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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를 창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임덕규회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6월14일 15시55분    조회: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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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임덕규
한국 영문월간 <<외교>>잡지사 임덕규회장 인터뷰



임덕규


지난 4월 26일 필자는 한국 영문월간 <<외교>>(디플로머시)잡지사 임덕규회장을 인터뷰했다.

올해 79세인 임덕규회장은 역시 4년 전에 필자가 만났을 때의 건강한 그 모습이였고 예지로 넘친 그의 실눈은 이어지는 웃음으로 눈을 떴는지 감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번도 임회장은 4년전에 만나자 바람으로 호금도주석과 리명박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을 표지로 한 영문<<외교>>를 선물하듯이 습r근평주석을 표지로 한 영문<<외교>>를 선물하였다.

효(孝)로부터 시작하여 <<평생 사람을 친한 사업을 했다>>는 임회장은 <<나는 전세계 평화를 창조하려 다니는 사람이다>>고 자칭하며 청자(聽者)로 하여금 어리둥절할 정도로 큼직한 세상사를 들려 주는데 화제마다 <<나는 이런 일을 할 자신이 있다>> <<나에게는 해낼 방법이 있다>>로 말을 마무리했다.


호금도(우)와 만나

 임회장은 <<장점 찾아 3만리>>를 전략으로 지금까지 <<외교>>에 주석,국왕, 대통령, 총리 등 국가수뇌를 400여 명을 모셨는데 그 중 360여명은 그가 직접 인터뷰를 하였단다. 게다가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나다 보니 그가 세계의 정상들을 만난 회수가 1000여 번이 넘는단다.

그는 방한하는 지도자들은 서울서 만나고 5대양 6대주를 넘나들며 대국은 물론 피지, 지부티 등 이름조차 낯선 오지나라까지 찾아 간 나라가 100개를 넘는다고 하였다.
 그의 서울사무실동쪽벽면은 그가 만난 여러 나라 정상들의 사진들로 전 면을 가리웠다. 

 꿈을 이루다

임회장은 한국 논산시 부적면 탑정리의 열두마지기농가에서 나라없는 백성으로 태여났다. 그때는 조선이 일본식민지라  그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다닐 때 까지 조선말을 못하고 한글도 못 배웠다

1945년 8월 15일에 나라가 해방을 맞고서야 3학년 2학기부터 자기나라 말을 하며 한글을 배우기 시작, 그때 새로 태여난 나라에 국회의원도 생긴다는 말을 듣고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국회의원이 돼서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겠다.>>는 꿈과 마음을 간직했단다.

그는 국회의원이 되려면<<첫째는 법을 알고 둘째는 사람들을 많이 친하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뛰였다.

1년간 신문배달을, 8년간 가정교사를 하면서 동국대학교법과 석, 박사과정을 마치고 <<장점 찾아 3만리>> 전략으로 <<평생 사람을 친하는 사업을 하였다.>>

 임덕규박사는 1966년부터 동국대학에서 국제법을 가르쳤고 1968년부터 신화일보, 동화통신 론설위원을, 1981년에 11대국회의원(충남공주,국민당)으로 당선되여 초등학교 4학년때 심은 꿈을 실현하였다.

그가 <<외교>>를 꾸리게 된데는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2대 외무장관과 유엔대사를 지낸 임병직박사를 만난것이 계기였다.

 1960년에 동국대학을 졸업하고 법과박사과정이던 그는 1963년에 집안의 삼촌벌인 임병직박사가 귀국하니 자진해 임박사의 시중을 들기 시작, 10년간이나 임박사의 연줄로 당대의 거물급 인사들을 많이 알았고 그들로부터 나라사랑을 배웠다.

 임병직박사가 인도대사로 지내며 <<한국. 인도친선협회>>를 창설한 후 임덕규는 간사로 일하며 국제적인 외교를 경험하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계기로 임박사가 세상에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예술단을 이끌고 유럽순방을 떠나던 날 임덕규한테 이런 당부를 하였다.

<<앞으로 먹고 살 생각만 하지 말고 영어로 잡지를 만들어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여 국가에 큰 도움을 주라>>.

