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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에게 능욕당한 여인의 분노, 로마 王政 무너뜨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4월18일 07시51분    조회: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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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제 주도한 '원로원 회의' 열렸던 쿠리아
 

송동훈 문명탐험가

'세상의 우두머리(Caput Mundi)'.

로마를 일컫는 말이다. 지중해가 세상의 중심이던 시절에 로마는 작은 도시에서 출발해 제국으로 성장했다. 유럽·아프리카·아시아 세 대륙을 지배함으로써 지중해를 '로마의 호수'로 만들었다. 그러니 세상의 우두머리란 오만한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서구 역사에서 이 로마는 제국의 이상(理想)이며 표준이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들은 모든 면에서 로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로마에서 옛 영광을 고스란히 느낄 수는 없다. 2000년이란 긴 시간의 흐름이 로마의 많은 것을 지웠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포로 로마노(Foro Romano)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로마의 중심이었음에도, 제국의 흔적이 꽤 많이 남아 있음에도 이곳은 폐허에 가깝다. 무너져내린 황톳빛 건물들, 외롭게 서 있는 대리석 기둥들,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건물의 초석들, 발굴됐으나 놓을 곳을 몰라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무수한 대리석 잔해들...…전성기의 화려하고 장엄한 로마는 더 이상 눈앞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력과 호기심만이 그 간극을 줄여줄 수 있다.

질문을 던져보자. 어떻게 일곱 개의 언덕에서 출발한 이 작은 도시가 세계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었을까? 이유 하나를 포로 로마노 한구석의 '쿠리아(Curia)'라 불리는 건물에서 찾을 수 있다.

왕정이 독재로 질주하다

쿠리아는 원로원 회의가 열리던 곳이다. 원로원은 로마의 독특한 제도다. 건국 신화의 주인공 로물루스가 중요한 집안의 가장들을 불러 모아 구성했다. 시작은 100명. 왕, 민회와 더불어 3대 국가 기관이었으나 그 기능은 왕에 대한 조언 등으로 제한적이었다. 로마는 왕정(王政)하에서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나름의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주변 지역을 정복했으며, '로마'라는 공동체에 대한 관념을 길렀다. 사비니 여인의 약탈(2019년 4월 4일자 세계문명기행)이란 반(半)신화적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는 전쟁과 포용을 통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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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생활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폐허에 가깝다. 사진 오른편에 보이는 그나마 원형에 가까운 건물이 쿠리아다. 고대부터 원로원이 있었던 자리로 오랜 역사 속에서 불타고 재건축하기를 반복했다. 지금의 건물 외관은 3세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모습으로 1937년 복원된 것이다. 쿠리아 옆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으로 그의 즉위 10주년과 파르티아 전쟁 승리를 기념해 만들어졌다(203년). /Getty Images Bank
로마 이전 이탈리아 중부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던 에트루리아계가 한창 성장 중이던 로마로 유입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왕이 선출직이었던 탓에 능력 있는 에트루리아 출신의 타르퀴니우스(Tarquinius·재위 BC 616~579)는 대중 유세를 통해 왕이 됐다. 뛰어난 성품과 능력의 소유자였기에 압도적 다수의 시민이 그에게 표를 던졌다. 로마의 다섯 번째 왕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 의원을 200명으로 늘렸다. 왕당파를 형성해 비(非)로마 출신인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원로원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 6대, 7대 왕도 타르퀴니우스 가문이 배출했다. 한 가문이 왕위를 독점하게 되자 시민 사이에서 불만이 터졌다. 일곱 번째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는 힘으로 불만을 눌렀다. 권위를 높이고 업적을 쌓기 위한 전쟁과 각종 건설에 로마 시민들을 강제로 동원했다. 그에게는 '오만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세습 권력의 전제적인 민낯에 시민들의 분노는 쌓이기 시작했다. 남은 건 촉매와 리더였다.

여인의 정절을 위해 칼을 들다
 
포노 로마노 지도
촉매는 왕의 아들이 제공했다. 왕가의 일원이자 귀족인 콜라티누스의 아내 루크레티아는 아름답고 정숙했다. 당시 로마는 이웃 도시국가 아르데아와 한창 전쟁 중이었다. 콜라티누스도 출정 중이었다. 루크레티아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섹스투스 왕자가 이때를 노렸다. 깊은 밤 루크레티아의 집으로 숨어 들어간 왕자는 죽이겠다며 자신의 뜻에 따를 것을 명했다. 그녀는 맞섰다. 죽음으로도 그녀를 굴복시키지 못하자 왕자는 '불명예'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녀와 노예를 죽여 알몸으로 침실에 눕혀 놓음으로써 사람들이 루크레티아가 간통을 저지르다 대가를 치른 것으로 위장하겠다고 협박한 것이다. 명예를 목숨처럼 여겼던 정숙한 루크레티아는 마침내 굴복했다. 왕자는 욕망을 채웠고 의기양양하게 떠났다(로마사·티투스 리비우스).

왕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이 가져 올 후폭풍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권력에 취했기 때문이다. 루크레티아는 아버지와 전쟁터에 있는 남편에게 '무서운 일이 벌어졌으니 지금 즉시 믿을 만한 친구와 함께 집으로 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4명의 남자가 달려왔다. 루크레티아는 자신에게 닥친 비극을 설명하고, 강간범을 처벌해줄 것을 약속해달라고 했다. 남자들이 맹세하자 루크레티아는 칼을 뽑아 자결했다. 아버지와 남편은 넋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 이때 남편과 함께 온 친구가 그녀의 가슴에서 칼을 뽑아들고 외쳤다.

