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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명 렬사가 고이 잠든 대황구로 가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27일 10시52분    조회: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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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흥, 오빈 등 13렬사의 묘비.

훈춘에서 서북쪽으로 45킬로메터 거리에 위치한 훈춘시 영안진 대황구촌은 유서깊은 고장으로 유적지가 비교적 많다. 지난 2011년부터 6년째 매달 한번씩 력사문화유적을 찾아 답사활동을 견지하고 있는 중국조선족력사문화동호회 부분적 회원들은 지난 11월 16일에 대황구를 찾아 력사문화답사를 진행하였다.

영안에서 북쪽으로 빠져 리화촌을 지나 구불구불한 황구령을 지나면 삼안툰에 이르고 다시 왕청방향으로 20여 킬로메터를 내처 달리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대황구에 도착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골짜기마다 삼삼오오 인가가 들어앉으면서 수백가구에 2천여명이 거주, 훈춘경내에서 두번째로 큰 고장이였다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밖에에서 사람을 만나기 힘든 텅빈 농촌마을이였다. 마을에 건설되여 개방된 훈춘당사전람관과 길가에 세워진 대황구표류광고판만 없으면 정말 황페하기 짝없는 농촌마을로 오해 할 수도 있었다.

훈춘당사전람관 앞에서.

이 곳에는 북일학교옛터, 13렬사릉원, 황구쏘베트정부유적지, 항일유격대 포대, 대황구혁명동, 괴뢰군봉기유적지 등이 있었는데 우리 일행은 가이드로 나선 김영능시인의 안내로 마을동쪽에 자리잡은 북일학교 부교장 김남극선생의 묘지를 찾아 답사하고 대황구표류장을 지나 도보로 13렬사릉원을 찾았다.

류달리 봇나무가 많은 북산언덕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릉원은 흩날리는 락엽외에는 찾는 이가 없어 한산하기 그지 없었다. 하긴 이 추운 겨울에 누가 이 곳을 찾으랴만. 우리는 “십삼렬사 길이 빛나리”라고 쓴 기념비앞에 나란히 서서 경건한 마음으로 가렬처절했던 항일전쟁시기 극악한 일본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에 의해 희생된 혁명렬사들에게 묵도를 드렸다.

표류장 다리옆에 세워진 안내판.

릉원서쪽에 세워진 13렬사 소개비에는 당시의 정황과 기념비를 세운 년대를 밝히고 있었다. 13렬사릉원은 1960년에 기념비를 세웠고 2004년에 다시 새로 수선하였으며 최종 2011년 중국공산당 창당 90주년을 맞아 렬사릉원으로 확건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중공 훈춘지부는 1928년 10월에, 훈춘현위는 1930년 10월에, 훈춘유격대는 1932년 6월에, 황구쏘베트정부는 1933년 1월에 각각 성립되였는데 구체적인 장소는 다르나 모두 대황구에서 설립되였다. 료해에 의하면 대황구라는 이름은 광서초년부터 불리워지기 시작하였으며 골이 깊고 원시림이 꽉 들어차서 대황구라고 불렸다고 한다.

봇나무림에 둘러싸인 13렬사릉원.

1933년 가을 상급의 지시로 동녕현성전투에 참가하였던 훈춘유격대 대원들은 라자구에서 대황구에 돌아와 추석을 쇠는 한편 로독을 풀고 휴식하면서 정비하고 있었다.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에 수백리길을 도보로 행진한 그들은 마을밖과 집부근에 2차 보초선을 세우고 깊이 잠들었다. 그들은 그들이 없는 사이에 일신의 향락을 위해 일본놈들에게 변절한 원 훈춘현위 비서 배원일이 토벌대와 자위대를 이끌고 그들을 향해 발볌발볌 다가오는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원일은 금전의 유혹으로 일본놈의 품에 안기면서 그의 변절을 질타하는 안해마저 무정하게 살해한 극악무도한 놈이였다. 이날도 배원일은 앞장에 서서 보초를 서던 유격대원 리보옥과 최의순을 깜쪽같이 제압하였다. 2선초소에서 망을 보던 김재근이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1선 초소의 수상한 소리에 경각성을 높였으나 적들은 벌써 김재근의 코밑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김재선은 놀란 사슴처럼 후다닥 내뛰면서 “토벌대가 왔소!”하고 유격대원들이 잠들어 있는 집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적들이 집을 포위하고 한발자국 한발자국 거리를 조여 오는 이런 위기천만의 순간에 집안에서는 어떻게 싸울것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는가 하는 쟁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당시 좌경로선의 영향으로 모든 군사행동은 일률로 민주회의를 통해 결정하였던 것이다. 단 일초라도 지체할 수 없는 긴요한 관두에 중대장 박진흥과 오빈이 문을 박차고 나가면서 적진을 향해 사격하는 한편 개울가로 철퇴하면서 적들을 유인하였다.

