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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린 항일련군 녀전사가 떠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24일 23시26분    조회: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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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리민

   '항전 14년' 교재 기입에는 그의 공로가 컸다

  (흑룡강신문=하얼빈) 동북항일련군로전사, 전 흑룡강성정협부주석 리민 녀사가 21일 94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조선족 대표인물의 한사람이자 그 시대의 전기였다.

  '항전 14년' 정식 교과서에 기입, 가장 큰 소원 실현

  2017년초 교육부의 '중소학교 지방과정교재에 '14년 항전'개념을 전면적으로 락실할데 관한 함'이 인터넷에서 널리 주목받았다. 이에 동북항일련군로전사 리민녀사도 감격했다. 10여년간 로인은 줄곧 '8년 항전'을 '14년 항전'으로 고치고 교과서에 기입할것을 줄곧 건의해왔던것이다.

  2002년부터 10여년간 리민은 동북3성 여러 항련전사와 항련력사를 관심하는 사람들과 함께 '항전 14년' 교과서 기입사항을 추진했다. 그들은 국가 관련부서에 건의하고 전국정협에 제안을 내놓고 각지에서 연설을 하면서 '항전 14년'을 미래 애국주의교육의 키워드가 되도록 했다.

  "항일전쟁국부전쟁 14년, 전면항전 8년, 나의 가장 큰 소원은 항일전쟁 14년 력사를 교재에서 볼수 있도록 하는것이였는데 지금 끝내 실현됐다"

  리민은 중국인민항일전쟁은 세계 반파시즘전쟁의 중요 구성부분이라고 소개했다. 이 14년간 동북항일련군은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반일기치를 높이 들고 간고한 대일투쟁을 벌여왔다.

  어느 전쟁도 동북전장처럼 참혹한적 없었다. 동북항일련군은 중국공산당의 지도아래 수십만 일본근과 14년간 박투했다. 그동안 희생된 전사는 헤아릴수 없다.

  리민은 지금까지 선전되여온것은 줄곧 8년항전이며 동북항일련군의 14년 항전사는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있다고 생각했다. 교육부가 올해 '항전 14년'을 교과서에 기입하도록 요구한후 이 력사가 다시 빛을 보게 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항일련군을 알고 항일련군의 정신을 알게 됐다.

  가장 중요한 의미는 중국 1931부터 1937년까지 장장 6년이라는 동북항일련군의 항전이 전민항전의 력사에 정식 가입하게 됨으로써 항일전쟁의 력사체계가 더 완전하게 됐다는데 있다.

  리민의 전기 인생, 13살 동북항일련군에 참가

  리민은 1924년 흑룡강성 탕원현 오동하툰의 한 조선애국자 가정에서 태여났다.아버지 리석원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을 반대하여 20년대초 중국동북으로 망명했다. '9.18'사변후 항일련군 6군 1사에서 후근처장으로 지내다가 1938년 희생됐다.

  리민의 오빠 리운봉은 항일련군 6군 1사 6퇀에서 정치부 주임을 맡다가 1942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다.

  1933년 봄, 항일군민이 4갈래로 나눠 집현을 공격할때 일본군의 기관총 사격을 당했다. 친인들의 비장한 함성이 안방하, 쌍압산, 칠선봉 상공에서 오래 울려퍼졌고 깊은 감명을 주는 노래 '어머니 울지 마세요'가 이때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당시 리민은 항일구국선전대에 있었다. 번마다 그가 '어머니,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라는 구절을 부를때마다 사람들은 목메여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 안되는 량식, 건채소, 소금, 옷을 주동적으로 지원했고 자녀들을 참군시켰다.

  1936년 리민은 13살밖에 안되는 녀자아이였지만 일본군을 물리치는데 참가하겠다고 자진했다. 부대의 수장은 그가 작다는 리유로 받지 않았지만 그는 여러번 간청했고 항일가요까지 여러번 불러 수장을 감동시켰고 결국 군에 남아 항일련군 꼬마전사가 됐다.

  그처럼 간고한 시대에 부대는 무기, 천막, 화로, 취사도구 등 모든 용품을 자체로 해결해야 했다. 겨울에도 엷은 옷을 입고있어 모닥불을 피우고 자야 했는데 불을 찌우는 쪽은 따뜻했지만 반대편은 여전히 얼어들었다.

  가장 어려울때는 산과일, 들나물, 나무껍질, 풀뿌리, 죽은 말, 야수, 심지어 혁띠와 구두까지 음식으로 삼았다. 이런 판에 약품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사들이 부상당하면 붕대도 없어 옷에서 천쪼각을 찢어내 감아줄수밖에 없었다. 위생요원의 가방에는 맛이 매우 쓴 일종 나무의 껍질이 들어있었는데 삶은후 소독약으로 썼다.

  얼어죽고 굶어죽은 사람이 많아

  극도로 되는 배고픔이 남겨준 인상은 너무 깊었다. "배고프다못해 심장이 쿵쾅거리며 목구멍으로 튀여나올것 같았고 숨이 넘어갈것 같았다"고 그는 회억했다.

  로인은 한가지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1939년 그믐날밤 부대에 먹을것이 떨어졌는데 묘씨성 사무장이 철통에 올랍신발(靰鞡鞋가죽신)을 삶아 그믐날저녁밥을 대체했었다.

  려명전 적군이 갑자기 공격을 가해 사무장도 철수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토굴에 두고온 철통이 떠올라 다시 돌아가 꺼내들고 달려왔다.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맞이하는 순간 적의 탄알이 그의 잔등을 명중했다.

