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 첫 <해방>패 자동차에 앉아 장춘시내를 돌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31일 08시37분    조회:322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채동휘

[국경 70돍 특별기획] 제1자동차공장과 조선족건설자들(14)

 

 

제1자동차공장 로일대 건설자 채동휘로인

1953년 장춘에서 제1자동차공장이 일떠선 후 3년간의 노력을 거쳐 1953년 7월 13일 드디여 우리 나라에서 생산한 첫 <해방>패 트럭이 생산선에서 내려왔다. CA10형이라고 명명한 이 트럭은 당시 쏘련의 <찌스> 150형 트럭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90마력에 차체의 무게가 3.9톤, 적재량이 4톤이였으며 최고 시속은 65키로메터였다.

제1자동차공장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생산한 <해방>패 자동차의 탄생을 성대히 경축하기 위해 트럭에 공장 로동자들을 태우고 장춘시내의 주요 거리를 돌았는데 이 트럭에 앉아 그 력사적 순간을 함께 한 제1자동차공장 조선족건설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채동휘다.

채동휘는 1931년 왕청현에서 태여났으며 1952년에 길림재정문학교에 입학해 공업회계를 배우고 1954년 설립된지 일년밖에 안되는 제1자동차공장에 입사했다. "처음에 총조립직장 재무과에 들어갔습니다. 설립 초기라보니 로동자도 얼마 없었지요. 당시 총조립직장에 북경에서 로동자들이 많이 왔던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채동휘는 비록 재무과에 있었지만 다른 로동자들과 함께 기술교육처에서 내려와 조직한 자동차부품조립강습반에 참가해 조립기술을 배웠다.

 

 

1965년 자동차공장 계획처 통계과에서 근무하던 시절(뒤줄 왼쪽 첫번째)

 

자동차공장 가족사업부 동료들과 함께(오른쪽 첫번째)

 

"1956년 여름에 제가 소속한 총조립직장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해방>패 트럭을 조립해냈습니다. 휘발유 연기를 토하며 서서히 네바퀴를 움직이는 자동차를 보면서 모두들 기뻐서 난리였습니다." 자동차공장에서는 이 기쁨을 한시라도 빨리 장춘시내의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시내안의 주요 거리들을 돌면서 경축활동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총조립직장의 로동자들을 태우고 북경에서 온 자동차운전수가 차를 운전해서 거리로 출발했는데 25살의 채동휘도 그 자동차에 앉는 행운을 지니게 되였던 것이다.

"그날 수많은 장춘시내의 시민들이 거리로 떨쳐 나와서 우리 손으로 만든 <해방>패 자동차를 구경했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자기 집에 경사가 난 것처럼 기뻐했으며 우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습니다. 자동차에 앉아서 동료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는 저의 마음도 격동으로 차넘쳤습니다." 88세에 나는 채동휘는 63년전의 일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 감격스러웠던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채동휘는 그 후 사업의 수요로 훈춘시와 백성지구로 내려가 농촌건설지원에 참가했으며 자동차공장의 경제계획처, 경제청리판공실, 가족사업부, 인쇄공장 등 여러 부문을 돌면서 일을 하다가 1982년에 자동차공장 집체기업관리처로 자리를 옮겨 통계사업을 맡았다. 당시 집체기업관리처 산하에는 230여개의 집체기업이 있었는데 통계부서가 유명무실한 상태여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처음 갔을 당시에는 루적한 통계자료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통계제도와 통계표도 없었습니다." 채동휘는 이전에 경제계획처에서 통계사업을 해온 경험에 비추어 먼저 통계제도부터 세우고 통계표도 직접 작성하였다. 한동안의 고군분투를 거쳐 집체기업관리처의 통계업무는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으며 채동휘는 모두가 인정하는 업무능수로 되였다. 1991년 채동휘는 10년간 몸을 담그면서 말없이 일해오던 제1자동차공장 집체기업관리처에서 퇴직하였다.

