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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먼지 속의 문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1월13일 12시06분    조회: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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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춘

하루를 버텨낸 몸에는 언제나 먼지가 가득하다. 에어컨으로 작업복 먼지를 불어내는 순간, 천 사이에 숨어 있던 회색 가루가 허공으로 미친 듯이 도망간다.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통과했다는 증거이다.

어깨에는 하루의 피로가 그대로 걸려 있고 숨결에는 아직 쇳내가 남아 있다. 집에 도착하면 일하면서 모아 온 생각들을 문장으로 적는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라기보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생기듯, 글도 꾸준히 쓰면 ‘글력’이 생긴다고들 한다. 처음엔 그 말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먼저였고 글은 늘 그 다음이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저녁, 씻고 나면 어느새 눈꺼풀이 먼저 무거워졌다.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가도 몇 줄 적지 못하고 고개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글을 써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문장이 나를 대신 소개해 주고 내가 미처 몰랐던 생각과 성격까지 조용히 드러낸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말이 조금 과장처럼 들렸다. 나는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앞에 나서서 생각을 펼치는 성격도 아니다. 그저 하루를 무사히 건너는 데 마음을 쓰는 사람이였으니까 말이다.

나는 전문 작가도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해 막로동을 하면서 짬짬이 글을 쓴다.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갑게 식지 않은 시간에 현장으로 나가고 쇳내와 먼지가 엉켜 붙은 하루를 보낸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늘어가고 손톱 밑에는 아무리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때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계획 대신 작은 약속 하나만 정했다. 단 한 줄이라도 쓰자고. 잘 쓰지 못해도 괜찮고 남에게 보여 주지 않아도 좋으니 오늘이라는 날이 지나갔다는 흔적만 남겨 두자고 마음 먹었다. 문장이 아니라 숨결에 가까운 글이여도 괜찮다고, 자신을 조용히 설득했다.

그런 날의 저녁, 방 한구석에 앉아 노트북을 펼치면 손끝에서 아직 세멘트 냄새가 나는 듯하다. 노트북은 깨끗한데, 손은 그렇지 못하다. 그 우에 문장을 올려놓는 일이 가끔은 미안하게 느껴진다. 너무 초라한 사람이 너무 하얀 곳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것 같아서, 그 하얀 면을 더럽히는 일 같아서 잠시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쓰지 않으면 더 초라해질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몸을 써서 번 돈이 나를 살아 있게 해 주지만, 문장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게 붙들어 준다. 누구의 인생도 아닌, 내 인생이 여기 있었다고 말해 줄 작은 증거가 필요했다. 이름 없이 흘러간 하루들이 적어도 나에게만은 의미 있는 시간이였음을, 자신에게 설명해 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글은 잘 쓰려고 하면 멀어진다. 멀어 질수록 손이 굳고 마음이 먼저 닫힌다. 그래서 나는 요즘 잘 쓰는 것보다 솔직하게 쓰는 쪽을 택한다. 문장이 조금 기울어도 좋고 생각이 매끄럽지 않아도 괜찮다. 대신 그날의 피로와 망설임, 사소한 기쁨 하나쯤은 빠뜨리지 않으려고 한다. 남의 눈에 좋아 보이는 문장보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문장이 더 오래 남는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되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는다. 그런 날이 며칠만 쌓여도 괜히 나 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별것 아닌 약속 하나 지키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자신을 쓸모없이 꾸짖게 된다. 그래도 다시 연다. 다음 날,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 글이 나를 단련시킨다기보다 포기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느낀다.

문뜩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의 인생도 문장과 닮았다고.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태여나는 문장은 없고 대부분은 지우고 고치고 다시 적는 과정을 거쳐서 겨우 자기 모습을 갖춘다. 나 또한 그런 중일 것이다. 여전히 부족하고 자주 흔들리며 자주 틀린다. 그러나 완전히 버려지지는 않은 문장처럼, 나 역시 아직 수정 중인 존재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현장에서 날리는 먼지는 금시 쌓였다가 바람에 흩어진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먼지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하루들이 그렇게 반복된다. 나 역시 그 수많은 날 가운데 하나의 사람으로 서 있을 뿐이다. 특별할 것도, 눈에 띌 것도 없이 그저 제 몫의 시간을 소모하며 서서히 닳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더더욱 문장을 남긴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누군가 읽지 않아도 괜찮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내가 이 시간을 그냥 통과해 온 존재는 아니였다고 말해 주고 싶다. 숨이 가쁘던 날도, 아무 말도 하기 싫던 저녁도, 모두 나의 시간이였다고 조용히 증명하고 싶다.

삶은 언제나 몸이 먼저이고 생각은 그 뒤를 따라온다. 나는 오늘도 먼지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이 되여서야 문장 하나를 올려 놓는다. 그 문장은 대단한 뜻을 품지 않는다. 다만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하루의 가장 낮은 목소리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아도 괜찮은, 자신에게만 들려주는 작은 독백 같은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다리를 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라는 거친 강 우에,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가느다란 문장 몇 줄로 건너갈 자리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 다리는 튼튼하지도 근사하지도 않다. 다만 하루를 더 건너가기에는 겨우 충분한 폭일 뿐이다.

래일도 나는 다시 먼지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함께 몸을 일으켜, 또다시 쇳내 속으로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조용히 방 한구석에 앉아 종이를 펼칠 것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사라지고 있는 하루를 천천히, 례의 바르게 배웅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건설 현장의 나는 여전히 초라할 것이고, 손끝은 거칠 것이며 문장은 또 조금 비뚤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아도, 잘 쓰이지 않아도, 그 문장 하나가 오늘의 나를 대신 서서 “여기 있었다”라고 말해 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먼지 우에 문장을 올려놓는다.

마치 사라지는 발자국 옆에, 작게 돌 하나를 얹어 두듯이.


编辑:안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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