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 연변 아줌마 심영희 고향방문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4월16일 13시23분    조회:842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심영희
심영희 씨의 추천으로 연변의 윤경애, 남희철 미국오바마대통령상 수상

  (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 연변태생의 아줌마 심영희 씨가 일찍 미국에서 이종격투기세계챔피언의 영예를 따냈다는 것을 아직까지 중국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얼마전에 심영희 씨는 윤세미용성형병원에 하사한 미국오바마대통령상을 전달하고저 연변 고향을 찾았다.

  그럼 연변 시골에서 태생한 한 이른바 “평범한 여성”이 세계적으로 내놓으라하는 이종격투기 선수들을 제치고 어떻게 세계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는가?

  사연은 그가 서울에서 이른바 3D업종에서 일할 때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심영희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전의 조선족사회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익숙하지 않는 나라임이 분명했다.그러나 88올림픽후부터 중국조선족은 신비한 눈길로 “쪽문”을 열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니 인당 GDP가 1만달러(현재 2만6천달러)를 초과한,경제적인 부를 엄청나게 낳은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한국이 여차여차하게 잘 산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통해 조선족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눈여겨 보던 심영희 씨는 단연히 결심을 내리고 한국행을 택했다.1989년도에 한국을 가게 된 것은 단 한가지 목적,돈을 벌자는 것이었다.하여 한국에 가자마자 돈 버는 일이라면 식당일은 물론 지어는 건설공사장에서 미장일,타일붙이기 등 어지럽고 힘든 일들을 이리저리 가릴 새없이 닥치는 대로 했다.

  어느 한번 식당에서 한 체육관에 음식배달을 하게 되었는데 그 체육관이 이각수 세계격투기연맹 사무총장이 경영하는 체육관이었다.그 체육관에서 이각수의 격투기챔피언 사진을 유심히 바라본 그는.호기심이 부쩍 동해 이각수 관장에게 격투기를 배우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식당 심부름군이 격투기라는 개념이나 알까 싶어서 발차기를 해보라고 했단다.워낙 어릴 때부터 달리기,기계체조 등 운동을 많이 한 터라 발이 곧추 머리우를 올라갔단다.즉시로 이각수 관장은 “OK”하고 심영희 씨를 제자로 받았단다.

  이렇게 그는 낮에는 일해 돈을 벌고 저녁에는 합기도를 배우기 시작해 드디어 한국에서 합기도 3단(현재는 8단,합기도 총9단)을 따내게 되었다.

  합기도 3단까지 따낸 심영희 씨는 96년도에 고향 연길을 오게 되었다.

  1998년의 미국행이 그에게는 이종격투기 세계챔피언에 등극하는 발판이 되었다.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그는 합기도체육관을 인수해 관장을 맡으면서 이종격투기에 도전했다.바로 세계챔피언에 등극해야 겠다는 일념이었다.

  근 10년이라는 노력끝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그것이 바로 2007년도 3월22일 맥시코에서 열린 “월드챔피언십이종격투기대회”였다.관중이 무려 7천여명이 몰린 가운데 그는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뜨르르한 마르티네즈를 제압하고 정상에 등극했던 것이다.마르티네즈는 금번 이종격투기에서 오른 팔이 빠져 버티지 못해 항복했단다.

  한마디로 “넌 내앞에서 밥이 돼라”는 일념으로 이종격투기훈련에 온 몸을 투혼했던 결과이다.


미국에서 이미 시민권을 따낸 심영희 씨는 미국 경찰들에게 합기도를 전수하게 되었고 따라서 캘리포니아주로부터 경호자격을 취득해 경찰 빼찌까지 달게 되었다.이렇게 되어 심영희 씨는 현 박근혜 한국대통령이 2007년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측근경호로 나서게 되었고 또 피겨왕 김연하 선수의 측근경호를 나서는 등 이종격투기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던 것이다.

  현재 심영희 씨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청소년들,장애인들에게 특히 신경을 써가면서 합기도를 전수하고 있고 더욱이는 “청소년마약퇴치회장”으로도 사업하고 있어 청소년과 장애인 부모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심영희 씨는 미국에서 수차의 이종격투기경기에 참가했는데 지금까지 43차의 경기에서 무려 41차나 우승을 했다.

  심영희 씨의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수차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심영희 씨가 오바마대통령상을 남희철 씨에게 대리로 전달.

