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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창조경영의 도전자들] “화약은 진실하고 정직하다” 화약 같은 열정으로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3월8일 08시35분    조회: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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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공립상업학교 시절의 김종희(위). photo 한화그룹

한화그룹 창업자 현암 김종희 (1)

“화약은 진실하다. 화약은 반드시 폭발하기 때문이다. 화약은 정직한 장소에서 정직한 시간에 폭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화약을 만드는 사람은 경영자를 중심으로 관리자, 기술자, 기능원 모두가 화약처럼 진실되고 정직해야만 한다. 따라서 화약사업의 리더들은 폭발적 열정으로 인간성 중시의 리더십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불리는 현암(玄巖) 김종희(金鍾喜)는 우리나라 최초로 다이너마이트를 국산화한 기업인이다.
   
   그는 늘 ‘화약에 담긴 진실성’을 강조했다. 자신은 물론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영자상이 화약의 성질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카리스마 넘쳤던 김종희는 창업부터 신용과 정직, 의리를 기본으로 삼았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였던 그는 자율과 책임을 중시하는 사풍(社風)을 세웠다. 그의 정도경영은 1960년대 화약을 비롯, 석유화학, 기계, 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1970년대 들어서 서비스산업으로 다각화함으로써 그룹 경영의 기틀을 잡는 근간을 세워 나간다.
   
   
   그 폭발적 열정으로!
   
   김종희는 일제 침탈이 심화되어 가던 1922년 11월 12일 충남 천안에서 아버지 김재민과 어머니 오명철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직산공립보통학교와 성환공립심상소학교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꿈을 키웠다. 1937년 서울의 명문 경기공립상업학교로 유학할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당시는 경기공립상업학교를 줄여서 ‘도상(道商)’이라 불렀다.
   
   1940년 11월 김종희가 도상 4학년이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진 종로구 효자동 길을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오늘의 경복고 옆 골목에서 학생 한 패거리가 일대 활극을 벌이고 있었다. 패싸움을 하는 그들은 도상 4학년 럭비부 일본인 학생 4명과 조선인 학생 3명이었다. 열세에 몰려 두드려 맞고 있는 조선인 학생들을 보는 순간 울분이 치밀어오른 김종희는 앞뒤 생각 없이 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일본인 학생들을 닥치는 대로 걷어차고 들이받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이윽고 순사들이 달려와서 학생 8명이 파출소로 연행됐다가 그날 밤 학교로 넘겨져서 조사를 받고 밤늦게야 귀가할 수 있었다. 다음 날 교장실 분위기는 아침 일찍부터 침통했다. 어젯밤 패싸움을 벌인 학생 8명에 대한 징계 문제가 논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종희의 이번 행동은 오랫동안 억압받아 오던 조선인 학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과도 같았다. 그 무렵 조선인 학생들은 일제 식민지 정책을 마음으로는 불복(不服)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묵묵히 참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도상의 경우에도 겉으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세우며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을 반반씩 수용했으나, 교사진은 거의 일본인으로서 조선인 학생들에 대한 황국신민화 교육을 노골적으로 강제해 오고 있었다. 그런 황국신민화 교육은 오히려 조선인 학생들의 민족적 자각을 일깨우고, 일제에 대한 반감만 자극하는 결과를 더할 뿐이었다. 도상에는 오래전부터 충청남도 출신 학생들의 모임인 충남회가 있었다. 모임 취지는 충남 출신 학생들의 친목 도모에 있었으나, 그 모임에서 오가는 학생들 대화는 주로 조선 민족 미래에 대한 문제들이었다. 김종희가 충남회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은 2학년 1학기부터였다.
   
   “중국에 있다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가? 만주를 무대로 활약하는 마적대는 조선 독립군인가? 일제의 조선 민족 말살정책이 이대로 계속되어 조선 민족은 끝내 독립을 못하고 일본에 영원히 예속되고 말 것인가?”
   
   선배들의 열띤 토론은 김종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그는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민족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김종희가 충남회 회원이 아니었다고 해도 조선인 학생들이 일본인 학생들에게 얻어맞는 것을 못 본 척하고 그냥 지나칠 그가 아니었다.
   
