 -호- 당신이 미안하다구?
 5 
 안해는 요즘 주식에서 련속 곤두박질 했다. 부부가 아글타글 모은 돈 이십만원을 몽땅 밀어넣고도 동창생 애금이한테서 꾼 십만원마저 허리를 뭉청 날려버렸다. 그래서 속이 타 담배까지 피우고 있는데…
 
 
그때 그 할머니
 
 딸애가 고중 다닐 때다.
 어느 하루, 나는 학부모회의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주석대엔 할머니 한분이 있었다. 교장선생은 십여년전 이 학교를 졸업한 할머니의 두 아들은 모두 청화대학을 나왔고 박사가 되였는데 현재 큰 아들은 미국에, 작은 아들은 캐나다에 있다고 소개를 한후 할머니의 경험담을 경청한다고 했다.
 그런데 할머니 말은 엉뚱했다. 
 -에그, 자식은 공부는 잘 하지 못해야 좋수다!
 -제가 제일 후회하는게 뭔지 아세요? 두 자식 공부 너무 시킨겁니다. 제가 부러워 하는 사람은 공부를 잘 못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입니다. 못난 나무 산을 지킨다고 공부를 수수하게 하는 자식들을 보면 거의가 부모곁에있더군요.  
 -저런 허튼 소릴 들으라고 우리를 불렀나? 
 그날 나와 여러 학부모들은 교장선생을 찾아가 항의 했다. 
 20년이 지났다. 그사이 내 딸도 명문대를 나와 독일류학을 갔었고 후에는 그곳에 남아 독일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멀리 있으니 친 딸이 아니라 그저 반가운 “해외동포” 같았다. 이젠 외손주도 열살이나 되는데 그사이 딸네가 한번 놀러왔고 우리 부부가 한번 놀러가니 그만이였다. 
 언제부턴가 그때 그 할머니가 생각났다...
 
 
 출가
 
 명수는 갑자기 출가하여 까까머리 중이 되겠다고 했다.
  “당신 미쳤어요?” 
 안해는 하늘 땅이 맞붙는것 같았다. 너무 울어서 목도 쉬였다.
 “아빠, 가지 말아요!” 
 유치원에 다니는 딸애도 엄마따라 울어서 얼굴이 통통 부었다.
 회사일로 반년남짓 운남에 가있는 사이도 안해가 외로워 한다며 밤마다 전화 한통씩 걸어오던 살뜰한 남편이 아니던가? 귀여운 딸애가 눈에 밟힌다며 만화책이며 놀이감이며 사흘이 멀다하게 부쳐보내던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던가? 
 “당신 밖에 다른 녀자 생겼어요?”
 “아니...”
 “그럼 혹시 사람을 죽였거나 무슨 큰 죄를 지었어요?”
 “아니...”
 “그럼 도대체 왜요?”
 “... ...”
 명수는 묵묵 부답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명수는 또박또박 글을 쓴 메모 한장 남겨놓고 끝내 떠나갔다. 
 -여보, 미안하오! 사랑하는 당신과 딸애 곁에 더러운 에이즈병이 있어서야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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