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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세 왕춘문로인, 옷 한벌을 36년째 입으며 6,000만원 기부
조글로미디어(ZOGLO) 2026년9월8일 16시21분    조회: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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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입은 중산복 한벌, 70∼80년 동안 사용한 나무침대 한장, 절강성 녕파시의 98세 로인 왕춘문은 자신에게는 매우 ‘린색’하지만 그 ‘린색함’으로 모은 돈으로 자선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98세 고령의 왕춘문로인

1984년 기업을 창업한 이후로 그는 군중들을 위해 다리와 길을 놓고 제방을 쌓았으며 로인 복지시설과 유치원을 설립하고 생계 곤난 지원, 의료 지원자선 기금을 설립했다. 40여년 동안 그가 이루어놓은 자선활동은 셀 수 없이 많다. 2001년 이후로 이 ‘린색한’ 로인은 근 6,000만원의 거금을 기부했다.

“나는 신발을 신는 게 아니라 안해의 마음을 신는 겁니다.”

하얀 백열등 하나가 등갓도 없이 외로이 매달려있다.

녕파시 녕해현 약룡가두 흥화유치원 옆의 한 단층주택은 왕춘문이 반년전에 막 이사온 ‘새집’이다. 세멘트 바닥에 대나무 옷걸이, 그가 수십년 동안 살았던 옛집에 비하면 이곳은 이미 훨씬 ‘호화로워’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방은 흰벽으로 칠해져 있다. 갈색빛이 도는 낡은 나무침대 하나가 벽에 기대여 있고 침대 모서리는 세월에 닦여 윤기 나고 매끄러웠다.

“이 침대로 말하자면 70∼80년은 되였습니다.” 왕춘문은 침대 머리맡을 가볍게 두드리며 평범한 어조로 말했다.

왕춘문로인의 거실 내부 

거실 의자에는 짙은 남색 중산복이 걸려있는데 깃은 닳아서 보풀이 일었으며 소매에는 굵기가 고르지 않은 바느질자국이 남아있었다. “1990년쯤에 샀습니다.” 벽쪽 낡은 옷장에는 같은 양식의 중산복 한벌과 흰 셔츠 몇벌이 걸려있을 뿐 텅 비여있었다.

지나온 나날들은 평범하기 그지없었지만 유난히 따뜻했다.

왕춘문은 항상 천으로 된 신발을 신었고 해여지면 안해가 꿰매여주었다. 기운 우에 기운 자리, 그래도 그는 그대로 신었다. 속옷도 꿰매였고 꿰맬 수 있는 것은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보면은 믿지를 않아요.”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 섞인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나는 신발을 신는 게 아니라 안해의 마음을 신는 겁니다.”

안해 진적금을 언급하자 로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72년 동안 풍우를 함께했으며 그녀도 그와 마찬가지로 검소하고 마음이 약했다. 초창기 자선총회가 설립되지 않았을 때에는 돈과 물건을 전하는 일 대부분을 그녀가 묵묵히 혼자서 해냈다.

2021년말, 그의 안해는 세상을 떠났다. 왕춘문은 지금까지도 그녀가 생전에 꿰매준 옷을 입고있는바 마치 그녀가 결코 떠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내가 돈을 기부하는 것을 그녀는 한번도 말린 적이 없었습니다. 때로는 내가 바쁘면 그녀가 스스로 어려운 가정을 찾아가 살펴보고 물건을 건네준 후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그녀같은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춘문로인과 생전의 부인 모습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자동차도 사지 않고 별장도 사지 않고 돈을 모두 나눠주는데 무엇을 바라는가?”

