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장가계에 고이 잠든 조선족렬사 리두섭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26일 15시56분    조회:130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장가계렬사릉원 17렬사묘구역에 자리한 리두섭렬사의 묘

장가계를 다녀온 사람들은 웅장하고 험준함으로 유명한 천문산이나 귀부신공을 자랑하는 3천석봉, 천지산의 어필봉 등은 흥미진진하게 외우나 장가계렬사릉원에 조선족렬사가 고이 잠들어있다는 사실은 감감 모르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한 적이 많다.

장가계시 북산에 위치한 장가계렬사릉원은 렬사탑, 무명렬사비, 17렬사묘구역, 39렬사묘구역, 53렬사묘구역, 렬사명록정 등으로 구성되였는데 부지면적이 70여무에 달한다. 158명의 부동한 시기의 렬사들의 유해가 안장된 이 곳은 강택민, 주용기, 하룡, 료한생 등 당과 국가 그리고 중국인민해방군의 지도자들이 다녀간 곳이다.

12월 11일 오전,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로 이곳을 찾은 필자는 릉원 입구에서 50메터 쯤 올라가다가 경건한 마음으로 동쪽 회룡관방향의 인행도 옆에 자리잡은 17렬사묘구역에 들어섰다.

12월이면 연변은 두터운 솜옷을 입어야 하는 계절이지만 이곳은 령상 15도 좌우로 답사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푸른 나무들에서 떨어지는 락엽이 렬사묘를 덮어주면서 천리타향에 묻힌 채 반세기를 넘어 이 곳을 지키는 렬사들에 대한 숭경하는 마음이 더구나 커졌다.

17렬사묘구역 전경

이 구역에는 대용현(오늘의 장가계시) 해방전투에서 희생된 17명의 렬사들의 유해를 모셨는데 전설과도 같은 조선족 전투영웅 리두섭은 가장 가운데에 모셔져있었다.

즉 그의 묘지 량켠으로 각각 8기의 렬사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생불멸하리! 리두섭렬사지묘 대용현인민위원회 1951년 10월 16일 건립’이라 씌여진 묘비에는 리두섭렬사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139사 416퇀 제3영 렬사, 송강성 오상현 사람으로 고농출신이다. 1945년에 중국인민해방군에 가입하고 1948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당소조장이 되였으며 선후로 대공 3차를 세웠다. 영광스럽게 상급에서 발급한 전투영웅상장과 용감상장을 받았으며 1949년 대용해방전투에서 적군 174명을 포로하고 중기 1정, 경기 2정, 박격포 1문, 보총 백여자루를 로획하고 도주하는 적들을 계속 추격하다가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 희생될 때 나이는 21세였다.”

리두섭렬사에 대한 기록은 현재 많지 않아 상세하게 소개할 수 없지만 당년에 그와 함께 어깨 겯고 싸웠던 분들이 후날 남긴 회억록이나 력사연구자들의 답사기록에 몇 군데 소개되여있어 정리해보았다.

1947년 10월 18일 새벽, 동북민주련군 제28사 83퇀 3영 8련의 전사들은 국민당군 한개 련이 배수진을 친 백룡산을 공격하고 있었다. 련락병이였던 리두섭이 1패 부패장에게 전투를 지휘하라는 명령을 전달할 때였다. 적탄이 그의 목을 스쳐지나가면서 말을 할 수 없게 되였다. 부패장이 급히 그를 부축하려 하자 그는 안깐힘을 다해 피묻은 손으로 땅에 “임무는 생명보다 중하다”고 썼다. 전투가 끝난 후 상급에서는 8련에 “임무는 생명보다 중하다”는 글발이 새겨진 금기를 수여했다. 그 때 그의 나이는 19살이였다.

28사 사령부와 정치부에서 수여한 금기

1948년 10월 25일, 해방전쟁사에서 격전이 가장 치렬한 전투로 유명한 흑산저격전 대백태자촌전투에서 통신반장이였던 그는 우박처럼 쏟아지는 탄우 속을 뚫고 1패의 위급한 상황을 전달하기 위하여 련부에 도착했다. 초연에 얼굴은 시꺼멓게 그을고 군복은 총알과 폭탄파편을 맞아 너덜너덜해졌으며 신발은 어데 갔는지 맨발이였다. 위급한 상황에서 련장은 그를 기포련에 보내 화력지원을 요청하게 했다. 련장의 명령을 받은 그는 맨발바람으로 기포련에 달려갔다. 그는 나무그루에 찔려 발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임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때 그의 나이는 20살이였다.

