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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싸운 광복군 여군반장 이월봉을 아십니까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11일 10시08분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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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월봉 지사 아들 이충국씨를 만나다

"이모님(이월봉 지사)은 참으로 깔끔하셨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언제나 조카들 옷가지들을 말끔하게 빨아주셔서 또래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많이 샀지요. 이모님의 부지런함은 아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이월봉(1915년 2월 15일 ~ 1977년 10월 28일)지사의 조카딸인 이춘화씨는 이렇게 이모님 이월봉 지사를 회고했다. 이월봉 지사의 후손을 만나기 위해 대구로 내려간 시각이 점심 무렵이라 우리는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이 자리에는 이월봉 지사의 아들 이충국(58)씨와 조카딸 이춘화씨 그리고 서울에서 기자와 함께 동행한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 윤영숙 작가 이렇게 넷이었다.

얼큰한 아구찜을 시켜 놓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 우리는 이월봉 지사의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눴다. 

"당당하게 차지한 중화민국대운동회 1등"

 이월봉 지사.
▲  이월봉 지사.
ⓒ 이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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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뭐니 뭐니 해도 1938년에 열린 중화민국대운동회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운동회는 장개석이 장학량 군대에 감금된 뒤에 풀려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대회로 이 대회에서 어머니는 여성의 몸으로 당당히 1등을 거머쥐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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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는 요즘으로 말하면 철인 5종 경기와 같은 것으로 장애물 뛰어 넘기, 산악 달리기 등 험난한 코스를 거쳐 산 정상에 펄럭이고 있는 중국 국기를 뽑아 내려와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수많은 남성들을 물리치고 산 정상에 1등으로 올랐지요. 그러나 국기를 지키고 있던 사람이 여자가 1등으로 올라왔다고 국기를 내주지 않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그 남자를 때려눕히고 국기를 가지고 내려와 1등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충국씨는 마치 현장을 본 것처럼 당시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줬다. 덩치가 좋고 보통 남자보다 힘이 셌던 이월봉 지사의 고향은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동천리 402번지. 이월봉 지사는 부농이었던 아버지 이배근(李培根)과 어머니 문근(文根) 사이의 4남매 가운데 둘째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집에 일꾼 30명을 둘 정도의 부농이었으나 오래 경영하던 농장을 접고 상업의 길로 나가다가 잘못돼 파산의 길을 걷게 됐다. 이월봉 지사가 고향 동천리 보통학교 4학년 때 일이다.

▲  해방후 이범석 장군 댁을 찾은 이월봉 지사(앞줄 오른쪽, 당시 31세), 부인 김마리아(앞줄 왼쪽), 뒤는 이범석 장군의 아들.
ⓒ 이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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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광복군제2지대 여군 반장 시절, 뒷줄 오른쪽 2번째.
▲  한국광복군제2지대 여군 반장 시절, 뒷줄 오른쪽 2번째.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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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을 마칠 무렵 집에 빚쟁이들이 들이 닥치자 이월봉 지사는 숙부를 따라 만주 제제할제라는 곳으로 떠나게 됐다. 그때부터 시련이 시작됐다. 부모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진 가운데 숙부의 도움으로 낯선 곳에서 보통학교에 편입해 1930년 12월 가까스로 졸업한 뒤 이내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 했던 것이다.

나이 15살 때 이월봉 지사는 천진(天津)의 한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7년을 지내는 등 억척스럽게 생활전선에서 뛰었다. 그러던 중 가깝게 지내던 조선인 동포로부터 한국광복군에 입대할 것을 권유받고 망설임 없이 즉석에서 승낙하기에 이른다. 이월봉 지사 22살 때의 일이다. 이월봉 지사는 중국 하남성의 한국청년전시공작대원이 되어 남자들과 똑같은 훈련과정을 거쳤다. 

"제가 워낙 힘이 좋고 건강한 편이어서 나중에는 오히려 남자들을 앞설 정도였어요. 180명이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성적은 5등 이내였습니다." - 1976년 <주간경향> 2월 29일, 통권 374호, 대담

1938년 10월, 한국청년전시공작대원으로 동료 10여 명과 황하강변에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던 이월봉 지사 일행은 그만 일본군에 포위되고 말았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도 침착하게 탈출에 성공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1939년 12월 이월봉 지사는 중국군 중앙간부훈련소 학원반을 수료해 대망의 한국광복군 제2지대 여군반장이 됐다. 계급은 소위였다.

"광복군에 속한 여군들도 남자와 똑같은 일을 했지요"

 이월봉 지사 훈장증.
▲  이월봉 지사 훈장증.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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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월봉 지사의 아들인 이충국씨가 어머님의 표창장을 들고 있다.
▲  이월봉 지사의 아들인 이충국씨가 어머님의 표창장을 들고 있다.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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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광복군에 속한 여군들은 여자라고해서 특수한 임무가 주어지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자와 똑같은 일을 했지요. 토치카를 파면 같이 파고, 벽돌을 나르고, 모든 힘겨운 일을 그대로 해냈지요" - 1976년 <주간경향> 2월 29일, 통권 374호, 대담

이월봉 지사는 1939년 9월 서안 한국청년전시공작대입대(駐西安 韓國靑年戰時工作隊入隊)를 시작으로 1940년 서안 한국광복군 제5지대입대(西安 韓國光復軍 제5支隊入隊), 1941년 중국전시 한청반 (中國戰時 韓靑班) 수료, 1942년 서안 한국광복군 제2지대편입(西安 韓國光復軍 第2支隊編入)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은 이듬해인 1946년 6월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의 일부가 북한 땅에 남아 있는데다가 광복군 시절의 동지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귀국 당시 31세 미혼으로 혼기를 놓쳐 평생 독신으로 살다 63세를 일기로 1977년에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월봉 지사는 여동생의 아들인 이충국을 양아들로 삼아 후손이 없는 자신의 뒤를 이어가게 했다.

대구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양아들인 이충국씨 집으로 옮겨 차를 마시면서 대담을 이어갔다. 이충국씨는 이렇게 어머님을 회상했다. 

"제가 13살 때 일이었지요. 그땐 철이 없어 어머님의 독립운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커가면서 어머님이 광복군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에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머님의 기일 때마다 제사를 모시면서 어머님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하시던 대한민국에서의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곤 합니다."

 어머님 이월봉 지사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충국씨와 기자.
▲  어머님 이월봉 지사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충국씨와 기자.
ⓒ 이윤옥  


그리고는 벽에 걸린 어머니의 훈장을 내려 가슴에 꼭 안았다. 이국땅에서 독립을 위한 광복군에 투신해 활동하다 혼기를 놓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산 이월봉 지사지만 믿음직한 아들이 있어 하늘나라에서라도 든든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해마다 어머니의 제사를 잘 모시고 있다는 이야기에 코끝이 찡했다. 

이월봉 지사는 독립운동의 공훈을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 받았다. 이는 이월봉 지사가 숨진 뒤(1977년) 13년이 지난 때였다. 국가가 조금 더 일찍 독립운동 사실을 확인해 살아생전에 서훈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머니의 활동 모습이 들어있는 광복군 제2지대 앨범과 이월봉 지사의 고향인 황주군지(黃州郡誌) 등의 책자를 빌려달라는 기자에게 선뜻 자료들을 건네면서 무겁다고 대구역까지 손수 운전해 바래다주는 아들과 칠순의 조카딸의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씩씩한 광복군 여군, 이월봉 지사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후손된 우리의 몫처럼 여겨져 어깨가 무거웠다.

이윤옥/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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