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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국호 제언] 겨레글 '고리', 로마자 'Gori'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8월14일 15시28분    조회: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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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년 동안 하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한 겨레

통일 이후 남북은 어떤 나라 이름을 가져야 할까요? 지난 1992년 이후 정기적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의학과 학술 교류를 진행하고 있는 재미 동포 정형외과 의사 오인동 박사가 최근 이에 대한 바람직한 답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오 박사는 통일된 국가의 이름으로 '고리', 로마자로는 'Gori'를 제안했습니다. 오 박사는 "단군조선 이래 우리겨레 역사의 대종은 추모(주몽)-대조영-궁예-왕건에 이르는 4대 '고리=高麗(고려)' 전통의 1400년"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고리'라는 국호를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인데요.
 
그런데, 왜 '고려'가 아니라 '고리'일까요? 오 박사는 애초부터 '고구려', '고려'라는 발음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를 국내외를 아우르는 폭넓은 문헌을 통해 증명했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세 편에 걸쳐 오 박사의 주장을 독자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 재미동포 정형외과 의사 오인동 박사 ⓒ오인동 

 
 

2015년은 조국이 일본의 강점에서 해방된 동시에 남북으로 분단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해방 정국에서 조선은 분단을 극복하지 못하고 남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을, 북은 같은 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이라는 우리글과 로마자 이름의 두 정부로 갈라섰다.

남북은 3년 동안의 전쟁을 1953년 정전한 뒤 60여 년 반목 대립해 왔다. 여기에 1910년부터 35년 동안은 나라 이름조차 잃어버렸으니, 우리 겨레가 하나의 나라 이름으로 살아보지 못한지도 105년이나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어코 자주적으로 화해·협력·교류·왕래하는 과정을 거쳐 통일을 이뤄낼 것이다.

앞으로 '대한'과 '조선'이 통일조국의 이름을 결정하게 될 때 서로 자신의 것을 채택하려 할 것이다. 그러니 둘 중 하나에 동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1960년 북이 '북남조선련방제'를 제안한 데 이어 1980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안했다. 남은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내놓고 이어 1994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북과 남이 처음에는 각기 자신의 정부 이름을 썼으나 그 뒤에 서로 이름을 내세우지 않은 것은 통일조국의 이름은 남북이 합의해 결정해야 한다는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의 남북 관계로 보아 통일의 날은 가깝지 않아 보이지만,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통일조국의 이름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다.

통일조국의 이름에 대한 제언들 

1997년, 통일의 여명이 밝아 오리라는 희망에서 재미동포통일연구회 'Korea-2000' 위원들과 작성한 '남북 지도자에 드리는 통일정책건의서'를 1998년 1월, 서울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평양에 있는 김정일 총비서에게 전했다. 그때 '통일 과정에서 써야 할 국호, 국기, 국가'에 대한 나의 글도 함께 전했다. 그 글에서 "로마자 국호는 남과 북이 같이 쓰고 있는 'Korea'로 하고, 동의하기 쉽지 않을 우리 겨레 글로는 잠정적으로 '코리아'로 쓰자"고 제언했다.

그로부터 2년 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나왔고 조국은 통일의 길로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2년 남녘 월드컵 축구경기장에 물결치던 'Corea' 깃발을 보고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써온 로마자 이름들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뒤에 설명하는 대로 2003년에는 로마자 이름은 'Corea'로 우리글로는 '꼬레아'로 쓰자고 제언했다.

2008년부터 남한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자 6.15남북공동선언이 무력화 되고 통일의 길은 멀어져만 가는 것을 보며 내가 제언했던 통일 국호에 대해 돌이켜 보게 되었다. 'Korea-코리아'와 'Corea-꼬레아'를 제언했을 때도 통일을 이루게 되는 날, 우리글 나라 이름은 전 민족 성원의 뜻을 모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지난 2002년 9월 29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남북대표선수들이 단일기를 앞세우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통일조국의 이름을 임시 방편적으로 로마자 이름 위주로만 추구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글 이름을 '코리아, 꼬레아'로 하자고 한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겨레글 이름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에 대한 반성과 후회 또한 커져 왔다. 그래서 통일조국의 이름은 우리 선조의 나라들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곧 조국의 로마자 이름의 어원 연구 과정에서 알게 되었던 '高句麗'(고구려)와 '高麗'(고려) 사람들은 '고구려'와 '고려'가 아니고 우리 겨레말 '고구리'와 '고리'로 발음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1) 그리하여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통일조국의 우리말 겨레글 이름을 '고리'로 하면 어떨까, 그리고 로마자 이름도 '고리'를 정확하게 표음할 새 이름을 생각해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高麗의 발음은 '고리', 高句麗는 高麗로 바꿨다 

'고리'(高麗)는 옛 조선(朝鮮)에 이어 우리 겨레의 선조 추모(주몽)가 기원전 37년에 세운 나라 '고구리'(高句麗)에서 비롯됐다. 그 뒤 국토와 국력을 크게 신장한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은 423년경부터 국명(國名)을 '고리'(高麗)로 바꾸고 427년 평양으로 천도했다. 이 고리왕조는 668년에 끝났고 918년에 왕건이 새 나라를 세우며 옛 '고리'(高麗) 왕조의 이름을 계승해 썼다. 