 하늘 같은 어른님의 말씀에 임덕규는 그자리에서 하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잡지를 만들어 본 경험, 영어수준, 자금 등으로 막막하기 그지 없었다. 그 때만도 한국에 영문으로 문장을 쓰는 인재가 몇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바쳐 독립운동을 하신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말한 대로 안하면 죄인이 될것 같은 자책감이 앞섰다. 다행히도 4년간(1968-1971)신아일보 론설위원과 동화통신 출판부국장, 론설위원을 지낸 밑천에 배짱이 생겨 전화를 잡혀 300만원의 자금을 마련하고 서울 무교동에 손바닥만한 사무실을 마련하였다. 그 때 합작동지라고는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동화통신 사진부차장 백남식뿐.

 3년 남짓이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낸 끝에 1975년 8월에 창간호를 발간, 창간호의 표지스토리는 한미 관계에 력점을 두고 미국포드대통령 가족사진을 싣고 성조기변천사, 력대 미국대통령의 친필서명, 력대 주한미국대사사진 등 내용으로 특집을 꾸렸다.

 창간호가 나오니 미친 짓이라며 극구 말리던 사람들마저 <<된장냄새가 안나게 잘 만들었다>>니 죽자 살자 뛰여도 힘이 드는 줄을 모르며 광고를 얻기 위해 아침밥 거르기를 밥을 먹듯 하며 기업체 사장들의 출근길을 지켜 섰단다.

 곧 문을 닫을 줄 알았던 영문월간잡지가 계속 발간되니 사회에서 중앙정보부 기관지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이렇게 4년쯤 버티니 <<외교>>가 명성이 생기며 자리가 잡혔다.

 임회장에게는 30년 전의 일까지도 그대로 외우는 타고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해박한 지식, 림기응변, 순발력, 어려움을 모르고 감히 맞서는 담력으로 방금 전까지의 적을 단숨에 동지로 만드는 타고난 친화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바탕으로 하여 그는 대만문화대학법학명예박사, 세계국제법협회 세계회회장(1986ㅡ1988년), 현임세계국제법협회 한국본부명예회장, 한국정치학회 명예회장, 세계외교연구원리사장, 인천아세안게임, 평창동계올림픽, 여수세계박람회유치위원 등 직무를 맡고 책임을 출중히 완성하였다.

 임회장에게는 전 세계적으로 500여 명의 쟁쟁한 고문이 있다. 그래서 오늘의 <<외교>>는 세계적인 종합월간지로 부상되고 임회장도 유엔 등 국제무대의 유명인사로 발탁되였다.

 그는 서울에 앉아서도 이 같은 안테나를 가동해 세계외교의 흐름을 가늠하고 나름대로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 데서 직업외교관들도 혀를 내두른다. 그래서 그의 별호가 세계외교관들의 <<교두보>>, 한국의 <<무관 전권대사>>다.

 <<70년대는 한국을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90년대부터는 오히려 외국정상들이 어떻게 하면 한국처럼 될수 있느냐며 조언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일이 비일 비재다>> <<세계 200여개 국가 중 170여개 나라가 한국을 모델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 <외교>도 주가가 올라 주간지를 만들 정도로 각국에서 자기네 지도자를 인터뷰해달라는 요청이 분분하다>>

 임회장이 <<외교>>의 위업을 과시하는 말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인터뷰

그 많은 정상들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어느것인가는 필자의 물음에 1995년에 방한 중인 강택민주석과의 인터뷰란다.


강택민(우)과 만나

이하는 강주석과의 인터뷰내용이다.

임덕규: 세계적으로 최다국민을 가진 강주석은 세계의 존경을 받을수도 있고 또 존경을 받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강택민: 무엇 때문에?
임덕규: 인간이 왜 인간을 존경하는가를 분석해 보면 알게됩니다. 제밥을 먹고 제일만을 하면 누가 그를 존경하겠습니까? 제밥을 먹고 남의 일을 도와줘야 존경을 받지요. 큰 나라의 주석이라고 해도 중국만을 위해 일한다면 중국국민들의 존경은 받을수 있지만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보증은 없습니다.

강택민: 세인들의 존경을 받자면?
임덕규: 세계평화를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강택민: 무슨일을?
임덕규: 강주석께서는 정말 행복한 립장에 서 있습니다.

