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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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강아지와 좋은 글

내 강아지는 잘 살고 있는 걸까
2013년 07월 29일 10시 27분  조회:1893  추천:0  작성자: 라라

 

 
 
내 집 내 방에 있으면서도 공연히 헛헛할 때가 있다. 빽빽하게 가구도 들어차고 가전제품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갖추어져 있지만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외로움을 느끼고 있나보다. 한동안 문밖출입을 안 하다 보니 차츰 오는 전화도 뜸해졌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은 혼자서 떠들고 컴퓨터도 졸린 눈을 껌벅거리고 있다.

아이들이 떠난 집은 적막강산이다. 뿔뿔이 흩어져 제 앞가림하기에 숨 돌릴 틈이 없고 늙은이들은 반쪽만 틀어 놓은 전기장판 위에서 겨울 한나절을 뭉개고 있다. 안방으로 거실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우리 집 강아지가 졸졸 따라다닌다. 있는 듯 없는 듯 별로 손이 가지 않는 염전한 녀석이다. 뛰는 적도 없고 뭔가를 물어뜯는 적도 없다. 가족이 귀가할 때 반갑게 매달릴 때 외에는 소리를 내는 적도 없다. 하루 세 차례 내가 밥을 먹을 때만 저도 밥을 먹고 용변을 보고 싶으면 조용히 베란다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있다. 문을 열어주면 용변을 보고 블라인드를 살짝 들추고 베란다 너머 흘끗 보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소파 위에 자리를 잡는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거실에서 자고 안방에 있으면 안방에 와서 잔다. 하루 종일 잔다. 팔자가 늘어졌다.

4년 쯤 전에 큰 아이가 주먹만 한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는 슬며시 내려놓았다. 예전에 강아지 세 마리를 기르느라 혼이 난 적이 있었기에 앞으로 다시는 강아지를 집에 들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었다. 어미젖도 덜 떨어진 녀석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약해져 또 들여 놓고 말았다. 가을이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병원 데리고 다니며 예방주사도 맞히고 손끝에서 우유도 먹이고 밥도 먹이고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사람들은 품종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똥개라고 대답한다. 공사현장에서 기르던 개가 낳아 놓은 새끼이니 족보도 아비도 알 수 없는 녀석이다. 영리한 축에는 끼지 못하는 녀석이라서 주인 말이라고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뉘 집 개는 리모컨도 물어 오고 핸드폰도 가져 온다는데 이 녀석은 ‘앉아, 서’도 못하니 뭘 시키는 일은 지레 포기해 버렸다. 그래도 얌전하니 기를 만하다.

요즘은 집에서 기르는 개를 반려견이라고 한단다. 伴侶라는 말 참으로 거창하다. 생각이나 행동이 같은 짝을 반려라고 한다는데 우리 집 개가 나와 생각이 같을지 모르겠다.

개는 개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데 우리 집 개는 개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동물로서 야생의 본능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주는 밥이나 받아먹으며 용변을 가려 보아야 하고 사철 기후에 맞춰 옷 갈아입고 낯선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아도 짖지 말아야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을 하고 자손을 번성시키는 일은 꿈도 꾸지 말아야한다.

사람도 안락한 생활을 누리려면 포기해야하는 것이 많은 것처럼 우리 집 개도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사는 덕에 포기해야하는 것이 참으로 많다. 내 등에 제 등을 기대고 졸고 있는 녀석을 보고 있자면 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야 일찌감치 자식 둘을 낳아 다 길러 놓고 가끔씩 듣는 전화 목소리라도 들으면 기운이 솟는데 가을이는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다. 새끼 낳아 자손을 번성시키는 것이 모든 동물들의 으뜸의 본능일진데 밥 먹여주는 주인이라는 권한으로 그것을 막고 있다.

내 변덕에 따라 어느 날은 안고 눈 맞춰 주지만 어느 날은 발로 밀어 내기도 하는데 싫다 소리도 없이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내가 불러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등이 시리고 적막한 겨울, 가을이와 전기장판 위에서 할 일 없이 뒹굴며 너도 나처럼 적적할 때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늙은 주인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일을 벌이지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집 강아지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김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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