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옛 마을 새 마을4]옛 마을 이야기에서 우리 얼굴을 읽는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7월25일 10시42분    조회:148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어곡전이 자리잡고있는 두만강기슭 룡정시 개산툰지역 천평벌, 문헌기재에 의하면
천평벌에서는 1868년부터 벼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씨는 1800년 전에 벌써 대륙의 오지에 왕으로 출현하고 있었다. 건안(建安) 20년(215), 파이(巴夷)의 왕 박호(朴胡)가 파이(족)를 데리고 귀화했다고 '삼국지·위지(三国志·魏志)'가 기록하고 있는 것. 모든 박씨는 신라의 첫 임금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며 김씨, 이씨와 더불어 반도 3대 성씨의 하나이다. 그런데 신라에서 출현한 이 박씨가 문득 사천(四川) 남서쪽 지역의 웬 마을 종족에게 우두머리로 등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신라인들은 이 무렵 벌써 대륙에 대거 상륙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들은 연해 일대에 신라촌과 신라방(新羅坊) 등 신라인의 마을을 세웠다. 대륙의 남부에는 신라현(新羅縣)이라는 이국적인 행정지명도 나타나고 있었다. 삼국시기, 신라는 물론 고구려와 백제에도 상업 내왕과 유학 그리고 전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대륙에 이주하고 있었다.

반도의 상징적인 성씨인 박씨는 훗날에도 계속 대륙에 등장한다. 고려 때의 환관 박불화(朴不花)가 '원사(元史)'에 의해 원(元)나라 조정이 있는 북경에 나타나고 또 조선의 여성포로 박단용(朴丹容)이 이조실록(李朝實錄)에 의해 명(明)나라 말의 요동(遼東)에 그의 행적을 남긴다.

대륙에 살던 박씨는 진작부터 족명(族名)을 달리 불리고 있었다. 이조실록에도 "요동의 한인(漢民) 박우(朴右)…"라는 옛 기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런 박씨는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현지의 다른 민족과 동화 되었던 것이다. 멀리는 그만두고서라도 명나라 말, 청(淸)나라 초 산해관(山海關)을 넘어 하북성(河北省)에 안착했다고 전하는 조선인 후예의 박씨도 그러하다. 20세기 80년대 하북성에서 민족 성분을 확인할 때 일부 조선인 후예는 족명을 조선족으로 개명했지만, 대부분의 족명은 한족으로 되었고 심지어 만족으로 그냥 남아 있는 것이다. 무슨 민족으로 불리든지 그들은 동성끼리 통혼하지 않는 등 습속을 제외하고 모두 한족과 다름이 없다. 우리말이나 우리글을 전혀 모르며 모두 한어와 한자를 통용한다. 성씨가 박씨이고 또 마을 이름이 박씨 성을 따서 그 씨족의 뿌리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하북성의 박씨를 기어이 조선족이라고 지칭한다면 별종의 조선족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런 조선족은 당산(唐山)과 청룡(靑龍), 관성(寬城) 등 여러 지역에 집거(集居) 혹은 잡거(雜居)하는 7개의 촌으로 집중, 분포한다고 하북성의 지방지(地方志)가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고 박씨는 성씨나 마을 이름에만 그들의 유전자를 남긴 게 아니다. 하북성의 박씨촌은 또 족보에도 그들의 유전자를 또렷이 남기고 있다. 청룡 부근의 박장자(朴杖子)에는 아직도 이름 돌림자가 내려오는데, 기자가 현지를 답사하던 2007년 그 무렵 족보에 14대손을 잇고 있었다. 돌림자는 가문을 중요시하고 혈통을 지키던 선조들이 같은 씨족임을 알리기 위해 이름에 쓰던 것이다. 이 돌림자는 3백여 년 전, 요녕성(遼寧省) 지역에 이주했던 박씨의 돌림자와 거의 일맥상통한다고 연변의 한 사학자가 기자의 인터뷰에 밝힌 적 있다.

기왕에 말이 났으니 망정이지 옛날 요녕성 지역에는 박씨는 물론 김씨, 최씨, 백씨 등도 있었다고 민국(民國, 1912~1949) 초기의 '수암현지(岫岩縣志)'가 밝힌다. 수암은 반도와 근접하고 있는 요녕성 남부의 지역이다.