강택민: 무엇때문에?
임덕규: 바로 옆 나라에 할 일이 있기 때문이지요

강택민: 무슨 일인데?
임덕규: 한반도의 남과 북에 평화정착(공존)을 시키면 됩니다. 강주석께서 조선 김정일위원장을 만나면(일부러라도 만나서)내가 한국에 가보니 아주 평화스럽고 경제발전이 잘 되여 조선을 도울 마음과 능력이 있더라면서 내(강주석)가 중간 역할을 할 것이니 남북평화정착(定着)으로 한국의 경제협력을 받으라. 그래서 국민들게 식량을 넉넉히 주고 고기국을 먹으며 안온한 방에서 잠을 자게하게 한다면 지하에 계시는 김일성주석께서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세요.

남북평화정착이 강주석의 노력으로 되였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나타나면 강주석은 필경 노벨평화상을 탈것입니다. 남북평화정착이야말로 강주석이 노벨상을 받게되는 지름길입니다. 저는 강주석이 하루 속히 노벨상을 받을 것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강택민: 참 좋은 생각이다. 내가 해보겠다
그때 강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까지 하면서 기뻐했다며 임회장이 회포했다.
임회장은 그후 미국언론에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5월에 김정일위원장이 북경에가 강택민주석을 예방했을 때 좋은 대화가 있어 남북정상회담이 잘 됐다, 남북정상회담을 강택민주석이 도왔다는 보도가 실렸다고 한다.

다음은 임회장이 알제리 부테플리카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이란다.

 2001년 12월 알제리에서 대통령을 인터뷰할 때다. 대통령이 <<프랑스와의 독립전쟁 때 유일하게 조선만이 도와줬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을 돕고 김일성과 친하고 김정일과 친하다>>고 말하자 임회장은 <<한국에는 김정일과 친한 사람이 필요하니 대통령께서 남북한간의 가교역할을 해달라>>며 그러면 내가 알제리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기업들이 돕도록 주선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대통령은 <<잘됐다>>며 흔쾌히 태도를 표시, 하여 임회장의 주선으로 2003년 12월에 알제리대통령이 처음 한국을 국빈방문하였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 후부터 알제리의 많은 공사를 한국에 돌렸고 그에 따라 한국기업들의 대알제리투자도 많아졌단다.

<<반기문총장은 세계평화 최적임자다>>

화제는 반기문유엔사무총장에 돌아졌다.


아난(좌),반기문(중)과 만나

임회장과 반기문의 인연은 1972년부터다. 당시 임회장은 한-인(인도)친선협회 간사로, 반기문은 인도대사관 3등 사무관으로 지내며 맺은 사업인연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임회장은 인격이 훌륭해야 훌륭한 일을 할수 있다며 44년간의 친구로 지낸 반기문은 효자로서 성격이 훌륭하고 정직하며 화를 낼 줄 모르며 겸손하고 시험마다 1등을 따낼만큼 능력이 있고 애국심이 강하다며 반기문장관을 세계평화의 최적임자로 찍는단다.

2004년 1월 반기문이 한국외교통상부장관으로 지낼 때 그가 반장관에게 유엔사무총장에 출마하라고 권하니 반장관은<<어떻게 제가 합니까?>>며 그냥 웃고 지났다. 그 후부터 임회장은 반장관의 유엔사무총장출마를 계속 설득하였다. 맨 처음으로 반장관과 미국 국무장관라이스가 친해지도록 하는 일을 하여 라이스가 반장관을 적극 도와 나서게 했고 임기가 끝나는 유엔총장안난을 만나 <<위대한 지도자(인물)는 후계자선택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반기문을 곁드니 안난이 <<위대한 인물로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임회장은 주한 외국대사들과 유엔 주재 각국 대사를 상대로 <<반기문을 사랑하는 모임회>> (반사모)를 조직, 외국 대사들을 만나면 그들에게 한국말로 <<반사모!>>를 복창시키도 했다.

<<반사모>>의 노력으로 주한 외국대사 96명중 70여명이 <<반사모>>에 가담, 뉴욕에 있는 여러 나라의 유엔대사들도 <<반사모>>에 가담했다. 그리고 34년간 <<외교>>를 꾸리면서 직접 인테뷰를 했던 330여명의 외국 국왕, 수상, 대통령들을 대상으로 <<반사모>>를 위한 네트위크(网絡)도 가동했다.

