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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조선의 '역적'을 도운 미국인의 정체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6일 16시09분    조회: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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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미 외교관과 개화파 조선인의 우정

[오마이뉴스 글:김선흥, 편집:이주영]

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 <편집자말>

구한말 조선에 외교관으로 부임한 미 해군 중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가 45일간의 조선 여행을 마치고 귀경한 것은 1884년 12월 14일이었다. 여행 말미에 갑신정변(1884년 12월 4~6일)이 일어났다.

포크는 그로 인해 위기를 겪게 됐다. 개화파와 가까이 지냈던 포크에 대해 지방 수령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더 이상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 민심은 흉흉했고 살기가 등등했다. 포크는 은신처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언제 피습 당할지 알 수 없었다. 다행히 고종이 호위병을 급파해 줘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의 험난했던 여행기는 이렇게 끝맺는다.
 
"조선의 고통이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9백 마일을 이동한 이번 여행은 다채롭고 경이로운 경험이었지만, 걱정과 불안에 물든 여정이었다. 기독교인의 심장을 지닌 채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조선인의 삶을 살았다. (외국인이) 이렇게 조선의 속살을 보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으리라. 나의 두 눈이 그토록 많이, 그토록 속속들이 보았던 그런 조선을 누구도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갑신정변, 그 후

서울로 돌아왔더니 집안의 물건들이 거의 다 사라져 있었다. 갑신정변이라는 난리통에 약탈 당한 것이다. 1970년대 갑신정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하롤드(Harold F. Cook)는 당시 분실된 조지 포크의 품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중 서적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한국어-만주어>, <일본 전화번호부>, <러시아어 사전>, <프랑스어 사전>, <Aston의 일본어 문법>,  <상하이 중국어>, <아랍어(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힌두스탄어 구문>, <광동어>, <중국 표준어>, <독일 관련 자료>, <국가의 기원>, <역사의 여명>, <로마 편람>, <웨스트민스터 사원 편람>, <폼페이의 최후>, <항해의 역사>, <사진 교본>, , <코리아: 은둔 왕국>, <요리책>, <요코하마 일본어>, <일본의 예절>, <한국어 문법>, <한국의 지명 총람>, <Upton의 보병술>, <한국의 해안과 항구를 망라한 지도첩> - Harold F. Cook, 왕립아시아협회저널 제55호(1980)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은 조선에 일대 회오리를 몰고 왔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서재필·변수(邊樹) 등 9명은 일본으로 망명하고, 홍영식·박영교와 사관생도 7명은 피살됐다. 그 뒤 국내에 남은 개화당들은 '수구파' 민씨에 의해 철저히 색출돼 수십 명이 피살됐다. 개화당은 몰락했다.

한편 교과서에서 '온건개화파'로 배우는 민영익은 갑신정변 당시 피습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포크는 깊은 연민을 느끼며 병상을 찾았다. 우유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신의 베개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조지 포크가 가장 가슴 아파했던 일은 따로 있었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광범과 그 가족의 비극이었다.

서광범은 포크의 둘도 없는 친구였다. 포크는 일찍이 서광범에 대해 "이곳에서 위인이 되든지, 아니면 조국을 위해 죽을 것(He will either become a very great man here, or will diefor his country)"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조지 포크가 서광범을 처음 만난 건 1883년 가을. 서광범이 최초의 방미사절단 일원으로 미국에 왔을 때였다.

우정과 의리를 지키다
  

 
▲ 트렌턴(Trenton)호 1883년~1884년 조지 포크와 한국인이 승선한 미해군 군함
ⓒ 미해군역사센터

 
그해 말 포크가 트렌턴호를 타고 조선을 향했을 때, 방미사절단인 민명익과 서광범, 변수도 동승했다. 민영익은 최초의 서양 여행을 하면서도 늘 중국 고전을 읽고 있었는데, 포크는 그 모습에 실망한다. 반면에 서광범과 변수는 불같은 호기심으로 미국의 문물을 관찰하고 배우려 해서 감동했다고 포크는 회상한다. 특히 서광범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포크는 금방 알아보았다. 곧 두 사람은 마음을 통하는 친구가 됐다.