   김종희는 파출소로 연행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이 싸우게 된 이유를 알았다. 뒤에 따라오던 일본인 학생들이 저희끼리 장난을 치다가 들고 있던 럭비공을 떨어뜨렸고, 그 공이 조선인 학생들 앞으로 굴러오니까 한 학생이 무심코 럭비공을 발로 툭 건드렸다. 그러자 사과를 강요하며 시비가 붙은 것이다. 파출소에서 곧 학교로 넘겨진 그에게 훈육주임이 물었다.
   
   “김종희, 네가 먼저 때렸나?”
   
   “제가 갔을 때는 한창 싸우던 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싸움을 말리려다가 싸우게 되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지나가다가 4 대 3으로 싸우는 것을 보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어 함께 싸웠습니다.”
   
   “그랬다면 너는 더 나쁜 놈 아니냐? 친구들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면 마땅히 싸우지 않도록 말렸어야지,4 대 3이라고 해서 3에 가세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약자를 돕는 것은 당연합니다.”
   
   “만약 일본인 학생이 3명이고 조선인 학생이 4명이었다고 해도 네가 일본인 학생 3명을 편들을까?”
   
   김종희는 입술만 지그시 깨물었다. 이번 일은 학생들 사이에 흔히 일어나는 대수롭잖은 싸움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 간에 일어난 패싸움이라는 데 있었다. 일본인 교장은 패싸움을 벌인 학생 8명 모두에게 퇴학처분을 내렸다. 청천벽력 같은 처분이었다.
   
   그는 4년간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야만 했다. 그 뒤 김종희는 당숙 김봉서(金奉瑞)가 애쓴 덕분에 원산공립상업학교 4학년에 편입해 1941년 12월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 뒤 서울로 올라온 스무 살 청년 김종희는 당숙 김봉서 집에 들렀다.
   
   “잘 왔다. 네가 졸업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 일자리는 이미 결정돼 있다.”
   
   “저는 취직보다 공부를 좀 더 해볼까 합니다.”
   
   “공부라는 게 어디 끝이 있겠냐만, 여러 형편도 생각해야 할 게 아니겠느냐?”
   
   “사실은 일본으로 가려고 형님한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일본? 아니, 전쟁이 막판으로 치달아 세상이 어수선해진 이때에 일본이라니? 일본에 나가 있는 사람들도 고국으로 돌아와야 할 시기에 나가려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일본에 있는 조선 학생들은 벌써부터 학병에 자원하라는 심한 압력을 받고 있다는데.”
   
   “…”
   
   “네 형처럼 취직을 했다가도 기회가 닿으면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야. 그러니 아무 말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내일 당장 경기도경찰부로 고이케 경부를 찾아가 만나도록 해라!”
   
   “고이케 경부를요?”
   
   “그 사람은 네가 크게 될 인물이라고 칭찬이 여간 아니더구나. 이번 네 취직도 고이케 경부가 주선했느니라.”
   
   김종희의 마음은 착잡했다. 고이케 쓰루이치는 원산 경찰서 관사인 자신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줬던 사람이다. 거기다 취직까지 그가 주선했다는 말에 김종희는 숙명적인 인연에 발목을 잡히는 예감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로서는 고이케도 그 어른도 어차피 한 번은 인사차 만나야 할 사람이었다. 다음 날 경기도경찰부 보안과장실을 찾아갔다. 고이케가 김종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졸업 축하한다. 졸업은 또 하나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제부터 사회인으로서 분발을 부탁한다.”
   
   “노력하겠습니다.”
   
   “얘기 들었겠지만 네 취직은 이미 결정되었다. 내가 오늘 중 연락해 놓을 테니 내일 아침 일찍 찾아가 그쪽 회사의 지시에 따르도록 해라.”
   
   “화약 판매 회사라고만 알고 있는데….”
   
   “지난 12월 발족한 조선화약공판이다. 세운 지 아직 한 달도 안 됐지만 조선에서 유명한 4대 화약제조회사와 2개 화약판매회사가 통합된 회사라서 규모도 클 뿐 아니라 장래도 매우 밝은 직장이다.”
   
