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오향옥-드라마제작 변신 꿈꾼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9월1일 19시11분    조회:1790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변신을 꿈 꾸고 있는 조선족여인-오향옥 [img count='1' width='350 img] 영화 및 드라마 제작인 오향옥과의 인터뷰 내용: 기: 오늘은 연변조선족자치주 문예창작 편집실에서 사업하고 계시는 오향옥선생님을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 안녕하세요, 저는 연변문예창작실 베이징 주재 중국라디오텔레비죤방송 및 영화총국 대외영화합작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오향옥입니다. 기: 1990년 중반부터 오향옥선생님은 드라마 "사랑의 품", "샘", "가족사진" 등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전국의 조선족에게 널리 알려졌고 지금은 또한 텔레비죤과 영화 제작인으로서의 꿈을 열심히 펼쳐가고 있는데요, 지금은 제작인으로서 활약하고 계시지만 전에는 무용가와 안무가로 이름나지 않았습니까, 무용은 언제부터 배우셨는지요? 오: 네, 어린 시절 이모한테서 배웠어요, 이모가 연변조선족예술단의 안무가셨거든요. 기: 유명한 안무가로도 무용 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셨는데요 오: 네, 92년의 전국 무용극 콩클에서 좋은 호평을 받았고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당시에 춘향전이 히트를 쳤는데요, 이듬해에 "장백산천지의 전설"이란 무용극을 창작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용극 창작은 처음이다보니 배우면서 만들었고 또한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특히 길림성 가무단의 진향란 선생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기: 1995년 드라마 "사랑의 품"에서 주인공 선희의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했는데요, 이것이 안무가로부터 영화배우로 되기까지의 인생의 전변의 계기가 되지 않았습니까? 오: 네, 그 당시는 영화배우로 되기까지 상상도 못했어요. 방미선 감독님께서 고무를 해주셨어요,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로 되고 싶었지만 이룰수 없는 욕심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극본을 보고, 또한 감독님께서 믿고 고무해주시니깐 할 자신이 생긴거죠. 기: 첫 드라마를 찍으면서 재밋는 에피소드는? 오: 네, 첫 장면 찍던 때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린 주인공 '백설'의 손을 쥐고 길을 걷는 장면이었는데 일여덟번을 찍었어요. 자꾸 무용동작이 습관처럼 나와서 무척 힘들었죠. 배우는 생활자체가 드라마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 때는 무대위보다 더욱 긴장했어요. 다리가 떨려서 발걸음을 내디딜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감독님들이 믿어주고 고무해줘서 잘 넘겼던것 같애요. 기: 무용의 기초가 배우의 연기에 좋은 영향도 미쳤겠죠? 오: 네, 물론이죠.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했었고 창작을 위해 특별히 안도에서 시골에 다니면서 연기 표현에 필요한 곳을 많이 다녔어요. 이 모든게 결국은 드라마 촬영에서 큰 도움을 줬어요. 남의 인생체험이 연기의 기초가 되었던거죠. 기: 무용수로부터 배우에로의 변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 잘 된거죠.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특히 무용기초가 있다보니깐 자신감이 생겼어요. 기: 첫 드라마를 찍은 뒤를 이어 "샘"에서의 어머니역, "가족사진"에서의 맏며느리역, "하얀 꽃"에서의 의사역을 윤활하게,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평가를 받았는데 특별히 연기를 배운적은 없었어요? 오: 없었습니다. 드라마 연기를 주위 작가선생님과 감독님들이 믿고 배워주셨습니다. 여러가지 유형의 인물을 찍는 과정에 점차 자신감이 들었어요. 기: 2000년에 중앙텔레비죤 6채널의 특집프로 "벼랑가에서"에서 처음으로 부연출을 맡았는데 어떻게 되어서 배우로부터 연출을 담임하게 되었는지요? 오: 연변에서 배우로 활약하면서 점차 승인받은것 같애요. 당시 중앙텔레비죤방송의 6채널이 연변텔레비죤방송과 합작하여 프로를 제작하게 되었는데 고맙게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저를 추천해 주었어요. 한족분들과 같이 일하면서 언어장애도 있었고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합작이 잘 되었어요. 여러번 방송되었구요. 제작과정에서 서로 정도 두터워지고 많은걸 배우게 되었어요. 기: 지금의 가장 큰 꿈은? 오: 조선족 드라마를 제작해 전국시장에 내놓는 것이에요. 기: 무용수로부터 배우로, 배우로부터 영화와 드라마 제작인으로서 끊임없는 변신을 꿈꾸고 있는 오향옥선생님, 오늘 참으로 좋은 얘기 많이 나눴습니다. 앞으로 그 꿈을 펼쳐가는 과정에 좋은 성과가 이룩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 감사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신약발명가, 난치병전문가, 의학저술가로 의학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는 60여세의중년사나이, 민간에 《난치병을 떼려거든 장춘중의약대학의 남정의사를 찾아가라》는 말이 퍼질 정도로 명성 짜한 남정. 중의학교수, 중의과학연구와 림상진료에 종사해온 40년간 남정은 중풍, 간염, 당뇨병, 심장병 등 현대의학이 채 정복하지...
