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시진핑주석께 장고춤 선보인 20대 조선족 청년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6월6일 09시17분    조회:554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경무
       

       올해 2월 24일, 중국 중앙텔레비전방송국 제3채널 '무용세계' 프로에서 소고춤을 추는 한 청년의 무대를 우연히 접했다. 조선족인 듯한 모습에 끌려 필자는 자막정보에 따라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을 찾았다.
 
  소수민족 최대 문예공연 무대에 서다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에 재학중인 박경무(23)군, 그가 바로 지난해 8월 '조선족 출연진'의 명찰을 달고 중국 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에 참가했던 남자 무용수다. 중국 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 준비를 앞두고 장고춤 안무를 짜달라는 교수님의 요청을 받고 박 군은 중앙민족가무단을 찾았다. 현장에 가보니 함께 무대에 올라야 했던 상황, 그렇게 박 군에게 소수민족의 일원으로서 조선족을 대표해 소수민족 최대 문예공연 무대에 설 기회가 찾아왔다.
 
  베이징에서 가장 무더운 계절인 8월, 박 군은 소수민족문예합동공연을 위해 학교체육관에서 전국의 민족대학 학생 800여명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밤 11시까지 50일간의 집중 연습에 돌입했다. 땀으로 질퍽한 체육관 바닥에 미끌어 넘어져도 다른 출연자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그대로 밟고 지나갈 정도로 출연진이 방대했다. 대형 공연인지라 넘어져도 아파도 지체할 시간없이 바로 대열에 합류해 동작의 순서를 따라야 했다. 박경무 군도 예외가 아니었다. 연습이 끝난 뒤 퍼렇게 멍들고 찢겨 핏자국이 남은 다리를 보며 연습중에는 그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에 박 군 자신도 놀랐다.
 
  시진핑 주석 앞에서, 그것도 어린 나이에 대선배와 호흡을 맞추며 조선족의 대표적 무용인 장고춤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뿌듯한 듯 박 군은 그때의 설레임을 어조에 그대로 담아냈다.
 
  "시진핑주석 앞에서 춤을 춘 것도 엄청난 영광이었지만 전국적인 큰 무대에서 장고춤을 대중에게 선보였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무용수 고모의 영향을 크게 받아
 
  춤에 대한 박 군의 열정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천생 춤꾼'이라는 단어가 썩 어울릴 것 같았다. 연변오동축구팀의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아들 역시 무용수가 아닌 축구선수로 키우려 했지만 공이 멀리 굴러가면 주어오길 그렇게도 싫어하던 아들을 보며 마음을 접었다.
 
  "공도 줍기 싫어하는 애가 무슨 무용을 한다고" 아버지가 무용을 반대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생각은 빗나갔다.
 
  현재 연변대학교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있는 고모의 모습이 어린 박 군에겐 가장 근사하고 아름다워 보였단다. 고모의 무용수 인생은 박 군에게 나침판으로 작용했다.
 
  "경무가 11살의 나이에 저를 찾아와 무용을 배우겠다고 할 때 한사코 말렸습니다. 지금은 경무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항상 이끌어주고 싶습니다."
 
  박 군의 고모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원 박설화 교수의 말이다.
 
  춤에 일가견이 있었던 할머니의 장단을 들으며 자라온터라 그 친숙함이 무용을 시작할 때 박 군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대중가요나 팝댄스에 열광하는 90년대 이후 출생자 답지 않게 우리민족 민요를 들으면 흥이 나고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 싶다는 박 군이다.
 
  우리민족 전통무용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어
 
  박 군은 전통무용의 매력에 사로잡힌 후엔 정규적인 이론과 실기수업을 받고 싶어 중앙민족대학교 무용학원에 지원했다. 연변예술학교에서 4년, 중앙민족대학교에서 보낸 4년의 시간까지 합치면 박 군이 무용의 길을 걸은지도 올해로 8년에 접어든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라는 생각으로 무용에 뛰어들었을 땐 우리민족의 전통무용이 이렇게 힘든 줄을 몰랐다는 박 군, 멋모르고 애착으로만 시작했을 때는 호흡법도, 정서도 모른채 무작정 모방만 했었다. 하지만 8년의 연습시절을 지나온 지금의 박 군에겐 나름대로의 신념이 생겼다.
 
  "우리민족 전통무용의 정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갈수록 많은 대학의 무용학원들에서 조선족 전통춤 수업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민족의 춤이 매력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춤에는 우리 민족만의 멋과 맛이 있습니다. 춤을 추는 사람이 지닌 마음과 생각, 흥과 신명이 어우러져서 최상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민족무용을 하면서 아무리 본떠도 완전히 소화할 수 없는 게 바로 우리민족의 전통춤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민족의 춤은 모방한다고 해서, 따라서 춘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무대활동을 많이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조선족의 전통무용이란 이런것이다 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남들보다 빼어나게 잘해서가 아니라 조선족이기 때문에 그 정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사랑받고 더 '애용'되고 있으며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박 군, 대학에 와서 여러 민족, 여러 쟝르의 춤을 접한 뒤로 조선족 전통무용의 진미를 더 깊이 알게 되었고 그만큼 전통무용에 대한 박 군의 사랑도 날이 갈수록 애틋해져 갔다.
 
  남자 무용수의 박력있는 춤을 보면 색다른 멋을 느낄 수 있어
 
  박 군은 대회 준비를 앞둔 2개월간은 아침 6시에 눈을 떠 운동장 15바퀴를 시작으로 잠들기 전까지 연습했다. 아무리 아파도 연습에는 빠지지 않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과도한 연습 때문에 인대를 다치기도 했었다. 해외 공연 때면 시차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도 최상의 상태를 보였다. 실수없는 무대 위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박 군의 뜨거운 열정과 끊임없는 도전이 있고 강한 의지가 있었다.
 
