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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기행]80년전의 비석돌에서 력사를 읽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5월21일 00시00분    조회: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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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비석돌의 정면, 우측, 좌측, 뒤면.

화룡시 숭선진 원봉수로전시관에는 한장의 묘비 사진이 전시되여 있다. 1940년대 한 자위단 단장의 묘비 사진이였는데 그 비석돌이 현재 화룡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에 보관되여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것은 지난 5월 8일이였다.

동북항일련군의 발자국을 따라 력사답사를 많이 했고 홍색관광에도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아소개를 했더니 촉진회 관계자는 열정적으로 맞아주면서 “십여년전에 발견되였고 4,5년전부터 이곳에 보관하고 있다.”고 비석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면서 한장의 한백옥비석을 보여주는 것이였다.

화룡시 중심거리에 위치한 화룡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

두께 약 15센치메터, 너비 20센치메터가량에 길이가 한메터가량 되는 한백옥을 다듬어 만든 비석은 장정 둘이서 맞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으며 1941년 9월 26일에 세워졌다가 소를 방목하는 사람에 의해 발견되였다고 한다. 일어로 된 묘비 비문의 력사연구가치가 인정되여 이곳에 보관된 것이다.

수십년세월 산불에 그을었는지 아니면 세울 때 원래 검은 칠을 하였는지 대부분이 검은 색으로 된 비석은 앞뒤좌우 네개 면에 모두 글이 씌여져있었다.

비석의 정면에는 “고 이수평 자위단장 훈8위 고일성지묘”, “전사 상황 화룡현 숭선촌 이수평 자위단장 고일성 당 39년”이라고 씌여졌고 우측에는 “강덕 8년 9월 26일 대만주제국(大满洲帝国) 간도성(间岛省)화룡현 고성리 경찰서장, 화룡현 경좌 아라이하루오(新井春雄)”라고 씌여져 있었다. 화룡현 숭선촌의 이수평이라는 마을에서 전사한 자위단 단장 고일성의 묘이고 고성리 경찰서장이며 화룡현 경좌인 아라이하루오가 세웠다는 내용이다.

좌측과 뒤면에는 “강덕 7년 5월 29일 오전 2시 김일성(匪团)의 60명이 3개 방면으로 이수평부락을 포위하고 맹렬하게 습격하자 자위단 20명과 주재경찰 4명이 일치하게 협력하여 몇시간의 격전을 거쳐 비단 수명을 소멸하고 수차례 적의 진공을 격퇴시켰다. 고일성 단장은 불행히 수발의 적탄을 맞은 후 죽으면서 일만 량제국의 만세를 웨쳤으며 만주국 주국장의 숭고한 명예를 획득했다.”는 내용이 씌여져 있었다. 당시 제2방면군 총지휘였던 김일성에 대해 일본침략자들은 ‘토비, 비적무리’라고 호칭했다.

내용을 풀이하면 강덕 7년(1940년) 5월 29일 새벽 2시경 동북항일련군 제2방면군 60여명이 이수평부락을 습격하였는데 고일성이란 자가 일본경찰과 결탁해 항일련군에 맞서 싸우다가 총에 맞아 죽었다는 내용으로 이는 3월 25일 국내외를 진감한 <홍기하전투> 승리이후에도 제2방면군이 주동적으로 일본점령구의 집단부락을 습격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며 무기와 병력 등 여러 면에서 비교할 수 조차 없이 렬세에 처해 있었지만 다양한 전법과 전술로 기동령활하게 이른바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의 미명하에 진행된 일제의 토벌계획을 파탄시키는 항일련군의 업적을 반증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고일성이 받았다는 훈8위 주국장.(자료사진)

다만 비석이 고일성이 죽은 당해가 아닌 이듬해에 세워진 것은 그가 죽은 다음 여러가지 표창과 훈장이 추가되면서 다시 세우지 않았을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석돌에 씌여진 내용이 사실에 부합되는 걸가? 일본 미쓰즈책방에서 1976년도에 출간한 《현대사자료》(30) 조선 (六)부분 431페지부터 435페지 사이에는 이보다 더 많은 교전기록과 활동기록들이 담겨있다.

《현대사자료》(30) 조선 (六)부분 복사본 가위.

아래는 일본침략자들이 기록한 부분적인 내용이다.

○지난 14일 오후 11시경, 김일성 (토비 일당) 15명이 관할 삼장서관내 삼수군을 침습하기 위해 두만강을 건느던 도중 지방경찰대에 발견 20분가량 교전하다가 북쪽으로 격퇴하였다.

○지난 15일 오후 9시경 관할 삼장서관내 원사동부락에 김일성 (일당) 약 20명이 침입하여 물자 및 현금 200엔을 략탈하고 면서기 외 2명을 랍치하여 도주했다.(후에 2명은 돌아왔다.)

○16일, 삼장서변전경찰장 세끼시마경부보 이하 15명은 맞은 켠 광평툰부락에 잠입하여 김일성 (토비) 부하 1명을 체포하여 취조중이다.

○5월 12일 오후 1시경, 김일성 (토비) 약 60명은 안도현 본조전부락을 습격하여 총기 탄약 물자 등을 략탈하고 부락주민 22명을 랍치한 후 도주하였다.

○5월 14일 오후 11시쯤 김일성 (비적무리) 약 60명은 안도현 신흥툰 부락을 습격하여 물자 다수를 략탈하고 도주하였다.

……

5월 중하순 기록.

○5월 18일 오후 10시경 김일성 (토비) 제8퇀 약 25명이 안도현 아동촌 상대동툰(관할 삼장서 상사동주재소 서북 약 6000메터)을 습격하여 부림소와 식량 등을 략탈하고 도주했다.

