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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으로 빚어내는 전통의 맛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4월28일 09시50분    조회:5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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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허향순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허향순 사장의 뭉근한 뚝배기사랑
 

사진: 허향순
 
그 세월로서는 흔치 않게 넉넉한 가정에서 고생이란 게 뭔지 모르고 자란 그녀는 1980년대초에 장춘상업전문학교 중약과를 졸업하고 연변의약공사에 배치받았다. 당시 의약공사 약제사라 하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였다. 
 
1990년대초, 남편 친구의 초청으로 그녀 내외는 한국으로 려행을 떠나게 되였다. 그 곳에 한달간 머물러있으면서 우연히 한의원 원장을 만나게 되였고 그 원장은 중국에서 건너온 약제사라는 직업에 깊은 흥미를 가지면서 그녀에게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제안하였다. 당시 한국은 로임표준이 높은 데다 환률까지 탱탱하여 한국에서 제시한 한달 로임은 그나마 대우가 좋다는 의약공사에서 그녀가 받는 일년 로임보다도 훨씬 높았다. 무엇보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여서 무등 기뻤다. 원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그녀는 연길에 돌아와 직장에 무급휴직을 제출하고 다시 한국으로 나갔다. 그러나 중도에 한의원 원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출국을 해야 했기에 한의원은 잠시 문을 닫아야 하였다. 원장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친구가 하는 밥집에 머물러있으라고 소개해주었다. 
 
당시만 해도 연변에서는 일년 가도록 결혼식 같은 것이 있어야 겨우 식당이란 곳에 들어가볼 수 있었고 음식에서도 중국료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테블 몇개 갖추어놓고 장사하는 밥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친숙하게 와닿았고 뚝배기에 담은 찌개가 손님 상에 올라서도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을 보니 마음속에서 난류가 요동쳤다. 그 옛날, 가난했던 세월 할머니가 언제나 풍로불 우에 손으로 두드려 만든 투박한 뚝배기를 올려놓고 찌개를 끓여서 할아버지의 진지상을 차려드리지 않았던가. 어린시절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그녀는 우리 민족 전통문화의 뿌리 깊은 속성에 고개를 숙였다. 은연중 전통음식의 맥과 맛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가게에서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워낙 음식솜씨가 좋고 음식에 애착을 갖고 있던 그녀는 식당에서 잠간 일하는 사이에 홀을 맡았음에도 주방을 드나들면서 찌개메뉴들을 노트에 적어두었고 그 조리법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익혀두었다. 
 
일년을 못 채우고 귀국길에 오른 그녀의 짐 속에는 자그마한 뚝배기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동안 번 돈은 그 때에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수자였다. 수중에 돈은 있고 아직 무급휴직 기간은 2년이나 남아있으니 한국에서 시간의 개념과 돈의 가치를 새롭게 깨우친 그녀로서는 편히 보낼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남편의 권유로 그녀는 연길 번화거리에 70평방메터 되나마나한 자그마한 다방을 차리고〈연성다방〉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전 연길시내를 통털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다방이 적다보니 얼마 안 지나 가게는 매일 초만원을 이루었다. 그녀는 직원들의 음식까지 직접 집에서 해 날랐다. 당시 배달은 꿈도 못 꾸었고 돈을 주고 음식을 사먹으려 해도 식당 자체가 거의 없던 세월이였다. 매일 하루 세끼 음식을 해서 나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 즈음 연길에 식당이 몇집 섰다. 다방 직원들은 그녀의 음식을 맛 보고는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또 친정엄마의 음식솜씨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자신이 생겼는지 그녀는 자신도 식당을 차려보고 싶었다. 식당을 떠올리자마자 뚝배기가 머리속에서 맴돌았고 그녀는 망설임없이 가게 이름을〈연성뚝배기〉로 정하였다. 이번에는 메뉴를 정할 차례였다. 그녀는 가장 먼저 시집 와서 시어머니가 매일같이 노란 양재기에 보글보글 끓여드시던 청국장이 떠올랐다. 하여 시어머니의 대표메뉴인 청국장찌개를 된장찌개, 오누이장, 동태찌개, 콩나물국과 더불어 가게 메인메뉴로 내놓았다. 
 