"이 여인의 피로써 맹세하노라. 왕과 그의 자식들을 죽이고, 다시는 그 누구도 로마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겠노라."

그의 이름은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 혁명가였다.

공화국을 위해 아들을 죽이다

브루투스는 왕의 조카였다. 어머니가 왕의 누이였고, 아버지는 로마의 거부(巨富)였다. 탐욕스러운 외삼촌이 자기 가문의 재산을 탐내 형을 죽이자 현명한 브루투스는 바보인 척했다. 천대받으며 살아남아 때를 기다렸다. 그 '때'가 찾아왔다. 왕이 전쟁 때문에 자리를 비웠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브루투스는 루크레티아의 시신을 광장으로 옮겼고, 그녀에게 닥친 비극을 전했다. 브루투스의 지도하에 시민들은 슬픔과 분노를 행동으로 옮겼다. 로마는 왕을 폐하고 왕가를 추방했다(기원전 509년).
 
루크레티아의 죽음’. 자결한 여인 옆으로 칼을 치켜들고 복수를 맹세하는 이가 로마 공화정의 건국자 브루투스다. 에두아르도 로잘레스(Eduardo Rosales) 작품.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오만왕과 아들들은 고향인 에트루리아로 망명했다. 혁명의 원인 제공자인 섹스투스는 살해됐다. 브루투스는 왕을 대신할 집정관직을 만들었다. 집정관의 권력은 왕과 같았으나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들은 두 명이었고 평민의 투표로 선출됐으며 임기가 1년으로 제한됐다. 오늘날 민주공화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통령제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브루투스와 루크레티아의 남편 콜라티누스가 초대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이제 로마는 왕이 아닌 법이 통치하는 공화국이 됐다. 브루투스는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원로원을 강화했다. 귀족 다음 서열인 기사 계급의 지도자들을 대거 편입시켜 숫자를 300명으로 늘렸다. 국가적 단합과 계급 간 갈등 완화까지를 고려한 조치였다.

쫓겨난 타르퀴니우스왕은 음모를 꾸몄다. 공화 혁명에 반감을 갖고 있던 많은 귀족이 동참했다. 브루투스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음모는 발각됐고, 관련자들은 처형됐다. 국부(國父) 브루투스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들에게 사형을 내렸고, 집행을 지켜봤다. 그에게는 아들보다 자유와 공화(共和)의 가치가 중요했던 것이다. 음모 다음은 전쟁이었다. 에트루리아 도시국가들이 타르퀴니우스왕에게 병사를 댔다. 로마는 맞서 싸워 이겼다. 브루투스는 전투 중에 전사했다. 온 로마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브루투스의 집권 기간은 짧았지만 혁명은 성공했다. 계속되는 음모와 전쟁에 맞서 원로원을 중심으로 뭉친 로마는 끝내 공화제를 지켜냈다.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하고, 지중해 제국을 건설하는 데 앞장선 것도 원로원이었다. 지금 포로 로마노에 남은 건 몇 차례에 걸쳐 불타고 재건되기를 반복한 공회당의 잔해다. 볼품없다 느껴질 수 있다.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무려 2500년 전부터 이 터 위에서 로마의 리더들은 토론하고, 결정하고, 책임졌다. 온 세상이 왕과 사제에게 무릎 꿇을 때 로마인들은 왕을 내쫓고 원로원을 중심으로 스스로 권력을 잡았다. 그리스와 더불어 로마가 오늘날까지도 동서를 막론하고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로마는 제국의 수도였지만, 공화(共和)의 성지다. 아이러니다.

왕정→공화정→황제 통치… 로마 정치체제 변신 거듭,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
 

SPQR은 라틴어 ‘Senatus Populus que Romanus’의 약자로 로마의 원로원과 민중을 뜻한다. 원로원이란 리더 그룹과 이들을 따르는 민중이 로마 제국의 토대임을 상징한다.
SPQR은 라틴어 ‘Senatus Populus que Romanus’의 약자로 로마의 원로원과 민중을 뜻한다. 원로원이란 리더 그룹과 이들을 따르는 민중이 로마 제국의 토대임을 상징한다. /Getty Images Bank

로마제국은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변신을 거듭했다. 시작은 왕정(王政)이었다. 로물루스가 세웠다. 리비우스를 비롯한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이때를 기원전 753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로물루스를 시작으로 7명의 왕이 차례로 로마를 다스렸다. 로마계, 사비니계, 에트루리아계가 번갈아가며 맡았다. 왕위가 상속되지 않고 선출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브루투스가 혁명으로 왕정을 뒤엎고 공화정을 세웠다.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공화국 치하에서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했다. 원로원이 배출한 헌신적인 귀족들과 그들에게 힘을 보탠 열정적인 민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국의 영토가 지나치게 확장되고 공화정이 사실상 소수 귀족 가문의 전유물로 전락했을 때 로마는 제국으로 변신했다. 카이사르와 그의 후계자 아우구스투스가 혁명의 주역이었다(BC 27~BC 23년). 제정은 제국 전역에 걸쳐 팍스로마나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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