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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们走在大路上6]격정으로 불타오르는 세월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22일 08시42분    조회: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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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편 《우리는 탄탄대로에서》 제6집 격정으로 불타오르는 세월

인민대회당은 천안문광장의 지표 건축물로 1959년 새 중국 창립 10돐 전야에 준공되였다.

60년이 지났지만 이 건축물은 여전히 정중하고 우아하며 주위의 건축과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여 천안문광장과 혼연일체의 드넓은 기운을 구성하고 있다.

1958 년 8 월, 중공중앙은 수도에 10개의 전형적인 공사를 세워 새 중국의 새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기, 인민대회당은 10대 공사의 첫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 때 1959년까지 400일도 남지 않았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10개의 대형 건축물을 세우는 임무는 얼마나 어려운가? 같은 시기 세계 기타 저명한 건축물의 시공표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뉴욕 유엔 본부 청사를 짓는데 7년, 제네바 만국궁은 8년, 시드니 오페라극장 또한 어언 14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힘을 모아 큰일을 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독특한 우세이다. 전국 17개 성, 시의 33명 최고 건축사가 북경에 모이고 만여명의 건축로동자들이 시공에 참여하였으며 의무로동에 참가한 사람은 연인수로 수십만명에 이른다… 인민대중은 지혜와 애국열정으로 세계 건축사에서 일대 기적을 창조하였다.

사회주의 기본제도는 6억 인구를 가진 중국 대지에서 건립된 것으로 획기적인 의의를 갖는 대사이다. 이는 민중이 한마음한뜻으로 사회주의를 전면 건설하는 전례없는 격정과 하늘을 찌르는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석유는 공업의 혈액이다.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새 중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석유를 더 절박하게 필요로 했다. 우리 나라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제봉쇄를 하던 서방 세력들은 석유 자원이 결핍한 중국이 공업을 발전시키려면 꼭 석유에 목이 조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허나 중국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일련의 지질학자들과 젊은 지질탐사 대원들은 황무지, 고비사막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모든 가능한 곳으로 석유를 찾으러 다녔다.

1950년에 조국으로 돌아온 지질학자 리사광은 지질부장을 맡았다. 그는 반종상과 공동으로 창립하고 발전시킨 륙상생유(陆相生油) 리론연구에 근거하여 챠이담분지, 사천분지, 화북평원, 동북평원 등 지역을 석유 탐구의 중점 목표구로 삼아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1959년 9월말, 중국석유 탐사대는 드디여 동북 송료평원의 흑룡강성 조주현 경내에서 첫 안정생산 유정을 터뜨렸다. 이 때는 마침 건국 10주년 전야여서 사람들은 이 유정을 대경이라고 명명하였다. 1960년에 중앙에서는 4만명의 건설대오를 동원하여 대경 석유회전을 전개할 데 대한 계획을 비준하였다.

당시 환경은 매우 간고하였다. 설비가 적고 도로가 없으며 물공급, 전력공급 설비가 엄중하게 부족하여 수만명의 대오가 황량한 대평원에 정착할 수 있을지조차 큰 문제였다.

왕진희는 “조건이 되여도 하고 조건이 없으면 조건을 창조하여서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인’으로 불리우는 그는 1205 시추대 대장이다. 그는 강철 같은 의지와 용맹한 태도로 자기의 이름과 대경 석유전쟁을 긴밀히 련결시켰다. 대경석유회전이 시작된 후 하역설비가 없는 상황에서 왕진희와 그의 대원들은 직접 끌고 어깨로 메면서 60여톤의 무거운 시추기를 운반해 설치하였다. 지층의 압력이 너무 커 두번째 우물을 700메터 뚫었을 때 분출이 생겼다. 위급한 고비에서 왕진희는 솔선수범하여 알칼리성이 극히 강한 세멘트 탕장에 뛰여들어 맨몸으로 분출을 제압하였다.

3년 남짓한 분투를 거쳐 1963년 대경 유전에서는 439만 3,000톤에 달하는 원유를 생산해 전국 원유 생산량의 67.3 % 를 차지하였다. 그해 12월 2일, 주은래는 제2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 회의에서 “우리 나라에서 수요되는 석유는 이제 기본적으로 자급할 수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중국은 끝내 빈유의 모자를 태평양에 던져버렸다.