 그는 미국이 나토사령부를 폴란드로 옮기기 위해 폴란드대통령을 념두에 두고 <<유엔사무총장이 아세아에서 나오지 않을수 있다>>고 하자 공개적으로 <<미국은 아세아에 등을 돌리는가?>>고 따지며 미국의 립장을 돌려 세웠고 개인적 친분으로 폴란드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출마를 포기하게 하였다. 또 반장관의 위망을 높이기 위하여 아프리카 50여개 국에 영향력이 막강한 AU집행위원장이 반장관을 초청해 연설하게 하고 알제리대통력이 반장관에게 훈장을 수여하게 하게하는 등 여러가지 숨은 노력을 하였다.
임회장은 세 차례의 예비투표에서 반기문이 1위를 차지 한 것을 지켜본 후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선거운동을 했으니 오죽하면 반기문총장이 당선된 다음날에 바로 임회장문병을 왔겠는가.

 4년 전에 필자가 <<반총장선거운동이 목적을 이뤘으니 <반사모>의 역할이 끝나지 않았는가>>는 물음에 임회장은 <<반사모의 역할은 지금부터다>>며 <<반사모>>의 해체는 말도 안된다며 근거를 설명했다..

<<반기문총장이 직무를 성공적으로 총장직을 수행한 후 2011년 말에 다시 재임(再任)할수 있도록 반사모는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유엔 내에 아군(我軍)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유엔의 <반사모>총책임자인 말리국대사를 비롯한 많은 아군들이 지금 한창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약 200여개 유엔회원국이 돌아가며 한번씩 사무총장을 맡는다면 수자적인 계산으로 1000년이 걸리는데 게다가 전임 총장들의 재임(再任)을 감안하면 약 1500년 정도가 걸려야 한다>>

이런 원인으로 하여 임회장은 반총장의 재임을 위한 반사모의 노력이 지금부터라고 했다.

그래서 임회장은 반기문총장<<특간>>을 꾸려 각국 외교관들에게 배포하며 반기문총장의 홍보를 또 다시 시작했고 반기문총장이 재선되자 2011년 8월 12일에 반기문UN사무총장 재선 축하 조찬세미나까지 마련했다며 그때 반기문총장재선을 위해 특제한 기념품을 필자에게 선물했다.

임회장은 반기문총장의 재임을 조선도 지지했다며 작고한 김정일위원장이 반기문총장을 좋아했다고 부언하였다.

<< 得 一 友 得天下>>한 마영구 임회장은 자기에겐 <<우선 중국을 평화롭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 있다며 <<나는 중국의 평화에 공헌을 했다>>고 말한다.
임회장은 마영구를 총통으로 되게끔 도운 것을 례로 하였다.

론어(論語)에는 <<得三友 得天下>>라고 했는데 마영구는 <<得一友 得天下>>를 했다며 그과정을 들려주었다.
세계국제법협회 세계회회장을 지낸 임회장은 미국 하버드대학 국제법박사이며 대만법무부 장관을 지낸 마영구와 친구사이다.

1998년 5월 24일부터 일주일간 대만서 열린 세계국제법협회 세계총회회의 때 대북시 시장선거가 한창이였다. 5월25, 당시 국민당인 마영구는 야당인 진수변과의 대북시장경쟁을 포기한다고 기자회견에서 선포하였다. 이에 임회장은 마영구를 찾아 왜서 포기하는가를 묻자 마영구는 첫째는 돈이 없고 둘째는 자신이 없단다. 그래서 임회장이 이번 선거는 단지 대북시장선거만이 아닌 당의 명예를 내 건 총통선거라며 정치는 돈을 안 쓰고도 할수있다며 자기가 여론조사를 해보니 마영구가 인기가 높더라며 그의 시장출마를 설득하였다.

임회장은 여러모로 많은 대학생과 사회중로년들을 대상해 여론조사를 하는 한편 이번 선거는 단지 어느 한 사람을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통일을 주장하는 당과 사람을 따라가야 한다며 만약 진수변의 뜻대로 대만이 독립하면 대만젊은이들의 전도는 캄캄하다고 선동했다. 가설하여 대만이 독립을 했다고 하자. 그때에 대만사람들이 외국에 가면 <<당신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고 물으면 중국대만이 아닌 그저 대만서 왔다고 할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외국인들이 당신들이 자그마한 외딴 섬에서 왔다며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반면에  당신들이 중국대만에서 왔다면 거대한 중국에서 왔다고 당신들을 우러러 볼것이다. 도리는 이렇게 간단하다. 그래 당신들이 돈을 벌어서 거대한 중국을 살수 있겠는가. 진짜로 대만이 독립하면 대만젊은이들의 앞길이 꽉 막힌다.

