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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과 인연 맺어 10년, 라동도의 버섯사랑 알아본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28일 10시39분    조회:7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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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라동도

연변화하상황균업유한회사 라동도대표의 창업성공기

아무리 봐도 그는 영낙없는 인테리모습이다. 훤칠한 키에 영준한 외모, 거기에 조용조용 이야기하는 차분한 음성이며, 안경너머로 상대를 응시할줄 아는 지적인 눈길과 타인의 말을 경청할줄 아는 침묵마저도 분명히 무게있는 지성인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는 학자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거친 인생의 이런저런 풍상고초를 적잖게 겪어오면서 이제 버섯에 대해 좀 알고있을뿐이라고 겸허하게 이야기한다.

어쩌면 그는 평범한 사람일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는 연변, 아니 전국적으로도 제일 먼저 정품상황버섯에 대한 정확한 확인과 정의를 내렸고 균류버섯상품에 대한 최대 수출물량을 다년간 줄곧 확보해온, 버섯에 길을 물어 성공한 성실한 기업인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가 바로 연변화하상황균업유한회사 라동도대표이다.

요즘 라대표는 《천연야생령지과립》이라는 신제품을 연구개발해 출시를 앞두고있다. 천연야생균류 즉 상황버섯이며 령지버섯, 차가버섯, 구름버섯 등은 국내보다는 국외 선진국들에서 먼저 탁월한 보건기능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각광받아왔다. 그러나 요즘들어 생활수준이 향상하고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올라가면서 국내에서도 보건기능식품들에 대한 관심도가 수직상승하고있다. 이에 따라 과거 천연야생균류버섯에 대한 수출사업을 하고있던 라동도대표는 야생균류 심층가공에 대해서도 연구하기 시작, 결국 최근들어 효능이 뛰여난《천연야생령지과립》신제품을 내놓기에까지 이른것이다.

칠전팔기의 인생경력…

라동도는 1964년 안도현 량강진 영홍촌에서 태여났다. 7살 때쯤 마을이 저수지공사로 수몰지역에 들면서 가족은 모두 무송현에 이주해가게 된다. 무송현에서 그는 한족학교를 다녔다.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고중 때 겨울 씨름운동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지면서 휴학하게 되였는데 당시 세차게 불어치던 독서무용론때문에 결국 대학진학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사회에 나온후 다시 안도현의 고향마을로 이주해온 라동도는 스무살 한창나이였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나이였고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나이였다.

바로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신주대지에 불어오고 시작한 때였다. 1984년도에 라동도는 마을청년 5명과 손잡고 대부금 750원을 맡아 양계장을 꾸렸다. 닭을 잘 키워 가을이 되자 닭들이 알낳이를 시작했고 로수하림업국에 닭알을 팔아 수입도 올렸다. 로수하림업국에서도 라동도의 경험을 받아 크게 양계장을 내왔고 닭치기가 돈벌이된다는 소문이 돌면서 양계호가 하나둘 늘기 시작하자 그는 양계장을 접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라동도에게는 자기 나름대로의 장사원칙이 있었다. 반드시 누가 하지않는 장사를 하며 누가 하고있는 장사라면 그 보다 더 잘할수 있어야 하며 그 장사에서 일인자가 못되면 미련없이 인차 다른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러한 장사원칙은 그에게 그후의 창업생애에서 쓰디쓴 고배도 적잖게 마시게 했다. 포도도 심어보았으나 얼굼피해로 1년만에 수천원을 쫄딱 날렸고 포장지도 생산해보았으나 밑졌다.

잠시 한달에 30여원의 봉급을 받으면서 안도의 한 시골마을 대과교원으로 일하기도했다. 로임이 적고 뭔가를 이룩하고 싶은 나이에 일상을 반복하는 교원사업이라는 적성도 맞지않아 결연히 교단을 떠나기도 했다. 당시 정부기관에 들어오라는 제의도 있었지만 물리쳐 버렸다.

사회에 나와서 장사도 해보고 창업도 해보고 출근도 해보면서 라동도는 역시 사람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식과 정보의 중요성을 깨우친것이였다. 라동도는 무려 53가지나 되는 신문 잡지를 주문해보았으며 뒤늦게나마 통신공부도 시작했다.