이렇게 우리 겨레 역사에 두 '고리' 왕조가 있었는데 고구려가 고리로 이름을 바꾼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1145년 왕건 고리(高麗)의 김부식 등이 한문(漢文)으로 편찬한 정사 <삼국사기>에 高麗 대신 대부분 高句麗로 썼기 때문이다. (高句麗: 879번, 高麗: 47번) 이로 인해 현세의 역사책에도 고구려(高句麗)로 쓰였고 역사 수업에서도 '고구려'로 가르쳐 왔던 것이다. 반면 1281~1283년 승려 일연이 쓴 야사 <삼국유사>에는 高句麗로 8번, 高麗로 74번으로 올바르게 썼다. 그리고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도 개명된 뒤에는 '高麗'(고리)로 쓰여 있다.(2)

그런데 여기서 더 안타까운 것은 高句麗가 高麗로 이름을 바꾼 우리 겨레말 발음이 '고구리', '고리'인 것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국의 남과 북에서는 선조들의 나라를 '고구려/고려'라고 잘못 발음하고 우리 글로도 틀리게 쓰고 있다.  

여기에도 이유는 있다. 우리 겨레의 '말'은 있었으나 정립된 '글자'가 조선(朝鮮)왕조 전에는 없어서 우리 겨레의 역사는 한자(漢字)로 쓰였다. 그래서 겨레말 '고구리'에 가장 가까운 한자 '高句麗'로 표음해 썼다. 즉 우리 선조들은 한자로 표기된 高句麗와 高麗를 우리 겨레말 '고구리, 고리'로 발음해 왔다.

이 사실은 1446년 우리 겨레 글 '훈민정음'을 창제한 조선의 세종대왕에 의해서도 밝혀져 있다. 겨레 글 반포 다음 해에 간행한 <용비어천가>에 바로 전 왕조의 한자 이름 '高麗'를 읽는 법을 주(註)에 우리글과 한문으로 적어 넣었다.

"麗運이 衰ᄒᆞ거든 나라ᄒᆞᆯ 맛ᄃᆞ시릴ᄊᆡ [高麗의 운이 다 되었으므로 (이성계가)나라를 맡으시려 할 때]"에 한문으로 단 주에 "麗音裏高麗也" 즉 '麗' 자의 소리는 '리'(裏)이니 고리(高麗)를 말한다고 썼고, 또 "太祖姓王氏名建"(태조의 성은 왕씨이고 이름은 건이다)고 했다. 

조선왕조의 국서에 '高麗'는 겨레말로 '고리'로 발음한다고 쓰여 있으니 더 논란할 일도 없다. 한편 高句麗(고구리)→高麗(고리)를 계승한 왕건 高麗(고리)의 역사 500년 동안에 국명의 발음에 대한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다. 1200년 역사의 겨레말을 써온 두 '고리' 왕조가 자신의 나라 이름은 입으로 전해져 온 대로 말해왔을 터이니 굳이 '高麗'의 발성법을 남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高麗(고리) 초기 조정의 서희 열전에 이를 방증하는 기록은 있다. 즉 993년 거란(요=遼)의 소손녕이 쳐들어오자 내사시랑 서희가 중군사로 전장에 나가서 소손녕에게, "我國 卽 高句麗之舊地, 故號 高麗都 平壤……"(우리나라가 바로 高句麗의 옛 땅이요.그러기 때문에 나라 이름을 高麗라고 하였고, 평양에 도읍했다) 라는 논리적인 외교 담판으로 물리친 적이 있다. 이 기록은 추모의 高句麗→高麗를 이어받은 나라가 왕건의 高麗라는 것을 설득한 것이기에 그 발음도 선대의 '고구리', '고리' 였다는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에 더해 이웃 중국의 사서(史書)에 나라 이름 '高麗'의 발성법에 대한 기록이 있고 서양세계에서는 방증적 사료(史料)도 많다.

필자 주석  

(1) 高句麗와 高麗의 소리값에 관한 연구, <고구려연구> 27집, 서길수, 2007.

(2) 高句麗·高麗의 나라 이름(國名)에 관한 연구, <고구려발해연구 제50집>,서길수, 201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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