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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40년]한개‘촌’으로부터 본 나라의 미래(2)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19일 00시00분    조회: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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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중관촌’광장에 유전자DNA모형조각상이 금빛으로 눈부시게 안겨온다.이는 중국사람이 생명의 비밀을 파헤쳐가는 동경심의 상징이다.

 

-“‘중관촌’은 더 많이는 하나의 정책단지란 개념”

40년래 일련의 개혁이 ‘중관촌’으로부터 먼저 돌파됐고 혁신창업 “용천(涌泉)”상이 나타났다.

올해 64세나는 시대그룹공사의 왕소란총재는 ‘중관촌’애서 가장 일찍 ‘하해’한 기업가 중 한사람이다.

그는 “그 때의 체제설계는 오늘의 ‘중관촌’으로 하여금 하나의 구역에 16개 단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물리적인 개념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이는 하나의 정책단지란 개념임을 결정해주었다.”고 감개무량해 말한다.

개혁개방 40년래 당중앙, 국무원은 고도로 중관촌의 발전을 중시해왔다.

-1988년 5월, 국무원 비준으로 북경시신기술산업개발시험구를 성립.

-1999년 6월, 국무원은 중관촌과학기술단지건설을 가강할데 관해 응준.

-2009년 3월,국무원은 중관촌국가자주혁신시험구 건설을 응준, 중관촌을 글로벌영향력을 구비하는 과학기술혁신중심으로 건설할 것을 요구.

-2012년 10월 국무원은 중관촌국가자주혁신시범구공간규모와 포치를 조절할데 대해 응준, 하여 시범구면적을 488평방키로메터로 증가…

“중관촌이 걸어온 발자욱마다 국가전략의 강유력한 지지가 안받침돼 있으며 국가전략의 ‘부호’가 새겨져 있다.”고 북경시해정구당위서기 우군은 말한다.

위사진은 창사 이듬해인 1989년의 ‘용우(用友)’인터넷공사의 모습, 아래사진은 용우인터넷그룹공사의 리사장겸CEO인 왕문경.

혁신은 발전을 이끄는 제1동력이다”

용우인터넷그룹공사의 기업등록번호는 “SY0001”, ‘중관촌’에서 처음으로 사영첨단기술기업간판을 딴 기업이다.단 둘이서 창설한 쏘프트웨어봉사공사였던 데로부터 30년후 ‘용우’는 1만5000명 임직원을 둔 아세아태평양지구 대형 기업관리소프트웨어, 기업인터넷봉사와 기업금융봉사제공사, 중국 대형 기업자원관리,업종 응용해결방안제공상으로서 소프트웨어관리공사로부터 ‘권한위임(赋能)’형의 유명한 클라우드서비스(云服务)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날 나는 내가 다니던 기관의 사무실에서 빠져나와 북경전시관극장에 달려가 북경시신기술산업개발시험구성립대회에 참가했다. 현장에서 공포한 십여가지 정책은 나를 더는 책상머리에 그대로 앉아있을 수 없게 했다. ”

용우인터넷그룹공사의 리사장 겸 CEO인 왕문경은 자신의 ‘하해’당시를 회상하며 지금도 격동을 감추지 못한다.

중관촌과학기술원구관리위원회주임적립신은“만약 농촌령역의 개혁이 소강촌에서 선코를 뗏다면 그럼 과학기술령역의 개혁은 바로 ‘중관촌’에서 시작됐다.”면서 40년래 ‘중관촌’은 부단히 개혁탐색하고 부단히 개방을 확대해왔으며 부단히 혁신창업 주체 활동을 격발해왔다고 한다.

당의 18차 전국대표대회이래 습근평을 핵심으로 한 당중앙에서는 고도로 혁신,구동발전전략을 중시해 ‘혁신은 발전을 인솔하는 제1동력이다’등 일련의 중요한 론단을 내렸다.

‘중관촌 ’은 이런 잊을 수 없는 력사적 시기를 맞는다.

-2013년 9월 30일, 중앙정치국에서는 ‘학습과당’을 ‘중관촌’에 배치했다.

-2014년 2월,중관촌과학기술혁신중심을 북경의 하나의 새로운 도시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9월, 국무원은 〈북경 전국과학기술혁신중심 건설을 가강하는 총체적 방안〉을 비준, 중관촌국가자주혁신시범구 주요 담체 역할을 발휘시켜야 한다고 지적.

선행선시하는 ‘시험전’에서부터 개혁발전의 ‘선행자’로, 전국과학기술혁신중심의 ‘주요 담체’에서부터 경진기 협동 혁신 공동체의 ‘주력군’으로 구축되기에까지 ‘중관촌’은 혁신 변혁속에서 과감하게 앞으로 달려왔다.

앞장서서 과학기술성과‘소유권,사용권, 수익권'개혁을 전개, 주주권을 격려하고 과학기술연구경비관리, 첨단기술기업인정 등 중대한 시점을 전개했으며〈고등학교과학기술성과전환과 과학기술협동혁신, 과학기술연구기구 성과전환과 산업화를 다그쳐 추진할데 관한 의견(시행)〉등 정책 형성에 적극적 추동역할을 일으켰으며 중관촌국가과학기술금융혁신중심건설, 중관촌현대봉사시점전개…를 추동해왔다.

‘작은 정부, 큰사회’개념의 혁신적 관리패턴

당의 18차전국대표대회이래 ‘중관촌’은 부단히 개혁의‘시험전’역할을 발휘해 공급측구조 개혁을 심화해왔다.