임회장은 이런 관점과 주장으로 마영구를 다시 만나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의 진수변과의 경쟁연설내용을 제시해 주면서 중국의 통일을 주장하는 국민당인 마영구가 중국의 분렬을 시도하는 진수변을 압도적으로 이길수 있다는 도리를 설명하니 마영구가 설득되여 다시 100여명의 기자회견을 통해 출마를 선언, 대북시장으로 당선됐다.

2004년 베를린에서 열린 세계국제법협회 회의 때 임회장은 마영구를 만나 2008년의 총통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장하니 마영구는 법적으로 2008년 총통선거에 출마하려면 2006년부터 국민당총재가 되여야 한다고 하니(그때 마영구는 당서렬이 3번임) 임회장이 마영구더러 2006년 국민당 전당대회에서 <<나는 이미 진수변을 이겼다. 진수변을 이길 사람은 바로 나다. 나를 당총재로 선거해 달라>>고 설득해보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2006년 국민당전당대회에서 마영구는 국민당총재로 선거되여 2008년에 12대총통으로, 2012년에 13대 총통으로 재임되였다.

<<재작년 5월에 대만에 가보니 대만에서 대륙의 57개 도시와 직항로를 개설하고 2011년말까지 100개 도시와 직항로를 개설하려 한다>> <<나는 중국의 평화를 위한 일을 했다.>>며 임회장이 자긍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하여
 <<나는 남을 욕할 줄 모른다. 그것이 평화로운 삶이다. 나를 만난 사람은 모두가 친구다. 세계 70억 인구에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장점 따라 3만리로 장점만 보는 사람이다. 좋은 말은 전하고 좋지 않는 말은 안전하는 긍정적인사고로 사람들과 평생 친한다는 것이 나의 인생관이다.>>

<<나는 세계에서 배짱이 제일 강한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떴떳하게 말하는 임덕규, 그는 효도하고 정직하며 하는 일에 자신이 만만했다. 그랬다. 임덕규회장의 효도교육을 들은 서양의 최고력사연구학자 아놀드 토인비교 교수(영국 옥스포드대학)는 임덕규회장을 서양에 와서 효도교육강의를 해 달라고 청탁했다.

세계적인 외교가로 막강한 위망과 실력을 가진 그의 사무실은 지금도 34년 전 사무실이다. 세계평화와 남북통일에 기여 하려고 일생을 산다는 임회장은 좋은 일을 하는데도 <<별론(別論)>>이 있을가 우려하여 그렇게 가보고 싶은 금강산도 아직 다녀오지 못했다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자깅의 한반도평화정착구상을 이렇게 피로하였다..
ㅡ 통일의 론리는 간단하다. 친하면 된다. 남북통일은 남북평화정착이 1차적이고 평화통일이 2차적이다.

인간은 서로간 자기를 인정한다. 그러니 한쪽에서 그더러 자기를 포기하라면 누가 포기하겠는가?
남과 북이 서로가 튼튼해야 한다. 감군(減軍)통일은 불안을 조성한다. 서로가 튼튼하면 안 싸운다. 도리는 아주 간단하다. 어린애들의 싸움을 보면 안다. 힘이 센 아이들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

 미군을 철소하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미군이 철소하겠다고 하면 갈가봐 겁이 나서 더욱 꽉 붙잡는다. 그러니까 남북의 평화공존으로 미군이 필요 없게 만들어야 한다. 미군이 있다는 것은 정말 창피한 일이다. 그래도 창피한 것이 죽는것보다 나으니까 할수 없다.

ㅡ 나는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인격을 지키기 위해서 남을 욕할줄 모른다. 지금까지 조선을 <<북괴>>라는 등의 부름이나 욕을 단 한마디도 안했다.
1982년에 나는 국회의원직수행당시 정부에 남북량자회담정책을 제안하여 1982년부터 1992년까지 남북총리회담이 계속되였고 1984년 10월과 1985년 3월에 국제의원련맹(ㅣPU)회에 참가해 조선의 강석주부총리(당시국제의원련맹 조선대표)를 만나 남북간 국회회담을 제안하여 1985년부터1992년까지 남북 국회회담이 지속되기도 했다.