자오대로 오르는 길

옛날 국민당군 진지는 귤밭으로 변하였다.

1949년 10월 16일, 부반장인 그는 대용현을 해방하는 관건적인 전투에 참가하였다. 대용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자오대산 진지를 점령한 그는 진지를 다른 부대에 넘겨주고 전사들을 거느리고 신속히 적의 지휘부가 위치한 대용중학교로 달려갔다. 그는 어둠 속에서 포로를 심문하여 대용중학교의 위치를 알아낸 뒤 신속히 대용중학교 2층 건물에 접근하였다.

장가계시 영정구로인대학 뒤울안에 자리잡은 대용중학 옛터

전사 백득현과 함께 남먼저 문을 박차고 건물로 들어간 그는 복도에서 달려오는 적 몇놈을 쏘아눕히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고함소리와 총소리가 요란한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가 적 기관총수를 사살한 뒤 “꼼짝 말앗!” 하고 벼락같이 소리쳤다. 질겁한 놈들은 모두 손을 들고 돌아섰다.

그런데 이 때 “땅!땅!땅!”하는 총성이 울리면서 그의 가슴에 세발의 총알이 박히였다. 다른 교실에 숨어있던 국민당군 군관이 그에게 총을 쏘았던 것이다. 몸을 돌리면서 적군관을 쏘아눕힌 그는 교실 안의 포로들이 꼼짝 못하도록 지켜섰다. 가슴에서 붉은 피가 콸콸 쏟아져나왔지만 그는 마지막 힘을 다 모아 포로들을 지켰다. 총성을 듣고 달려온 백득현에게 포로를 넘겨준 후에야 그는 안도의 미소를 지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는 이렇게 상급에서 맡겨준 임무를 생명으로 완수하였다.

대용해방전투가 결속된 후 47군 139사 당위원회에서는 그에게 대공 3차를 기입해주고 전투영웅으로 추인했으며 ‘모택동메달’을 추수하였다.

천진전역에서 통신병이였던 그가 홀로 적군퇀장을 포함한 수십명을 생포한 사적은 후날 전설처럼 회자되면서 해방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스크린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혁명렬사기념탑

<해방전쟁시기 흑룡강 소수민족의 공헌>이라는 론문에는 이렇게 기록되여 있다.

“대용현성을 해방하는 전투에서 리두섭 등 3명 전사는 적군 174명을 생포하고 기관총 2정, 포 1문, 각종 총기 140자루를 로획했다. 영광스럽게 7차의 대공을 세우고 모택동상장을 받은 전투영웅 리두섭은 적탄을 맞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강철8련은 750명의 적을 섬멸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전투가 끝난 후 사당위에서는 ‘강철8련’ 에 금기를 수여하였는데 금기의 제자 내용은 ‘해방전쟁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우고 대용전역에서 결정적인 작용을 한 강철8련에 드린다’였다.”

1928년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출생한 리두섭은 어려서 부모를 따라 흑룡강성 오상현에 이주하였으며 1945년 10월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오상현대대에 입대하였다. 후에 팔로군 359려에 편입된 그는 선후로 동북토비숙청, 림강보위전, 료심전역, 평진전역, 대용전투 등 수십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하였는데 여러번 부상을 입었으며 적군 수백명을 생포하였다.

리두섭렬사가 희생된 후 당지 정부는 대용현렬사릉원내 17렬사묘구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하였다. 해마다 청명과 추석, 렬사추모일이 되면 당지 정부와 학생들은 이곳을 찾아 추모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당지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당지 정부와 손잡고 리두섭렬사 추모활동을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민족단결에도 좋고 당지 정부와의 관계도 윤활해지고 또 투쟈족을 비롯한 당지 여러 민족 인민들에게 우리 조선족을 널리 선전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자오대에서 내려다본 안개에 잠긴 장가계시

렬사릉원에서 바라본 자오대(맞은켠 정중앙 뾰족한 부분)

필자는 이날 렬사의 묘비 앞에서 묵념하고 당년에 그의 부대가 진격하였던 로선을 따라 자오대진지 옛터, 그가 희생된 대용중학교 옛터 등지를 답사하면서 렬사의 숭고한 애국주의정신과 무비의 용감성으로 점철된 혁명적 영웅주의정신을 다시 한번 기리였다.