고향마을에서는 구지욕이 있고 창업패기가 있는 라동도에게 촌장사업을 맡겼다. 그때가 1989년도였다. 마을사람들이 믿어주고 촌장사업을 맡기게 되니 라동도도 촌민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했다. 과거에 촌민들에게 나누어준 밭이 불합리하게 배분된것도 촌민들이 골고루 혜택보도록 다시 나누어주었고 촌농장경영의 수요로 외지농호들도 받아들였다. 이렇게 되자 부분적 촌민들과의 리익마찰도 부득불 생기게 되여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되였다. 끊임없는 모함과 시련때문에 라동도는 3년만에 결국 촌장직에서 사퇴했다. 촌민들을 위해 크게 일해보자던 욕망도 결국 안타깝지만 접어야했다.

고향에 대한 미련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화룡에 갔다. 거기서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건강의기 길림성총대리를 맡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잘 나가던 장사가 법륜공이 만연하면서 병치료무용론이 가세하자 대번에 주눅들어버렸던것이다. 화룡에서 변소개조를 하는 막일도 했고 참외와 수박도 심어보았지만 어느것 하나 마땅히 잘 풀리는 일이 없었다. 참외농사는 잘됐는데 비가 크게 와서 농산품을 미처 실어내오지 못하게 되자 장사가 거꾸로 된것이다.

연길, 힘든 창업의 스타트

지인의 소개로 연길에 올 때까지만해도 라동도는 세집 맡고나니 당장 손에 돈잎이 없어 생활이 궁핍해졌다.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얼마간의 돈으로 과일도매장사를 했다. 과일도매를 하면서 간신히 연길에 발을 붙힌 라동도는 당시 한국사람들의 산삼수요량이 많은것을 보고 인차 과일장사를 집어치우고 인삼장사를 시작했다. 료녕성에 가서 산삼을 도매해들여다 팔아보았는데 수입이 제법 짭짤했다.

장사가 잘되니 주변 인삼장사군들의 눈에 나서 매대도 부서졌고 심지어 매도 맞았다. 그러나 라동도는 여기서 물러설수가 없었다. 치렬한 창업환경일수록 창업성공 가능성이 더 큰 법이다.라동도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난관과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이겨내면서 가장 최하층창업으로부터 시작해 연길에서 힘든 창업의 스타트를 뗄수밖에 없었다.

 
난전장사로부터 시작해 창업을 이루어낸 까닭에 라동도는 난전상인들의 어려움을 안다.

연길은 필경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수부도시이고 허다한 장사의 정보와 기회가 많은 곳이였다.

상황버섯에 대한 일본과 한국손님들의 수요량이 급증한다는 정보를 접하자 라동도는 인차 상황버섯에 눈길을 돌렸다. 당시 연변에서 팔리는 상황버섯은 국외에서 들여온것이였는데 수량적으로 적고 가격이 너무 비쌌으며 또 진짜 뽕나무에서 나는 상황버섯이 아닌 버섯도 상황버섯으로 잘못 인식돼 고가에 팔리는 현상들도 비일비재했다.

진짜 상황버섯에 대한 량심있는 장사를 해야 장사도 흥성하고 소비자에게도 책임질수있다는 생각에서 라동도는 상황버섯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책도 보고 신문도 보고 직접 전국 각지에 찾아다니면서 확인하기도 하면서 하나하나 상황버섯에 대한 깊이있는 료해를 했다.

버섯찾아 전국각지 동분서주

연변의 대외무역부문에 있는 지인과 련락해 전국적인 상황버섯구매에 나섰지만 보내온 버섯들은 모두 진짜가 아니였다. 중국의 드넓은 땅에 상황버섯이 나는 곳이 반드시 있을거라는 굳은 믿음을 안고 그때부터 라동도는 상황버섯을 찾아나섰다. 상황버섯은 뽕나무가 나는 곳에서 자라며 병페된 뽕나무에서 자란다는 믿음만으로 중국의 삼림분포자료를 연구하고 또 심양에 있는 삼림병충통신이라는 잡지사를 찾아가 잡지를 한아름 사다가 펼쳐보면서 상황버섯이 날수있는 지역을 찾아헤맸다.

초보적인 연구를 거친후 그해 8월, 라동도는 상황버섯을 찾아 전국적인 긴 고찰려행을 떠났다.

산동, 하남, 안휘, 사천, 섬서, 산서, 녕하, 청해, 내몽고… 근 6달간 중국의 근 절반지역을 돌아보았지만 서책에서 얻은 정보는 현실과는 완전히 달랐다.