  미국에서의 대통령상 인선 및 추천은 대통령상을 수상한 시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게 심영희 씨의 설명이다.또한 미국에서는 대통령상을 미국내에서만 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각지의 그 어느 국가의 시민도 미국대통령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심연희 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심영희 씨는 늘 고향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고향의 지인들 혹은 기업인 혹은 특수공헌이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기 위해 신경을 써 왔던 것이다.그 와중에 윤세성형미용병원 원장인 윤경애 씨가 다년간 성형에서의 불우이웃돕기,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사회봉사에 게을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윤경애 씨를 추천했던 것이다.결과 작년 12월14일에 미국에서 심사위원들의 심사(변호사의 공증도 거침)를 거쳐 윤경애 씨와 남희철 윤세성형미용병원 동사장이 동반으로 미국오바마대통령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0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심양신생활태권도장 박연성관장을 만나 손과 발을 리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막거나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무예인 태권도는 시대에 따라 택견, 수박, 권법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전해내려오다가 지난 1954년 태권도로 명칭이 굳어졌다. 1962년부터 한국 국내에서 스포츠종목으로 인정받았으며 1961년 설...
  • 2012-05-24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3세 이야기       서울대 법대 유일한 조선족교수 강광문박사   "10여년동안 학문연구를 해오면서 2중언어, 2중문화를 터득한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였습니다. 학문연구에서 성과를 거둘수 있었던것도 바로 그 덕이였습니다."   한국의 최고명문대학인 서울대학 법대 유일한...
  • 2012-05-18
  •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60돐 특별기획-《기억속의 60년》 -1962년 연변주씨름우승을 따낸 씨름장사 마동일선생을 만나 1962년 9월, 연변조선족자치주창립 10주년경축활동 씨름대회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씨름장사가 있었다. 바로 당시 22살밖에 안된 화룡현고급중학교 2학년 학생 마동일이였다. 그번 경축활동에서 마동일은 ...
  • 2012-05-16
  •   1962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창립10돐 기념운동대회에서 씨름1등을 하고 모교인 화룡고중 교문앞에서 황소고삐를 쥐고 포즈를 취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마장군이라 부른다”  샅바끈 하나에 건 씨름왕 마동일의 인생 넘실거리는 구름관중들에 둘러쌓인 모래판우에서 건장한 사나이들이 서...
  • 2011-12-26
  • 뒤늦게 공개하는 축구운동건장의 인생발자취   [길림신문 2011-11-28 김룡 기자] 60년대 8.1팀의 주력 윙포드─박광철 소꿉시절부터 축구인의 꿈을 무르익혀 박광철은 1936년 11월 14일 도문시교의 농민가정에서 2남1녀의 둘째 아들로 태여났다. 집안은 째지게 가난한 빈농가정이였다. 박광철이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
  • 2011-11-28
  •  [길림신문 20211-11-15 김룡 기자] —연변축구평론계 거장 최동섭부교수 소년시절부터 의 꿈을 키워 최동섭은 1933년 9월 17일(음력)에 룡정 조양천의 한 농민가정에서 4남매중 막내로 태여났다. 너나없이 가난에 실달렸던 그 시절, 최동섭가정도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였다. 《가난한 집 자식이 일찍 셈이 든...
  • 2011-11-15
  • —우리 민족 축구사에 간과할수 없는 족적 남겨 소시적부터 남다른 축구재질 뽐내 박만복원로는 1935년 11월 4일(음력) 왕청 하마탕(북하마탕) 일툰(해방후 녕안툰으로 개명)이라는 마을에서 4남2녀중 넷째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일가로 불리우는 아버지, 삼촌, 형님들의 영향으로 헝겊뽈(당시 고무뽈...
  • 2011-11-07
  • 저명한 조선족축구인이며 광주항대팀 코치 겸 통역 추명씨 “연변조선족출신이라서 그런지 타성에 몸담고있어도 항상 연변축구를 관심하게 되며 따라서 안타까운 점도 안두가지가 아니다. 연변축구는 수년전부터 슈퍼리그진출이란 목표를 내걸었는데 물론 연변축구의 슈퍼리그진출이란 우리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것이...
  • 2011-08-08
  • 46살, 중년 고종훈은 말한다 축구명장 고종훈 재능이 최고의 절정에 오를수 있는 가장 관건적이고 확실한 요인은 결코 기질이 아니라 마음 또는 정신이다. 그 일을 꼭 하고싶다는 강렬한 욕망, 어떤 어려움도 견디여내리라는 강한 의지, 꼭 어떤 경지에 도달하고야말리라는 드팀없는 신념, 이런 내적인 또는 심적인 자기완성...
  • 2011-07-18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