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방초선이 부른 노래 영원한 애창곡으로 남으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20일 08시24분    조회:621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방초선

<붉은 해 변강 비추네> ,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 등 군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우리 나라 저명한 조선족 녀고음가수 방초선, 어릴 적부터 노래하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하던 그는 15세에 입대하여 문예전사로 되였다. 그는 선후로 나라를 위해 많은 영예를 안아왔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깊은 함의를 알게 되고 꾸준히 노래실력을 키워온 그는 달콤한 사랑도 찾았다. 방초선은 조선족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한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 되였다.

그가 부른  <처녀의 노래>,  <붉은 해 변강 비추네> ,  <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 등 노래는 사람들이 즐겨부르는 애창곡으로 되였다.

외국노래를 부르는 처녀애

1932년 조선 함경북도 김책시에서 출생한 방초선은 여덟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왕청현으로 이주했다.

방초선의 아버지는 유격대에 참가하면서 진보적인 사상을 접촉하게 되였다. 집에 올 때마다 방초선에게  <단결가>,  <홍기가> 를 배워주었다. 가정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방초선은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 좋아하고 춤추기 좋아했으며 일본류학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외국노래도 배웠다.

1947년 봄, 중국인민해방군 길동군분구 장병들이 왕청현 류수하 마을에 내려와 촌민들과 함께 군민친목모임을 가진 날이였다. 그번  모임에서 방초선은 마을의 대표로 외국노래  <탄식소야곡>과  <런던단조>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도 노래를 잘 불러 부대 한  관계자가 부대 문공단원으로 참군할 것을 제의했다.

그 때부터 방초선은 부대 문공단에서 활약하며 유일한 독창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듬해인 1948년 료심전역 장춘해방전쟁에서 방초선은 가장 년소자로 16세 나이에 전방에서 전우들과 함께  <중국인민해방군행진곡>을 부르면서 전투사기를 올려주었다. 전쟁터에서 방초선은 문예선전의 역할과 위력을 알게 되였고 선전대원이 된 것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다.

방초선은 “장춘해방전쟁 때 포탄이 늘 우리 곁에서 터졌는데 우리는 엎드렸다가는 일어나 걷고 걸어가다가는 엎드리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매일 참호를 다니며 노래했는데 어떤 날에는 50수의 노래를 불렀다.” 며 제일 처음 전사들에게 노래를 부를 때 모두 10수를 불렀는데 전사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더라고 회억했다.

전선에서 돌아온 방초선은 선진사업자로 되였고 ‘동북해방기념메달’도 탔다.

1949년, 길동군분구문공단이 연변가무단으로 체제바꿈을 하고 방초선은 그 이듬해 중화인민공화국 창건 첫돐 기념공연에 참가하게 되였다. 방초선은 중남해 회인당 무대에서 국가지도자들이 앉은 자리에서  <베짜기노래>를 불렀다.

그 후 방초선은 여러번 당과 국가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다. 1962년 주은래 총리는 방초선이 노래와 춤에 뛰여나니 동방가무단에 전근하면 더 큰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친히 동방가무단의 지도자를 소개해주었다. 그러나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의 수요로 고향에 돌아왔다.

결정적인 한해

1957년은 결정적인 한해였다. 방초선은 문화부로부터 모스크바 제6기 세계청년련환축제 음악콩쿠르에 파견되였다. 당시 학교도 다니지 못한 방초선이 성악지식을 알리 없었다.

그러나 방초선은  <처녀의 노래>를 불러 110개 나라 가수 가운데서 두각을 드러내며 은상을 받아 나라를 위해 영예를 따냈다. 이번 경력으로 방초선은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귀국 후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의 배려로 중앙음악학원 간부연수반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마침 우리 나라 이름난 녀고음 가수이며 성악교육가인 곽숙진이 해외류학을 마치고 귀국, 방초선은 곽숙진의 첫번째 학생으로 되였다.

지난 세기 70년대 방초선은 한어로  <연변인민 모주석을 노래하네>,  <붉은 해 솟았네>  등 노래를 불렀는데 이 노래들은 군중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되였고 전국 각지에 널리 퍼졌다. 방초선은 각지에 다니며 공연하고 국내외에서도 여러번 독창음악회를 가져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조선족음악을 전파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달콤한 사랑

1959년 9월, 중앙음악학원 신입생 무도회에서 방초선은 처음 남편 왕개평을 알게 되였다. 1960년 12월에 결혼한 이들은 음악세계에서 함께 57년을 살아왔다.

