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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옹과 그의 음악신념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8월16일 09시50분    조회: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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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동희철

 

연변방송음악사상 살아있는 전설, 저명한 작곡가 동희철선생은 《고향산기슭에》 의젓하게 서 계신다. 백발을 이고 지팽이를 짚고선채 유유히 흘러가는 해란강을 굽어 저 멀리 산야를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겨있다.

《고향산기슭에 올라서니

사철푸른 소나무 반겨주고

유유히 해란강은 흘러가누나

아- 사랑스런 산천아

아- 내 정든 고향이여

조국의 변강이여!》

세월이 흘러흘러 60년이 되여와도 그이가 창작한 불후의 명곡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고향산천에, 조국변강에 영원한 메아리로 울려퍼지고있다.

격언1.

《명곡앞에서는 총을 든 적들도 무력해진다.》

《총탄은 사람의 육체는 해칠수 있어도 인간의 령혼은 정복할수 없다.》

-1947년 장춘해방전역에서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 선물한 피아노를 치면서 악상을 무르익히고있는 동희철선생.

 

동희철선생은 1928년 5월 조선 함경북도 명천군 하가면 남산동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여났다. 여섯살나던 해 일제놈들의 총칼에 짓발힌 조국을 떠나 부모님의 등에 업혀 두만강을 건너 동불사에 정착을 하였다.

머슴살이 가난한 가정형편때문에 10살이 되도록 학교문앞도 가지 못하다가 동불사소학교 교장선생님댁에 가 삯일을 하면서 글공부를 시작하였다. 1944년 간도사도본과에 입학하였을무렵, 음악박사로 불리는 문하연선생님이 음악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있는 그에게 학교에 단 한대뿐인 피아노열쇠를 쥐여주며 정성껏 가르쳤다. 그후 그는 학교취주악대에도 입대하여 활약하면서 음악공부에 정진하였다.

스무살나던 해에 그는 길동군구 정치부 문예공작대대에 바리톤연주자로 입대를 하여 1947년 직접 장춘포위전에 참가하여 총탄이 비발치는 치렬한 전쟁속에서 《함화선전》을 벌렸다. 사위에 정적이 깃든 여름밤, 적진지까지 기여가 손에 메가폰을 들고 적군을 향하여 우리 군의 포로정책을 선전하고 뒤이어 손풍금을 타고 기타를 치면서 《고로로도의 달밤》과 같은 세계명곡과 아름다운 선률을 연주하였다.

2010년 동북군정대학교사연구회에서 합창지휘 동희철고문에게 메달을 수여하였다.

해방군의 포위로 굶을대로 굶은데다 장밤 아름다운 선률속에 고향생각 부모생각에 밤을 지샌 적들은 날이 희붐히 밝자 흰기들고 총을 거꾸로 멘채 련장의 뒤를 따라 18명이나 투항을 해왔다.

그 격동의 순간을 동희철선생은 평생을 두고 잊을수 없었다. 명곡과 총칼의 대결에서 과연 총을 든 적들이 무력해지는것이였다. 음악의 위력을 놀랍게 발견한 동희철선생은 《오로지 음악을 통해야만이 세계의 평화가 가능해질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이때로부터 그는 음악이라는 이 특수무기로 인류의 철저한 해방을 위한 사업에 자신의 평생을 이바지하기로 작심했다.

격언2.

《좋은 노래 그것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맑게 해주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 특수한 동반자이다》

-30여년의 방송음악편집사업에서

《작자가 생활의 감수로 뜨거워지지 않고서야 어찌 남을 뜨겁게 감동시키는 작품을 쓸수 있으랴!》

-세번째 작곡집 《사랑의 메아리》를 내면서

 

1950년 9월부터 동희철선생은 선후로 연변제1고중, 연변한어사범에서 음악교원으로, 1956년 5월부터 연변인민방송국 음악부 편집, 주임으로 사업하면서 연변음악사업의 발전을 위한 각종 방송프로를 개척, 공고발전시켰고 연변방송음악의 기틀을 잡아나아갔을뿐더러 주옥 같은 가요 600여수나 창작하였다.