 

청나라때 천진에 살던 조선인 거부 안기의 인장.
 

 

미상불 수암이 아닌 다른 지역에도 박씨 아닌 다른 조선인들이 적지 않았으리라. 청나라 때 천진(天津)의 소금장사 안기(安岐)도 조선인의 후예라고 전한다. 안기는 한때 청나라 고종 건륭(乾隆, 1736~1795) 황제가 구입했던 고화(古畵)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의 주인으로 있는 등 집안의 막강한 재력을 주물러 그의 서화 흠상취미를 마음껏 누리던 유명한 고서 수집가였다.

아쉽게도 실명의 이 안씨 역시 여느 무명인처럼 뿌리가 어딘지 근원을 알 수 없다. 종족 군체를 이룬 하북성의 박씨도 어디선가부터 문득 뿌리가 끊어지고 있다. 족보에 기록된 제1대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일부는 전란에 의해 위해 대륙에 왔으며 또 일부는 만주 8기를 따라 장성을 넘었다고 한다. 3백 년 전의 박씨가 그러하거늘 하물며 일찍 1천 년 전 하북 지역을 비롯하여 대륙의 방방곡곡에 이주했던 신라인은 더 말할 데 있으랴. 문헌상으로 성씨와 이름을 일일이 고증할 수 있는 대륙의 신라인은 아주 드물다.

어쩌면 역사의 윤회에서 반복되는 업의 굴레를 쓰고 있을까. 청나라 말, 식량난을 피해 많은 조선인이 쪽박을 차고 강을 건넜다. 일제 강점기, 탄압을 피해 동북 지역을 찾은 정치 이민자와 강제개발 이민자도 상당수 생겼다. 와중에 또 한패의 조선인이 산해관을 넘어 마을을 만들었다.

 

북경 북쪽의 고려영마을 패쪽, 지금은 철거붐에 휩쓸려 사라졌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세기 40년대 중반까지 중국의 조선인 인구는 216만 3,115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이 시기 조선인이 165만 8천명이었으며 이중 약 50만 명이 귀국했다는 다른 집계도 있다.

1952년, 이주한 조선인들의 집거지인 길림성 동부 지역에 연변조선민족자치구가 설립, 뒤미처 1955년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명하면서 중국에 이주한 조선인들은 '조선족'이라는 족명으로 공화국의 일원으로 된다.

 

연변 내두산 마을 근처의 산 이름을 알려주고 있는 전호산 촌장.

 

그때 그 무렵 건설과 개간, 지원 등을 위한 조선족 인구의 이동은 대륙의 여러 지역에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문화예술. 과학, 군사, 체육, 보도 등 부문에 거국적으로 많은 인력이 투입, 이에 따라 동북의 유수의 조선족 인력이 산해관 남쪽에 진출했다. 이때 조선족은 전국 각 지역에 그 우수성을 '진달래꽃'처럼 방방곡곡에 날렸지만, 아직 조선족 인구의 신구(新舊) 거주지에 판도를 바꿀 정도로 급격한 요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동북 지역을 벗어나 산해관 남쪽에 문득 나타난 '조선족촌'은 기이한 현상으로 회자되었다. 그때 조선족이 산해관 남쪽에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한 것은 북대하(北戴河)의 이 조선족촌이 처음이었고 유일했기 때문이다.

 

내두산촌의 조선족 상여문화제의 일각. 사진/김태국 기자

1980년대 말부터 동북 여러 지역 조선족의 새로운 인구유동이 대거 시작되었다. 이 인구 유동은 농경사회에서 도시화로 이전하는 데서 생긴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궁극적으로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인구는 전국의 평균 수준의 30%보다 훨씬 높은 54.6%로 100만 명에 이른다고 2010년의 제6차 인구전면조사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반면 조선족의 농촌 인구는 향과 진을 포함, 무려 35% 남짓이 줄어들었다. 참고로 이 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조선족 인구는 183만 929명(호적인구)에 달한다. 한편 급감하는 출생율은 조선족 거주지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에너지'가 되었다. 2010년, 조선족 어린이의 인구비중은 한족의 절반에 불과한 8.4%였으며 그해 신생아의 인구가 고작 9,411명이었다.

 

신라에 의료보험기구가 있다니, 복건성 용암시의 일각.
 

