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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장군 양정우의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7월8일 10시43분    조회: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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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幕】길림성 정우현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우리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음식과 련계시키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산당원이며 항일민족영웅인 양정우가 행군하면서 싸울 때 먹던 것이였습니다. 2020년 7월 습근평 총서기는 길림 고찰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항일전쟁시기에 극히 렬악한 조건에서 양정우장군은 항일무장을 이끌고 섭씨 령하 40도의 엄동설한에 아군의 배가 넘는 적군과 혈전을 펼쳤습니다. 그가 희생되였을 때 위속에는 마른 풀과 나무껍질 목화섬유만 들어있었고 쌀 한톨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오늘 천지와 조상들에게 축고를 드리는 바 너의 등에 ‘정충보국’이란 글자를 새길테니 충신이 되기 바란다’’ 양정우장군은 어릴 때부터 《설악전전》소설을 즐겨보았습니다. 양정우는 민족영웅 악비의 애국이야기와 적과 맞서 싸운 기개를 숭배했습니다. 1905년 하남 확산에서 태여난 양정우는 본명이 마상덕인데 현명하고 덕행이 어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

【字幕】류신군 길림대학동북항일련군연구중심 주임

【同期】1923년 마상덕은 우수한 성적으로 개봉에 있는 하남성립제1공업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당시 개봉은 하남성의 정치 경제 문화중심으로서 여러 가지 새로운 관념과 새로운 사상을 비교적 빨리 접했습니다. 바로 그때 마상덕은 《신청년》《향도》 등 진보간행물을 읽게 되였고 그속의 새로운 사상에 깊이 매료되였습니다.

【字幕】마상덕은 국민대혁명시기에 반제반봉건의 혁명조류에 적극 뛰여들었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습니다. 1929년에 그는 중공중앙의 파견을 받고 동북에 와서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동북에서 사업할 때 그는 장관일이라고 변성명했던 적이 있습니다.

【字幕】길림성 반석시

【字幕】리준 반석시당위당학교 교원

【同期】9.18사변이 지난 후 장관일은 나라가 유린되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일본침략자의 철제밑에 조국의 강산이 짓밟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장관일은 동북의 항일전쟁에 모든 정력을 몰부었습니다.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그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사업을 전개했습니까?

【字幕】리준 반석시당위당학교 교원

【同期】지세가 험하고 산이 높으며 수림이 밀집된 이곳이 바로 홍석라자산입니다. 장관일은 이곳에서 중국공농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와 홍석라자항일근거지를 건립했고 부대에 남아 정위를 맡았습니다.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이때 장관일은 양정우라 개명함으로써 그가 륙합을 평정하고 항일전쟁을 끝까지 하려는 결심을 표달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양정우의 이름은 백산흑수와 장정내외에 널리 알려졌는데 중국인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자랑스러워했고 침략자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字幕】그후 양정우는 선후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 사장 겸 정치위원;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동북항일련군 제1군 군장 겸 정치위원;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사령 겸 정치위원을 맡았습니다. 이 기간 그는 항일련군부대를 인솔해 동북항일유격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면서 일본괴뢰군에 큰 타격과 위협을 주었습니다.

【字幕】길림성 화전시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이 원목으로 만들어진 작은 방은 호자호동북항일련군숙영지사령부 옛터입니다. 양정우장군과 기타 항일련군전사들은 이곳의 심산밀림에 의탁하여 사면으로 출격하여 적군과 여러 차례 전투를 펼쳤습니다.

【字幕】오염빈 호자호밀영기념관 관장

【同期】전사의 회억에 의하면 겨울에 날씨가 너무 추워 저녁에 이불을 덮고 자는데 이튿날 아침 깨여보면 눈썹과 수염에 서리가 끼여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곳에 있을 때 항일련군전사들은 군중과 련계가 끊어져 보급이 없었고 후방의 지원이 없어 매우 간고했습니다. 양정우는 전사들에게 곤난은 잠시적이고 승리할 날이 올 것이라며 사기를 돋구었습니다.

【字幕】왕의전 길림성당위당사연구실 부주임

【同期】1939년말부터 1940년초까지 일본괴뢰군은 대량 병력을 모아 양정우가 인솔한 제1로군을 토벌했습니다. 양정우가 집중된 병력을 분산시키는 등 유격전술을 썼지만 적군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양정우 신변의 전사는 날로 줄어들었고 2월 18일에 양정우 신변의 두 경호원이 외출해 량식을 찾다가 영용하게 희생되면서 양정우는 혼자 남게 되였습니다.

【字幕】길림성 정우현 양정우장군 순국지

【字幕】리유휘 신화사 기자

【同期】1940년 2월 23일 양정우는 몽강현(지금의 정우현)에서 적들에게 발각되였습니다. 이어 일본괴뢰군은 높은 벼슬과 많은 봉록으로 양정우를 투항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양정우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두 손에 총을 들고 끝까지 완강하게 싸우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습니다. 이 상록수가 바로 그가 희생될 때 쓰러졌던 곳입니다.

【字幕】양정우가 희생된 후 일본군은 잔인하게 그의 목을 베였고 배를 갈라 보았는데 그의 위에는 쌀 한톨도 없었고 나무껍질 풀뿌리와 솜덩이 뿐이였습니다.

【字幕】습근평

【同期】중국인민항일전쟁의 승리는 애국주의를 핵심으로 한 민족정신의 위대한 승리이고 중국공산당이 확고한 기둥역할을 발휘한 위대한 승리이며 전 민족이 합심해 영용하게 싸운 위대한 승리이고 중국인민이 반파쑈동맹국과 각 국 인민과 어깨 겯고 싸운 위대한 승리입니다.

【字幕】중해도 길림성당위당학교당건설교연부 부주임  

【同期】우리는 습근평 총서기가 진술한 양정우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수많은 공산당원들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기에 중국공산당 백년의 휘황한 력사를 성취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공산당원의 정신과 혈맥을 이어받아 혁명선렬들이 분투하고 희생한 위대한 사업을 계속해 앞으로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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