   “하지만 저는 화약 계통에는 전혀 문외한 아닙니까, 경부님?”
   
   “화약을 만드는 것은 기술자이지만, 화약 원료를 구매하고 생산을 통제하고 판매를 관리하는 것은 사무직이 하는 일이다. 너는 앞으로 그 회사에서 구매부서 업무를 보조하게 되어 있다.” 김종희는 이미 근무 부서까지 결정해 놓은 고이케의 과잉 친절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사실 그는 고이케를 만나러 오면서도 취직을 거절할 적당한 핑계를 찾기에 골몰해 있었다. 보안과장실을 나서는 김종희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 회사에 근무한다고 해서 일본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아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아직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닌데 당숙이나 고이케 경부의 호의를 거절하면서까지 그분들의 마음을 언짢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조선화약공판은 일제가 강력한 전시경제(戰時經濟) 체제를 확립하고자 시행한 기업정비령에 의해 1941년 통합·설립된 회사로 그 권한이 막강했다. 이미 6개월 전 일본에 설립된 일본화약공판주식회사와 마찬가지로 조선 안에 있는 여러 화약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공판회사가 전량 구매하는 형식으로 인수해 판매가격을 결정하고 수요처에 배급할 뿐 아니라 화약공장마다 생산량을 할당하며 공장들이 필요로 하는 원재료를 일괄 구입해서 공급하는 일까지 맡고 있었다.
   
   

▲ 1953년 조선화약공판 인수 후 축하받는 김종희. photo 한화그룹

   관리직 사원 대부분은 일본인
   
   김종희가 조선화약공판에 근무한 지도 어느새 3개월, 그러나 그는 화약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의 초임은 50원. 지난해 12월 도상을 졸업하고 조선식산은행원이 된 친구는 월급이 45원이었다. 본디 화약 계통은 위험물을 다루는 특수직종이기에 비록 관리직이라 해도 다른 직종 종사자들에 비해 대우가 나은 편이었다.
   
   회사도 아직은 사무체계가 잡히지 않은 때였다. 화약공판에는 취체역(取締役) 사장과 2명의 상무 취체역, 3명의 취체역을 합한 6명의 중역이 있었는데, 그들은 저마다 소속회사가 달라 이해관계도 맞섰다. 사원들도 각 사가 보낸 사람들이어서 손발이 서로 맞지 않았다.
   
   50명 가까운 관리직 사원의 대부분은 일본인이었다. 조선인으로는 와세다대학을 나온 김봉수가 총무부 관리과 창고계장 자리에 있었고, 평사원으로는 김종희를 비롯 민영만·김덕성 등 5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밖의 20여 노무직은 모두 조선인이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화약계에 입문한 새내기는 김종희뿐이다. 따라서 그는 어느 회사 출신에도 속하지 않았기에 회사 내에서는 외톨이로 그만큼 고독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조선질소화약 출신으로 여겨지곤 했는데, 그것은 그가 조선질소화약 출신 미야모토 사장의 배려로 특별 채용되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가 그를 채용한 것은 물론 고이케의 부탁 때문이었다. ‘총포 및 화약류 취체령’에 따라 원료 구입부터 제품 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하나하나 경찰당국에 보고하며 감시감독을 받아야 하는 미야모토로서는 관할 경기도경찰부의 고이케를 무시할 형편이 못 되었던 것이다.
   
