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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련재]중국조선족력사(7)-간도일본총령사관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14일 00시00분    조회: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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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의 붉은 담장

네 귀에 삼엄한 또치까를 앉힌 우중충한 붉은 벽돌담장, 높이 2메터도 넘는 그 붉은 담장에 옹위되여있는 미색의 건축물- 룡정시 륙도하로 869번지. 룡정시인민정부 사무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축물이 바로 악명이 자자한 간도일본총령사관유적지이다. 지금은 길림성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여 애국주의교양의 터전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일제치하에 시달리던 그 때 누가 감히 이 건축물을 바라볼 수 있었으랴. 악마의 아구리인양 쩍 벌리고 있는 그 시커먼 철대문으로는 누런 군복의 일본경찰들이 밤낮으로 반일지사들을 붙잡아들이느라 혈안이 되여 실북처럼 드나들었으리.

1909년 9월 4일 청나라를 강요하여 <간도협약>을 체결한 일제는 길림으로부터 조선 회령에 이르는 길회철도수축권을 얻었으며 국자가, 배초구, 투도구, 룡정 등을 일본에 개방하는 상업도시로 정하고 연변에서의 령사재판권을 얻었다. <간도협약> 제2조, 제7조의 규정에 의하여 그 해 11월 1일, 일제는 룡정에 설치하였던 ‘간도파출소’를 ‘간도일본총령사관’으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침략활동을 감행하게 된다.

3월 13일(2004년), 기자가 ‘룡정 3.13반일운동 85주년 기념대회’보도를 위해 찾아갔을 때 으리으리한 이 철대문 앞에서 룡정시문련 전임 주석이며 저명한 민간이야기수집가인 김재권선생을 만나 간도일본령사관 정황을 묻게 되였다. “지금 보고 있는 이 청사는 1922년 11월에 불탄 후 1924년에 착공하여 1926년에 준공된 것입니다. 건축면적은 2,503평방메터인데 담장에 싸여있는 울안 면적은 42,944평방메터나 됩니다. 령사관은 지하 한층까지 합해 3층으로 되였는데 중간 남쪽에 도출된 부분은 5층 구조로 되였습니다. 바깥벽엔 미황색 타일을 붙였고 지붕은 저렇게 록색 뼁끼칠을 한 양철지붕입니다. 청사 뒤에 지하실로 내려가는 문이 있는데 반일투사들을 취조하는 감옥이였지요. 지금은 룡정혁명력사전람관입니다. 간도일본총령사관은 건립된 그 날부터 연변지구에서 하늘에 사무친 죄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여 항일애국지사들에 의하여 두번이나 불에 타 재더미로 되였습니다.”

룡정시 륙도하로 869번지에 자리 잡고 있는 간도일본총령사관 옛터

김재권선생은 깨끗하게 정리되여있는 정원길로 천천히 걸으면서 간도일본총령사관을 소개했다.

간도일본총령사관은 건립초기에는 대리총령사와 부관 1명, 서리생 2명, 경찰서장 1명과 16명의 경찰 뿐이였다. 그러나 1920년에 조선통감부로부터 300명의 경찰을 끌어왔으며 총령사관에 경찰부를 두었다. 동시에 10여곳에 경찰서를 설치, 1928년 10월 2일에는 일본으로부터 100여명의 경찰을 끌어왔으며 1931년 11월에는 총령사관 경찰부에 ‘특수수사반’을 두고 지하당의 정보를 수집하고 혁명력량을 파괴하는 죄악적 활동을 감행하였다.

“1930년 11월의 조사에 의하면 총령사관 경찰부의 관할 밑에 룡정촌, 국자가, 투도구, 동불사, 로투구, 팔도구, 천보산, 의란구, 대립자, 걸만동, 팔도하자, 배초구, 량수천자, 훈춘 흑정자, 훈춘 투도구 등 18개 곳에 경찰서 혹은 경찰분서를 증설하였습니다. 1935년 5월의 통계에 의하면 경관은 646명이였습니다.”

두만강을 삼엄하게 지켜선 일본 군경들

1937년 11월 5일, 일본과 괴뢰만주국이 체결한 <만주국의 체외법권을 철회하고 남만철도부속지행정권을 양도할 데 관한 조약>에 의하여 그 해 12월에 간도일본총령사관과 5개 령사분관 및 경찰서를 철회하였다. 그 후 룡정 총령사관 자리에는 ‘개척병원’이 들어앉았다. 령사관의 관리들은 전부 일본관동군과 그 소속하의 특무기관에 넘어가고 경찰들은 다 괴뢰만주국 경찰기구에 들어갔다. ‘특수수사반’은 ‘간도특별공작반’으로 개칭하고 계속 죄악적 활동을 감행했다.

