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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 먹어보는 연변랭면, 고향 떠난 이의 질긴 향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9월22일 11시07분    조회: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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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국수주의자 박찬일

서울 대림동에서 맛본 연변랭면. 박찬일 제공
여름이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9월 하순에 다들 반팔 차림이라니. 덕분에 올해처럼 냉면이 각광받았던 해는 없었던 것 같다. 여름에 외식거리라고는 냉면밖에 없어서 줄을 서던 옛 시절을 빼면. 냉면 중에서도 평양식 냉면의 재조명이었다고나 할까. ‘육수가 행주 빤 물처럼 시금털털하다’며 싫어하던 젊은이들이 ‘냉부심’(평양식 냉면을 제대로 즐긴다는 자부심)을 배운 해이기도 하다. ‘먹방’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오랜 냉면 ‘선수’들은 이런 광경을 묘한 시선으로 보았다. 은근히 섭섭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애인을 남들과 공유하는 불편함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무려나. 진짜 냉면광은 어차피 손님 다 빠진 겨울을 제철로 치기도 하니까. 그때 가서 알아서 즐기면 될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울의 ‘조선족 자치주’ 대림동에 가서 냉면(사진)을 먹었다. 아아, 서운해라. 연길에서 먹던 걸 닮았으나 맛은 많이 빠진다. 그럴듯한 유리그릇과 질긴 면은 닮았다. 연길의 진달래식당이나 삼천리식당에서 먹던 것이 낫다. 하여튼 연변식이기는 하다. 달고 시큼하고 과일을 띄우고, 이른바 ‘꿩고기 단자’를 올리는 방식이다. 연변=북한(평양) 등식을 생각했다가는 오산이다. 중국 등지에서 먹던 평양식 냉면은 아니다. 그쪽 냉면은 다르긴 달라도 남쪽과 비슷한 면이 제법 있다. 육수를 중시하는 것, 메밀이 많이 들어가지는 않아도 명색은 메밀면을 내니까. 하나 연변랭면은 북한식이기는 하되, 연변자치주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함경도식이다. 질긴 감자전분면이다. 그렇다. 남한에서 히트 친 함흥냉면과 비슷하다.

연변랭면에는 아픔이 있다. 왕년에 도토리가루도 넣었다. 한족들이 안 먹는 도토리를 식량으로 썼던 역사가 있으니까. 생각해보라. 북간도(만주 일대)를 개척하려고 건너간 이들이 남의 땅이 좋아서 갔겠는가. 북간도 이주사(移住史)를 여기서 다룰 수는 없겠지만, 연변랭면은 거저 생긴 건 아니다. 그 시절의 역사를 반영한다. 모든 음식은 인간과 땅의 산물이게 마련이다. 연변랭면은 함경도식이라고 할 수 있으니 메밀은 넣는 둥 마는 둥 한다. 안 넣어도 그만이다. 쫄깃한 면이 입에 들어와서 내 부실한 치아들과 힘을 겨룬다. 어이, 니가 나 씹냐? 이런다. 이 냉면이 바로 함흥냉면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함흥냉면은 비빔 아니오?’라고 묻는 이가 있다. 함흥냉면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물, 하나는 비빔. 비빔은 남한에서 성공했다. 물냉면이고 심심한 맛인 평양냉면의 대항마로 등장했다. 물냉면이 아니라 비빔면이었다. 맵고 쫄깃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요리책을 보거나, 그쪽에서 넘어온 북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함흥도 물냉면이다. 면발이 쫄깃쫄깃한.

대림동 냉면집 주인네와 몇 마디 나눈다. 아주 자부심이 있다.

“장강(長江) 이북에서는 원래 찬 걸 안 먹습니다. 우리 연변랭면만이 찬데, 전국 10대 면에 들어갑니다.” 10대 면을 누가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면 천국인 중국에서 연변랭면이 포함되었다니 장하다. 맛에는 절대성이 없다. 그렇지만 돈값은 따져볼 수 있다. 재료비 말이다. 대림동 냉면 값은 한국식 냉면보다 절대 싸지 않다. ‘특’으로 달랬더니 9천원을 받는다. 그 값으로 치자니 아쉽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향 떠난 조선족들의 향수 음식이다.

냉면은 아마도 전지구적 음식이 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서도 세를 조금씩 넓혀간다. 일본에서도 한국식 냉면의 시장 침투가 빠르다. 쫄면 닮은 모리오카 레이멘(냉면)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본의 냉면 강자다. 일본도 중국도 무덥고 혹서기가 있는 나라니까 여름엔 냉면이 제격이 될 수 있으리라. 중국 관광객들이 올여름 한국의 냉면을 어지간히 먹었다고 한다. 쩡, 식도와 위를 얼려버리는 냉면이 점점 더워지는 지구에 어울린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한식’을 꼽으면 늘 들어가는 게 냉면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뭐, 우리는 안 그랬나. 냉부심이 생기자면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니까. 우리도 그랬으니까.

박찬일 요리사 겸 음식칼럼니스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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