“정부는‘불도저’로 되여 혁신을 영향주고 있는‘장벽’을 밀어버렸다.”고 북경대학박사생도사 동소영은 말한다.

97집 혁신형부화기, 29집 대학 과학기술단지, 26집 특색산업부화플랫트홈… 하나의 다층차형 창업봉사계통이 ‘중관촌’에서 형되고 있다.

지금 ‘중관촌’에는 500집이 넘는 산업련맹, 협회상회, 민영비기업사회조직들이 활약하고 있는바 ‘중관촌’은 ‘작은 정부, 큰사회’개념의 혁신적 관리패턴이 형성되고 있다.

‘중관촌’은 2011년부터 앞장서서 전국 범위에서 천사투자인솔기금을 창설했고 유명한 투자기구와 협력해 17개의 구조성 기금 혹은 펀드(子基金)를 설립했는바 ‘중관촌’에서 활약하는 천사투자인은 지금 이미 만명을 초과했다.

‘쇼미’리사장인 뢰군은 “‘쇼미’가 지난 5년에 수십억딸라를 융자받는데 ‘중관촌’을 나간 적 없다.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중관촌’에는 매우 농후한 창업분위기가 있어 그속에 있는 사람들마다 다 분투하려 하며 그 까닥에선지 과학기술 혁신, 발전방식 혁신이 자연히 폭발돼나온다고 본다.”고 한다.

‘시대'그룹 왕소란리사장은 “중관촌에서 활약하는 기업가 대부분은 기업가, 투자인, 창업멘토(도사)와 사회사업일군, 이런 4가지 각색을 한몸에 지니고 있다. 이런 련결로 ‘중관촌’기업가정신은 고양 되고 혁신문화는 전승된다고 본다.”고 말한다.

2008년 북경올림픽운동회 개막식으로부터 ‘9.3’열병식 때에까지 전국인민은 천안문광장에 일떠세운 초대형LED(전기를 빛으로 전환하는 기술)형광막을 통해 LED와 중국‘리아드 ’제품을 알았다.‘중관촌’상장기업리아드그릅은 20년에 걸쳐 LED형광막 세계시장의 14%를 점령했다.

‘리아드’의 창시인인 리군은 “기술혁신은 출발점이고 인재격려기제 혁신은‘법보’다.”고 한다. 상장해 6년간 공사의 리윤과 수입은 다 10배 넘게 장성했는바 기본적으로 주요 임직원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며 “이런 격려기제는 기업의 응집력, 전투력을 특별히 강하게 만든다. ”고 말한다.

외국인 영구거주증신청심사환절이 복잡한 등 문제를 두고 ‘중관촌’은 해당부문과 협상해 외국적 고급인재 ‘록색직통차’등 전국적 첫 출입경정책을 내놓게 했다. ‘중관촌’외국인영구거주복무홀은 해정구에 있다. 2017년년말까지 그 복무홀에서는 해당 정책과 관련된 신청인 2500명을 접대했고 353명이 영구거주 허가를 받았다.

‘중관촌’에는 근 만명되는 외국적인재와 외국에서 귀국한 3만여명 인재들이 운집해있다.

범생자(生子)생물과학기술유한공사 창시인인 미국 듀크대학교 교수 염해는 “‘중관촌’출입경정책은 세계 500강기업에 몸 담고 있는 고층관리인재들을 흡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공사의 수석운영관 홍영은 바로‘강생’ 등 다국공사에서 고층관리직에 있다가 온 이다.

‘중관촌’은 이미 ‘인재, 기술, 자본’… 신 동력차로 되여 경제발전에 끊임없이 동력을 주입해넣고 있다. 2017년 중관촌에 새롭게 설립된 과학기술형 기업이 3만집 된다. 매일 평균 약 80집이 등록된 셈이다.

‘중관촌’ 상장공사협회 윤위동회장은 “‘중관촌’ 당면의 혁신생태는 마치도 ‘용천(涌泉)’과 같다.독특한 혁신창업생태계통은 ‘중관촌’의 핵심경쟁력을 격상시켰으며 글로벌혁신인솔역할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첨단기술이 실어온 고부가가치

‘고급, 정밀, 첨단’기술산업이 ‘중관촌’경제총량 가운데서 차지한 비례가 70%이상 된다.

상장공사는 이미 하나의 창구로 되였다. 보고에 따르면 2017년상반기 ‘중관촌’상장공사의 순리윤 규모가 처음으로 억대 관을 돌파해 1471억원에 도달했다. 연구개발투입도 련년 대폭적으로 증가돼 30%되는 기업은 이미 국제 앞선 수준에 도달했다.

“‘중관촌’의 ‘고급, 정밀, 첨단 ’기술산업경제의 고속도 성장은 이미 하나의 ‘튼실 ’한 경제체로 되였다.”고 윤위동은 말한다.

근일에 북경 중과한무기(寒武纪)과학기술유한공사에서는 우리나라 첫 클아우드(云端)인공지능칩을 연구제작했다고 선포했다.

‘한무기’는 글로벌 지능칩령역의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데 그와 같이 점점 많은 ‘중관촌’기업들이 원천기술(原创技术),핵심기술을 향해 진군하고 있다.

/편역 길림신문 김영자기자

http://www.xinhuanet.com/mrdx/2018-05/16/c_13718250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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