길림신문/리철수 정현관 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1
  • 과수원집 며느리→맞벌이 주부→행정사…제1회 시험서 48대1 경쟁 뚫어 고졸 출신에 조선족 유일…대전서 행정사무소 운영하며 억대 매출 올려 휴대전화 저장 고객만 8천명…"이제 지식·경험 나누는 삶 살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지난 2013년 6월 28일 치러진 제1회 행정...
  • 2016-08-22
  • 찾아오는 고객층에 대하여 그는“한사람 한사람 나도 모르게 소문이 나면서 이젠 자주 들리는 고객만 50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법적으로는 아직도 조양천진 광영촌 농민으로 되어있는&nbs...
  • 2016-03-24
  • 중국에서 온 칠장(漆匠) 김성권 올해 스물여덟 살인 김성권은 옻칠장이다. 칠예(漆藝) 장인이라고도 한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팔가자진(八家子鎭)이 고향이다. 전주가 본관에 조상이 경상도에서 왔다는 사실만 알 뿐, 나머지 가족사는 알지 못한다. 아버지 김동철(金東哲·54)은 기관사였...
  • 2016-03-16
  • 지난해 9월, 제44회 세계양봉대회가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꿀벌, 세상을 잇다!”를 주제로 한국 대전시에서 개최됐다. 국제양봉련맹에서 주최하는 세계양봉대회는 아시아에서는 일본(1985년), 중국(1993년)에 이어 세번째로 한국에서 개최됐다. 2002년에 퇴직하고 인생의 제2막을 줄곧 꿀벌연구에 전념해온...
  • 2016-03-01
  • 현대사회에서 민족적 또는 지역적 특징의 아름다움을 지닌 공예품은 전통의 범주를 넘어 문화로 대변되기도 하고 때로는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목, 나무 뿌리, 돌 등의 원자재가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복잡할뿐더러 대부분 완전 수공으로 제작되다 보니 가격이 비싼데다 재고까지...
  • 2016-01-05
  • “예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처음 보는 동판화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너무나도 놀라웠어요. 붓으로 그린 그림보다 더 섬세하고 생동한 표현력에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 들었죠.” 28일, 평범한 가정의 가장인 최병철(63세)씨는 동판화와의 특별한 인연을 이같이 이야기해주었다. 젊은 시절...
  • 2016-01-01
  • 손목의 살짝살짝 움직임에 “슥삭슥삭” 들려오는 연필소리, 다시 지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고무…, 쭉쭉 내리뻗은 연필선으로 륜곽이 뚜렷한 몽타주가 나타난다. 연필 하나로 사건목격자 기억속의 혐의자 얼굴을 종이 한장에 옮겨놓으며 형사사건 해명에 한몫한다. 우리 주 유일한 모의화상 전문가인 ...
  • 2015-12-23
  • —미국 푸르덴셜[Prudential]그룹 생명보험설계사 박홍련과의 만남 필자와 함께 있는 박홍련 《사회복지는 국가에, 생명은 생명보험에 의하여 보장되여야 한다.》이는 일본시즈오까대학 인문사회과학부 경제학과 리련화부교수가 한 말이다. 그의 말에 비추어 가늠해 보면 《지진국》으로 불리우는 일본이 생명보험대국...
  • 2015-12-07
  • [인터뷰] 한·중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 티앤씨네트웍스 CEO 김홍화 씨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국내 외국인 유학생 8만명 시대, 낯선 한국 땅에서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창업을 실현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창업의 종류는 IT, 무역, 여행사, 컨설팅, 음식점, 옷가게, 신발가게 등으로 다양하다...
  • 2015-11-17
  •  상해동화대학교 장순애교수 《옛날 부자집에서 녀성을 위해 한곳에 산과 들을 가둬넣은게 바로 정원이죠.》 그녀는 정원의 시원을 이렇게 해석하고있었다.   정원은 정자와 루대, 집의 전후와 좌우가 건물이거나 담에 에둘린 장소를 말하는데 중국 대륙에서 천년을 이어 전승되고있는 독특한 건물양식이다. 선민...
  • 2015-09-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