두갈래로 나뉘여 마을을 포위한 적들은 60여명이고 유격대는 30여명뿐이다보니 유격대가 더 위험했다. 혈로를 뚫고 포위권밖으로 탈출하기 위해 집안을 뛰쳐나온 유격대원들이 한명한명 쓰러졌고 복부에 적탄을 맞은 오빈은 흘러나오는 창자를 손으로 움켜넣으면서 적들과 싸우다가 커다란 나무밑에서 끝내 숨을 거두었다. 이튿날 포위를 뚫고나간 유격대원들이 다시 돌아와 박진홍, 오빈 등 13명의 희생된 전우들을 묻었는데 그때 오빈이 시체밑에서 격발기를 뽑은 총이 발견되였다고 한다.

혁명렬사 오빈의 묘역에는 조한문으로 된 비명우에 오각별이 새겨져 있다.

오빈은 후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으로 된 김일성동지가 동만에서 항일 할 때 리광, 채수항 등과 더불어 가장 친밀했던 전우중의 한 사람이다. 1904년 5월 26일에 조선 온성의 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한 오빈은 부모를 따라 두만강을 건너 연길현 차조구, 걸만 등지에 거주했으며 룡정 동흥중학교를 다녔다. 중학시절 우연하게 훈춘현운동대회에 참가하였다가 우람진 몸매와 무궁한 힘, 재치있는 기교로 1등 보좌에 올라 황소를 끌고왔다는 그는 어려서부터 채수항과 각별한 사이였고 그를 통해 김일성과 친분을 맺게 되였다. 1930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연길현위의 비서로 있다가 1932년 2월에 훈춘현위 제5임서기로 전근되였다. 그러나 좌경로선으로 비뚤어진 동만특위 책임자의 눈에 나면서 그해6월에 해임되여 보통대원의 신분으로 유격대에서 싸웠다. 하지만 심성이 강직하고 락천적인 그는 오직 일본놈들만 족치면 된다면서 항상 밝은 모습으로 전우들을 대하였다.

이상의 내용들은 답사팀이 사전에 준비한 여러가지 자료들에서 간추린 부분이다. 일행은 렬사릉 주변의 개울가와 하야디하얀 봇나무숲 그리고 백년도 더 오래 자랐을 돌배나무 밑에서 당년의 항일유격대 대원들의 숨소리와 빗발치는 총알과 함성을 찾아 조심조심 발거름을 옮기며 귀를 기울였다.

북일학교옛터 돌배나무 아래에서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잔혹하고 처절했던 력사의 한페지를 대황구에서 읽으면서 답사팀 일행은 지난번에 왕청을 답사하면서 후하촌어귀에서 만났던 리광렬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대황구사건이 발생한 그 해 5월 별동대 대장이고 오빈의 전우였던 리광은 산림대 두목 동산호에 의해 피살되였는데 그때 나이가 28살이였다.

지난 7월에 왕청현 후하촌입구에 경립된 리광렬사기념비.

오빈과 같은 렬사들은 좌경로선의 내환(内患)과 일제의 강압과 한간주구들의 유혹에 무지막지한 토비들의 위협을 더한 외환(外患)의 역경속에서도 자기의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적들과 싸우다가 꽃같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으나 배원일과 같은 변절자들은 금전과 색의 유혹하에 파렴치하게도 어깨 겯고 싸우던 전우와 사랑하는 안해까지 팔아먹고 부귀영화를 선택했다.

력사는 거울이요, 문화는 령혼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84년전에 발생했던 대황구사건을 현장에서 돌아보면서 렬사들의 업적을 기리고 그들의 고매한 정신을 다시한번 우러렀다. 따라서 이렇게 잘 건설된 홍색관광코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외면받는다는 사실에는 안타가운 심정을 어찌 할 수 없었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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