 

이런 인구의 유동과 급감으로 인한 조선족사회의 '진통'은 금방 나타나고 있었다. 고향 마을을 떠나 타지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은 더는 개체가 아닌 군체(群体)로 되고 있으며 지어 군락(群落)을 집성(集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민족이 잡거하는 도시와 농촌에 북대하의 조선족촌처럼 새로운 조선족 '마을'이 새롭게 형성된 게 아니다. 대신 기존의 마을 공동체가 연이어 무너지고 사라지면서 조선족마을 같은 공동체 생활 때문에 가능했던 정체성과 민족문화의 보존이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사람이 살던 옛 마을이 유실되면서 토장의 훈향이 풍기던 마당과 할아버지가 대통을 털던 마루턱, 애기가 쫄래쫄래 기어 다니던 토방의 옛 추억으로 멀어가고 있다. 언제인가는 우리가 살던 오늘의 그 마을도 옛날 옛적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전설 같은 마을의 옛 이야기를 찾아 우리의 모습을 읽고 기록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48
  • 이탈리아 로마 아피아 가도 근처에서 최근 하수도 수리 작업 중 발굴된 헤라클레스 대리석 조각상. 2023.1.27 아피아 안티카 고고학 공원 페이스북 캡처이탈리아에서 하수도 시설을 수리하던 도중 고대 로마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발굴됐다.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아피아 안티...
  • 2023-01-28
  • 6국을 소탕하고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군대는 어떻게 군대를 배치하고 진을 쳤을가? 진시황릉 도용의 제작과정은 어떠할가? 이런 만고의 수수께끼의 해답이 이미 력사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섬서성 문물국은 12일 2022년도 섬서성 중요 고고학 발견을 발표했는데 진시황제릉 고고학 발굴에서 또 새로운 수확을 거...
  • 2023-01-13
  • 병자호란이 한창이던 1636년 12월의 어느 날, 남한산성에서 급보가 날아듭니다. "일이 급하게 되었으니 짐붙이는 생각지도 말고, 밤낮을 가리지 말고 청풍(淸風)으로 가시오." 발신인은 병자호란 당시 고위 관리로 인조를 모시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있던 남편 남이웅(南以雄, 1575~1648). 수신인은 그의 아내 남평 조씨(南...
  • 2023-01-11
  •   26일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하얼빈의거 113주년 기념식'에서 한 참석자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행사장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소나무관에 안치돼 뤼순(旅順)감옥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단서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113주년인 26일 공...
  • 2022-10-26
  • 2022년 10월 26일 오전 9시 할빈한국인(상)회가 주최한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기념일' 기념 추모 행사가 할빈 기차역 안중근 기념관에서 진행되였다. 이날 할빈 사회 각계에서 온 대표들이 이번 기념행사에 참가했다.   흑룡강신문/한동현 기자
  • 2022-10-26
  • 길림성 장춘에 위치한 위만황궁박물관 동북피점령사전렬관(东北沦陷史陈列馆)은 18일 대외에 중국침략일본군 제100부대 세균전 최신죄행을 대외로 공포했다. 이는 중국에서 최초로 중국침략일본군 제100부대 세균전 준비와 실시 관련 주제전시로 4년의 시간을 거쳐 발굴한 자료들이다. 동북피점령사진렬관은 력사사진 총 3...
  • 2022-09-19
  • 9월 16일, 제9차 재한중국인민지원군 렬사 88명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와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에 안장됐다.     “항미원조전쟁중 19.7만여명 영웅의 아들딸들이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평화를 위해 보귀한 생명을 바쳤다. 심양항미원조렬사릉원에 있는 높이 3미터, 길이 약 200미...
  • 2022-09-19
  •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구성태(具成泰, 1895—1933): 중공화룡현위원회 서기 구보(具保)라고도 하며 조선 경상북도 영일에서 태여났다. 1916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7년 동안 거주하면서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했다. 1922년에 조선에 돌아갔다가 1927년에 가족과 함께 길림성 연길현 개산툰 후동촌...
  • 2022-09-16
  • ㆍ휴전선 판문점에서 정북 쪽으로 불과 13㎞ 떨어진 곳에 위치 ㆍ연암은 황해도 금천 연암협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황해북도 장풍군 장풍읍 소속 조선 최고의 기행문 는 황해도의 깊은 산골 ‘연암협’에서 태어났다. 동네 앞에 ‘제비바위(연암·燕巖)’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산골짜기 마...
