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항일뻐스12] 로씨야 연해주 항일유적지 답사길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4일 21시02분    조회:166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단지동맹” 기념비

“근대사에서 중조 인민의 항일투쟁은 안중근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주은래 총리께서 말씀한 바 있다.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에서는 최근 안중근의사의 주요 활동지였던 로씨야 연해주의 항일유적지에 대한 답사를 조직하여 단원들의 항일력사의식을 제고하는 데 훌륭한 기회를 마련하였다.

크라스끼노의 안중근 “단지동맹” 기념비

5월 8일, 훈춘장령자통상구를 거쳐 약 40분 간 차를 달려 당도한 곳은 “크라스끼노”라고 하는 작은 향진 마을이였다. 예로부터 “연추”라고 부르던 이 마을은 1936년 일본첩보부대와의 전투에서 “크라스낀”이라고 하는 쏘련군 중위가 전사하면서 그를 기리기 위해 마을지명을 “크라스끼노”라고 고쳐지었다고 한다.

바로 이 마을 외곽에 1909년 3월 5일(음력 2월 7일), 안중근을 비롯한 12명의 독립투사들이 조국독립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왼손 무명지를 잘라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 혈서를 쓰고 하늘과 땅에 맹세한 “단지동맹”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워낙 이곳은 1908년 4월 의병단체인 “동의회”가 결성된 곳으로서 국경을 넘어 조선 국내에 쳐들어가 일제를 몰아내는 진공작전을 전개하던 의병들의 근거지였다. “동의회”소속인 안중근은 “단지동맹”을 맺은 그 해 10월 26일 할빈역에 이르러 일제침략의 원흉 이또히로부미를 저격하였다.

흰구름 떠도는 푸른 하늘 아래 가없이 펼쳐진 넓은 들 한가운데 기념비가 호젓이 서있다. 길옆에 세워진 유지비에는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결사동지들이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단지동맹”을 맺었다고 밝혀쓰고 있다.

기념비 가까이에 다가서는 순간, 무명지가 잘려 나간 왼손 자국이 기념비우에 력력히 새겨져 있는 것이 한눈에 안겨왔다. 선혈이 흐르는 손을 들어 혈서를 쓰며 “독립 만세!”를 삼창하는 투사들의 형상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는듯 싶었다.

비장함이 느껴지는 단지동맹 기념비 앞에서 답사팀은 “할빈아리랑”을 우렁차게 부르며 독립과 자유와 평화를 향한 투사들의 의지를 높이 구가하였다.

울라지보스또크의 신한촌

답사팀은 크라스끼노에서 4시간 가량 차를 달려 울라지보스또크에 이르렀다. 이곳에 조선이주민들이 정착한 시기는 19세기 60년대 초로서 연변에로의 이주와 거의 시기를 같이 하고 있었다.

신한촌 옛터에서

1863년 조선 함경도의 13가구 농가가 처음 울라지보스또크의 바다가에 정착하면서 조선인들의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다. 이주민들은 처음 바다가에 거처를 잡고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1874년 경에 마을이 생겨났고 1890년 경에는 이주민 수가 9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몇년 후 당국에서는 조선인 집단거주지역으로 지정하였다. 그 마을이 “개척리”였다.

그러나 마을에 전염병이 휩쓸자 당국에서는 또 조선인들을 울라지보스또크 서북 외곽으로 강제이주시켰다.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다시 어렵게 “신개척리”를 건설하였고 한인마을을 새롭게 건설한다는 뜻으로 “신한촌”(新韩村)이라 불렀다.

신한촌은 연해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조선인 거주지로 되였고 1905년 을사륵약후로 많은 항일지사들이 망명해 집결하면서 항일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1911년 5월 신한촌에는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독립군 양성과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한 “권업회” 본부가 창설되며 초대 회장에 최재형, 부회장에 홍범도가 맡는다.그러나 일제세계대전을 계기로 일제와 제휴한 로씨야의 탄압을 받아 해체되고 만다. 1937년에는 변경의 소수민족들이 중앙아세아로 강제이주를 떠나면서 “신한촌”은 력사 속으로 사라진다.

