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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39]우리 오빠도 혁명렬사입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7월14일 09시09분    조회: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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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순할머니 조선 전쟁터에서 장렬히 희생된 오빠 최동률의 모습 지금도 생생히 기억


오빠 최동률의 혁명렬사 보관서류를 꺼내 보이는 최금순할머니.

최금순할머니는 1943년생이니 올해에 79세이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머리에 백발이 내리고 몸은 늙었지만 할머니 기억 속의 오빠 최동률의 모습은 여전히 20대 멋진 젊은 군관의 모습이다. 조선내전의 정전담판을 눈앞에 두고 오빠 최동률은 전쟁터에서 작전임무를 수행하다가 미군의 폭격기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폭격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최동률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바로 1953년 7월의 18일의 일이였다. 조선 정전협정이 1953년 7월 27일에 체결되였으니 불과 정전담판 9일전에 있은 일이였다.

연길시민정국에서 발급한 혁명렬사 보관서류에는‘1953년 7월 18일, 최동률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장승리 854.1고지 북쪽 300메터 되는 지점에서 전투임무 수행중에 적의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기록되여 있었다.

최동률은 1930년생이니 최금순할머니와는 13살 차이가 난다. 최동률이 사망할 때 할머니는 11살이였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정부에서 추도식을 성대히 열어주었던 기억이며, 오빠가 생전에 전쟁터에서 퇴각해 들어와 잠간 집에 머무르면서 전쟁터에서 입었던 상처를 치료하고 갔던 일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도 이젠 래일모레면 여든 고개에 올라서고 언제 죽을지 모르겠수다. 죽기전에 오빠를 추억하고 기록으로나마 가렬처절한 전쟁터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오빠의 영웅적인 사적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싶습니다.”하고 최금순할머니는 말했다. 그것이 또한 최금순할머니가 이리저리 수소문해 기자를 찾은 원인이기도 하다.

최금순할머니에 따르면 이들 가족은 원래 왕청현 천교령에서 살았다. 해방된 이듬해인 1946년에 토비들을 피해 연길로 도망치듯 이사오게 되였다. 연길의 북대촌에 이사와서 토지를 분배받고 애들을 공부시키면서 가족이 겨우 안정을 찾았다.

최금순할머니네 가족은 부모와 할머니, 그리고 오빠와 언니, 그까지 여섯식구였다. 연길에 이사온 후 오빠 최동률은 연길시2중에서 공부했고 언니는 중앙소학교를 다녔다.
“오빠는 어릴 때 공부를 참 잘했지요…”최금순할머니는 오빠가 항상 최우등을 했고 게다가 체육마저 잘해서 체조시간이면 항상 단상에 올라 시범체조를 했다고 말했다. 학교운동대회때도 오빠는 달리기에서 항상 1등을 하군 했다. 마음씨도 착해서 웃어른들을 보면 깎듯이 인사도 잘하고 로인들에게 혁명도리도 설명해주어 동네방네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 때 오빠 최동률은 항상 큰 사람이 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는 최금순할머니가 후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이다.

최동률은 일요일이면 산에 가서 꼭 나무 한짐씩 해와 부모의 일손을 덜어주는 효자였다고 한다.

그러던 1946년, 17살을 잡게 된 최동률은 군부에 찾아가 참군하겠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나이가 어리고 키가 작은 최동률은 합격될리 만무했다. 그 이듬해 3월, 군대모집이 재차 시작되자 최동률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군대모집에 응해 나섰으며 신체검사에 합격되여 어엿한 군인으로 되였다. 참군한 후 최동률은 해방전쟁에 참가하였고 소대장,중대장으로 진급했다. 1950년 6월에 조선내전이 폭발하자 최동률은 또 주저없이 압록강을 건너 전쟁터로 달려갔다.

항상 정의감으로 불탔던 최동률은 전쟁터에서 크고 작은 훈장 7개나 받을 정도로 용맹했으며 싸움도 잘했다고 한다.

