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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발 불지 마
2018년 09월 01일 13시 13분  조회:254  추천:0  작성자: 장학규

수필

나발 불지 말라

장학규


 

  "나발 불지 마!"
  퍼그나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이 문구는 나의 발명이 아니다. 중국의 어느 위인의 시구 중의 한 대목이다. 그 해의 인민일보 톱기사로도 실린 시이다. 일생을 치렬하고 피어린 투쟁속에서 지낸 위인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속심을 직설적으로 토로하기를 즐겼었다.
 
   "나발 불지 마!"
  이 한마디에서도 우리는 위인의 대범하고 솔직하며 두러움 모르는 성격을 보아낼 수 있다. 강유력한 핵무기를 소유한 미국을 종이범에 비유한 것은 위인만의 발상이고 언행이라 하겠다.
 
  "나발 불지 마!"
  그러나 필자가 이 말에 현혹된 것은 결코 과격하다거나 유모아적으로 되어 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유머가 결핍하고 소심하기까지 한 필자가 이 말에 흡인되고 매료된데는 나름대로의 이해가 있기 때문이다.
   
  새로 반듯하게 닦아놓은 301국도를 달리다보면 길 양옆에 알락달락한 광고판들을 발견하게 된다.달리는 차에서 쉽사리 보라고 집채만한 철판들로 세운 것들인데 설계가 자유분방하고 색상이 환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줄 뿐만 아니라 도로 미관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광고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었다.구역질이 나도록 어처구니 없는 광고도 있었다.
  그 하나를 실례든다면
  
   *** 병원의 임직원 일동은 손님 여러분들의 여행이 즐겁고 순조롭기를 기원합니다.
  주소:***
  전화:***
  
  언뜻 보기엔 호의여서 타매하기 어렵다."여행이 즐겁고 순조롭기"를 기원하는데 어디 대고 욕을 한단 말이? 망녕이 들어도 분수가 있지...허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엉큼한 속마음이 통채로 드러나 무척 기분이 잡친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누구나 다 즐겁고 순조로우면 병원은 곧바로 망하고 말며 중국 땅에 몇백만명의 실업자가 하루새에 불어나게 된다.바꾸어 말하면 (극단적인지는 몰라도) 병원은 아픈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생존의 길이 더 넓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병원의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자기가 어떤 면의 치료에 뛰어나다는 설명으로 자기를 흥보해야 시장법칙에 부합된다는 말이다.
  
  "손님 여러분의 여행이 즐겁고 순조롭기를 기원합니다."
   마치도 차사고를 낼 것을 기원하는 것 같아 꺼림직하지 않는가? 도둑눔이 소매치기 당하는 사람더러 "좋은 꿈을 꾸시오"하는 것과 무었이 다른가? 이런 현상을 두고 "나발 불지 마!"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일본은 자살률이 아주 높은 나라이다.그래서 공익광고도 남달리 많이 해야 하는 나라이다. 이를테면 소위 "자살 방지 광고"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인생은 아름답고 생활은 보람차다"는 식으로 절대 쓰지 않는다. 마치도 여행이 즐겁고 순조로운 사람이 병원 주소 따위를 볼리 만무한 것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고 보람을 느낀 인간은 결코 자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살하기 쉽고 또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한 그런 곳들에 일본인들은 "죽음을 결행하기전에 10분만 지나온 인생을 돌이켜보시오"라는 뜻의 피켓을 세워둔다고 한다. 그래서도 죽겠다는 사람은 별수 없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그 10분 동안에 사신의 유혹에서 벗어난 사람이 많다고 하니 어쨌던 유효적인 방법이랄밖에..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눈 감고 아웅 하는 놀음을 놀고 있다. 거리에 나가 프랑카드를 보면 세상 없는 지상낙원이 중국이라는 감각이 든다. 상점에 들어가면 "손님은 하느님"이라는 글발이 맞아주고 사거리에는 "어려움이 있으면 경찰을 찾으라"는 표어가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듣기 좋은 말들이 많이 보이지만 그저 듣기 좋고 보기에 좋은 것으로 그쳐야지 그것을 진짜로 믿었다간 큰 코 다치기가 십상이다. 천하없는 호사군이라도 "허, 또 '나발'을 걸어놨군"쯤으로 생각해야지 정식으로 대들어다간 된 욕을 치르기가 보통이다.
  
  일전에 출장 갔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었다. 돌아오기 이틀전에 "인민의 철도는 인민을 위한다"는 간판을 내건 역전의 매표구에 찾아가서 침대권을 사게 되었는데 호박같이 생긴 매표원은 차겁기가 꼭 얼음 같았다. 철도가 인민의 것이 아닌 자기 집 소유인 것처럼 험악한 얼굴을 하고 이 차도 없다, 저 차도 다 팔렸다, 3일 후도 거덜났다, 5일 후도 매진되였다면서 묻는 말에 쏘아붙이더니 불시에 "썩 물러가!" 하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는 것이었다. 바로 매표구우에는 "여객에게 최대의 편리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천직이다"란 새빨간 글이 붙어 있었다. 이거야말로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함께 동행했던 동료가 "저년이 히스테리가 들렸나?" 하며 혀를 차는데 여기저기서 기커먼 자식들이 어슬렁 어슬렁 기어들면서 "침대권 살려나? 여기 있다구..." 하며 치근덕 거리는 것이었다. 보나마나 매표원과 한통속들이었다. 괘씸해서 모두 방색하고 이틀후에 다시 찾아갔더니 없다던 당날의 침대권이 무더기로 생겨났다.통속이 고가로 팔다가 다 못 판 것을 급급히 처리하느라고 태도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년의 히스테리가 쏙 들어갔나?"
  동료가 못내 신기해 하기에 내가 매표구우의 구호를 가리키며
   "아니야.이떈 저 '나발'이 구린내를 풍길 수 없기 때문이야."했더니 그제야 깨도가 된듯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였다.
  
  언행불일치가 중국의 일대 특색이 되어진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가독처로 시장이 농단되어 있는데다가 든든한 쇠밥통들을 괴춤에 차고 있어 세상 무서울게 없는 것이 중국 공무원들의 팔자이다. 한번 일터란데를 차지하면 죽어서 문드러질때까지 그 자리를 깔아앉아 허세를 부린다. 일을 잘해도 그만, 못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니깐.오히려 일을 하지 않고 입방아를 찧는 자들이 더 잘 되어가는 판이니깐.

  그래도 민주는 발전시켜야 하고 발전은 도모해야 하기에 모순체들이 충돌되더라도 어차피 울며 겨자 먹기로 사후에 "나발'이 되어질 것들을 제출하고 내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변혁과 개혁을 시도하지 않는 한 텅텅 빈 구호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곁과 속이 다른 선전은 반감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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