가족들에게 늘 풍성한 식탁을 차려주던 친정어머니, 동료들과 나눠 먹으라고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싸주던 시어머니. 이런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아 그녀는 내 가게에 찾아 들어온 손님들에게 푸짐하게 대접시켜드려야겠다는 경영 철학을 바탕에 두고 가게를 운영하였다. 그녀는 밑반찬 하나에도 온 정성을 쏟았다. 정갈하고 맛갈스러운 밑반찬은 손님들의 발길을 잡는 데 한몫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자그마한 가게가 오늘날 어엿한 기업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전통음식에 대한 그녀의 깊은 사랑과 혼신을 쏟아온 그녀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다.
 
25년 경력의 베테랑이더라도 음식을 만드는 데 쏟는 정성은 25년전 그 때의 초심 그대로다. 그러나 시련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그런 그녀에게도 어김없이 시련이 찾아왔다. 
 
다년간 그녀는 명절이라면 크든 작든 빼놓지 않고 가게에 찾아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명절 음식을 대접하면서 명절의 즐거움을 함께 나눠왔다. 
 
2015년 동지날이였다. 배달앱을 도입한 지 얼마 안되였을 때였다. 그 날 따라 일년에 한번 있는 중요한 회의가 잡혀있어 그녀는 하루종일 자리를 비우게 되였다. 저녁 무렵에 회의가 끝나기 바쁘게 가게로 달려오니 가게 안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거기에 오그랑죽 배달주문까지 밀려 직원들은 저마다 팽이처럼 돌아치고 있었다. 우리의 전통음식을 반기는 고객이 많다는 사실에 그녀는 속으로 흐뭇해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배달음식에서 그만 실수가 빚어지고 말았다. 가게에 들어온 지 한달 남짓 되는 남방적 한족복무원이 주방에서 오그랑죽을 포장하고 있었는데 포장그릇을 들여다보니 그릇마다 새알심은 거의 보이지 않고 멀건 팥물뿐이였다.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밑으로부터 저으면서 고소한 팥물과 쫄깃쫄깃한 새알심을 골고루 담아야 하는데 밑에 새알심이 가라앉아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복무원이 거의 팥물만 담아 내보냈던 것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오전에 몇몇 직원들을 모아놓고 차근히 배워주었는데 일손이 딸리다보니 그들은 가장 쉬워보이는 포장일을 햇내기 복무원에게 맡겼던 것이다. 이미 삼십여그릇은 손님들에게 전해진 뒤였고 열그릇 정도는 배달 도중에 있었다. 배달중에 있는 음식은 도로 가져오게 하고 이미 음식을 전해받은 손님들에게는 기록을 찾아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과하였다. 그러나 쌀쌀맞은 손님들의 태도는 비수처럼 그녀의 가슴에 꽂혀왔다. 일에서 만큼은 깐깐하여 평소에도 손님상에 오르는 메뉴와 반찬을 에누리없이 점검해온 그녀인데 하필이면 명절날 이런 실수가 생기다니. 오그랑죽을 받아들고 기분이 잡쳤을 손님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죄 지은듯 마음이 무거워났다.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어찌됐든 가게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 누굴 탓하겠는가. 
 
남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시련이라고 할 수 있더라도 여태 좋은 이미지로 영업해온 그녀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일로 그녀는 몇날 며칠 발편잠을 못 잤다. 안스럽게 그녀를 지켜보던 딸이 손님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고아원을 방문하여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기특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녀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하여 동지날 오그랑죽을 팔아 올린 수입에 직원들이 자원하여 내놓은 돈까지 3,000여원에 달하는 현금과 아이들이 반길 간식거리를 두루 사들고 고아원을 찾아갔다. 그 날 부모없이 자라는 어린 동심을 어루만지고 돌아오니 속이 퍼그나 후련해났다. 
 