“작은 자동차, 나는 50대라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사지 않느냐고요? 작은 자동차를 타고 사람을 도우러 가면 남들은 나를 높이 쳐다보지만 내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남들은 나를 평등하게 봅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별장을 살 돈은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데 쓰겠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하지 별장에 사는 것은 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안심. 이 두 글자는 가벼운 깃털 같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산처럼 무겁다.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남의 고통을 가장 잘 안다

왕춘문은 1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의지하며 근근득식했다. “소년 시절 제자생활을 하면서 뼈속까지 시큰시큰 아팠어요.” 80여년이 지난 지금, 지난 일들을 돌이켜보니 로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의 고통이 곧 내 고통입니다. 돈을 벌게 되면 반드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왕춘문의 젊은 시절 사진

20세기 40년대, 그는 녕해 유흥 직영판매점 부문에서 제자로 일했다. 장날에 떡을 파는 한 할머니가 홍탕을 사러 왔는데 옷이 낡고 몸이 후들거렸다. 왕춘문은 홍탕 저울로 근을 재고 돈을 받은 후 조용히 돈 몇전을 종이봉투 아래에 다시 넣어주었다.

후에 왕춘문은 천일초불가게에서 제자로 일했다. 19살 나던 해 겨울, 녕해 옛거리에서 한 할머니가 얇은 옷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애원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피해갔다. 왕춘문은 몸에 걸친 유일한 솜옷인 아버지의 유품을 더듬으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벗어서 전당포에 맡기고 돈을 바꾸어 로인에게 건넸다.

찬바람 속에서 그는 벌벌 떨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그의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돈이 있으면 자선을 베풀고 돈이 없어도 선한 사람이 되여라.”

20세기 80년대의 어느날 저녁, 운명은 그에게 예상치 못한 시험을 내밀었다. 그는 고객을 방문하러 갔다가 큰 개 한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것을 보았다.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뒤쪽 바로 가까이에 우물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떨어지는 순간, 차가운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 우물 벽은 미끄러워 붙잡을 곳이 없었다.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지만 신발 밑창은 닳고 발가락에서는 피가 났으며 의식은 점점 흐릿해졌다. 거의 포기하려는 찰나, 행인이 소리를 듣고 그를 구해냈다.

“저승까지 한번 갈 뻔 했어요.” 왕춘문은 “더이상 나만을 위해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그는 “평생 자선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기부금을 건설한 다리에서 사진을 남긴 왕춘문과 생전의 안해

1988년 그는 홍수 피해로 인해 파괴된 고향의 초호다리 건설을 위해 기부했다. 이후 7개의 다리와 관련 도로 건설에 약 150만원을 기부했다. 1990년, 1만 9,000원을 투입해 차로진 왕애향 촌민들에게 전력을 공급했다. 1992년, ‘왕춘문생계곤난지원기금’을 설립했다. 1998년 태풍 피해후, 30만원을 기부해 제방을 쌓았다. 2009년, ‘녕해왕춘문자선기금회’를 설립했다. 2018년, 녕해현자선총회와 계약을 맺고 ‘왕춘문자선애심기금’을 설립해 400만원을 기부했다.

1990년, 녕해현에는 공립유치원이 단 하나뿐이여서 입학 명액이 매우 적었고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대학에 가기보다 더 어려웠다. 이에 왕춘문은 직접 유치원을 짓기로 결심했다.

당장 현금이 없었기에 회사를 경영하면서 틈틈이 투자했고 마치 제비가 흙을 물어오듯 조금씩 쌓아올렸다. 200만원은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였다.

후에 그는 또 로인복지시설을 지었다. 리유는 단순했다. 당시 〈녕파일보〉에 ‘침대 한자리 구하기 어렵다’는 기사가 실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평온한 시선으로 “사회의 필요에 따라 지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 27일, 왕춘문은 신문에서 ‘자원봉사자 교사할머니’ 주수방의 이야기를 읽었다. 70대의 은퇴한 교사가 아직도 호남성 산간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뛰여다니고 있었다. 그는 수소문 끝에 주수방을 만나 단 몇분만에 물었다. “희망소학교 한채를 짓는 데 얼마나 드나요?”

