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샤오핑 국가 주석(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탄생 110주년 맞아 비공개 문서, 책으로 출간
(베이징=연합뉴스) 홍제성 특파원 =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이 문화대혁명 초기에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전 국가주석에게 편지를 보내 '적용 범위를 좁혀야 한다'고 간언했던 사실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문헌연구실이 덩샤오핑 탄생 110주년을 앞두고 발간한 '덩샤오핑 문집(1949-1974)'과 '덩샤오핑전(傳)(1904-1974)'에 이런 내용이 처음으로 수록됐다고 중국 신경보(新京報)가 19일 보도했다.
덩샤오핑 문집은 3권짜리로 80여만자, 406편의 원고가 담겼다.
이 문집에는 1957년 반우파 투쟁, 1958년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1966~1976년) 등 신중국 건국 이후 수차례의 정치운동을 겪는 과정에서의 덩샤오핑의 태도와 생각이 나타나 있다.
|
손을 흔드는 덩샤오핑 국가 주석(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작권자 ⓒ 2001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6년 6월 30일 류사오치(劉少奇) 전 국가주석과 공동 명의로 마오쩌둥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화혁명 운동은 문화, 교육, 당정 기관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간언했다.
그는 "공업·광업 기업과 기초설비 건설 등의 분야는 사고도 많고 계획의 이행률도 매우 낮다"면서 "이런 기층 단위까지 (문화대혁명에)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경우 영도(지도)도 제대로 될 수 없고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의 이같은 메시지는 문화대혁명이 경제 문제와 사회전반으로까지 크게 확산될 경우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적용 범위를 국한시켜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덩샤오핑은 1961년 3월 중앙서기처 회의에서 "대약진 운동의 교훈은 매우 깊고도 뼈아픈 것으로 실사구시의 정신이 손상을 입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실사구시는 실제상황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이를 위한 조사연구가 필요한데 최근 몇년간 조사연구가 매우 적었고 허상만을 만들어냈다"면서 "이것이 최근 몇년간의 근본적인 교훈"이라고 말했다.
덩샤오핑은 1957년 반우파 운동 당시에는 수차례 "우파로 규정짓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
중국 천안문 광장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그는 최근 일본과의 심각한 영토 갈등을 빚는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에 대한 견해도 드러냈다.
1974년 10월 베이징(北京)에서 개최된 대만 및 해외동포들과의 좌담회에서 그는 댜오위다오는 중국 영토로 우리는 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면서 "우리가 일본과 수교하면서 이 문제를 뒤로 미뤄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아니고 댜오위다오 보호 운동이 끝났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反)부패 문제와 관련, "반부패 운동이 심화되면 반드시 호랑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호랑이를 때려잡자'는 구호는 이런 뜻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윈난(雲南)성이 호랑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반부패 운동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그는 "한번 보고하면 됐지 왜 그렇게 자주 반복해서 들어야 하느냐"면서 "형식주의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며 형식주의를 비판했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의 비공개 문건들이 공개되고 그의 업적과 생애를 그린 드라마가 방영되는 등 탄생 110주년을 맞아 추모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