최근년간 수려한 풍경을 구경하기 위해 장가계를 찾는 조선족들이 부쩍 늘고 있다. 아름다운 산수에 취하는 것도 좋지만 갔던 김에 반세기전에 이 강산을 해방하기 위해 보귀한 생명을 바친 조선족선렬들을 찾아 그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고귀한 정신을 기리는 것도 매우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길림신문 김태국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72
  • 6월 28일 오전, 환인만족자치현 고수산문화관광산업단지프로젝트 계약체결식이 현정부 상무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계약에 따라 단지내에 대형 고구려문화체험전시관을 건설하게 된다.   체결식에서 료녕오녀산관광개발그룹 리사장 호문과 안휘성황산포가원개발유한회사 리사장 리견이 고수산문화관광산업단지프로젝트 ...
  • 2018-07-05
  • 지난 6월 23일, 중국공산당 창건 97주년을 맞으며 류하현조선족학교 당지부에서는 ‘초심을 잃지 말고 당의 령혼을 주조하자(不忘初心 铸造党魂)’는 취지하에 ‘항일혁명의 길을 다시 걷기’활동을 진행했다. 류하를 포함한 주변의 지역들은 항일전쟁시기에 양정우, 리홍광, 량세봉 등 항일 명장...
  • 2018-06-28
  • 화룡시 서성진 와룡촌 어랑툰에 위치한 13용사기념비앞에서 [항일뻐스 19]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의 항일유적지 답사는 계속 되였다. 화룡시로혁명근거지답사길에 오른 합창단 단원들은 달리는 뻐스에서 화룡시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 부회장 후진청(70세, 侯振清)선생이 들려주는 로혁명근거지건설에 관한 이야기...
  • 2018-06-05
  •       6월 1일 필자는 동북륙군강무당 옛터전렬관을 탐방했다.   단층집으로 된 전렬관 건물에 들어서면 강무당 평면도와 연혁이 전시되여 있다.   동북륙군강무당은 1907년 당시 동북 총독을 임하고 있던 서세창이 청정부의 명을 받고 창립한 것이다. 1919년 장작림은 청 말기에 정지됐던 '...
  • 2018-06-02
  • [항일뻐스18 5월 27일,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에서는 동북의 첫 쏘베트정부 설립 88돐을 맞으며 화룡시 투도진 약수동 상촌의 막바지에 있는 100년 버드나무가로 찾아갔다. 이곳이 바로 항일혁명전쟁시기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동북에서 제일 처음으로 세워진 쏘베트정부이다. 이날 따라 봄비가 장줄기를 이루며 ...
  • 2018-05-31
  •   1 1934년 10월, 밀산항일유격대와 항일구국유격군은 항일동맹군 제4군으로 개편되였다. 그때 제4군 소속 안순복 등 4군의 조선족동지들과 가족들은 밀산현 서대림자(西大林子)에 있다가 그곳에서 80리 떨어진 양강구(杨岗沟)에 자리잡고있었다. 그해 겨울에 안순복, 허현숙(许贤淑), 리동숙, 리범숙 등 녀전사들...
  • 2018-05-14
  • 장백산기슭에 자리잡은 길림성 무송현(抚松县) 선교진(仙桥镇)내에 “동천”(氡泉, 철도역 명이기도 함.)이라는 유명한 온천구가 있어 국내외 유람객들의 발길이 닿은지도 수십년을 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는 또 “전우샘”(战友泉) 이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항일전쟁시기 중국의 장울화렬사와...
  • 2018-04-30
  • 26일,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는 안도에서 2기 6차 리사회를 소집했다. 주정부 부주장 풍도는 연설에서 지난해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의 사업성과를 충분히 긍정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는 우세를 발휘하고 연변로혁명근거지에 대한 선전을 틀어쥐여 연변의 경제발전에 동력을 부여하...
  • 2018-04-27
  •   본사소식 4월 20일, 동북항일전쟁사 연구일군들이 항일민족영웅 리진룡 장군 순국 100주년을 맞으며 관전만족자치현 청산구 은광자촌에 위치한 리진룡장군기념원을 참배했다.       추모식에는 장홍군 료녕성사회과학원 항일전쟁문화연구쎈터 주임, 전정혁 료동항일영렬연구실 주임,  최용학 한...
  • 2018-04-23
  •   19일 력사 전문가들은 심양 ‘9.18’력사박물관에서 '항일민족영웅 리진룡장군과 우씨 부인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좌담회"를 갖고 항일민족영웅 리진룡 장군과 우씨부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는 장홍군 료녕성사회과학원 항일전쟁문화연구쎈터 주임, 범려홍 9.18력사박물관 ...
