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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이온양생수 두마리 토끼를 잡은 조선족과학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2년5월16일 09시58분    조회:4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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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김종철

중국건축재료분야의 첫공학박사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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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에 들어와 인류는 금속재료를 대체할수 있는 인공합성재료를 발명하면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켰다. 이 재료혁명의 한 성과로 개발된 세라믹(高技术陶瓷)은 비할바 없는 성능으로 하여 21세기의 신형재료로 부상하고있다. 

낯설은 이름인 세라믹은 기실 단추 하나로부터 로케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재료이다. 우리 신변의 전기기구와 가구, 의류는 물론 인공동맥, 인공심장 등 의학방면에도 쓰이는 세라믹은 특히 우주산업에서 커다란 우월성을 과시하고 있다. 세라믹재료의 연구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에서 시작되여 현재 이미 실용단계에 들어갔으며 중국도 20세기 70년대부터 이 면의 연구를 시작하여 90년대초에 세라믹발동기를 사용한 무수랭(无水冷)식 자동차를 조립함으로써 고온구조 세라믹분야에서 세계 선진행렬에 들어섰다. 

국에서 세라믹재료 연구개발업무를 수행한 우수두뇌들가운데는 세라믹 신소재에 대한 평가기술 연구로 일익을 담당한 조선족전문가도 한 사람 들어있다. 그가 바로 중국건축재료과학연구원 세라믹연구소에서 원장기술고문을 담임하다가 2003년 4월에 퇴직하고 현재 북경 동아시아 이온기술연구소 소장을 담임하고있는 김종철박사(77세)이다. 

세라믹력학과 세라믹재료 강도학의 연구에 다년간 종사해온 김종철박사는 강도, 균렬, 파괴 발생구 삼자관계의 리론과 고온구조 세라믹재료의 고온강도 및 고온피로 실효의 파괴준칙, 취성재료의 파괴준칙 등 리론을 제기하였다.

종철박사는 이 리론에 근거하여 세라믹재료에 대한 평가분야에서 국가의 기술표준을 제정했고 1996년에는 유엔산하 국제표준화기구의 선진 세라믹재료표준화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되였다. 이 표준화위원회는 서방 7개국과 로씨야, 중국 등 아홉개 나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였다.

밖에도 아시아, 태평 양지역 재료강도연구회 부회장, 중국재료연구학회 상무리사, 중국건축재료과학연구원 학위위원회 주임 등 직무를 력임한 김박사는 국내 세라믹재료 평가기술 분야에서 권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있다. 

북경과학기술대학 암석력학과 유일한 연구생으로

 

1935년 9월 5일, 압록강변에 위치한 조선 평안북도 벽동군에서 출생한 김종철은 네살때 부모를 따라 흑룡강성 오상현 산하진으로 이주했다. 사형제를 둔 그의 부모는 어려운 살림에서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들을 하나둘 학교에 보냈다. 고생속에서 자라온 김종철은 공부에 남달리 열중하였다. 그런데 얼마뒤에 어머님을 여의고 설상가상으로 아버님마저 세상을 뜨다보니 그보다 겨우 두살우인 큰형이 세대주가 되여야 했다. 집형편은 갈수록 말이 아니였다. 갖은 고생을 다하며 오상조선족중학교까지 올라갔으나 경제난으로 중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공부하고 배워야겠다는 결심만은 버리지 않았다. 

마침 평소에 자기를 아껴주던 학급담임선생님이 목단강조선족중학교의 교무주임으로 전근되여가면서 그를 이 학교에 추천해주었다. 초급중학을 2년밖에 다니지 못했지만 김종철은 입학시험에서 2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목단강조선족중학교에 진학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 기숙생으로 공부하게 되였다. 그는 쉽게 얻어지지 않은 학습기회를 그 누구보다도 소중히 여겼다. 고중시절 김종철은 학습에 열중하였을뿐만아니라 학교에서 조직하는 사회활동에도 열성껏 참가하여 학교 공청단위원회 선전부장을 담임하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54년, 심양에 있는 동북공학원 채취학부 광산건축과에 입학한후에도 김종철은 줄곧 반장과 공청단지부 서기를 담임하면서 학습에서는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다. 

