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하늘의 부처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중국 대륙에 단 하나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천불지산(天佛指山)이라는 우레 같은 이 이름과는 달리 세간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 산이 그리 높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주봉의 해발이 1226m인데, 대륙의 한 귀퉁이에 있는 연변에도 아주 흔한 산이라고 한다.
산은 높아서가 아니라 신선이 있으면 이름이 난다. 그렇다면 천불지산은 아직 신선이 없어서 이름을 떨치지 못했을까. 아니, 아직 신선이 알려지고 있지 않으니 산이 이름을 떨치지 못했을까.
천불지산은 장백산맥의 한 자락이다. 두만강을 따라 연연히 이어지며 그 폭이 동서남북으로 각기 백여 리나 된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龍井市)의 백금향(白金鄕), 삼합진(三合鎭), 지신진(智新鎭) 그리고 개산툰진(開山屯鎭)의 일부와 덕신진(德新鎭)의 일부를 망라한다.
천불지산은 예로부터 서기(瑞氣)를 잉태한 영험한 고장으로 전한다. 신령스런 이런 산은 선인(仙人)들의 도장(道場)으로 되며 또 영산(靈山)으로 되기 마련이다. 명인은 천불지산이 명소이며 또 천불지산이 용정 나아가 연변의 명소라는 것을 알리는 증표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원인으로 천불지산의 많은 인물은 천불지산의 이름처럼 세상에 잘 알려질 수 없었다. 그들의 기이한 행적과 이야기는 이런저런 원인으로 지금까지 적지 않은 부분을 글로 적지 못했기 때문이다. 천불지산의 해발고가 하필이면 거인 모택동의 생일과 합치한다면 누군들 쉽사리 믿겠는가.
천불지산은 부처가 하늘의 성지(聖旨)를 받들어 내렸던 곳이라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면서 '용정현지명지(龍井縣地名志)'(1985)가 현지의 옛 전설을 기록하고 있다. 이 전설처럼 천불지산은 정말로 부처가 성지를 받들어 내리고 부처가 점지를 한 곳이던가. 실제로 천불지산을 남북으로 옹위하고 있는 두 오봉산(五峯山)은 신선이 타고 다니던 다섯 봉황이라고 하며, 용정의 북쪽을 병풍처럼 막고 있는 용산(龍山)은 땅에 내려 하나로 굳어진 거대한 용이라고 한다. 이처럼 영물(靈物)의 봉황과 용이 함께 천불지산을 왕실처럼 둘러싸고 있는 게 단지 하늘이 내린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명산에 명인이 나타나고 명산은 또 명인으로 이름이 난다. 고사(古事)에 "팔선과해(八仙過海), 각현신통(各顯神通)"이라고 했다. "여덟 신선이 산에서 내려 각자 재주를 부린다"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도가(道家)의 여덟 신선이 배를 타지 않고 각자 법술을 부려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 여덟 신선이 한데 모였던 봉래(蓬萊)는 이로 하여 이름이 났던 것이다.
미상불 부처를 만나기 위한 '신선'은 천불지산에 오래 전에 벌써 나타나고 있었다. 대각사(大覺寺, 근대 한국불교의 요람)의 용성(龍城) 선사가 천불지산에 올라 부처를 친견한 오랜 기재가 있으며 조선시대의 최고의 풍수대사 무학(無學) 대사가 천불지산을 다녀간 옛 샘터가 있다. 용성 선사와 무학 대사는 모두 소설로 가공(加工)한 인물이 아니라 역사에 실존한 인물이다.
뭐니 뭐니 해도 천불지산을 품에 안은 용정 자체가 바로 이름난 고장이다. 용정은 옛날에 용이 우물에서 날아오른 고장이라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이주, 개척 시기에 용정은 연변 나아가 만주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문화와 교류의 중심지였다. 겨레의 숨결이 묻어있는 이 땅에서 많은 걸출한 인물이 용과 봉황의 무리처럼 줄레줄레 날아올랐다. 천불지산의 기슭에는 이름난 교육자가 있었고 문학가가 있었으며 학자가 있었다. 또 신선 같은 명의나 신들린 음악인 등 기인(奇人)이 나타나고 있다. 산위에는 산삼과 개불알꽃 등 희귀한 품종의 식물이 있으며 검은담비를 비롯한 멸종위기의 동물이 있다. 얼마 전에는 또 동북호랑이가 오랜만에 다시 천불지산에 나타났다고 하는 경이한 소문이 들린다.
잠깐, 천불지산을 기어이 하늘의 불이 내린 산의 지명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원체 천불붙이라고 불렸으며 벼락 등으로 인한 천불(天火)로 해서 풀과 나무가 불살라진 자리에 일군 땅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늘 부처의 천불(天佛)이 아닌 하늘 벼락의 천불(天火)로 해석하고 있는 것. 와중에 천불붙이가 순 우리말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부의 공감을 불러내고 있다. 문자기록에 없는 이 이야기는 지방문헌인 지명지의 기록 자체를 의도적으로 소설로 희화하고 있는 것이다.
천불지산에 내린 불의 벼락은 실은 불길한 징조만 아니었다. 불로 일군 산의 화전(火田)은 개척민들의 희망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불의 벼락은 하늘이 내린 남다른 사랑으로 되고 있었다. 화전의 시초는 옛날 산골짜기에 은거하던 재가승(在家僧)에 의해 열렸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천불지산의 지명은 더구나 하늘의 부처와 진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천불이 점지한 그 산은 오늘도 용과 봉황이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중생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천불지산에 연이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바닷가의 봉래에 모인 '여덟 신선'처럼 저마다 기이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엮고 있다. 하나같이 천불지산에서 태어나고 천불지산에서 자랐으며 천불지산에 소문을 놓았다. 그들이야말로 진정 천불지산에서 하늘의 '성지'를 받고 부처의 '점지'를 받은 신 같은 그런 인간이 아니던가.
사실상 천불지산은 산의 봉우리가 많듯 산에 사는 명인이 허다하다. 천불지산은 봉래처럼 결코 여덟의 신선만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따라서 천불지산의 산과 명인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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