첫번째 걸음은 실패였다. 여기서 그만둘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라동도는 그 이듬해 봄 또다시 상황버섯찾기에 나섰다. 하남성 숭현의 합곡진이라는 곳에 이르러 한 려관에 들었는데 그날따라 눈이 많이 내렸다. 려관주인과 한담하던중 당지에 상황버섯과 비슷한 버섯이 자란다는 소리를 듣게 되였다. 려관주인이 당지 농민을 시켜 따오게 했더니 아니나다를가 라동도가 꿈에도 찾아헤매던 상황버섯일줄이야!

라동도에게는 찾아헤매던 버섯을 만나는 일만큼 반가운 일이 없다

라동도는 그날로 매킬로그람에 240원이라는 높은 가격으로 상황버섯을 수구한다는 광고를 내 농민들을 버섯채집에 동원시켰다. 인차 200여킬로그람이나 되는 상황버섯을 얻을수 있었다. 그번 걸음에 라동도는 당지에 상황버섯수구 대리상을 정하고 지속적인 공급을 할수 있도록 했다. 그때 세워놓은 대리상과 지금까지 서로 믿을수 있는 훌륭한 교역관계를 형성하고있다.

라동도가 그후에 개척해놓은 야생천연균류의 공급원은 모두 그가 이렇게 자신의 두발로 직접 뛰면서 마련해놓은 신용의 기초에서 이룩해놓은것이다.

야생자연버섯과 인연맺어서 지금까지 10여년간 라동도는 해마다 일본, 미국, 한국, 말레이시아, 대만, 향항 등 나라와 지역에 20여종의 수십톤이나 되는 야생자연균류제품을 수출하고있는데 중국에서 가장 큰 야생균류 수출상으로 되였다. 그가 공급하는 야생균류제품들은 지속적인 공급을 유지하고 있고 또 각종 야생균류제품에 대한 정확한 분류는 이미 국내와 국제균류전문가들의 인정을 받아 금후 중국의 천연야생균류제품이 국제시장에 진입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창조해주었다.

2003년부터 라동도는 인터넷을 리용한 국내판매도 실시하여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신용및 제품질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고있다.

버섯에 성공의 길을 묻다

갈수록 수요량은 높은 반면 야생균류제품들의 공급량이 해마다 줄어들고있는 실정이다. 과거 수출량이 해마다 수십톤이 되던데로부터 이제는 수백키로그람으로 줄어들었다. 라동도는 이같은 물량도 이제 얼마 안지나 자원이 고갈될것으로 내다보고있다.

고향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보내주는 라동도대표(오른쪽)

야생균류제품이 뛰여난 보건기능이 있는건 이젠 구구히 설명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잘알고있다고 라동도는 말한다.

라동도대표는 물론 그의 83세에 난 로모와 안해 아직 소학생인 딸애까지 모두 야생균류제품의 애용자이며 또 수혜자이다.

라동도대표는 가족이 좋은 효과를 본것처럼 좋은 보건기능을 담은 상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향수할수있는 길을 탐색해 나섰다.

부단히 발전하는 시장수요에 적응하기 위해 리동도는 2011년도에 다종 선진적인 가동설비들을 인입하여 천연야생균류제품들에 대한 가공을 진행, 초보적인 제품가공에 성공했다. 2012년 라동도는 다년간의 수출경험과 새로운 국제 균류연구성과를 참고하여 천연야생령지조합비방추출물을 개발하였는데 효능이 뛰여나고 복용하기 편리하며 경제적인 등 특점으로 인기를 모으고있다. 현재 이 추출물비방은 라동도가 독점하고있으며 전매특허보호를 신청중이다.

대학문을 나서지는 못했지만 지식경제가 폭발하는 불꽃 튀는 경쟁사회에서 부단히 자신의 총명과 지혜, 성실과 신용, 그리고 신근한 노력으로 성공의 반렬에 오르기까지 라동도는 항상 앞선 의식과 끈질긴 추구만을 잊지 않았다.

라동도의 버섯사랑은 아직 어쩌면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야생균류제품연구와 개발에 열심하는 라동도대표는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버섯에 길을 물어가는 초학자일뿐이라고 자기를 낮추어 말하고있다.


길림신문 안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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