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죽음 앞둔 안중근 의사의 놀라운 '평상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31일 08시02분    조회:66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 하얼빈역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만들어져 있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유리창 너머로 거사 현장이 바로 보인다. 플랫폼 바닥에 현장임을 나타내는 삼각 표시가 선명하다. [사진 송의호]

 
1909년 10월 26일 세계의 이목은 중국 하얼빈으로 집중됐다.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는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열차에서 내려 환영 군중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 거리는 불과 5m. 이토에게 3발이 명중됐다. 

사형 10분 전 쓴 ‘爲國獻身軍人本分’
최후의 유묵으로 글씨에 흔들림 없어
일본 간수가 보관하다 한국에 기증

 
안중근은 이토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서서 “코레아 우라!”를 목청껏 외쳤다. 분명 강심장이었다. 체포된 안 의사는 이후 도의 경지에 이른 평상심(平常心)으로 또 한 번 주변을 놀라게 한다.  
 
200여점 유묵 남겨 
 
대표적인 모습이 옥중에서 남긴 유묵이다. 안 의사가 뤼순(旅順) 감옥에서 남긴 유묵은 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200여 점에 이른다고 한다. 
 
2011년 설립된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 대학으로는 유일한 안 의사 연구소다. [사진 대구가톨릭대]

2011년 설립된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 대학으로는 유일한 안 의사 연구소다. [사진 대구가톨릭대]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60여 점. 이들 유묵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순국한 3월 26일 사이에 모두 쓰였다. 유묵을 받은 이는 모두 일본인이다. 뤼순 감옥의 간수‧형사‧검찰관‧통역‧판사‧교화승 등이다. 
 

놀랍게도 전하는 유묵 모두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글씨에 흔들림이 없다. 이 가운데 최후의 유묵은 무엇일까. 
 
이경규(64) 대구가톨릭대 역사교육과 교수 겸 안중근연구소장은 “마지막 글씨는 ‘爲國獻身軍人本分(위국헌신군인본분) ’(25.9cmx126.1cm, 비단, 먹. 안중근 의사 기념관 소장. 보물 569-23호)”이라며 “사형 집행 10분 전쯤 쓴 것”이라고 말했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 유묵인 ‘위국헌신군인본분’. [사진 송의호]

안중근 의사의 최후 유묵인 ‘위국헌신군인본분’. [사진 송의호]

 
안 의사는 생의 마지막에 뤼순 감옥에서 5개월 동안 전담 간수를 맡았던 일본 헌병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에게 그 글씨를 쓴 뒤 건넸다. 지바는 안 의사의 인품에 감화를 받아 자신도 글씨 하나를 받았으면 했지만, 그때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지바는 제대 뒤 고향에 돌아가 죽을 때까지 안 의사의 이 옥중 유묵과 영정을 놓고 정성을 다해 추모했다. 
 
그가 죽은 뒤엔 부인 기츠요가, 기츠요가 죽은 뒤엔 조카딸 미우라(三浦)가 추모를 이어갔다. 1979년 미우라는 안 의사 탄신 100주년에 이 유묵을 한국 안중근기념관에 기증했다. 유족이 전한 이야기다. 
 
대구가톨릭대 캠퍼스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상. [사진 대구가톨릭대]

대구가톨릭대 캠퍼스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의 동상. [사진 대구가톨릭대]

 
안 의사는 도마라는 세례명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맏딸 안현생은 대구가톨릭대에서 1953년 불문과 교수로 봉직했다. 그런 인연으로 대구가톨릭대에는 2011년 안중근연구소가 만들어졌고 캠퍼스에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안 의사의 이 글씨를 보면 죽음을 목전에 두었지만 흐트러짐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놀라운 평상심이다. 대인의 풍모가 저절로 느껴진다. 
 
직장인은 갑작스런 해고나 정년퇴직을 당하면 막막해지게 마련이다. 그럴 때 사형 집행을 눈앞에 두고 애국과 평화를 담담히 써내려간 안 의사의 평상심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  
 