왕개평과 방초선은 서로 지지하면서 프로계획을 짜고 가극창작, 성악교육에서 꾸준히 개척해 많은 후대를 양성했다. 방초선의 이름은 《중국예술가사전》, 《중외녀성명인사전》 등에도 올랐다.

1980년부터 2003년 사이 왕개평과 방초선은 전국 각지와 미국, 카나다, 일본, 한국 등 나라에 가 부부 음악회를 가졌고 80차례의 순회공연을 했다.

2015년에는 10대 ‘80’후 가수음악회에서 왕개평과 방초선은  <꽃은 왜 이리도 붉을가 >를 부르며 행복한 로후생활을 자랑했다.

중국민요/길림신문 편역 홍옥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44
  • 길림성 도문시에는 조선족 음악의 비물질문화재 사업을 위해 혼신을 다하며 삶의 여생을 청춘으로 불태우는 구급대원이 있다.그가 바로 “조선족민족 음악의 산화석”으로 불리는 김봉관선생이다. 올해 74세인 김봉관선생은 1967년에 연변예술학교 리론 작곡반을 졸업하고 도문시 문공단 악대대장, 단장, 시...
  • 2013-12-06
  • 연변가무단 안무가 송미라씨를 만나     연변가무단의 대형원작가무 “노래하노라 장백산”이 2012년 제4회 전국소수민족문예회보공연에서 프로그램 “금상”과 함께 “최우수연출상”, “최우수종목상” 등을 수상한데 이어 올해 10월 중국 제10차예술절 문화상평의에서...
  • 2013-12-05
  •   1957년 연변가무단 독창가수 방초선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청년련환축제 음악콩클에서 최정연 작사, 정진옥 작곡으로 된 노래 “처녀의 노래”를 열창해 은상을 수상한바 있다.   반세기&n...
  • 2013-12-02
  •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조선족의 대표적인 원로 서예가이며 화가인 지승원선생(84세)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문여기인”라는 사자성구가 선생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1946년 《길동일보》(《연변일보》 전신) 창간시절부터 근 25년간...
  • 2013-11-22
  •  조선족 미술계 원로 김영호 옹    11월 5일 오후 2시, 기자가 중국 조선족 미술계의 원로이자 거목인 김영호화백(83세)의 저택을 찾았을 때 선생은 한창 래년에 연변대학 미술학원 미술전시홀에서 마련될 수채화 중심의 개인전시회(약 40여폭)에 출품할 작품을 창작중이였다. “오전에는 약 3시간 동...
  • 2013-11-08
  • “저는 어릴 때 늘 해란강에 나가서 노래연습을 했지요.” 우리민족의 유서 깊은 고장 룡정의 해란강기슭에서 태여나 가수의 꿈을 키운 리성주에게 해란강 여울소리는 고향이 불러준 성공의 축가였다.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또 민족창법, 통속창법, 벨칸토창법 등 세가지 부동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무대...
  • 2013-11-04
  • 장미옥씨가 2013년 한중문화예술교류 중-한친선음악 대축제 카탈로그 표지 인물로        (흑룡강신문=연길)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요 몇년사이 중국과 한국의 문화예술교류가 빈번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 코미디계와 조선족 코미디계 예술교류 및 학술교류도 빈번해지고 있다.이 상호예술...
  • 2013-11-02
  • 지난 5월 14일, 북경성광영화텔레비죤촬영기지에서는 10명 조선족가수가 중국조선족가왕(歌王) 월계관을 두고 열띤 자웅을 겨루고있었는데 그가운데는 연변가무단의 새내기가수 허미옥도 끼여있었다. 무대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허미옥가수의 가슴은 새를 품은듯 유난히 콩닥거렸다. 가왕의 영예를 따내기 위하여...
  • 2013-10-31
  • “아직까지 연변의 미술작가들의 작품은 단 한점도 전국미술대회에서 입선되지 못했습니다.연변은 아직 류통구조를 통해 유능한 작가를 발굴해낼수있는 플랫폼이 없다는것입니다” 국가 문화부 예술품감정위원회 위원인 리영인(59살)씨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고향 연변의 예술시장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놓았다....
  • 2013-10-30
  • 지난 9월 30일 연길에서 첫 독창음악회를 마친 가수 박리정씨와 연변일보사 근처의 작은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음악회 개최되기 며칠전에 출판된 자신의 세번째 CD “옛사랑이여 민들레”를 건네면서 몇해전 전국조선족성악콩클에서 금상을 받고나서 같은 자리에서 매체의 취재를 받던 지난날을 회상한다. 연...
  • 2013-10-28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