1958년,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김종철은 제2기계공업부에 배치되여 광산설계사업에 종사하게 되였다. 처음에는 쏘련전문가들과 함께 기술설계를 진행하였지만 쏘련전문가들이 철수한 뒤에는 모든 실무를 인계받고 독자적으로 진행하게 되였다. 대학을 방금 졸업한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아주 힘겨운 일이였으나 어려서부터 고생속에서 잔뼈를 굳혀온 그는 두말없이 이 준엄한 시련을 이겨나갔다. 이시기 김종철박사가 연구창안한 “광산갱도 최우수 설계법”은 매우 선진적이고 실용적이여서 지금도 많은 광산들에서 채용되고있다고 한다. 이 연구성과는 1978년 전국과학기술대회에서 개인 성과상을 수여받았으며 이에 근거하여 쓴 김종철박사의 첫 저서 《광산 최우수설계》는 1981년 건축공업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1965년 9월, 김종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과학기술대학 암석력학과 연구생시험에 합격되여 당시 이 학과의 유일한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1년도 채 안되여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였다. 학습과 연구는커녕 정상적인 질서마저 모두 파괴되였다. 그는 하남성 주마점에 있는 “5.7 간부학교”에 내려가 2년간 농업로동과 공장건설에 종사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역경속에서도 실무에 대한 애착만은 버리지 않았다. “간부학교”의 체력로동이 고되기는 했지만 시간적여유가 많아 실무지식과 외국어 공부를 하는데는 영향이 없었다. 

1975년, 김종철은 다시 중국건축재료공업부 과학국에 배치되여 과학연구성과 관리심사사업을 맡아보았다.

 

중국 건축재료분야의 첫번째 공학박사로

 

 1979년, 40 고개를 넘은 김종철은 일본류학 통일시험에 합격되여 1980년부터 2년간 도후꾸대학 재료강도연구소에 가 류학하게 되였다. 김종철은 공휴일을 제쳐놓고 모든 정력을 연구사업과 론문집필에 몰부었다. 그리하여 첫해에 벌써 일본어로 “취성재료의 파괴준칙”이란 박사론문을 발표하여 중국 건축재료분야에서의 첫번째 공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국제 암석력학학회에서는 재료강도학의 새로운 리론과 준칙을 제기한 김종철박사의 론문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 론문은 그후 교환도서로 되여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한 나라들에 소장되였다. 

1982년 귀국하여 중국건축재료과학연구원 유리연구소 고급공정사로 배치된 김종철박사는 “유리와 세라믹 파괴력학 및 강도의 새로운 평가방법”을 연구하여 재료강도의 새로운 령역을 개척하였다. 그가 연구, 집필한 론문 “항공유리항목”의 “유리력학성능 및 평가방법연구”  등 성과는 국가기술진보 2등상과 6차 5개년 계획의 국가과학기술돌파 선진항목상을 수여받았다. 이 성과는 국제 파괴력학학회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성과의 부분적인 내용은 1988년 상해과학기술출판사에서 낸 저서 “현대유리과학기술”의 골자로 되였다. 

이 시기 세라믹재료가 미래형 신소재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국제적으로 세라믹재료에 대한 연구개발과 학술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였다. 김종철박사는 유일한 중국대표로 1984년 일본 센다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재료강도연구토론회”에 출석하여 “취성재료 강도평가”란 제목으로 학술보고를 하였으며 1985년에는 미국에서 열린 “제4차 국제 세라믹 피괴력학회의”에 출석하여 “세라믹 견고성의 측정방법”이란 학술보고를 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6년 일본, 중국, 한국 등 삼국의 전문가들이 일본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재료강도연구회”를 발족할 때 창시자의 한 사람인 김종철박사는 부회장으로 선임되였다. 

1987년부터 김종철박사는 중국건축재료과학연구원 세라믹연구소의 총공정사를 10년간 담임하면서 제7차 5개년 계획기간 국가 고도기술연구의 중점과제인 “세라믹 발동기” 연구항목의 주요책임자로 이 연구과제를 성과적으로 완수했고 제8차 5개년 계획기간의 중점연구과제인 “세라믹재료 강도의 평가기술”과 표준화제정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 연구성과에 근거하여 집필한 세번째 저서인 《취성재료강도의 평가와 설계》(1996년 출판)는 세라믹 신소재에 대한 평가기술을 체계화한 김종철박사 리론의 집대성으로 된다. 

1993년부터 김종철박사는 환경재료연구에 투입하여 대기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할수 있는 외벽체와 실내공기를 정화할수 있는 건축재료의 개발을 연구방향으로 선택하였다.