 

1948년 《부녀행진곡》을 처녀작으로 발표한 뒤 1954년에 중창곡 《귀환병과 처녀》(김철 작사)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진행하였다. 1955년 당시 연변제2고중에서 교편을 잡았던 동희철선생은 학생들을 인솔하여 모아산으로 원족을 갔다. 산기슭에는 전국에 소문난 김시룡집단농장이 있었다. 거기서 피와 땀으로 개척한 이 땅을 행복의 락원으로 건설하려는 로력모범들의 보고를 듣고 사생들은 모두 격동되였다.

《고향산기슭에》 작사자 김경석선생, 가수 김선옥선생과 함께.

학생 김경석은 그 심정을 시행에 담아 흑판보에 올렸다. 동희철선생은 그 시를 가사로 고치게 하고 거기에 곡을 붙였다. 고향산천에 대한 강렬한 사랑의 마음을 담은 이 노래는 높은 음악형상과 서정성으로 청중들의 가슴에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멀리 조선 , 일본, 윁남, 스웨리예, 대만 등 나라와 지역들에 널리 소개됨으로써 당시 중국음악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후로 1958년 왕청현의 한 편벽한 산골마을에 가 생활체험을 하면서 《내고향 좋구좋다》(임효원 작사)를, 1962년 돈화현의 한 농촌마을에 가 《손풍금 타는 총각》(김창석 작사)을, 1965년 반석현의 한 시골마을에서 《벼꽃타령》(김경석 작사)을 창작하였다.

《손풍금 타는 총각》의 창작과정도 동희철선생은 어제일처럼 기억하고 계신다. 자치주문련창작학습반이 돈화의 한 시골마을에서 열렸다. 그 마을에는 손풍금이 4대나 있었는데 총각들은 하루일을 끝마치고는 저녁 달빛아래 손풍금을 치면서 로동으로 행복한 생활 꽃피우려는 청춘의 리상을 사랑하는 처녀에게 고백하고있었다. 그걸 눈치챈 김창석작사자가《손풍금 타는 총각》가사를 적어 동희철선생에게 보였다.

 

 
1962년 송화강에서 똑딱선을 타고 장백산으로 가면서 갓 창작한 《손풍금 타는 총각》을 연주하고있는 장면.

 

동희철선생은 대뜸 마음에 들어 당장에서 작곡을 시작하였다. 완성된 작품은 작사자와 작곡자 모두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창작을 마치고 똑딱선을 타고 송화강 90리 배길을 달려 장백산으로 가는 동안 내내 《손풍금 타는 총각》을 연주하였던것이다.

《명곡은 언제나 인민대중의 생활속에 깊이 들어갔을 때 창작이 가능하였다.》고 그이는 말씀하신다.

격언3.

《음악은 민족의 령혼이자 력사이며 문화이다》

《음악창작 그것은 발명창조에 속하는 위대한 공정(工程)이다.》

-50여년의 창작실천에서

 

동희철선생은 문화대혁명시기 돈화현의 편벽한 신골마을에 내려가 로동개조를 하였다. 그러던 1972년 그이는 연변인민방송국에 복직된다. 그러나 당시 음악프로의 70%가 본보기극으로 되여있는 불합리성을 비판하면서 중앙문화부검사단과 자리를 같이한 좌담회에서도 《조선족작곡가는 다 죽었는가? 한족들도 리해하기 어려운 본보기극을 방송이나 무대에서 되지도 않는 한어로 부르는것은 잘못이다.》고 대담하게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로 하여 그는 또다시 《3부정분자》로 강직당하고 처벌을 받았다.