피비린내 나는 소굴

청사 뒤의 지하실 문을 여니 좁은 복도가 나진다. 몇메터 들어가니 가로 빠진 복도가 다시 보였다. 복도 량켠에는 작은 방들이 있었는데 감방과 고문실이였다고 한다. 첫 칸부터 다섯번째 칸까지는 혁명렬사박물관을 설치해놓을 예정이였고 이미 세칸을 꾸려놓고 있었다. 간소하지만 일제의 죄악이 한눈에 안겨오게 꾸며져있었다.

정부 울안을 정비하면서 발굴했다는 일제가 사용하던 총칼이며 취조 시 사용했던 도구들이 진렬되여있는 세번째 칸에 들어서니 저도 몰래 긴장되고 불안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달틀’은 시커먼 녹이 쓸어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쳤다. 얼마나 많은 반일투사들의 손목이며 발목이 거기에 결박되였댔을가. 얼마나 많은 혁명자들이 이 형틀의 이슬로 사라졌을가. 땅바닥에 놓여있는 한틀의 작두!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진렬장에 놓여있는 녹쓴 창칼, 녹쓴 탄알… 반일혁명가들의 가슴 터치는 고함소리가 금방 귀전을 두드리는 듯하다.

두만강나루터에서 일본 군경의 검사를 받고 있는 조선인들

“1921년부터 1937년까지 16년 동안 간도총령사관 소속 경찰서에서 조선족반일투사들을 2만 8,245명을 체포했는데 그중 녀성이 1,121명이였습니다. 각종 형벌을 받은 사람은 1만6,949명이나 됩니다. ‘9.18’사변 이후인 1934년 한해의 례만 들어도 대단합니다. 한해 동안에 3,635명이 체포되였는데 그 때 연변에 조선족들이 42만6,000여명이였으니 인구비례를 따지면 170명당 1명이 체포된 셈이지요. 총령사관에서 여북했으면 보이라실까지 감옥으로 설치하지 않으면 안되였겠습니까? 보이라실로도 모자라 이번엔 청진감옥으로 압송했습니다. 1930년 제4차 공산당 사건 시에는 300여명 혁명자들이 서울 서대문감옥에 압송되여가기도 했습니다.”

연변대학 력사학 교수 박창욱선생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1907년—1945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하에 연변조선족인민들이 받은 피해정황〉이라는 론문 원고를 건네여주면서 비분에 차 말했다.

론문 원고에 따르면 1907년부터 1945년 사이에 간도일본총령사관의 사촉하에 일제는 연변지구에서 조선인반일군민 4만여명을 살해했고 3만 8,000여명을 체포 구류했다. 그중 반일인사가 1만 165명이다. 1920년 10월 9일부터 12월말까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연변의 조선인반일무장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벌린 대토벌을 박교수는 이 론문에서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일제는 침략군 2만여명을 동원하여 ‘경신년대토벌’을 감행했다. 그번 대토벌에서 일본침략자들은 야수성을 남김없이 들어냈는바 가는 곳마다에서 ‘3광정책’을 추행했다. 그번 토벌을 사람들은 ‘간도참안’ 이라고 한다. 토벌에서 반일군민 2,600여명이 살해되였다.”

사이또와 그 악당들

간도일본총령사관에서는 1919년 3월 13일, 당지의 군벌과 결탁하여 ‘3.13’반일시위를 탄압했으며 1930년 5월에는 연변인민들이 발동한 ‘붉은 5월투쟁’을 탄압했다. 1931년 9월 20일에는 팔도하자 소명당현동에서 기관총으로 12명의 청장년을 살해하고 시체를 집안에 넣고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1932년 4월 2일에는 침략군 제19사단이 연변에 기여들어서 “천명을 오살할지언정 공산당을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웨치면서 야만적인 대학살을 감행해 4,000여명을 살해했다. 간도일본총령사관의 사촉하에 감행된 죄행은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간도일본총령사관에서는 룡정에다 황민교육을 선양하는 보통학교를 세운 후 국자가, 투도구, 배초구 등지에다 분교를 세웠습니다. 령사관에서는 소비돈, 교과서, 기숙사를 공급해주는 등 수단으로 많은 조선인 학생들을 유혹하여 끌어들였습니다. 제1기 졸업생중 40%가 일본 순사거나 경찰, 직원으로 된 것만 보아도 이런 학교들에서 친일분자 양성을 주목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사실이 증명하다 싶이 일제가 간도총령사관을 설치한 것은 침략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조선사람을 보호한다는 것은 말 뿐이고 사실은 조선사람을 ‘취조’하기 위한 것이였으며 조선의 식민통치를 위협하는 반일기지를 박멸하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총적으로 간도일본총령사관은 연변을 침략하고 항일무장투쟁을 탄압하고 연변의 풍부한 자원을 수탈하는 수뇌부였습니다.”

박창욱교수는 분노에 차 말했다.