희망 소학교 준공식 사진 

“50만원입니다.”

“그러면 5채를 짓겠습니다.”

상대방은 그가 잘못 들은줄 알았다. 왕춘문은 한글자한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5채, 250만원입니다. 거기에 프로젝터(投影仪) 살 돈으로 15만원을 더 얹었습니다.”

학교가 완공된 후 그는 구경하러 가지 않았다.

여러해 전, 그가 녕해 왕애향대로하소학교를 기부 건립했을 때 준공식 날 정문에는 ‘왕춘문선생님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씌여진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지만 그는 가지 않았다.

“무슨 영예, 표창 같은 데는 저는 가지 않습니다.” 그는 상쾌히 웃으며 말했다.

빛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빛을 밝히고있다

시각장애인 자원봉사자 뢰안빈은 1992년 그 깊은 가을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버지가 나무 하러 산에 갔다가 뜻밖의 사고로 중상을 입어 창자가 파렬되여 위독한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었다. 옆병실의 한 이웃이 왕춘문을 알아보고 한마디 전했다. 당일에 2,000원이 병상 앞에 전달되였다.

“그건 목숨을 구해준 돈이였습니다.” 뢰안빈은 눈가를 붉히며 말을 전했다.

후에 그는 항주맹인안마학교에 지원하려 했지만 3년 학비가 3만원이였고 그의 가정에게는 아주 큰 부담이였다. 왕춘문은 조용히 그의 모든 학비를 대신 내주었다.

뢰안빈과 그의 어머니

그후, 그가 페염으로 응급 치료를 받고 어머니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을 때도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왕춘문의 돈은 항상 제때 전달되였다. 뢰안빈은 “그분이 안계셨다면 우리같은 가정은 오늘날까지 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뢰안빈도 자주 자선활동 현장에 나타나 자신의 기술로 다른 사람들을 안마하고 봉사한다. 그는 이것이 왕춘문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말한다. “남에게서 빛을 받았다면 그 빛을 전해야 합니다.”

왕춘문이 받은 감사편지ㅅ

“왕춘문할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라는 편지들이 가난한 학생들, 장애인가정 등에서 한통두통 날아왔다. 매년 10여가구와 결연을 맺고 해마다 그렇게 해왔다. 그리고 그 빛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빛을 밝혀 후발자들을 비추고 있다.

뢰안빈의 안마실에서는 매일 형편이 어려운 로인들이 무료써비스를 받고 있다. 당시 도움을 받은 학생들중에는 지금 향촌교사가 된 이도 있고 사회구역 의사가 된 이도 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왕춘문에게 받은 빛을 다시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재산을 자녀들에게 남겨 두지 않으면 자녀들이 불만이 없는가요?"

왕춘문은 당당하게 “불만이 있으면 사상교육을 하면 됩니다.”라며 답했다.

그의 딸은 조용히 말을 건냈다. “우리가 아버지께 뭐라고 할 권리가 없습니다. 돈은 아버지가 직접 번 것이고 우리가 쓰는 것은 우리가 번 것이니까요.” 그는 이미 98세의 고령이지만 매달 회사에 가서 장부를 확인하는 것을 견지했다.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보러 가는 게 아니라 돈이 제때 기부되였는지 보러 가는 것입니다.”

흥화회사 사진

왕춘문은 “자식들은 스스로 살아가야 합니다.”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살아서 기부하고, 죽어서도 역시 기부할 것입니다.”

2001년 이후, 2026년 3월 현재까지 왕춘문은 녕해현자선총회에 기부한 금액은 무려 6,000만원에 달한다.

1956년에 입당하여 현재까지 70년 당령을 가진 이 로인은 자신이 설립한 자선기금회의 이름을 ‘흥화(兴华)’, 즉 중화민족 부흥을 뜻하여 이름을 지었다. 이는 그에게 있어 구호가 아니라 무거운 사명이다.

/신화넷


编辑:유경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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