지금은 기념비만 옛터를 지키고 있는 그 자리에서 답사팀은 “룡정3.13기념사업회” 리광평 회장으로부터 “신한촌”과 연변 룡정과의 력사적 연원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1919년 3월 13일 룡정에서 일어난 반일대시위는 일제놈들의 피비린 탄압을 받는다. 반일독립투사들은 무장을 들어야만 일제침략자를 물리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고 무장탈취투쟁에 궐기해 나섰으며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룡정 지역에서 “15만원 탈취사건”을 벌이게 된다.

1920년 1월 4일 6명의 청년들이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북간도 룡정지점으로 운송되는 15만원을 중도에서 탈취한다. 그중 넷은 와룡동을 거쳐 산발을 타고 울라지보스또크 신한촌에 이르렀다. 그 돈으로 무기를 구입해 들이지만 신한촌의 엄인섭이라는 반역자에 의해 윤준희, 림국정, 한상호 셋은 일제경찰들에 체포되고 최봉설 한사람만 탈출한다. 체포된 세사람은 서대문형무소에 이송되여 판결을 받고 하루 한시에 교살당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연해주는 예로부터 력사적으로나 지연적으로 연변과 하나로 이어져 많은 풍운을 함께 겪어왔다.

우스리스크의 “고려인 문화센터”

5월 10일, 답사팀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우스리스크로 향하였다. 세시간도 넘게 차를 달려 정차한 곳은 연해주의 유일한 “고려인 문화센터”였다. 이국 땅 먼곳에서 처음 우리 글 간판을 보며 가슴들을 설레였다.

연해주 민족문화 자치회 교육센터 조엘레나 부장이 우리를 반겨주며 안내하였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년 기념관”(2004년)으로 건설된 이 문화센터에는 “고려인 력사관”이 있어 연해주 고려인들의 150년 간의 삶을 료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문화센터 홀에서 부르는“고향의 봄”

고려인 력사관이 속해있는 우스리스크는 연해주의 제2도시이며 역시 독립운동근거지였다. 또한 1937년 17만명을 넘는 고려인들이 씨베리아 횡단렬차에 실려 중앙아시아 불모의 땅으로 강제이주를 떠난 력사의 현장이기도 하였다. 1993년 4월 고려인의 명예회복법이 통과되면서 3만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이 다시 연해주로 돌아와 살고 있었다.

당시 연해주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혼을 불태운 곳이다.

을사조약 체결로 나라의 외교권이 박탈되자 로씨야 상주 공사로 있던 리범진은 일본의 소환명령도 거부한 채 항일구국활동을 벌였다. 그는 1907년 아들 리위종을 헤이그 밀사로 파견하였고 연해주 항일의병조직인 “동의회” 결성에도 참여시켰다. 그러나 일제가 나라를 완전 강점하자 그는 목을 매 자결하는 것으로 대항하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조직적 항일투쟁을 벌여 나라를 찾기 위해 “권업회”와 “대한인민국 씨베리아 지방총회”와 같은 항일조직들을 결성하였다. 교육구국운동 집념으로 지방회를 조직하여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교원을 양성하고 신문을 발행하면서 교육과 계몽에 앞장섰다. 당시 학교들에서는 근대학문과 민족주의교육을 하였으며 항일구국교양을 진행하였다.

연해주에서 출판된 아리랑 서적들

또한 중앙아시아에로의 강제이주로 막막한 사막에 버려진 비참한 환경속에서도 모진 학대와 고생을 이겨내며 살아남아 다시 반세기 후에 연해주 그 희망의 땅으로 돌아온 3만명에 이르는 고려인들, 그들은 오늘도 아리랑문화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연해주 그 땅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하는 음악 서적과 기타 다양한 종류의 서적들이 계속적으로 발간되였다. 아리랑은 노래이상의 의미와 가치와 삶과 력사로 고려인의 가슴 시린 삶을 위로하며 과거와 현재를 련결시켜왔다.

