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살던 백구 기사의 사진 처음 보았을 때 하얀 털이 복슬복슬하던 너는 코끝이 검고 촉촉했다. 어렸지만 앞발이 큼직한 것이 몸집이 우람해질 조짐이 보였다. 사람들은 순종 진돗개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 집은 동네와는 뚝 떨어진 산기슭에 있었고, 네가 천방지축 뛰는 게 자유로워 보여 너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았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에 이를 때까지 너는 그렇게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꼬리를 말고 절룩거리며 집에 돌아온 너는 뒷마당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기네 집 닭장을 넘보는 너를 막대기로 흠씬 두들겨 팼다고, 아랫동네 사는 아저씨가 개 단속을 잘 하라며 우리 집에 올라와 호통을 쳤다.
네 목에 목걸이와 쇠사슬이 채워졌다.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굴던 너는 사람을 보면 무섭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억압이 너를 사납게 만들었다. 거짓말 보태서 송아지만큼 자란 너는 달 밝은 밤에는 늑대처럼 울었다. 너는 힘이 셌다.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몇 번이나 목줄을 풀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며칠 사라졌다가 산토끼를 입에 물고 나타나기도 했다. 우리가 마당에 놓아 애지중지 기르던 거위를 줄에 묶여 있는 채로 잡아먹기도 했다.
어느 날 밤 네가 양계장 주위를 맴돌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혼비백산해서 손전등을 들고 아랫동네로 달려갔다. 혹시라도 사람을 공격할까봐. 잘못하면 닭값 수백만원을 물어내게 될까봐. 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에 산과 들을 돌아다녔다. 유령처럼 서 있는 나무들과 남의 선산 무덤들 사이를 헤맸다. 네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면서.
지쳐서 집에 돌아와 보니 네가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다음날 너를 팔아넘긴 건 잘못이었다. 거위를 잡아먹고 닭장을 습격한 너보다 우리가 훨씬 나빴다. 처음부터 너를 방치하지 말았어야 했다. 너는 개고 우리는 사람이니까. 다른 방법이 있었을까? 사랑이나 책임을 생각해야 했을까? 모르겠다. 우리는 사람이고 너는 개라서, 결국 제자리다.
부희령(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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