 

1976년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그의 명예는 회복되였고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정치협상회 위원으로, 중국음악가협회 연변분회 부주석, 연변방송텔레비죤예술단 명예단장, 동북군정대학교사연구회 고문 등 사회직무를 맡아보면서 꾸준히 음악창작에 정진하였다.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작사자 김철선생과 함께.

 

1978년 인민교원의 숭고한 노력의 성과를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적형상에 담아 노래한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김철 작사)를 작곡한다. 《고린내 나는 아홉째》로 몰리던 인민교원들이 인류령혼의 기사로 사회적인 존경과 흠모를 받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도록 절절한 서정으로 호소하며 인민들 마음속 심미변화에, 사회적변화에 모름지기 크나큰 기여를 한다.

이 노래는 1979년 중문으로 번역되여 중앙인민방송국에서 방송된후 방송과 신문, 잡지를 통해 전국에 재빨리 전파되였다. 1980년 중앙문화부 《1954-1979(25년)소년아동문예작품평의》에서 작곡 2등상을 수상하며 북경체육관에서 있은 《1984년양력설야회》 북경시 500명 중학생합창단의 곡목으로 선정되였고 《중국20세기소년아동10대금곡》에 당선되였다. 지금도 이 노래는 중앙인민방송국소년합창단 고정곡목으로 되고있으며 전국 《음악교과서》 통일교재에도 편입됨으로써 동희철선생은 전국적으로 존경과 애대를 받는 작곡가로 되였다.

그외에도 전국 여러 민족 인민들이 함께 모여 민주정치를 실현해가는 단결된 형상을 노래한 《형제자매 한자리에 모였네》(허동철 작사, 1983년 민족단결가요평선에서 작곡 1등상 수상), 1989년에 발표한 《나는야 맹인가수》(리상각 작사,1989년 제2차 복리상가요콩클 작곡 1등상) 등 가요는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불후의 명곡으로 길이 애창되고있다.

 

 

동희철선생의 작품은 《생동한 음악형상으로 심각한 테마를 구현하고있는바, 조국과 고향에 대한 사랑, 당과 인민, 혁명선렬과 영웅에 대한 사랑, 창조적로동과 생활에 대한 사랑,영원한 평화와 미래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되여있다.》고, 《음악풍격은 밝고 명랑한 색채와 폭 넓고 깊이 있는 서정성으로 돋보인다.》고 평론가들은 개괄하고있다.

동희철선생은 1978년에 첫 작품집 《고향산기슭에서》 출판한 뒤 《배움터의 멜로디》(2000년), 《사랑의 메아리》(2005년), 《인생반려》(2006년) 등 작품집을 출판하였다. 그의 작품집은 남다른 음악격언들로 프로필을 대신하고있다. 동희철선생은 평생의 음악실천속에서 정화해낸 체험실록(격언-1,2,3)들을 음악격언으로 정리하였다. 그의 음악격언들은 중국공산당 탄생 90돐 기념선집 《새시기 중국공산당인 우수격언선집》에 수록되여 국내외 위대한 명인들의 격언과 어깨 나란히 자리잡고있다.

음악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드팀없는 신념으로 동희철선생의 창작정열은 식을줄 모른다. 2008년 북경올림픽개최를 기념하여 창작한 취주악 《5환기발 날린다》와 올림픽격언 《五环在五音和谐声中涌动 五环在五洲欢笑声中飞扬》은 《중화명인세기헌사》(中华名人世纪献辞)에 기록되였다. 그이께서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 60돐을 맞으면서 지난해 창작한 가요 《우린 행복해》(김경석 작사)는 공연무대에도 올랐다.지금도 무시로 악상이 떠올라 펜을 잡은 그의 손은 오선보우로 달리고있다.

《지금 조한문으로 된 선집 출판도 준비중이고 조선민족가요전집 출판도 보살펴야 한다》며 《남은 앞날에 할일이 많다》고 웃어보이는 그이의 두눈에서는 정열이 빛나고있었다.

[참고문헌]: 《중국조선민족예술론》


길림신문 김청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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