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가 이날 본지에 공개한 호소문을 보면 앞면은 한글과 한자로 쓰여 있고, 뒷면은 이를 번역한 영문이 인쇄돼 있다. 이 호소문은 1919년 5월에 작성된 것으로 돼 있다. 호소문은 "3·1운동 이후 일제의 폭압적인 통치에도 한국인들이 평화적 저항을 하고 있다"며 전 세계 기독교도들에게 비폭력 저항운동인 3·1운동의 당위성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 실상을 소개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전국일치로 독립을 주창하며 자유를 회복하고자 할 때 한 곳도 폭렬한 행동이 없고 평화적 수동적 반항을 계속할 뿐이어늘, 저 완명무도한 일인은 (…) 심지어 어린아이와 약한 부녀자까지 말할 수 없는 능욕과 악형을 당하였으며, (…) 여러분의 심후한 도덕적 원조를 바라옵니다."
앞면 왼쪽에는 안승원·손정도·장덕로·김병조·조상섭·배형식·이원익 목사와 조보근·김시혁·김승만·장붕 장로 등 호소문 작성에 참여한 11명의 이름이 한자로 쓰여 있다. 이 가운데 안승원·김병조·장덕로·이원익·조상섭 등은 1919년 4월 13일에 백범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상하이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신한청년당 대표 여운형이 파리에 파견될 때도 각자 이름을 연서(連署)한 '한국시정진술서(韓國時情陳述書)'를 국제연맹, 장로교만국연합총회 및 미주 각 교회에 보내 일제의 만행을 폭로했었다.
뒷면의 'An appeal to the Christian World'란 제목의 영문 호소문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던 서재필 박사가 번역한 것으로 문화재청은 추정하고 있다. 또 1919년 미국에 체류 중이던 여운홍(여운형의 동생)이 그해 9월 19일에 '만국 예수 교우의(에)게'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의 영문 문서를 백악관과 미 국무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박준형 동은의학박물관 학예사는 "일제가 조선에 한 만행을 전 세계 기독교계뿐 아니라 미국의 윌슨 대통령과 랜싱 국무장관에게도 보내 고발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이 호소문을 "기독교 인사들이 중심이 돼 국제연맹과 세계 장로교연합회에 보낸 것이지만 그들이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의원직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위원 다수는 "국제연맹과 세계 장로교연합회에 보낸 독립운동사 자료의 하나이며, 해외에서 환수된 문화재이므로 등록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해야 할 대상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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