  • 2022-09-12
  • "필립공은 여왕을 인간으로 다룰 수 있었던 유일한 남자" 결혼식 마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1947년 11월 결혼식을 마친 엘리자베스 여왕과 남편 필립공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환호하는 군중에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2022-09-10
  • 선사시대 거대유적, 로마 요새, 수몰 마을 등 속속 노출돼 가뭄 역사 새긴 기근석, 2차대전 침몰 선박, 동물 뼈 등도 중국 양쯔강 바닥서 600년 전 제작된 불상 3개 발견 메마른 스페인 저수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과달페랄의 고인돌' 8월 3일(현지시간) 스페인 카세레스주 발데카나스 저수지에서 모습을 드러...
  • 2022-08-22
  • 제2편 중공 각급 지도간부 4. 현·구급 중공 지도간부 강의봉(姜义峰, ?—?): 중공청원현위원회 서기 1930년 8월, 중공청원현위원회 서기로 되였으며 그해 9월에 체포되였다. (여러 사료를 종합, 분석해볼 때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확실한 기재는 없다.) (자료출처: ≪중국공산당료녕성조직사자료≫) 강태익(姜泰益, 1890—...
  • 2022-08-22
  •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투항을 선포했다. 일전에 길림성 반석의 홍석립자 (红石砬子) 항일련군유적지에서의 현장조사와 고고발굴 사업에서 중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2021년 7월부터 지금까지 길림성 고고학팀은 현지에서 2600여개의 항일련군유적지를 발견하고 많은 유물을 출토해 동북항일련군 연구에 상세한 고고...
  • 2022-08-19
  •     기자가 13일 흑룡강성 할빈시 방정현 관련 부문에서 료해한 데 의하면 흑룡강성 문물부문이 현지에서 발견한 망강루동북유적은 당대부터 료대까지의 녀진족 취락(聚落)유적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흑룡강성에서 최초로 발견된 이 시기 녀진족 취락유적이라고 한다.   이 유적은 방정현 천문향 연강촌 망강...
  • 2022-08-16
  • 임정기념관, 英국립문서보관소서 ‘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 자료 발굴 “전선서 정보수집-포로신문 등 맡아 英17사단장, 문응국 지사 활약 칭송”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미얀마 전선에서 연합군인 영국군과 함께 대일 항전을 벌인 한국광복군 인면전구공작대원들. 국가보훈처 제공 제2차 세계대전...
  • 2022-08-13
  • 조선청장년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내몬 만고죄악   (평양 8월 11일발 조선중앙통신) 11일부 《민주조선》에 실린 개인필명의 글 《조선청장년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내몬 만고죄악》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1943년 8월 일제는 《징병제령》을 공포하였다. 이것은 일제가 조선청장년들을 전쟁대포밥으로 내몰기 위하...
  • 2022-08-11
  •   최근, 흑룡강성 화천현 조선족의 력사, 문화, 교육, 생산, 생활의 변화와 발전을 기록하고 반영한 '화천 조선족 발자취'가 수년간의 노력으로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출간되였다.    화천현민족종교국 전임 국장 안창선이 총기획을 맡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전임 부사장 김두필과 흑룡강성 ...
  • 2022-07-28
  •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영국서 거래되던 '보록' 기업후원으로 매입 왕실 의례 따라 왕·왕비 위해 제작…"왕실 정통성·역사성 상징" 환수 문화재 '보록' 공개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2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의 집에서 환수 문화재인 '보록'(어보를 보관하는 상자)...
  • 2022-07-27
  • 양림 사진 앞에서 오희성(좌) 료녕신문 총편집이 류수화(刘秀华) 중공만주성위옛터기념관 관장에게 《홍군장령 양림》 도서를 전달하고 있다.     7월 20일, 오희성 료녕신문 총편집 일행은 《홍군장령 양림》(중문도서, 민족출판사 출판)의 저자 리광인의 위탁을 받고 심양의 중공만주성위옛터기념관을 찾아 해...
  • 2022-07-20
  • 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 시대 앞서간 예술 후원가 김향안     1956년 파리 다사스 거리에 있던 첫 아틀리에에서,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 환기미술관 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얼마 전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에서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 필자를 찾아왔다. 김향안(1916~2004)을 주...
  • 2022-07-16
‹처음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