한번 아팠던 일은 쉬이 잊혀지지 않고 앙금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 이듬해에도 설 림박이 되자 그녀는 지난날의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고 일년 사계절 널직한 가게 앞마당을 깨끗이 쓸어주는 환경미화원들의 로고에 보답하고저 따뜻한 식사 한끼를 대접하기로 마음을 베풀었다. 그녀의 넉넉한 인심이 칼바람으로 얼어붙은 환경미화원들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뚝배기처럼 푸근하고 따뜻한 나눔을 그녀는 4년 째 이어오고 있다. 
 
오랜 세월 한결같은 맛과 정성 덕분에 꾸준히 많은 손님들이 찾아주고 있다만 류행을 타는 손님들의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입맛에 맞추려고 그녀는 단 하루도 고민과 걱정에서 자유로워진 적이 없다. 다년간의 경영으로 축적된 노하우도 적지 않을 텐데 그녀는 시종 초심을 잊지 않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뿌린 만큼 거둔다고 25년이라는 긴 려정을 걸어오면서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는 뿌듯하고 값진 성과들을 이뤄냈다. 선후로 중국료리파워브랜드, 전국소비자안심브랜드, 연변지방특색브랜드, 길림성브랜드로 명명되였다. 청국장은 길림성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였으며 그녀와 딸 최희연양은 조선족청국장제조기예 성급 대표전승인으로 명명되였다.
 
전통문화에 쏟는 그녀의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언젠가는 전통음식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작게나마 보탬이 되였으면 하는 기대로 연변조선족전통음식연구소를 내왔다. 그리고 몇해전에는 식자재 저장, 숙성 장소로 제격이거니와 손님들이 우아하고 멋스럽고 고즈넉한 전통가옥의 정취를 흠뻑 느끼면서 전통음식을 맛 볼 수 있도록 전통과 문화가 공존하는 ‘연성각’이라는 이름의 전통가옥을 지었다. 그녀는 해마다 한두번 연성각에서 유익하고 다채로운 전통문화행사를 벌려 우리의 전통음식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데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다. 2016년, 연성각에서 치러진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설립 20주년 기념일 행사에서는 행사장 한쪽을 전시장으로 만들어놓고 판매한 수익금 전액을 홍수피해지역에 전달하여 그 의미가 이색적인 사랑의 리레를 이어갔다.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얼마나 큰지 그녀와 최희연양을 통해서 새삼 알 수 있다. 최희연양은 2014년에 학교를 졸업하기 바쁘게 길림성브랜드에 등재하기 위한 자료 정리를 도맡아하고 여러모로 많이 뛰여다녔다. 그 가운데서 20년간의 엄마의 발자국을 돌아보게 되였고 오늘날의 브랜드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엄마의 꾸준한 집념과 전통음식과 끈끈하게 이어진 엄마의 깊은 사랑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게 되였다. 전통음식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엄마의 영향으로 최희연양은 우리 전통문화에 대해 친숙함을 느꼈고 어느 순간 우리 전통문화를 지켜나가야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였다. 현재 연변조선족전통문화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최희연양은 음식에 쏟고 있는 엄마의 정성과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닮으려고 늘 왼심을 쓰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전통에 편안히 다가가고 공감할 수 있도록 최희연양은 엄마와 손 잡고 젊은 감각이 흐르는 다양한 전통문화행사를 조직해오고 있다. 
 
오랜 세월 흔들림없이 전통 맛을 지켜온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가 온기를 가득 담은 뚝배기처럼 손님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이어받기를 바란다.
연성전통음식유한회사 허향순 사장은 정성과 마음을 담은 음식을 만들며 오늘도 나름의 맛과 멋을 뿌려가고 있다. (연변녀성 2020년 제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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