수년간의 연구와 시험을 거쳐 김종철박사는 드디여 광범위한 응용전망이 있는 신형 환경정화 및 항균무기 재료를 발명해냈다. “보건환경재료계렬”로 명명한 이 신성과에는 공기정화재료, 보건항균재료, 보선(保鲜)항균재료 등 세가지 재료가 들어있다. 이가운데 보건항균재료는 1998년 7월 국가로부터 국제선진수준에 이르렀다는 감정서를 받았다. 

김종철박사팀이 개발한 신재료 연구성과들은 산업화면에서도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다. 보건항균재료계렬의 보건항균 도료, 보건항균 도자기제품, 보건항균 플라스틱과 섬유 등 재료의 특허기술은 1998년 9월까지 선후로 하북성 보정시, 광동성 불산시, 산동성 유방시의 관련 회사들에서 구입하였다. 

재료과학연구분야에서 거둔 탁월한 성과로 하여 김종철박사는 1986년에 교수급 공정사로 승진함과 동시에 국가인사부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특수기여가 있는 중청년전문가”칭호를 받고 1990년에는 “성과가 특출하고 기여가 큰 국가급 전문가”칭호를 수여받았다. 

이밖에 1990년부터 그는 국무원 학위위원회 박사과정 지도교사, 대련리공대학 겸직교수, 하북공업대학 겸직교수, 북경교통대학 박사생 도사를 담임하면서 지금까지 40여명의 박사, 석사연구생을 지도하여 후배양성에도 한몫 기여하였다. 

종철박사는 또한 1988년부터 2003년까지 제7, 8, 9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당선되여 “GNP에 대비한 연구개발(R&D) 총액투자의 비률을 높일데 대한 의안”과 “과학기술성과의 산업화 연구쎈터를 건립할데 대한 의안”을 비롯한 10여건의 의안을 대회에 제출함으로써 과학기술계 위원으로서의 참정권을 충분히 행사하였다. 

 

을 모르는 과학탐구의 길

 

2003년, 정년퇴직을 앞둔 김종철 박사는 인체건강에 리로운 이온양생수(离子养生水) 연구에 방향타를 돌렸다. 이온양생수는 바다물과 천연광물로부터 가공한 활성화, 무기화된 무독, 무색, 무취, 농축 용액으로서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만성병을 방지하며 로쇠를 지연시키는 역할을 하는 건강기능수이다. 국내 학계에서 기능수분야의 학문적연구가 취약한 환경에 비추어 김종철박사는 지난 7년 동안 관련 자료를 찾고 자기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하면서 이온 양생수 제품을 개발해왔다. 

건강재료업계 국제기술교류를 증진하기 위해 김종철박사는 2005년 중국, 일본, 한국 3개국이 참여한 “동아시아기능성이온협회”를 공동으로 설립하고 현재까지 부회장직을 맡고있다. 일본 오사까에 본부를 둔 “동아시아기능성이온협회”는 중일한 이온업계 측정기준을 통일하고 관련 제품 시장의 활성화를 추진키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온양생수 연구와 시장 개발을 추진키 위해 김종철박사는 또한 2010년 9월 25일 상해에서 개최된 제6회 “동아시아 기능성이온국제심포지엄”에서 중일한 3국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아시아이온양생수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김종철박사는 “건강과 기능성 물 — 세계의 건강기능수와 이온양생수 개발의 기본조건”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김종철박사는 이번 강연을 통해 인체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이 건강과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가졌는가에 대해 설명하고 이온양생수의 개발을 위한 기본조건들을 제시하여 청중들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칠순고개를 훨씬 넘긴 김종철 박사는 지금도 이온양생수의 연구 개발과 제품생산 추진에 하루해가 짧다하게 바삐 보내고있다. 동아시아기능성이온협회 단체회원인 상해심동과기유한회사 고급기술고문직을 맡은 김박사는 손수 이온 양생수 제조실험을 진행하고 관련 업체와 상담을 가지는 등 1인 2역, 3역을 하면서 왕성한 정력으로 로익장을 과시하고있다. 

김박사는 “하는 일이 많을수록 건강에는 오히려 좋다” 고 하면서 명년에는 중일한 3국 이온양생수협회 회원들이 참석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이온양생수 기준을 중점적으로 론의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여생의 정력을 한데 몰부어 이온양생수의 시장투입을 종국적으로 이뤄내겠다는 김종철박사의 포부에서 우리는 과학자의 인생은 영원한 미완성임을 재차 느끼게 된다. 

김영훈 (중앙인민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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