  백산흑수에서 8년 넘게 일본군과 대항

  항련전사들은 강적의 추격과 포위를 당했을뿐만 아니라 식량과 약물공급이 끊기는 시련을 겪었다. 특히 겨울은 더 그러했다. 부대는 늘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자신의 십여배, 수십배나 되는 일분군과 맞서야 했다.

  림해설원에서 일본군에 대항하면서 수많은 전투를 겪은 리민이였지만 그에게 잊혀지지 않은 한차례 전투가 있다.

  1939년 겨울 큰눈이 완달산맥을 덮었다. 일본 괴뢰군은 이 기회를 타 산에 진입해 항일련군부대를 포위토벌했다. 하루는 피복공장과 병원이 포위를 받아 배성춘 지도원이 저격중 부상을 입었다. 그는 리민 등에게 "엄호하겠으니 빨리 떠나라"고 말했다.

  당시 서쪽은 절벽이였고 남쪽은 넓고도 긴 골짜기였다. 가깝고 나무가 있어 숨을수 있는 동산으로 움직였다. 리민이 무릎을 넘는 눈밭을 헤쳐나가는데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았다. 전우들이 또 적에 포위됐던것이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을 탄 일본군관이 군도로 지시를 하자 기관총이 이쪽으로 사격을 해댔다. 리민은 재빨리 눈구덩이에 뛰여들었으며 위험을 모면했다. 이번 전투에서 한개 녀병소대에서 리민 한사람만이 포위에서 탈출했다.

  구사일생 쏘련으로 전전

  퇴직하기 전 이미 흑룡강성정협부주석이 됐지만 리민은 자신의 다른 한 신분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겼다. 이 신분은 중국특별려단의 준위(准尉).

  항일련군중에 이런 전기적인 부대가 있다.

  항전기간 수년의 전투를 거쳐 3만여명이던 항련대오는 천여명밖에 남지 않았다. 국제공산당과 쏘련공산당의 도움으로 그들은 쏘련경내로 철거했고 쏘련홍군 극동홍기군독립 제88려단에 편입됐다.

  이 부대는 쏘련극동의 비아츠크진에서 성립되였는데 구성원 대다수가 쏘련까지 철퇴한 전 중국동북항일련군 관병들이였다. 이들은 쏘련군이 제공한 복장, 무기를 썼고 특종부대의 기준에 따라 훈련했으며 심지어 쏘련군과 같은 군계급제도를 따랐다.

  리민과 진뢰, 항일련군시대 사진.

  이곳에서 리민은 각종 무기 사용, 겨울 스키 수영훈련, 통신기술, 전선 구호작업, 철조망 가설, 장애넘기와 전투 행군대렬 편성, 행군경계 파출수색 및 전화선 가설, 내한 훈련, 무장 도하훈련 등 군사훈련과 정치문화학습을 했다.

  그는 당시 항일련군대오에서 가장 어린 녀병사중 한사람이였는데 쏘련에서의 훈련을 통해 중국 첫 락하산 녀성 특종병이 됐다.

  "과정은 쏘군 군관이 가르쳤는데 백발백중할것을 요구했을뿐만 아니라 유객대 전술과 일부 전략전법을 익숙히 할것도 요구했다"

  리민은 공중락하훈련은 위험한 실천훈련과목이였다며 락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할때는 사고가 일어날수도 있었다고 회억했다.

  귀국후 리민은 정탐, 통신련락, 적군 점령구 교량철도창고 파괴 등 여러가지 임무를 완성하고 일본군 흑하군사요새 파괴 작전행동에도 참가했다.

  리민은 이국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특별히 그리워했다. '세계반파시즘전장승리기념훈장' 등을 만지며 그는 "이 훈장들은 매 항일련군 전우들의것이다"고 감격에 차 말했다.

  항일련군사적 선전에 몰부은 여생

  로인의 저택에는 항일련군 각 부대, 주요 장병의 사적 선전화들로 가득하다. 크지 않은 방들은 소형 항일련군 박물관이 됐다.

  리민은 "나의 소원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항일련군사적을 알리고 항일련군 정신을 발양하는것이다. 한생동안, 특히 퇴직후에 이 일에만 전념해왔다. 너무나도 눈물겨운 14년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1995년 러시아정부는 그에게 '주코프훈장'과 '세계반파시즘전쟁승리 기념훈장'을 수여했다.

  2002년 리민은 동북항일련군정신 선전대를 구성하고 전적지들을 찾아 희생된 전우들을 위해 비석을 세워주기에 애썼다.

  "그렇게 많은 훌륭한 동지들이 희생됐다. 그중에는 20살 좌우 되는 젊은이가 많았다. 그들에게 비석을 세워주지 않으면 누구도 몇십년전에 민족해방을 위해 피를 흘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것이다"

  그는 "선전대를 구성한 목적은 동북항일련군이 전투한 14년을 선전하고 항일련군정신을 발양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동북의 력사이고, 중화민족의 력사이므로 더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0년 그는 할빈시 '백년풍채녀성'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리민의 저택에는 전문 노래련습에 쓰는 방이 있다. 벽에는 그들이 자주 부르던 노래와 공연할때의 사진이 걸려있다. 그중 한장의 사진속에는 선전대원들과 리민이 함께 부른 '할빈, 영웅의 도시'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다. 리민이 직접 작사한 이 노래속 '우리는 그대를 위해 개선문을 세우리라, 우리는 그대를 위해 승리의 광장을 만들리라'란 구절이 유표하게 안겨온다.

  흑룡강신문/마국광 기자 편역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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