송의호 중앙일보 객원기자

중앙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79
  •   도포를 입은 한국인들이 미군 전투기 날개위에 올라가 있다.  현충일(6일)을 앞두고 육군은 6.25 전쟁 당시 한국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사진 239장을 5일 공개했다.     사진은 대전 중심지의 한적한 모습과 대전역과 신흥동 제 제3발전소, 1990년대 없어진 둔산지구 비행장 비롯해 6.25 ...
  • 2018-06-06
  •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한반도 평화' 꿈꾸는 연해주를 가다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러시아 연해주는 물류 요충이다. 푸틴 대통령의 극동 개발 전략에 따라 활기가 넘치는 블라디보스토크. 오른쪽 끝에 러시아 극동함대 사령부와 블라디보스토크 역이 있다. 장세정 기자 남북 분단 때...
  • 2018-05-24
  • “선생님, 제가 채소바구니를 짊어지고 날마다 홍구(虹口·훙커우) 방면으로 다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뜻을 품고 천신만고 끝에 상해(上海·상하이)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자리를 구할 수 없으니 선생님께서….” 1932년 4월 1일 상하이 임시정부...
  • 2018-05-03
  • '임시'라는 말은 명확한 기한을 정하지 않은 잠시 동안의 상태를 이르는 명사이다. '정부'라는 단어와 함께 쓸 때는 둘 다 명사이므로 띄어쓰기를 해야 하나, 그 임시 정부가 어떤 고유성을 띨 때에 한해 '임시정부'라 붙여 써도 마땅할 것이다. 이 글은 이 문법적 고려를 가해 쓴 글이다. 대한민...
  • 2018-03-19
  • [1919~2019,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밀명 “조선서 3월초 만세운동… 도쿄는 한달 먼저 실행하라” 이승훈-길선주 등과도 극비 접촉… 요원 일부 체포돼 고문끝에 옥사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 모인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을 묘사한 그림. 천도교 제공   《99년 전 3월...
  • 2018-03-03
  •   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제99주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위해 국방부 의장대가 독립운동 당시 사용했던 태극기 6종을 들고 서 있다.[중앙포토] 제99주년 3·1일절 기념식이 1일 오전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 2018-03-02
  • 비밀결사 ‘동제사’ 신규식-김규식, “日음모로 식민지화… 독립 보장을” 1919년 작성, 파리강화회의 제출… 美대표에 전달돼 美정부 보존 확인 한국공화독립당 총재 ‘신정(Shinjhung·신규식)’, 사무총장 ‘김성(Kimshung·김규식)’ 공동 명의로 작...
  • 2018-03-01
  • 서대문형무소의 1936년 건물 배치 도면.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화재위서 '종합정비계획' 조건부 가결…올해는 사적지 확대 추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내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관순, 김구, 손병희, 한용운, 안창호 등 수많은 독립지사가 옥고를 치른 서울 서대문형무소(사...
  • 2018-02-28
  • 일제로부터 독립 꿈꾼 윤동주·이육사 원고 문화재 된다 문화재청, 항일유산과 '부산 소막마을 주택' 문화재 등록 예고 윤동주 친필원고. [문화재청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꿈꾸며 시를 쓴 윤동주(1917∼1945)와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가 쓴...
  • 2018-02-27
  • [머니투데이 백인성 (변호사) 기자] [[the L] 실제 사형집행 가능성은 낮아…문재인 대통령 '사형제 반대' 입장] 딸의 친구 여중생을 추행하고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어금니 아빠' 이영학(36)이 21일 오후 서울 도봉구 북부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
  • 2018-02-21
  •   ▲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Denny) 에게 하사한 데니태극기.    /독립기념관 제공   태극기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문화재 태극기 사진전`이 대구에서 열린다. 대구백화점은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3·1절 99주년 기념 특별전시회`문화재 태극기 사진전`을 20일부터 다음달 4...
  • 2018-02-20
  • 박종철 열사 30주기였던 지난해 1월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추모 전시회.(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제공) © News1 오늘 31주기…친구들이 들려주는 故박종철 열사 "부채의식 남아…아픈 역사 반복되지 않았으면"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31년 전 오늘(1987년 1월14일), 서울대 언어학과...
  • 2018-01-14
  • 제주 이주 7년차, 아직도 말할 수 없는 금기어 [오마이뉴스 글:임병도, 편집:홍현진]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2018-01-05
  • 윤봉길 의사 19일 순국 85주기 그곳은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였다. 30m 높이의 깎아지른 오사카(大阪)성 성벽 아래로 해자(垓字)가 둘러싸고 있어 마치 ‘앨커트래즈 감옥’처럼 고립된 곳. 앞쪽엔 일본 육군 4사단 사령부가 지척에 있고, 뒤쪽 해자 건너편으로 헌병대와 포병대, 사격장 등 군...
  • 2017-12-19
  • ‘대한’ 명칭 단 신문·단체 단속 떼거나 이름 바꾸게 강제 해외 독립운동단체들 계속 사용 3·1운동 때도 “대한독립만세” 외쳐 상해 임정 국호부터 대한제국 계승 윤봉길 의거에 감명받은 장개석 김구 만나 광복군 지원 '한·중 동맹' 고종이 쓰던 용어 ‘자유와 독...
  • 2017-12-17
  • 이월봉 지사 아들 이충국씨를 만나다 "이모님(이월봉 지사)은 참으로 깔끔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언제나 조카들 옷가지들을 말끔하게 빨아주셔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많이 샀지요. 이모님의 부지런함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월봉(1915년 2월 15일 ~ 1977년 10월 28일)지사의...
  • 2017-12-11
  • 뉴욕 설계사무소서 일하던 줄리아 영친왕 아들 이구와 58년 결혼 63년 한국 와 낙선재 안주인 생활 종친들 종용으로 이혼 뒤 미국행 마지막 남긴 말 "이건 기적이야" 1963년 시부모인 영친왕 내외의 요청으로 남편 이구(왼쪽)를 따라 한국에 온 줄리아 리. 이들은 이때부터 창덕궁 낙선재에 기거했다. [중앙포토] 조선왕가 ...
  • 2017-12-06
  • 궁내부 469명 근무, 근대화 총괄 항일 독립전쟁·개혁 자금 확보 국공립·사립 학교 2236개 설립 일제 병합 후 오히려 서당이 늘어 1901년 전신·전화·전차·전기 갖춰 북경·동경·방콕 등 대도시 앞질러 위스키·안경 등 서양 물건 유통 [대한제국 120주년] 다시 쓰는 ...
  • 2017-12-03
  • 백범(白凡) 김구(1876∼1949) 선생이 해방 이후인 1948년 1월 1일 동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건네기 위해 붉은 비단에 쓴 친필 휘호가 70년 만에 공개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23일 경기 성남 장서각에서 여는 학술대회 ‘선교장의 역사와 문화’에서 강원 강릉의 고택인 선교장(船橋莊)에서 소장하...
  • 2017-11-23
  • 임시정부 의정원 이광 선생 아들 청년들에 올바른 역사 인식 당부 발인 6일,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   이윤철 광복군 지사.[사진=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항일투사 이윤철 광복군 지사가 4일 오후 숙환(폐렴)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생...
  • 2017-11-0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