1964년 1월, 모택동은 전국에 ‘공업에서는 대경을 따라배우자’는 호소를 내렸다. 대경은 새 중국 공업 전선의 기치로 되였다. 격정으로 불타오르는 세월, 새 중국의 광활한 농촌에서도 동시 동보적으로 천지를 뒤흔드는 위대한 기적을 창조하였다 .

산을 허무는 우르릉 포소리가 우리를 태항산 남쪽 기슭의 수림현으로 데려간다. 허리에 끈을 묶고 원숭이마냥 벼랑 사이를 날아다니는 이들은 특기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임무는 수백메터 높이의 절벽 사이에 도랑을 만들어 100여킬로메터 밖의 장하수를 림현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인장입림(引漳入林)’ 공사이다. 사람들은 이를 홍기도랑(红旗渠)이라고 부른다.

단단한 사암에 너비 8메터, 깊이 4.3메터 되는 주간 수로(主干渠)를 파내려면 상상했던 것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 끈 하나를 허리춤에 매고 벽호처럼 험준한 절벽 우에 붙어 강철을 두드리고 대포의 구멍을 파는 이 작업은 얼핏 소탈한 동작 같지만 사실 이들은 생사의 시련에 직면해있다.

위험제거돌격대 대장 임양성은 선후로 4 차나 중상을 입고 구사일생했다. 임양성은 “내가 아침에 이불을 껴안고 공사장에 위험제거하러 갔다가 점심에 돌아올 지 말 지 정말 말하기 어렵다. 만약 분신쇄골이 된다 해도 누군가 나의 이불을 관에 넣는다면 고향에 돌아간 것과 같은 것이지요.”라고 말한다. 태항산을 쪼개고 장하가 산을 지나왔다. 림현 인민들은 큰 포부를 품고 강산을 다시 배치할 것을 맹세했다.

림현 인민들은 대자연을 정복하려는 호방함과 강철 같은 의지로 우뚝 솟은 태항산에 총길이 1,500 킬로메터에 달하는 ‘인공천하’인 홍기도랑을 파냈다. 천백년 동안 림현 인민들이 물을 갈망하던 꿈이 드디여 실현되였다.

이 시각 북쪽의 대채 인민들도 언덕을 다스리고 보금자리를 고칠 공사를 시작했다. 대채 인민들은 당지부의 령도하에 1953년부터 5년 사이 총길이 15킬로메터의 180여개 제방을 쌓았고 300무 산비탈을 수평 계단으로 만들었다.

‘우공이 산을 옮기고 중국을 개조하자’, 이는 그 년대 정열적인 중국인민들의 정신면모를 진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새 중국은 20년의 시간을 들여 독립적이고 완정한 공업체계와 국민경제체계를 기본적으로 구축하였다. 이는 중국 현대 경제 발전에 근본적인 기초를 닦아놓았다.

서방 국가에서 이 정도로 건설하는 데 200년의 시간이 걸렸다. 20세기 60년대 전기, 국제정세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중국 주변 형세는 갑자기 긴장해지기 시작, 미국은 윁남 북방에 대한 전쟁을 점차 확대하였다.

중국의 경제사업은 당과 국가의 중요한 의사일정에 올랐다. 1964년 5월 27일, 모택동은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소집하고 제3선 건설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른바 제3선이란 지구별로 획분된 것이다 .