오늘날 고려인들은 문화센터에서 우리 말과 글을 배우고 태권도며 춤노래, 민속풍습을 익히면서 민족문화를 전해가고 있었다. 이 센터에서는 또 신문사와 방송사도 운영하면서 연해주 고려인을 위한 문화중심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다.

답사팀이 력사관을 나와 보니  2층 활동실에서는 텔레비죤 앞에서 한국 19기 대통령 문재인의 현충원 도착을 두손 모아쥐고 간절한 눈빛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층 무용실에서는 조선의 금강산노래 선률에 맞춰 춤연습에 땀을 흘리는 이들이 있었다. 대청홀에서는  <아리랑>이며  <고향의 봄>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퍼지는데 답사팀과 고려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어울리며 흥겨운 춤판을 벌렸다.

참으로 우리 민족은 춤노래만으로도 쉽게 통일되는 민족인 것을.

최재형의 저택과 리상설 유허비

조엘레나 부장의 안내로 우리 답사팀은 고려인 문화 센터를 나와 우스리스크의 유적지 답사길에 올랐다. 

20세기 10년대에 들어서면서 연해주에서 반일독립운동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자 일제는 조선인 마을에 대한 무차별 습격을 감행하고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하였다.

1918년 민족자치와 항일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전로한족중앙총회를 결성한 곳.

1920년 4월 4일과 5일 이틀 사이에 신한촌 한곳에서만도 300여명이 일제의 총칼에 살해되였다. 우스리스크의 대부자로서 항일독립운동에 대량의 경제지원을 안받침해주었고 할빈으로 떠나는 안중근에게도 직접 권총을 마련해 건네주었던 씨베리아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도 이 “4월 참변”에서 교살당하였다.

고려인 민족문화 자치회에서는 최재형이 일본헌병대에 의해 학살당하기 전까지 거처하던 집을 사서 원형복구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하기에 우리 답사팀은 반일독립투사들의 숨결이 스며있는 최재형저택에서 연해주 항일운동에 관한 옛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민족문화 자치회 교육센터 조엘레나 부장이 최재형의 저택에서 당년의 연해주 항일민족독립운동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답사팀은 또 순이푼강류역에 세워진 리상설 유허비를 답사하였다. 리상설은 교육구국의 리념을 해외에서 실현하기 위해 1906년 중국 룡정에다 연변의 첫 근대교육시설인 “서전서숙”을 창설하였고 그 이듬해 1907년 7월 광무황제의 밀지를 받고 리위종을 대동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가 조국독립을 주장하였다.

연해주로 돌아온 그는 “성명회”와 “권업회”를 창설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하다가 1917년 7월에 우스리스크에서 순직하였다. 그의 유언에 따라 유해를 순이푼강에 뿌렸던 것이다.

지금 유해는 없고 기념비만 있는 유허비앞에서  답사팀은 “항전별곡”의 비장한 선률을 웅글지게 부르며 투사의 령혼을 위로하였다.

장고봉전적지에 올라

귀가길에 오른 답사팀은 마지막 일정으로 크라스키노의 가장 높은 산 장고봉 전적지(로씨야측)에 톺아올랐다. 그 곳은 1937년 7월 말, 쏘련군이 극동지역으로부터 중앙아시아 나아가 유럽까지 삼키려는 야심으로 장고봉사건을 일으킨 일제침략자를 여지없이 까부시고 승리의 첩보를 올린 곳이다.

어쩌면 이곳은 전세계 반파쑈전쟁의 최후 승리를 취득하는 희망의 첫 승전고를 울린 곳이기도 하였다. 답사팀은 그 령마루에 올라 “우라! ”를 목청껏 웨쳤다. 3박 4일 답사길의 원만한 성공을 축하하며 또한 중국조선족항일가요 합창단의 연해주 항일유적지 답사를 위해 물심량면의 지지와 성원을 보내준 연변대신국제려행사에 고마움을 표하며 “우라!”를 웨치고 또 웨쳤다.

