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재한조선족 성공시대] (31) 예동근 부경대 교수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월16일 09시52분    조회:1006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예동근
고교때 베이징 갔다 '우물안 개구리' 절감…'촌장' 꿈 접고 더 넓은 세상으로
동포재단 장학생→고려대 박사…동포 관련 학술행사서 토론·발표자로 '종횡무진'
이젠 '글로벌 재외동포대학' 설립 목표…"한·중 시야 뛰어넘는 글로벌마인드 필요"

(부산=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첩첩산중의 농사꾼 아들이 드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길은 공부가 유일했죠. 고향에서 수재란 소리를 들었는데 베이징과 서울에 와보니 똑똑한 사람 천지더군요. 이를 악물고 공부에만 매달렸죠."

재외동포 관련 각종 학술행사에서 단골 발표자나 토론자로 등장하는 예동근(41) 부산 국립부경대 교수의 고향은 중국 지린성 융지현의 대흑산이라는 두메산골이다. 200호 남짓한 규모의 이 동네에서 그는 이제 가장 성공한 인사로 꼽힌다.

7년 전 34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국립대 전임교원이 돼 부교수까지 오른 그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학교 입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18년간 중국 옌지·베이징과 서울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다"며 "어려서부터 부모 품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지만 목표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고교 시절 지린성에서 품성·인성·지성이 뛰어난 학생 100명에게 수여하는 '성3호'(省三好)로 선정돼 난생처음 베이징을 견학하고는 꿈을 바꿨다. 그때까지는 비행기를 타보거나 바다를 구경하는 게 소원이었고 나이 들면 '촌장'이 되겠다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고향과 천지 차이인 베이징을 둘러보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느끼고는 더 큰 세상에서 공부해 우뚝 서보겠다고 목표를 수정했다.

연변대학에서 중문학을 전공한 예 씨는 2000년 중국 내 민족 연구 분야에서 가장 앞서있는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에 입학했다. 조선족으로 소수민족 연구에 관심이 많아 민족이론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에서 계속 공부할 예정이었던 그가 한국행을 택하게 된 것은 재외동포재단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2002년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 초청돼 1주일간 한국을 방문하면서 사고의 틀이 또 한 번 깨지는 경험을 했다.

"미국, 중남미, 유럽, CIS(독립국가연합) 등 세계 각국의 주류사회에서 활약하는 차세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회였죠.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외연이 넓고 다양하다는 것에 새삼 놀랬고, 글로벌마인드를 갖추려면 중국에서만 공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단 초청 장학생에 응모해 뽑힌 예 씨는 2004년 고려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한국 유학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중국과 달리 서구 중심의 지식체계인 데다 사고방식도 달랐기 때문이다. 기초 공부를 다시 하기 위해 매 학기 학부 수업도 서너 개씩 들었고, 원서를 보느라 날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학교 도서관 기숙사를 오가는 생활의 반복 덕분에 그는 빠르게 수업을 따라잡았고 보통 6년 이상이 걸린다는 박사학위를 4년 반 만에 취득했다.

대학에만 있다 보니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조선족처럼 직접적인 차별은 받지 않았지만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불법체류자로 오인돼 경찰로부터 신분증 제시를 요구받는 일을 종종 당했다. 그 덕분에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등의 조선족타운을 틈나는 대로 드나들며 조선족의 처우 개선을 위한 연구를 별도로 진행했다.

예동근 부경대학교 교수는 연합뉴스 기자가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방문한 14일 오후에도 재외동포 관련 학술지에 발표할 논문 작성을 하고 있었다.

 

예 씨는 베이징 대학원 시절인 2001년에 "조선족 학생끼리 서로 돕자"며 '조선족대학생센터'를 만들었다. 상부상조하면서 학업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만들자며 30명으로 출발한 이 센터는 이제 회원이 1천 명이 넘어 학술대회를 열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2003년 9월 박사과정 준비를 위해 한국에 오자마자 중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KCN)'를 만들었고 초대회장으로 활동했다. 석·박사과정 학생이 중심인 KCN은 설립 초기부터 정부기관 공청회, 대학·연구소의 학술대회 등에 단체 이름으로 참석해 조선족을 대변하며 부정적인 인식개선에 앞장섰다.

"당시 국내에는 재한 조선족을 연구하는 학술 단체가 적어서 각종 행사에 KCN이 곧잘 초청됐죠. 다들 자기 학업으로 바쁜데도 시간을 내서 참가했고, 공동 연구도 진행해 KCN 이름으로 조선족 처우 개선을 위한 보고서나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던 예 씨는 2010년 부경대 교수로 부임했다. 국제지역학부에서 강의하면서 대학의 국제교류 업무에도 발 벗고 나서 부임 초기 40개였던 중국 자매결연 대학을 80개로 늘렸다.

2011년에는 늘어나는 국내 체류 조선족 차세대를 격려하고 변화한 조선족의 위상을 널리 알리려고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는 12명의 재한 조선족의 이야기를 모아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를 펴냈다.

중국어·영어·일본어에도 능통한 그는 2004년에 중국어로 '중국소수민족자치주 연구'를 저술했고, 2007년에는 일본어로 '글로벌조선족네트워크'를 일본 현지에서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2013년에 중국의 사회·문화 등을 소개하는 '차이나핸드북'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조선족 3세들의 서울 이야기'의 속편을 내기 위해 한국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조선족들을 섭외해 원고를 집필하고 있다. 성공한 조선족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문영역을 구축한 이들의 성과를 1권에 1명씩 집중적으로 담아 2018년부터 시리즈로 낼 계획이다.

