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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송교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4월18일 00시00분    조회: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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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신화통신] 호남 상덕 도원현 교인학교대문에 들어서면 도포를 걸치고 중절모를 쓰고 머리를 번쩍 쳐들고 경건하게 앞을 보고 있는 송교인조각상이 보인다. 바로 얼마전 200여명의 사생 대표와 사회 각계 인사들이 조각상앞에 모여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송교인희생 105돐을 기념하였다.

 


한세대의 영웅렬사 송교인은 지식을 탐구하는데 부지런하고 힘썼고 혁명의 뜻을 세우고 굽히지 않았으며 나라를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나서고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데 평생의 심혈을 기울였다. 이같은 그의 탐구정신, 혁명정신, 애국정신, 법치정신은 교인학교 학생들과 도원인민들 가운데서 널리 전해지고있다.

송교인(1882년-1913년), 자는 둔초이고 호는 어부이다. 호남 상덕시 도원사람이며 민주혁명의 선구자이다. 중화민국 림시정부 당소의내각 농림부 총장이며 국민당의 주요 기획자이다.

1888년(청나라 광서 14년), 6살 나이에 송교인은 서당에 들어가 공부하였고 1899년 도원장강서원에 진학, 1902년 무창의 일반중학당에 합격, 이듬해에 입학하였다. 재학기간 오정록 등이 조직한 혁명단체의 무창 화원산에서 집회가 송교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늘 동학들과 시국을 론함과 동시에 청정부를 반대하는 혁명의 길로 나아갔다.

1903년 8월, 송교인은 황흥과 친분을 맺고 막연한 친구사이로 되였다. 같은 해 11월 4일, 그는 황흥, 류규일, 진천화, 장사소와 함께 화흥회를 계획, 창설하였다.

1904년 2월, "오랑캐를 축출하고 중화를 회복하자"를 정치강령으로 한 화흥회가 장사에서 설립되였고 황흥이 회장을 맡고 송교인이 부회장을 맡았다. 그해 11월 송교인은 일본에 건너가 선후로 도꾜정법대학, 와세다대학에서 학습하였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동안 송교인은 서방자본주의 정치학설과 사회제도 방면의 서적을 폭넓게 열독하였고 "일본헌법","로씨야의 혁명" 등 여러가지 원고를 번역하였으며 당시 세계 중요 국가의 정치, 경제, 법률 여러가지 제도에 대해 상당히 깊은 인식을 갖게 되였다.

1905년 6월, 송교인은 혁명잡지 "20세기의 지나"를 꾸리고 일본정법대학에 입학하였다. 같은해 8월, 그는 손중산이 일본 도꾜에 설립한 동맹회를 지지함과 동시에 사법부 검사장직을 맡고 "20세기의 지나"를 동맹회의 기관지 "민보"로 개명하였다.

1910년말, 송교인은 일본에서 상해에 돌아와 "민립보"주필을 맡고 "어부"란 필명으로 혁명을 선전하는 많은 문장을 썼다.

1911년 7월, 송교인은 담인봉, 진기미와 함께 상해에서 동맹회 중부총회를 세우고 총무간사를 직접 맡았다. 그는 상해, 호남성과 호북성 각지를 래왕하며 중부총회 분회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자금을 모아 무기와 탄약을 구매하였으며 장강중하류 류역의 혁명진척을 추동하였다.

1913년 3월 "중화민국" 제1기 국회선거가 기본적으로 마무리되였고 송교인의 주관조직하에 국민당은 중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그의 정권예기와 정치열정을 일층 불러일으켰다. 송교인은 바로 유럽 "내각제"관례를 따를것을 희망하며 당수의 신분으로 내각을 조직할 즈음에 같은 해 3월 20일 22시 45분 홍술조에 의해 상해 기차역에서 암살되였다. 22일 새벽 4시 48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31살의 나이에 숨졌다. 현재 송교인의 무덤은 상해시 갑북공원에 안치되여있다.

장태염은 "민국보", "신주일보"를 통해 송교인을 "내각을 세움에 있어서 나는 누구보다 송교인을 추천한다. 재상을 할수 있다", "총리를 말할라 치면 송교인이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채원배는 "나의 력사"의 서언에서 "(동맹회) 건설계획을 갖고있는 자는 극소수이고 계획을 갖고있을뿐만 아니라 그 중임을 떠멜수 있는 사람은 더욱 적다. 송어부선생은 그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다년간 송교인 고향 도원의 인민들은 송교인선생의 혁명사적을 명기하고 깊이 추모하고있으며 송교인의 애국기여정신을 고양하고 이 걸출한 혁명가를 그리워하고있다. 도원의 인민들은 송교인의 생가인 원 팔자로향 속산파촌을 "어부촌"으로 개명하고 2011년 5월에 또 어부, 회룡, 도가충 세개 촌을 "교인촌"으로 합병하였다. 2001년에 원 팔자로중학교를 "교인중학교"로 개명하고 후에 또 교인중학교,교인소학교를 지금 신축한 교인학교로 합병하였다.

도원현에서는 송교인을 기념하고저 송교인 생가, 삼걸정, 전문저서 "송교인", 송교인학교를 건설하고 영화,드라마 "송교인전기" 등 6가지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동시에 도원현에서는 송교인생가 문화산업원을 계획설계하고 현재 송교인박물관건설을 준비하고있으며 도원현 송교인연구회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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