 내가 1984년 10월 제네바에서 강석주를 처음 만났을 때 강석주가 여러분들 앞에서 남북 통일을 원한다고 하니 나는 곁군들의 눈치나 향후 정치적인우환을 마다하고 직법 강석주를 찾아가 악수를 청하며 <<조선에 김일성주석의 동상이 많다는데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때려부시는 통일을 원하는가 아니며 부산, 서울에도 김일성동상을 세울수 있는 통일을 원하는가고 물으며 나에게는 부산, 서울에 김일성동상을 세우는 방법과 능력이 있다, 만약 김일성주석이 과거를 묻지 말고 무조건 평화공처를 합시다는 마음을 갖고 판문점에 오시면 된다고 하니 그때 강석주는 <<좋티요>>라고 했다.

그번 회의에서 나는 남북대표의 발언에 무조건 박수를 쳤고 특히 강석주의 발언에는 격려의 박수, 칭찬의 박수를 쳤다.


임덕규(좌)와 저자 오기활(우)

<<력사는 창조다. 력사는 창조할수 있다>> 고 말하는 임회장은 사우디대통령게 남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게한 실례로 <<세계평화를 위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며 김정은위원장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피력했다.

      
나는 김정은위원장을 욕하지 말라고 한다. 김정은위원장은 세계적으로 제일 젊은 국가정상인데다가 인물이 미남이신 할아버지(김일성)를 닮은 데서 그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김정은은 세계적인 인물이다.

김정은위원장은 젊었다고 해도 70억 세계인구를 감동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세우면 세계적인 위인으로 될수 있다. 김정은위원장에게는 세계적인 위인으로 될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다. 만약에 내가 김정은위원장을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ㅡ 피차간에 과거 말은 말고 평화적으로 공존합시다. 평화왕래를 하고 평화경제협력을 합시다. 김위원장이 이런 주장을 가지고 판문점에 오시면 내가 수백명, 수천명의 환영대오를 조직하여 환영할 것입니다.

ㅡ 핵을 100개, 1000개를 가졌다고 하여 세계적인 인물이 되는것이 아닙니다. 김위원장이 한반도에 평화공존을 정착시킨다면 세계적인 영웅으로 됩니다. 이는 절호의 기회로서 1000년을 산다고 해도 이런 기회가 없습니다.

ㅡ 김위원장이 이런 큰일을 해낸다면 세계에서 제일 나이 어린지도자가 엄청난 큰 일을 한것으로 5000년 력사에 길이 남길 것입니다. 그러면 저승에서 계시는 김일성주석과 김정일위원장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ㅡ내가 나서 돕겠습니다. 평화헙력은 돈을 안 들이고 할수 있으며 미국, 중국, 러시아를 찾아 갈 필요도 없고 그 어떤 재판도 필요 없습니다. 김일성주석이 살아계셨더라면 꼭 했다고 나는 믿습니다.

ㅡ. 남북평화정착에 김정은위원장이 유엔총회에 나서 평화선언을 한다면 모든 나라의 수뇌자들의 기립박수를 칠 것입니다. 나는. 김정은위원장이 세계평화의 상징적인 영웅인물이 되기를 진정 바랍니다.

ㅡ 우리의 민족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나에게는 각 나라 대통령을 동원할수 있는 방법이있습니다 나는 길일성주석, 김정일위원장의 동상을, 아니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 동상을 조선만이 아닌 부산, 서울, 미국에 세울 방법이 있습니다. 자신이 만만합니다.

자신감과 흥분으로 가득 찬 임회장은 우리 민족을 위해, 아세아의 평화를 위해,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좋은 일을 우리 함께 하자며 필자의 손을 굳게 잡으셨다.

<<나는 천년 만년 후 지구상에 가장 많이 남을 책이 당연히 <외교>라고 장담한다. 원인은 간단하다. <외교>의 표지인물이 모두 각국의 최고지도자들이니 각 나라의 기념관에서 우리의 <외교>를 장서로 보관할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후세에도 부끄럽지 않을 잡지를 만들려는 생각에서 갈수록 어깨가 무겁다지만 평생 <외교>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79세 나이에도 매일 집을 나선다.>>

호탕한 웃음으로 인터뷰를 끝내며 하는 임회장의 말이다.

필자는 효도하고 정직하신 임더규회장이 자신있다는 모든 하는 일이 뜻대로 이뤄질 그날을 기대한다.


길림신문 오기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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