연변대신국제려행사에서는 이번 로씨야 연해주 항일유적지 답사길에서 새로운 인문가치를 발굴하고 정기적인 관광코스를 개발하여 정식 운행에 들어섰다.

길림신문 김청수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영웅은 갔어도 넋은 남아   김창영   일행은 리홍광 렬사의 석상이 세워져 있는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을 찾기 위해 평정산에서 차머리를 돌렸다. 사실 신빈현 남산의 렬사릉원은 혼자서도 수없이 찾았던 곳이다. 렬사릉원이 있는 남산은 신빈시민들의 힐링의 곳으로 최적의 산행코스였는데 나는 그곳에서 편안...
  • 2019-06-03
  • 연길시 하남가두 백국사회구역의 백세로인 조경상이 자신이 평생 간직했던 영예증서와 메달들을 연변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로인의 아들이 연변박물관 사업일군에게 증서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백세고령인 조경상로인은 퇴직전 기층일선에서 일하면서 농업모범, 부녀로력모범 등 수많은 영예들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자...
  • 2019-05-20
  •       (흑룡강신문=하얼빈) 류설화 기자= 26일, 중국조선민족사학회(사학회) 제3기 리사회 제1차 회의가 북경에서 있었다. 이번 회의에는 사학회 회장 정신철, 사학회 운영리사회 리사장 리상철, 전임 리사장 남룡, 리사 김의진, 리춘일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회의 첫 순서로 지난 한해동안 사...
  • 2019-04-29
  • 27일, 제11회 진달래축제를 맞아 진달래민속촌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상품을 파는 상인, 관광하는 관광객들의 흥겨운 표정과 달리 도로 량켠에 세워진 전시판 앞에서 숙연한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고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끔식 볼수 있었다. 올해 진달래민속촌은 이왕과 달리 진달래축제를 계기로 화룡지...
  • 2019-04-29
  •   김성민(우) 관장이 731부대 전 부대원인 스즈키 스스무로부터 731관련 경력을 듣고 있다 (2000년 7월)    “열심히 준비해 나아가다 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진렬관 김성민 관장의 말이다.   이름에서 짐작하다시피 김성...
  • 2019-04-15
  • 현재  연변에는 11개 렬사릉원과 343개 기념비가 있어 전성 70%에 달하고 혁명렬사는 7,377명으로 길림성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건국 초기부터 연변의 각급 당위, 정부 및 사회 각계에서는 혁명선렬들을 기리기 위해 혁명렬사 기념시설들을 건설했다. 혁명렬사 기념비들은 혁명전통을 전승하고 애국주의교양을 전개...
  • 2019-04-09
  • 4월 1일 기자는 주퇴역군인사무국, 연변군분구 관련일군과 함께 진증길, 정동춘렬사의 가족을 찾기에 나섰다. 곧이어 두 렬사의 가족을 찾았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동춘렬사의 제수 오채봉씨) 당일 기자는 선후로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주퇴역군인사무국을 찾았다. 연변렬사릉원당안관 사업일군의 조사를 통해 항...
  • 2019-04-03
  • 이승만 기념사업회 등 성명 발표 '이승만은 美 괴뢰' 김용옥 발언 비판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지난 16일 KBS 강연 프로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해 이승만 전(前)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발언한 방송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
  • 2019-03-27
  • 피우진 "검토한 적 없다→가능성 있다" 입장 변화 보훈처 '심사기준 개선'까지 언급…방침 정한 듯 野 "그런 기준이면 김일성과 무슨 차이냐" 비판 약산 김원봉. 의열단을 조직해 일본 요인 및 친일파 암살과 주요 시설 폭파 작전을 벌였다. (사진=약산 김원봉 연구) [아시아경제 문제원 기자] 피우진 국...