  "무용수는 모두 그런 것 같습니다. 힘이 빠지다가도 무대에 오르면 열정이 솟구쳐요."
 
  그 열정의 한모퉁이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깊숙히 자리해 길을 밝혀주고 있다. 어머니는 박 군을 위해 현재 한국에서 일하고 계신다. "밥은 먹고 연습하니? 시간날 때 영상통화 할까?" 긴 시간의 연습에 아들의 몸이 축날까봐 항상 걱정하는 어머니다.
 
  지난해 한국 서울국제무용대회에 오른 아들의 모습을 어머니는 처음으로 무대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감상평은 특별히 없었지만 공연 후 아들의 공연 사진을 지인들에게 돌리는 어머니를 보는 것만으로도 박 군에겐 큰 기쁨이었다. 그 무대는 어머니에게 드리는 보답이자 지난 7년간 아들에게 몰부어온 어머니의 정성과 수고에 대한 보상이었다.
 
  "우리민족 전통무용은 항상 저의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하루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배기지 못하는 걸로 보아 저에게 춤은 '밥'과 같은 존재라고 할까요? 전통무용 하면 보통 여자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떠올리실 텐데요, 그건 아마 남자 무용수가 적어서 일거에요. 전통에 현대미를 입힌 남자 무용수의 박력있는 춤을 보시면 색다른 멋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박 군은 지금까지 한번도 포기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활발한 무대활동으로 우리민족 전통무용의 정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로써 우리민족의 더 많은 남자 무용수 지망생들에게 힘을 주고싶은 것이 현재 박 군의 바람이다. 그가 제시하는 '꿈의 로드맵(路线图)'에는 민족무용의 발전과 계승이 늘 자리하고 있다.
 
  현재 박 군은 전통과 현대미가 어우러진 '소고춤'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경험을 많이 쌓아 향후에는 단독 작품활동도 하고 싶다며 작품창작에 대한 욕심도 살짝 내비쳤다.
 
  /중앙인민방송국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까지 사진 한장에 담아 전해야 하는 직업이 촬영기자이다. 오인철(70세)은 평생을 《연변일보》 촬영기자로 뛰면서 뉴스현장을 누볐고, 자치주의 변화를 고스란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3일, 오인철은 자택에서 인터뷰를 받으면서 컴퓨터에 일목료연하게 ...
  • 2022-08-14
  • 화가 리명식선생 화가 리명식선생은 자치주창립7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해 퇴직후 여러해동안 고향의 정을 담아 30여점의 미술작품들을 알심들여 창작하였다. 그중 ,, 등 12점의 작품이 올해 전국미술계에서 지명도가 높은 북경 인민미술넷(人民美术网)에 발표되였다. 리명식선생은 자신이 태여나서 자란 아름다운 ...
  • 2022-07-24
  • 작은 체구에 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지만 바이올린을 잡는 순간 카리스마가 넘친다.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청중의 마음을 휘여잡으며 바이올린 선률에 젖어들게 한다. 바이올린만 손에 잡으면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가 어디서 뿜어져 나올가? 5살에 처음 바이올린을 잡기 시작했으니 사실상 칠십...
  • 2022-07-21
  • 5월 연길신화서점(2층)에서 “그림으로 위안과 회복의 마음”을 전하는 페델스갤러리 리려평(27세)의 작품전시회가 열리면서 서점을 찾는 시민들에게 새로운 종합그림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생명의 빛》을 설명하고 있는 그림 작가 리려평(李丽平) 자화상으로 시작한 첫 작품 《시작》 전시장의 첫머리에 놓여...
  • 2022-05-06
  • 조선족구기예술가 김성일 국내외 무대서 명성 떨쳐 ‘귀할수록 값이 간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분야에도 희귀한 재주를 갖춘 사람은 어데 가나 환영을 받는다. 입으로 다양한 동물의 소리를 내는 건 물론 입김으로 진동을 일으킬 수 있는 물건이면 모두 악기처럼 불 수 있는 구기(口技)예술인 김성일이 그런 사...
  • 2022-03-11
  • 민족의 얼을 노래하는 작곡가   —박학림의 음악길을 따라서 글 로은화         음악은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시너지는 엄청나다. 살아 숨 쉬는 음표로 우리한테 가슴 벅찬 감동과 공명을 선사해주고 문화예술에 목 말라있는 곳을 찾아 수백차의 무료음악공연을 펼친 ...
  • 2022-01-07
  • 중국 조선족상모춤을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린 주역 —중국 조선족농악무(상모춤)의 대표성 전승인 김명춘 로인순     농악무 하면 상모를 떠날 수 없고 상모의 고향 왕청을 떠올리면 김명춘이란 이름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 중심에 그가 서있다. 중국 조선족상모춤을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린 사람으로...
  • 2022-01-04
  • ‘작은 떼떼’에서 중견예술인으로   리아     김광철 중국 조선족사회에서 ‘떼떼가족’은 한 세대를 주름 잡은 코미디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배우들의 본명은 몰라도 예명을 모르면 아쉬울 정도이다. 과거에는 물론 현재에도 복고풍이 불 때마다 등장하는 연변소품에서...
  • 2021-12-31
  •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헌례 영화작품 《1921》은 7.1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상영된 우리 나라 대형영화작품이다. 이 영화의 음악총괄(统筹)과 음악후기제작을 담당한 이가 바로 90년대생 조선족영화음악인 양경일 (31세)이라는 사실은 저으기 주위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영화음악 작곡 양경일 “음악총감독을 협조...
  • 2021-11-03
‹처음  이전 1 2 3 4 5 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