1953년 7월의 어느날, 가정에 청천벽력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최동률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또치카를 부시러 나갔다가 적군의 전투기 포탄에 맞아 장렬히 희생되였다는 부고였다.

당시 최동률은 폭파조의 조장으로서 적군의 또치카를 부셔버리는 작전임무를 맡았다. 적군의 맹렬한 화력앞에서 련이어 쓰러지는 전사들을 바라보던 최동률은 적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참다못해 자기가 직접 작전임무 수행에 나섰다. 최동률은 작전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다가 그만 적탄에 맞아 희생되였다.

1953년 7월 28일, 최할머니 가족에서 받은 사망통지서에는  “최동률은 1950년 11월 6일부터 복무중 부여된 전투임무 수행에 누구보다도 헌신적이였으며 전투에서 대담했다. 그는 자기의 전투 업적에 의해 국가 3급훈장 2개를 수여받았다. 그 후 계속 부여된 고지 전투임무 수행중에 적의 포탄에 맞아 1953년 7월 18일 사망했다. ”고 적혀있었다.

최금순할머니는 딸(왼쪽)에게 혁명렬사유가족의 긍지감을 가져야 한다고 늘 당부한다.

할머니는 생전에 항상 오빠가 그 일주일을 못참고 죽었다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너무 안타까워 팔다리가 부러졌어도 살아만 돌아왔으면 여한이 없겠는데 하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부모님들도 오빠의 사망소식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고 또 죽었다고 부고까지 온 사람도 살아 돌아오는 사례들이 간혹 있었기에 아버지가 기어이 확인차 조선에 나가기까지 했다. 전쟁사령부에 찾아가 최동률이라는 이름을 대니 동성동명인 사람이 여럿이 있는지라 일루의 희망을 가졌었는 데 렬사증을 보고나서 소속부대에 련계해보니 이미 사망했음이 확실했다.소속부대의 전사들은‘영웅의 아버지'가 왔다면서 희생된 최동률 대장의 아버지를 붙들고 목놓아 울었다.

오빠가 전쟁터에 가기전 약혼녀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조선에 나가 오빠의 희생을 확인하고 돌아온 후 그 소식을 알리러 최금순할머니가 찾아갔다고 한다. 약혼녀는 당시 연길감옥에서 사업하고 있었는데 오빠의 부고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고 사망된 사실이 확인되자 그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몸부림치면서 울었으며 오빠의 추도식에까지 와서 참가했다고 한다.

오빠가 돌아간후 가족들은 엄청난 고통과 슬픔에 빠졌다.

할머니는 더우기 정전담판 열흘을 앞두고 사망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나머지 가슴을 쳤다.

최동률이 희생된 후 가족은 자식을 잃은 큰 고통을 겪었지만 당과 정부의 렬사유가족 대우를 향수했다.

렬사유가족이라고 우대무휼금 대우를 향수했고 오빠의 직계 친동생들이였던 언니와 최금순할머니는 학교다닐 때 매달 7원의 공조금이 나오기도 했다. 겨울이면 솜옷도 내주었다. 당시 어려웠던 가정형편에서 이같은 유가족대우는 큰 도움이 되였다.

최금순할머니는 오빠의 이름 최동률은 과거 연길공원에 세워져있던 혁명렬사기념비의 서쪽켠에도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면서 그 후 렬사기념비를 옮겨간 후에도 렬사릉원에 이름이 남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최동률 관련 사진은 한장도 없다. 그저 중등키에 얼굴이 동그랗고 쌍꺼풀이며 녀자처럼 곱상하게 생겼다는 것이 최금순할머니의 오빠에 대한 인상 전부이다. 반세기 남짓이 흘렀지만 오빠의 젊고 영준한 모습과 용감하고 패기넘치던 군인모습만은 인상 속에 또렷하단다.

“부모님들도 모두 돌아가고 나도 이젠 나이가 들어 저 세상에 가게 되면 오빠를 추억할 사람도 없겠지만 우리 최씨가문에도 마지막까지 작전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계의 평화와 조국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선뜻이 바친 영웅인물이 있어 마음 족하다.”

최금순할머니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길림신문 안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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