소가죽 한장의 전설

김재권선생은 간도일본총령사관 터자리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면서 말끈을 푼다.

“기유년에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일본 놈들은 청정부를 윽박질러 룡정에 총령사관을 세우기로 했지요. 그런데 지을 바에는 크게 지어 한치라도 중국 땅을 더 삼키고 싶었던 령사놈은 못된 궁리를 꾸며냈지요.”

일본령사는 국자가에 자리 잡고 있는 청나라 도태부에 있는 윤대인을 만났다.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일본령사는 속으로 엉큼한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음을 살살 발라가면서 례절스럽게 말했다.

“대인도 알다 싶이 우리 두 나라는 자고로 친선적인 이웃이였지요. 내 오늘 대인과 이렇게 자리를 같이하고 나라의 일을 담론하게 되였은즉 그 영광이 하늘에 미치오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찾아왔소?”

“귀 정부에서 룡정에 우리 총령사관을 두기로 하지 않았소이까.”

“그런데?”

“령사관원들이 당도하였는데 있을 곳이 없어 걱정이옵니다.”

“허허. 나라에서 승낙한 일인데 있을 곳이 없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요. 대체 얼마나 큰 집을 세우려 하시오?”

때가 되였다고 생각한 령사는 속으로 너털웃음을 지으면서도 겉으로는 빌붙는 체했다.

“우리는 본디 바다 한가운데 사는 소국사람들이라 욕심 부릴줄 모르웨다. 그저 령사관을 지을 터자리로 소가죽 한장 만큼한 땅만 떼여주면 족하옵니다.”

“뭐라오? 소가죽 한장 만큼한 땅이랬소?”

“예. 소가죽 한장 만큼한 땅이랬소이다. 그만큼하면 족하옵지요.”

아무리 큰 소라도 가죽을 벗겨놓으면 큰 구들에 절반도 펼가 말가 하겠는데 령사관을 지을 자리를 소가죽 한장 만큼 달라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었다. 제 귀를 의심하여 다시 한번 물었지만 그 소리가 그 소리인지라 윤대인은 속으로 소국놈은 소국놈이로구나 하고 비웃으면서도 꼭 간특한 계교가 있을 것 같아 일본령사를 피하라 하고는 관원들을 불러놓고 전후사실을 말했다.

“그 자들로 하여금 집을 지으라고 하십시오. 소가죽 한장 만큼한 땅에 집을 짓지 않고 좀이라도 우리 땅을 점하는 날엔 혼쌀을 먹여줍시다”.

한 관원이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그게 좋겠다고 한물곬을 팠다. 일은 쉽게 락착되여 일본령사는 물러갔다.

연변이주를 위해 회령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있는 조선인들

그런데 그 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놈들이 룡정에다 으리으리한 총령사관을 지었다는 소문이 윤대인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윤대인은 노기충천하여 닫는 말에 채찍을 갈기면서 룡정으로 달려갔다. 도착해보니 과연 높다란 담장이 빙 둘러있는 속에 커다란 층집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었다.

“이것이 그래 소가죽 한장 만한 땅이란 말인가? 그대들은 언약도 없고 국제공약도 없단 말인가?”

윤대인의 벼락 터지는 소리에 일본령사는 되려 웃으면서 태연하게 대답했다.

“우린 언약 대로 소가죽 한장 만큼한 땅에다 령사관을 지었을뿐이옵니다.”

“눈이 먼 줄로 아는가? 이렇게 크게 집을 지어놓고도 소가죽 한장 만큼이라니!”

“룡정 시장의 소 한마리를 사다 잡아서 가죽을 벗기고 그 가죽을 가지고 재여서 딱 그만한 자리에다 토성을 쌓았습니다.”

“당치도 않은 소리로다”!

“한번 손수 재여보시지요.”

령사는 미리 준비해놓고 있던 소가죽을 가져오라고 하졸을 시켰다. 그런데 그 자가 가지고 나온 소가죽은 통것이 아니라 실오리처럼 가늘게 오리오리 오려낸 소가죽이였다. 령사가 오려낸 소가죽을 붙여놓으라고 하자 졸개들이 개미떼처럼 모여들어 잠간사이에 소가죽을 붙여놓았다. 틀림없는 큰 소가죽 한장이였다.

“이 소가죽 한장을 길길이 늘여놓으면 꼭 우리 령사관의 토성둘레와 같사옵니다. 소가죽을 통채로 놔두어도 소가죽 한장이옵고 오리를 낸 걸 합쳐도 소가죽 한장이오니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소가죽 한장이야 한장이지 두장이나 백장은 아니잖고 뭡니까?”

간특한 령사놈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아놓고 싶었지만 손수 대답한 말이라 윤대인은 입이 막히고 말았다. 이렇게 되여 룡정에 으리으리한 일본총령사관이 들어앉게 되였다.

길림신문/《연변일보》 김철호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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