  • 2018-04-19
  • 사진출처 인터넷 고고계 ‘오스카’로 불리는 ‘2017년 전국 10대 고고 새 발견’ 최종 평의회가 10일 북경에서 펼쳐졌다. 초심을 통과한 26개 고고 종목 가운데서 안도 보마성 금나라 시기 장백산 신묘 유적 등 10개 종목이 최종 확정됐다. 입선된 10개 종목으로는 신강 지무나이 통천동 유적, 산동 ...
  • 2018-04-16
  • 석경의 기원, 장백산의 력사문화연구에 중요한 실물증거 제공 4월 8일, 전문가들의 감정을 거쳐 길림성 장백산 서남비탈 만강에서 발견한 5점의 천공석기는 신석기시기의 ‘장백산석경(石磬)’임이 확인되였고 돈화시 강자유적지(岗子遗址)에서 발견한 석경도 전문가들로부터 확인되였다. 이는 동북 장백산...
  • 2018-04-11
  • [인민망 한국어판 4월 8일] 두 달 전, 미국 필라델피아 프랭클린 과학박물관에 전시된 병마용(兵馬俑)의 손가락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손가락을 훔친 남성과 박물관 측의 실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불만을 야기했다. 현재 병마용 손가락을 훔친 남성은 체포 후 법정 심판...
  • 2018-04-08
  •   주변 록화대에 연변애청자협회 회원들이 하얀 꽃송이를 매달고 있다. 청명절을 맞으며 연길시 의란진 발전촌에 자리한 에는 선렬들을 기리는 하얀 꽃송이들이 피였다. 4일에는 연변애청자협회 40명 회원대표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발전촌 로인협회 대표들과 함께 당년의 연길구 당위서기였던 ...
  • 2018-04-05
  •   남경대학살 생존자 가족 영상 집중적으로 전시   4월 3일, 참관자가 중국침략 일본군 남경대학살 조난동포기념관에서 영상전람을 관람하고 있다. 이날 이 중국침략 일본군 남경대학살 조난동포기념관에서 열렸는데 30여가구의 생존자 가족 기념사진, 일부 생존자의 개인초상사진 등을 전시했다(신화사).
  • 2018-04-04
  •   3월 31일, 2018 무술년 칭밍(淸明, 청명) 사마천(司馬遷) 민간 제사 행사가 사마천의 고향, 산시(陕西, 섬서) 한청(韓城)시에서 열려 국내외 학자와 사마천 후손을 비롯한 현지 민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마천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는 ‘쉬춘(徐村, 서촌) 사마천 제사’에서 기원한다. &lsqu...
  • 2018-04-03
  • -청명절을 맞아 장춘시 조선족 160여명 화피창렬사릉원서 추모 행사 진행 4월 2일 오후, 청명을 맞아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록원구조선족소학교,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장춘시조선족새세대관심사업위원회 등 장춘시 각계 조선족 30여명과 장춘시조선족중학교의 부분적 학생과 교사 130여명이 길림시 화피창...
  • 2018-04-03
  • 中당국 삼국지 조조 진짜 무덤 최종확인…진위논란은 여전 [앵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무덤이 확인됐습니다.  죽기 전 자기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는 유언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무덤 위치와 관련해 다양한 학설이 난무했는데 이번에 논란이 끝날지 주목됩니...
  • 2018-03-26
  •   “3.13”반일운동 99주년이 되는 3월 13일, 룡정시3.13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한락연연구회, 룡정•윤동주연구회, 룡정시통신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추모활동이 룡정시 지신진 합성리 동쪽 언덕에 자리잡은 “3.13반일의사릉”에서 개최된다. 룡정시“3•13”기념사업회 리광...
  • 2018-03-12
  • 26개 대상중 21위 2017년 전국 10대 고고 새 발견 초심 결과가 지난달 26일에 발표됐다. 지난해 고고학 분야의 성과가 뚜렷하고 경쟁이 심한 가운데 안도 보마성에서 발굴된 금대 황가 장백산 신묘 유적이 21위를 차지했다. 보마성 유적은 안도현 이도백하진 서북쪽 4킬로메터 되는 구릉지대의 남쪽비탈에 위치해 있다. 지...
  • 2018-03-09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