   그즈음 신문들은 일본군 승전보를 연일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었다. 진주만 기습공격으로 초전의 기선을 제압한 일본제국은, 그 여세를 몰아 전쟁 주도권을 장악하고 개전 6개월 접어든 5월에는 점령지를 이미 필리핀·말레이시아·미얀마·인도네시아 등지로 확대해 나갔다. 6월부터는 화약제조회사들에 생산량 할당이 엄청난 폭으로 늘어나면서 중역들 사이의 반목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화약과 인연을 맺게 된 김종희는 열심히 업무를 파악하고 수행한 결과 채 1년도 지나기 전에 사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또한 화약산업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자, 김종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화약공판자치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그는 먼저 위험물인 화약이 혼란기에 외부로 유출되어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화약공판 산하 각 화약고 관리책임자들에게 엄중히 전달했다. 그러나 화약공판자치위원회의 영향이 미치는 지역은 그때 이미 38선 이남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북에는 미군보다 먼저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에 의해 군정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9월 중순부터는 고국을 떠나 살던 해외동포들이 속속 귀국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도 본국으로의 귀환을 서둘렀다. 화약공판에서도 일본인 사원들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하루는 사장실에서 김종희를 불렀다. 그는 사장실의 엄숙한 분위기에 긴장감을 느꼈다. 미야모토 사장을 비롯 기무라 수석상무, 스즈키 영업담당상무와 우에노 총무담당, 마쓰무로 구매담당, 요시다 생산담당 취체역 등 6명의 중역 전원이 탁자에 정연하게 앉아 있었다.
   
   “김 계장! 이리 앉아요!” 미야모토가 비워 놓은 상석을 권했다.
   
   “아닙니다. 저쪽으로 앉겠습니다.”
   
   김종희는 윗자리를 마다하고 맨 끝자리로 가서 앉으려 했다.
   
   “오늘은 여기가 김 계장 자리요. 어서 이리 와 앉아요.”
   
   “괜찮습니다.”
   
   “지금 우린 김 계장에게 조선화약공판 업무인계를 하려는 거요.”
   
   “업무인계라고요?” 얼떨떨해진 김종희는 마지못해 미야모토가 권하는 자리에 앉으면서 중역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다소 상기되어 있었다. 미야모토가 탁자 위에 놓인 두툼한 서류 묶음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다시 말을 이었다.
   
   “김 계장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오. 그래서 이 화약공판 업무의 처리방법에 대한 문제를 놓고 논의한 끝에 회사의 업무 일체를 김종희 계장에게 넘기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어요.”
   
   “여러분이 물러나면 회사 업무는 어차피 우리 자치위원회가 맡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치위원회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오. 그러나 우리 중역회의는 여러분이 임의로 결성한 자치위원회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어요.”
   
   “그렇다면 저한테 업무인계를 하겠다는 것은 무슨 얘깁니까?”
   
   “자치위원회 위원장이 아닌 화약공판 사원 자격으로 업무를 인수해 줘야겠어요.”
   
   “사원 자격이거나 위원장 자격이거나 무슨 상관 있습니까? 이러나 저러나 김종희는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지가 않아요. 자치위원회는 아무 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단체에 지나지 않아요. 따라서 자치위원회는 언제든지 해체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위원장 자격도 자동 소멸되고 마는 거요. 그래서 중역회의가 오늘 날짜로 김 계장을 우리 화약공판 지배인으로 선임하는 한편, 회사 업무 일체를 지배인에게 인계하기로 의결한 거요.”
   
   지금까지 화약공판에 지배인이란 없었던 제도이다. 그러나 주식회사 중역회의가 회사 업무집행과 관련해 지배인을 선임하거나 해임하는 일은 사업이 보장하고 있는 권한에 속한다.
   
   “조선이 현재 미 군정 아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현행법이 존속하는 한 우리 조선화약공판 중역회의 결의는 어디까지나 정당하고 합법적인 거요. 그러니 중역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주었으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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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重 첫 선박발주 리바노스 회장   울산 원유운반선 명명식 참석   손자 정기선 전무 영접… 3대째 우정  스타브로스 리바노스, 리타 리바노스(리바노스 회장 아내), 조지 리바노스 선엔터프라이즈 회장,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왼쪽부터)이 13일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에서...
  • 2016-06-14
  • [광복 70년/한국 기업史 명장면 10] 현대重, 1972년 조선소 착공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 백사장에서 현대중공업 임직원과 주한 각국 대사, 울산 시민 등 5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울산조선소 기공식이 열리고 있다. 이날 기공식은 우리나라 조선업이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뛰어들었음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의식이기...
  • 20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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