제1선은 연해, 제2선은 중부지구, 제3선은 후방지구로 서남의 운남, 귀주, 사천, 서북의 감숙, 녕하, 청해 등이 포함된다. 그 해 6월, 모택동은 중앙사업회의에서 제국주의가 존재하는 한 전쟁의 위험은 존재한다고 말하면서 제3선 공업기지 건설을 하여야 하며 제1선과 제2선에서도 군사공업을 조금씩 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에서는 인츰 ‘전쟁준비를 위하여’ 제3선 건설을 다그치는 전쟁을 다그쳤다. 중앙에서 제3선 건설 계획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대량의 대학교 졸업생과 과학연구기구를 서쪽으로 옮겨가는 데 가입시켰다. 그중에서도 교통대학의 서행 길은 좀 더 이르다. 1955년, 당중앙은 교통대학의 주체를 상해에서 서안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

‘현대과학을 향해 진군해 대서북을 건설하자.’ 이러한 리상을 품은 교통대학 사생들은 격정에 넘쳐 서행의 렬차에 올랐다. 통계에 의하면 교통대학 767 명 교원중 서안으로 이주한 교원이 537명으로서 교원 총수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국가의 수요는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다. 몇십년 동안 대서북 건설에서 그들은 전반 국면을 념두에 두고 사심없이 기여하며 전통을 고양하고 간고하게 창업하는 서천(西迁) 정신을 발양하였다.

2017년, 부분 서천 교수들은 습근평 총서기에게 편지를 써서 수십년간 분투해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을 생각지 못하게 한 것은 2017년 12월 습근평 총서기의 회답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편지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서안교통대학 사생들의 서천정신을 잘 계승해 서부발전, 국가건설에 지혜와 힘을 이바지하기 바랍니다.”

총서기의 신신당부는 로교수들로 하여금 따뜻함을 느끼게 하였다. 교수 사위상은 “총서기는 재차 ‘애국헌신, 후회 없는 삶’을 제기했는데 이는 서천정신의 체현이다. 우리는 새시대에 우리의 분투목표를 찾아야 하고 새로운 공로를 세워야 합니다.” 당시의 많은 3선 건설중 모택동이 가장 걱정한 것은 반지화철강공업기지 건설이였다. 그는 “반지화강철공업기지를 빨리 건설하되 허술하게 해서는 안된다. 반지화가 일떠서지 못하면 잠을 잘 수 없다.”며 강조한 바 있다.

1964년 5월의 반지화, 억만년 동안 황페했던 이곳에 우르릉 산을 깎는 포소리가 울려퍼지자 천지를 놀라게 한 인류의 장거가 펼져진다. 수만명의 건설자들이 황급히 정리한 짐을 들고 금사강 강변으로 밀물처럼 몰려든다.

주변에 도시가 없고 철도가 통하지 않으며 기후가 렬악하고 물자가 매우 부족한 어려운 조건에서 대형 강철기지를 건설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세개의 돌로 냄비를 고이고 산골짜기에 장막을 짓고 하늘을 천장으로 땅을 침대로 삼았으며 산나물과 소금으로 마른 음식을 먹으며 일했다.

수십만 건설자들은 5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인적이 없던 황량한 불모지에 철강기업을 세웠다. 1970년 7월 1일, 반지화는 제1로철수(炉铁水)를 맞이했다. 흩날리는 불꽃은 유난히 아름다왔다.

바로 같은 날 성곤철도 전선이 개통되였다. 성곤철도는 총길이가 1,096키로메터이고 지형과 지질 조건이 아주 복잡했다. 여러 나라 전문가들은 이곳은 ‘도로건설 금지구역’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 어떤 어려움도 중국인민들이 아름다운 터전을 건설하려는 열정과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들은 선혈과 땀으로 이 평범치 않은 철강의 길을 닦아놓았다. 성곤철도 1,096키로메터를 건설하는 과정에 2,100여명이 희생했다. 평균 500메터마다 렬사의 영령이 남아있는 셈이다. 3선 건설의 전개는 비교적 큰 규모로 우리 나라 공업 배치를 개변하였는바 3선 지구의 비교적 락후한 국면을 개변했다. 격정으로 넘치는 그 세월은 영웅들이 배출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뢰봉, 그는 공무로 희생된 한 보통 해방군 전사이다.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그의 정신은 전국 인민들이 따라배우는 본보기이다. 초유록, 간암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란고현 간부, 군중들과 함께 엄중한 자연재해와 투쟁했다. 그는 란고 인민들로부터 ‘당의 훌륭한 간부’로 불린다.