  • 2019-03-27
  • 한국재외동포재단이 개최한 ‘2018 한국재외동포재단 초청장학생 력사문화체험’이 11월 16일부터 18일까지 2박 3일 간의 일정을 마쳤다.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재외동포재단 초청장학생 48개국 200여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는 장학생들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한국 력사·문화 체험을 통해 한국에 대...
  • 2018-11-23
  • 연변대학민족연구원이 주최하고 동북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와 연변조선족총소년교육연구회가 협력한 명동학교설립 110주년 기념학술회의가 10월 27일 이라는 주제로 연변대학 본관 4층 회의실에서 개최되였다. 학술회의 개막식에서 연변대학교 교장 김웅이 환영사를, 동북조선민족교육과학연구소 소장 심송철이 개회사를,...
  • 2018-10-31
  • 연길시 소영진 오봉촌 오봉산아래에 높이가 각각  57메터, 45메터, 22메테에 달하는 돌바위 3개가 나란히 솟아 형제바위를 이루고 있다. 촌민들에 따르면 1932년 오봉금광 광산로동자이며 중공 지하당원이였던 윤철주, 왕영복, 김정완은 물감옥에 같혀있던 로동자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장렬히 희행되였으며 세 사람의...
  • 2018-10-27
  • 10월 27일, 룡정.윤동주연구회에서 주최하고 통화청산그룹에서 협력한 ‘교육의 선구자’ 김약연 탄신 150돐 기념행사가 ‘중국조선족교육의 제1촌’으로 불리는 룡정시지신진동명학교에서 치러졌다. 이번 행사는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처음 진행하는 김약연 기림행사로 된다. 다년래 조선족교육에 일관...
  • 2018-10-27
  • 한락연 탄신 120주년을 맞는 기념활동이 26일, 룡정시에서 있었다. 이번 활동은 연변주당위 선전부와 룡정시당위, 룡정시정부에서 공동으로 주관하고 룡정시당위 선전부, 룡정시당안국, 중국조선민족사학회 한락연연구전업위원회에서 개최했다. 활동에는 원 중앙통전부 부부장이며 국가민족사무위원회 주임인 리덕수, 연변...
  • 2018-09-26
  • 연길시 제2진 ‘문화경지’ 현판식 거행 현판식 장면 연길시가 ‘력사문맥 발굴, 연길기억 찾기’ 문화캠페인 전개로 문화자원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연길시 제2진‘문화경지(景址)’현판식이 9월 21일,연길시중앙소학교에서 거행되였다. 중공연길시위와 연길시인민...
  • 2018-09-25
  •      박대호는 조선혁명군 부사령으로 지난 20세가 20, 30년대 24년간 동북의 환인 관전 일대에서 피어린 반일투쟁을 견지하며 일본군국주외와 불요불굴의 투쟁을 견지해온 항일투사이다. 그의 사적은 ‘3강’(압록강, 혼강, 부얼강) 지역에 널리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그의 묘소는 환인만족자치...
  • 2018-08-20
  •     리승권 전 흑룡강성조선어방송국 국장이 회억하는 고 리민 전 흑룡강성정협 부주석   (흑룡강신문=하얼빈)채복숙 기자=“리민 녀사와는 지난 세기 80년대 ‘동북항일련군가곡집’ 출판을 위해 만나면서 인연을 맺게 되였는데, 어언 30여년이 흘렀군요. 올봄 제가 단동으로 휴양을 가면서 전...
  • 2018-07-26
  •   본사소식 7월 25일, 동북3성 항일운동 활동 현장을 돌아보고 애국지사의 뜻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취지의  2018년 ‘중국 동북3성 항일운동 유적지 답사’ 발대식이 중한교류문화원 2층 강당에서 진행되였다.   중한교류문화원, 월드코리안신문, 대한걷기협회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 2018-07-26
  •          동북항일련군로전사, 전 흑룡강성정협부주석 리민동지 유체 고별식이 2018년 7월 29일(일요일) 할빈시 천화원에서 열린다고 정협 흑룡강성위원회 판공청이 지난 21일 통보했다.   앞서 22일 오전 10시, 흑룡강성과 할빈시 여러 조선족단위와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안산가 23번지에 있는...
  • 2018-07-24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