○5월 19일 오전 1시경 안도현아동촌 동경평툰(농전주재소동북 약 4000메터)에 김일성(토비) 제8퇀의 약 20여명이 침공하여 부림소와 식량과 기타 물자를 략탈하고 도주했다. …

○5월 29일 밤 화룡현 이수평에 침입한 적 40여명을 추적하던 황○○○부대는 30일 오전 8시경 안도현과 화룡현 접경지인 석인구 동쪽 1208고지 부근까지 추적 및 교전하여 북쪽으로 격퇴시켰다.

5월 29일과 30일 기록.

이러한 기록들에 나오는 삼장, 원사동, 광평툰, 동경평, 상대동, 석인구 등 부락들은 홍기하전투가 있었던 전적지에서 반경 50리 이내이며 이 역시 제2방면군이 홍기하전투이후 전략적이동을 한 것이 아니라 전략, 전술적으로 적들의 배후를 교란하고 기동령활하게 적들의 토벌계획을 파탄시켰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당시 당지에서는 “해가 뜨면 만주국(일본놈)의 천하, 해가 지면 공산당의 활동무대”라는 말까지 돌았다고 한다…

실제로 일제가 패망한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으로 된 제2방면군 총지휘인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8권 <소할바령에서>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들이 남아있다.

○ “그후 김일은 소부대 하나를 데리고 살금살금 국내로 들어갔습니다. 그 소부대는 5월(1940년)중순경에 무산군 삼장면일대에 진출하여 국경수비대에 대한 기습작전을 벌리면서 이틀동안이나 인민들과의 사업을 하였습니다.”

○ “그래서 6월(1940년)에 접어들며 동경평과 상대동을 쳤습니다. 치고보니 동경평은 거의 무방비상태였습니다. 10여일전에 친 부락을 또 치겠는가 하고 모두가 방심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후에도 몇개의 부락을 동시에 들이쳤습니다.”

인터넷판 《세기와 더불어》 제8권 <소할바령에서>중의 기록.

여기에서 김일이 거느린 소부대가 바로 제2방면군의 제8퇀이였고 인수도 60여명이였다는 것을 보면 당시 제2방면군은 몇십명을 단위로 한 소부대활동을 많이 전개하여 적들을 답새기고는 인츰 자리를 옮기거나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성동격서전술로 적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렸다는 것을 료해할 수 있다. 즉 피동적인 싸움이 아닌 주동적이면서도 준비있는 전투를 벌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적이 쳐들어 왔다!” 이른 아침 수탉이 홰를 치기전에 마을에 퍼진 공포, 간담이 서늘해진 일본경찰과 자위단 놈들… 듣기만 해도 혼비백산할 홍기하전투이후 언제 항일련군이 쳐들어올지 몰라 집단부락마다 간이 콩알만해져 대문을 굳게 닫았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화룡현인민정부가 1993년에 세운 홍기하전투유적지 기념비.

특히 동경평과 상대동은 현재 모두 안도현과 화룡현 접경지대에 위치하였으며 고일성이 사살된 이수평과도 십여리 불과한 마을들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고일성은 위만주국에서 위임장을 받은 자위단장이나 기실은 일본침략자의 앞잡이로 감히 항일련군에 달려들었다가 개죽음을 당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석돌이 발견된 장소. 주인 없는 무덤을 나무가 지키고 있다.

당시 위만주국경내에 간도협조회 특별공작반, 간도특설대, 선무반, 신선대, 자위단과 같은 각종 특무 무장조직이 있었는데 이는 모두 항일련군 토벌작전에 활용되였다. 무장자위단만 하여도 1936년에 319개나 있었다고 하니 고일성과 같은 인간은 그중의 일개 단장으로 자기 개인의 안일한 생활과 영달을 민족과 조국해방의 신성한 리익앞에 내세운 무치하기 그지없는 죽어마땅한 인간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수여받았다는 위만주국 8급 훈장이란 것도 1936년부터 1940년사이에 만주국에서 24464매를 수여했다는 훈장중 제일 마지막급별이다.

참고로 1938년경에 남북만지역에서 활동하던 동북항일련군은 세개 방면군으로 재편성되였다. 중국공산당은 공산국제의 지시와 중국공산당의 사명으로 항일련군 내에 있는 조선족공산당원들과 전사들을 중심으로 조선족무장부대를 단독으로 설립하여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조선의 혁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인정, 동북항일련군 제2군 제6사를 중심으로 1938년 11월에 제2방면군을 건립하여 주로 두만강, 압록강 연안에서 활동하다가 기회만 있으면 조선 국내로 진출하여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기관을 때려부시는 전투를 진행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보천보전투, 간삼봉전투, 홍기하전투 등이였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더니 벌써 여덟번이나 바뀐 그 전적지들의 산과 들에는 총포성과 승리의 함성이 잠든지 오래고 용맹하고 완강하게 싸우던 항일련군 전사들의 구수한 위훈담도 오랜 추억이나 옛말처럼 되였으며 그들의 이름이나 직급은 그냥 기념비의 붉은 글자 속에 함축된채 구전되고 있다.

80년전에 마을 뒤산 풍수 좋은 무덤옆에 꽂혔다가 소발바닥에 긁히워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난 묘비, 타매해도 마땅하지만 그 비석돌의 기록으로 다시 8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나가면서 오로지 혁명의 승리만 굳게 믿고 용감무쌍하게 자기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던 항일련군 제2방면군전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길림신문 김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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