인민들의 공헌, 영웅들의 사적은 한세대 또 한세대를 감화시키고 있다. 인민들은 전례없는 열정으로 사회주의건설에 뛰여들면서 일련의 선명한 시대 특징을 띤 건설 정신으로 우리의 혁명정신을 더 풍부히 가꿔가고 있다.

현대과학을 향해 진군하자, 이는 새 중국 건설에서의 쩌렁쩌렁한 구호이다. 1960년, 호남성 농업학교 교원 원륭평이 갓 교잡 벼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 그 당시 벼의 평균 무당 수확고는 100여키로그람 밖에 되지 않아 식량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로 되였다. 원륭평의 교잡 벼 기술로 1975년 논벼 무당 수확고는 300킬로그람에 도달했고 제3대 슈퍼 교잡 벼는 무당 수확고를 1000키로그람 제고할 수 있다.

도요요, 그는 최초로 개똥쑥(青蒿素)으로 말라리아(疟疾)를 치료하는 약물을 발견해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이 연구의 시작은 1967년 5월 23일이였다. 바로 그해 중국에서는 말라리아 억제 새 약을 연구개발하는 ‘523’프로젝트를 가동했다. 5년 후 도요요팀은 기타 기구와 합작해 성공적으로 개똥쑥을 연구개발해냈다. 이 약물은 백만명의 생명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 건강사업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인민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은 개인 전면발전의 기초일 뿐더러 국가에서 응당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중국은 세계 주혈흡충병이 가장 심각한 나라중 하나였다. 장강 류역 및 그 남쪽의 12개 성, 시, 자치구 1000만 인구가 병에 걸렸고 억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이 병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1956년 2월 17일, 모택동은 최고 국무회의에서 ‘주협흡충병을 받드시 소멸해야 한다’는 구호를 제기했다. 1957년 6월 30일, 《인민일보》는 강서성 여가현에서 처음으로 주협흡충병을 소멸했다는 소식을 실었다. 모택동은 이 소식을 보고 〈역신을 보낸다〉는 시를 짓기도 했다.

1965년 모택동은 ‘의료위생사업 중점을 농촌에 두어야 한다’라는 지시를 내렸다. 새 중국은 새로운 경제와 사회제도를 바탕으로 참신하고 독특한 의료위생제도를 건립했다.

중국의 건설발전이 날로 향상하는 동시에 우리 나라의 대외관계도 참신한 국면을 가져오게 되였다. 사진 속에서 앙천대소하는 사람이 바로 제26차 유엔대회에 참석한 중국대표단 단장 교관화이다.

꾸준한 노력과 여러 제3세계 나라와 정의를 주장하는 나라의 지지하에 1971년 10월, 제26회 유엔대회는 유엔에서의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성과 권리를 회복하였다.

70년대 전기, 모택동은 3개 세계획분리론을 제기, 이는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세계평화를 옹호하는 데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1972년 2월 21일, 미국 대통령 닉슨 일행이 북경에 도착해 모택동과 만났다.

6일 후 중미 쌍방은 〈련합공보〉를 체결, 두 나라 관계는 정상화로 되기 시작했다. 20세기 70년대초 중국은 세계 각 나라와 국교 정상화 고조를 일으켰다.

이 전후 중국과 외교관계를 회복, 건립한 나라는 40여개, 서방 국가가 20여년간 중국에 대한 봉쇄가 타파되였는바 참신한 외교국면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1976년말까지 중국은 세계 110개 국가와 외교관계를 건립했다. 중국은 국제무대에서 적극적이고 중요한 작용을 하였는바 정의를 지키고 세계평화를 옹호하는 강대한 력량중 하나로 되었다.

CCTV방송, 편역: 길림신문 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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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록편[우리는 탄탄대로에서-2]제2회 일월을 휘여잡아 새 천지 개척 상해 등 도시들에서는 ‘은화전쟁', ‘쌀솜전쟁'을 벌려 불법 투기 자본을 타격하고 관료자본을 몰수했으며 중국에서의 외국의 경제특권을 페지했다. 토지개혁을 진행하고 봉건토지소유제를 페지하면서 농민들이 처음으로 이 땅의...
  •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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