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남경대학살 발생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최근 발견한 력사자료는 ‘남경대학살’이라는 이 단어는 항일전쟁 시 이미 여러차례 많은 신문에서 언급되면서 고정적 표현법으로 되였음을 실증했다. 또한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한 것과 함께 평가되면서 이 사건은 전후 꾸며낸 것이라는 일본 우익의 설법을 반박했다.
앞서 학계는 중문에서 ‘남경대학살’이라는 이 단어가 최초 공개적 간행물에 나타난 것은 1938년 4월 5일의 《세계전망》 잡지라고 보편적으로 인정했다. 이 잡지는 일본군의 남경학살 폭행을 폭로한 한 연설문을 게재했다.
내용은 남경대학살을 직접 목격한 미국인 조지 피치가 1938년 3월 1일 광주에서 《남경에서의 일본병사》를 제목으로 한 연설을 발표한 것이였다. 번역자 왕사몽은 연설 내용에 따라 《남경대학살 목격기》라는 제목을 작성했는데 이 또한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가지 항일전쟁시기 력사문헌중 ‘남경대학살’이라는 표기법을 가장 일찍 사용한 것이다.
남경대학살력사및국제평화연구원 부연구원인 호탁연은 최신 연구에서 외국 여론은 이 력사사실에 대해 충분한 인식이 있음을 발견했다. 1943년 5월 18일, 《중앙일보》는 <녹스 경고 주축: 미국은 남경대학살을 잊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뉴스를 게재했다. 이 보도는 미국 합중통신사가 1943년 5월 16일, 보스톤에서 발송한 뉴스 전보를 당시 중국 중앙통신사가 전재한 것이다.
뉴스는 당시 미국 해군 부장 녹스가 일본, 독일, 이딸리아 등 주축국에 “우리는 남경의 학살을 절대 잊지 않고 또한 유태인이 대량 학살당한 것도 잊지 않는다. 모든 혐오행위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상세한 기록이 있고… 피비린내 나는 죄행에 종사하는 괴수는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는 경고를 발포했다고 언급했다.
“이로 볼 때 미국정부의 중요 관원은 일찍 1943년에 이미 남경에서 발생한 대학살에 대한 국제반파쑈진영의 공동 격분을 표달했으며 또한 이번 대학살을 유태인에 대한 나치의 대학살과 병렬시켰다.”
호탁연은 당시 해군 부장인 녹스는 《시카고데일리뉴스》의 발행인으로 이 신문은 1937년 12월 15일 즉 남경대학살이 발행한 지 얼마 안돼 1면에 이 신문사의 남경 주재 기자가 쓴 남경대학살 뉴스 원고를 게재했고 이 또한 세계에 일본군 폭행을 폭로한 첫 공개 보도라고 말했다.
이런 력사자료는 남경대학살은 발생 후 중외에서 공인하는 일본침략자의 엄중한 폭행사건으로 되였고 일제가 남경에서 범한 죄행은 부인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고 전문가들은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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