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성 사하시렬사릉원은 장엄하고도 엄숙했으며 릉원 한복판에 높이 솟아있는 기념비에 새겨진 ‘양춘증 렬사는 영생불멸하리!’라는 큰 글자가 유난히 빛을 뿌리고 있었다.
양춘증은 1929년 하북성 사하현(오늘의 사하시)에서 태여났다. 1945년 10월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가했고 모 부대의 기밀과 통신원으로 있었다. 1948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고 1951년 3월 중국인민지원군 항미원조 작전에 참가했다.
1952년 8월 5일, 양춘증의 소속부대인 지원군 제35사 제104퇀 제4련은 강원도 금성 좌수동 동남쪽의 무명고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남조선군 수도사 제26퇀 제11련을 향해 진공을 발동했다. 강대한 포화의 지원하에 지원군 용사들은 남조선군의 방어선을 돌파하여 고지를 점령했고 수비군의 한개 패를 전부 섬멸했으며 적군은 끊임없이 반격해왔다.
이튿날 새벽에 적군의 포화는 우리 지원군 진지를 맹폭격하여 진지에는 돌과 흙이 마구 흩날렸다. 적군은 수차의 반격을 가했으나 번마다 지원군에 의해 격퇴당하자 집중돌격을 발동했다. 양춘증은 침착하게 포병에게 명령을 내려 화력을 집중하여 적진을 포격할 것을 명령했다. 아침부터 오후 3시까지 치렬한 싸움을 벌려 몇배에 달하는 적들의 10여차의 반격을 물리치고 적 200여명을 살상하였다.
해질 무렵에 지원군의 사상은 심각했고 진지에는 양춘증과 위생원 2명 그리고 반땅크 수류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이때 100여명의 적들이 또다시 벌떼처럼 올라왔다. 긴급한 고비에 양춘증은 삶의 기회를 전우에게 남겨주고 반땅크 수류탄을 안고 적진에 뛰여들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연기기둥이 하늘높이 치솟아올랐으며 양춘증은 적들과 함께 희생되였다.
진지는 지켜냈으나 양춘증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양춘증의 영용하게 헌신하는 정신의 고무격려하에 제4련은 적군과 나흘 동안 반복적으로 쟁탈전을 벌리면서 적군의 거의 30차 반격을 물리쳤으며 600여명의 적을 살상하고 포로했다.
1952년 11월, 중국인민지원군 지도기관은 양춘증에게 특등공을 추서하고 ‘중국인민지원군 1급전투영웅’, ‘중국공산당 모범당원’ 등 칭호를 추서했다. 1953년 6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양춘증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를 추서했다.
신화사/연변일보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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