같은 배를 탔던 민영익과 서광범, 변수는 귀국 후 운명이 엇갈린다. 개화당이 혁명을 거사했을 때 일명 '급진개화파'인 서광범과 변수는 그 주동자였고, '온건개화파'인 민영익은 그들의 적이 돼 있었다.

사실 포크가 남도 여행길에 오르기 전, 서광범은 포크에게 종종 '수구파'를 제거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포크는 과격한 방법은 좋지 않다며 만류했지만 그들은 기어코 거사를 일으키고 만 것이었다.

포크가 서울에 돌아와 보니 민명익은 우정국 낙성 축하 연회장에서 난자 당해 병상에 누워 있었고, 서광범과 변수는 망명을 하러 간 상황이었다. 갑신정변 주역들의 가족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다. 포크의 절친 서광범이 남기고 간 가족들도 물론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했다.

이 대목에서 조지 포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비화가 빛을 발한다. 포크가 고국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그는 극비리에 서광범의 가족을 도왔다. 출옥을 도왔을 뿐 아니라 생활비를 지원했다.

조지 포크는 서광범의 어머니에게 종종 달러를 건네면서 미국에서 아들이 보내온 것이라고 속였다. 포크가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다. 염치를 생명처럼 중시하는 양반들이어서, 만일 자신들이 적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는 내용이다.

나중에 그의 편지를 자세히 살펴볼 것이지만, 이 일은 흉내 내기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국사범의 가족을 외교관이 은밀히 돕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드러나면 당장 추방될 것은 물론이고 분노한 민중으로부터 무슨 변을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마디로 위험천만하고도 무모한 모험이었다.

더구나 조지 포크는 당시 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다(당시 미국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그런 부강한 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조지 포크는 조선인 친구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지켰다. 

조선에 젊음 바친 비운의 주인공

조지 포크의 삶은 너무 짧았다. 미해군역사센터(Naval Historical Center)에는 그의 묘비 사진과 함께 짤막한 글이 실려 있다. 

"교토 동부의 언덕에 있는 조지 포크의 무덤. 그는 37세를 앞두고 있던 1893년 8월 6일 숨을 거두었다. 조선에 젊음을 바쳤던 비운의 주인공이 여기 잠들다."
  
▲ 조지 포크 묘소 일본 교토 동지사 대학 공동묘역
ⓒ 미해군역사센터

  
나는 이 비운의 주인공을 몇 년 전 새벽, 미국지리협회 사이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황홀한 빛을 내뿜는 대동여지도에 나의 시선이 사로잡혔다. 그것의 주인이 조지 포크라고 적혀 있었다. 조지 포크? 누구지? 대동여지도와 더불어 고서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여지도(輿地圖)'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지도 첩인 모양이다.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지만, 뒤표지에 붙은 메모에 시선이 갔다.
  
▲  조지 포크가 수집한 여지도
ⓒ 미지리협회

   
▲  조지 포크 수집한 여지도
ⓒ 미지리협회

 
좌 상단에 희귀본(Rare)이라 적혀 있고 그 아래에는 미국 지리협회가 지도첩을 취득한 경위가 적혀 있다. '1895년 2월 26일 클레이턴 M. 포크(Clayton M. Foulk)로부터 60달러에 매입했다.'

지도첩에는 모두 13장의 지도가 들어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지도의 주인은 조지 클레이턴 포크(George Clayton Foulk)고 클레이턴 M. 포크(Clayton M. Foulk)는 그의 부친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조지 포크가 1884년~1887년 주한 미해군무관으로 근무했다는 대목이었다. 미해군무관? 그 당시 한양에 그런 게 있었나?

아버지가 지도를 매각한 것은, 알고 보니 아들 클레이턴이 이태 전 일본에서 갑작스럽고도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지도첩 속에는 놀라운 것이 들어 있었다. 다음 글에서 보기로 하자.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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