  • 2006-08-21
  • [원제:빈 출신 세 조선족청년 "래일 최고의 별은 우리"] 며칠전 결속된 제2회 전국조선족성악콩클에서 유일하게 그룹 형식으로 참가한 남자3인조 토이그룹(极度玩具组合)이 관중들로부터 인기를 독차지하다싶이 하여 화제로 되고 있다. 준결승전에서 무대에 입장하자마자 깔끔한 이미지와 청춘의 싱싱함으로 우...
  • 2006-08-21
  • [img count='1' width='400' img] 한국중소기업진흥공단 중국사무소 황규주 소장 기자: 현 한국 중소기업들의 중국진출 현황? 황소장: 한,중 양국관계는 1992년에 수교한 이래 급속하고도 전면적으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2003년 한, 중 양국정상이 합의했던 5년내 1천억$ 교역 목표를 3년이나 앞당긴 2005년도에 달성했고...
  • 2006-08-19
  • ——— 려성주씨 한국서 번 돈 60만원 '록색은행'에 투입 밀산시 흥개진 동광촌 려성주씨는 한국에서 번 돈을 '록색은행'에 투입하여 년 10만원이상의 가치증식을 실현하며 고향마을을 지키는 사철푸른 '소나무'로 존대받고 있다. 목공으로 줄곧 일하다가 1992년 한국에 가서 4년간 로무하고 1996년 귀국하여...
  • 2006-08-18
  • ——— 오상시 민락조선족향 제1임 당위서기 김련수 인터뷰 "참 감회가 깊습니다. 우리 민락향이 설립돼서 50주년을 맞았는데 그간 많이 변했습니다. 1939년 나는 이곳에 이사왔습니다. 당시는 이곳이 습지였는데 우리 조선족들이 땀을 흘려 옥답으로 만들었습니다. 해방전쟁 시기에는 1000명이 참군하여 20...
  • 2006-08-17
  • 아직도 미국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9일로 60회 생일을 맞는다. 퇴임 이후에도 여전히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젊다고 생각하지만 벌써 환갑을 맞았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베이비 붐 세대로 42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제16회...
  • 2006-08-16
  • 안마라면 스트레스를 풀거나 보건을 하는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요즘 족부안마로 병치료에서도 큰 몫을 담당하고있어 사람들의 화제를 모으고있는 《성보족료건강원》이 주목을 끌고있다. 《사람이 병에 걸렸다면 병근을 정확하게 진단해내는것이 관건입니다. 만약 한 나무가 병들어서 나무가지가 죽어가고있다면 그 나무가지...
  • 2006-08-16
  • 흑룡강성 아성시 료전조선족만족향 홍신촌의 송영자(59세)당지부서기와 할빈시 명일시멘트제품유한회사 장일홍(37세)총경리가 올해 흑룡강성 10대 걸출녀성 후선인에 선정되었다고 '흑룡강신문'이 보도했다. 손영자는 홍신촌 당지부서기로 사업한 14년래 조선족의 친연우세를 살려 미국, 일본, 한국 등 나라에 근 1000명의 ...
  • 2006-08-16
  • 지체장애인 최홍매의 이야기 왕청현 서성가두 신민사회구역에 《비너스외국어양성쎈터》가 있는데 쎈터 운영자는 올해 39세인 지체장애자 최홍매이다. 태여나서 8개월만에 소아마비후유증으로 왼쪽다리가 불구로 된 최홍매는 어려서부터 자립, 자강 정신을 키워왔다. 공부는 잘했으나 신체상의 원인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던 ...
  • 2006-08-15
  • 지금도 몸매가 제격인 47세의 야마구찌 모모에는 화장하지 않은채 슈퍼마켓에 쇼핑 다닌다. 연예계에 발을 붙이기 위하여 많은 한국혈통의 일본 연예계의 스타들은 처음에는 변성명을 하고 입문한다. 중국관중들이 익숙히 알고 있는 야마구찌모모에도 그중에 속하는 한사람이다. 야마구찌모모에의 아버지는 한국인인데 일찍...
  • 2006-08-14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