그는 "조선족의 코리안 드림이 2000년대 중반까지는 노동자로 일하면서 돈을 벌어 중국으로 금의환향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교수, 법조인, 대기업사원 등 엘리트가 돼 주류사회에서 활약하거나 기업을 일궈 한국에 정착하는 '신(新) 코리안 드림'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예동근 교수가 박사과정 시절인 2003년에 만든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는 지금까지도 국내 유학 중인 조선족 대학(원)생들의 중심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조선족인 아내 김향란 씨는 부산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다. 중학교 동창으로 베이징 유학 시절 만나 결혼 후 한국에 동반 유학을 온 김 씨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예 씨 부부는 조선족 유학생 출신으로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로 임용된 첫 케이스다.

대학에서 전공 외에도 교양강좌로 '재외동포의 이해'를 꾸준히 개설하고 있고, 매넌 10회 이상 동포 관련 학술행사에 참여하는 그의 목표는 '글로벌 재외동포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홍콩의 화교 갑부가 중국 광둥성의 고향에 화교 명문대인 산두대학를 설립한 사례가 있습니다. 우리도 한상(韓商)과 동포 교육자들이 모여 차세대에 글로벌마인드를 심어줄 수 있는 '글로벌 재외동포 대학'을 만들어야 합니다. 형태는 온·오프 상관없습니. 재외동포 연구를 학문의 한 분야로 정립하고 인재 양성 등을 추진해 동포사회의 축적된 지식이 모국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합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39
  • 무서운 집념으로 고체물리학연구에 평생을 바쳐   자석은 왜 서로 붙을가, 지남침은 왜 항상 남쪽을 가리키지? 어렸을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봤을 법한 의문들…살아가면서 그 수많은 의문들은 삶에 부대끼며 지나온 길에 하나 둘씩 잃어버린다. 하지만 한 소년은 달랐다. 헐벗고 굶주리던 그 시절에도 그의 ...
  • 2011-11-24
  • 강광문(38·사진) 교수는 서울대 인문사회계열 최초의 조선족 출신 교수다. 경북에 뿌리를 둔 그의 조상은 일제때 중국 요령성에 건너가 길림성 매하구에 정착했다. 민족학교를 다닌 그는 중국 명문인 베이징대를 졸업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올해 초 서울대 법대 교수로 ...
  • 2011-11-23
  • [연변일보 2011-11-14 리련화 기자 ]원 연변대학 조문학부 최상철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참가한 《중국소수민족신문전파통사》가 올해 2월 국가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인문사회과학성과상 저작류 2등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늦...
  • 2011-11-14
  • 청도서원장학교 허룡교장 책임, 질량 봉사로 학교 운영   허룡교장은 길림성교하시실험소학교, 교하시 조선족중학교에 옹근 20년 교장 사업을 해온  길림성에서 인정해주는 교육계의 풍운인물이며 교하조선족교육의 일등 공신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년 4월 서원장조선족학교 교장으로 부임돼 온 허룡교장은 사립...
  • 2011-11-09
  • 청도국기외국어학교 김진숙교장 을 제창 조선족학생 학잡비 60%면제 해마다 천여명 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청독국기외국어학교의 김진숙교장(1958년생)이  민족교육과 민족문화를 지키려는 일념으로 한국어를 무료로 보급하여 화제를 모으고 있다. 청도국기외국어학교는 미국적 대만인이 꾸리는 큰 재단산하...
  • 2011-11-01
  • 도전하는 녀성이 아름답다     [인터넷료녕신문 2011-10-25  리덕권기자  ]심양사범대학 고등직업기술학원 공공관리학부 선우옥련부교수 46세 나이에 신형열점학과 규제경제학(規制經濟學) 박사학위를 따낸 심양사범대학 고등직업기술학원 공공관리학부 선우옥련부교수(1964년생)는 도전정신...
  • 2011-10-25
  •       리성적이고 랭철한 두뇌와 판단, 정확한 수치와 판별을 요구하는 우리 나라 유명약학대학의 교수라는 겉모습에 따뜻하고도 감성적인 문학소년의 내면세계를 갖고 사물의 본질을 파헤치는 심양약과대학 제약공정학원 허영남교수(48세), 사물의 미세한 립자까지 파헤쳐 성분을 분석해내고 세상...
  • 2011-07-28
  • 칭다오서원장조선족학교 허룡 교장        [흑신 김명숙 기자]   칭다오서원장학교가 하루가 다른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 4월 새롭게 부임된 허룡 교장의 심혈이 스며있다.허룡(62세, 길림성 화전시) 교장은 19살 어린나이에 교하시 홍송소학교를 설립했으며...
  • 2011-07-25
  • 연변대학교 전임 교장 박문일 [길림신문 2011-07-04 ]나는 위대한 당의 은덕으로 연변대학교의 제1기생으로, 62년의 연변대학교 동반자의 한사람으로 80고개를 눈앞에 두고있는 리직교수이다. 당 창건 90돐을 맞아 학교와 그속에서 걸어온 60년을 돌이켜보면 《공산당이 없으면 새 중국이 없다》는 우리 중화민족의 애창 대...
  • 2011-07-05
‹처음  이전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