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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그 ‘거칠은 손’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7일 09시10분    조회: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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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0)

◇박철원(연길)

필자 박철원 부부 오늘도 당교에서 함께 ‘충전’하며 나란히

1973년 28살에 결혼한 나는 올해 73세로 45년 혼인생활 남들의 부러움 속에서 오누이를 출세시키며 ‘잉꼬’라 불릴 만치 탄탄한 혼인생활을 이어왔다.

우리가 변치 않는 부부로 살아오는 데는 비방 하나가 있는데 바로 잊을 수 없는 추억- 그 날의 그 ‘거칠은 손’과의 악수이다.

1972년 음력설, 돈화은행에서 사업하던 나는 설 쇠러 조양천 부모집으로 나왔다. 휴가가 끝나기 전날 옆집아주머니가 자기네 가문에 훌륭한 처녀가 있다며 무작정 나를 끌고 동불사로 갔다. 인물도 체격도 마음도 다 좋은데 집이 너무 가난한 것이 흠이라며 맏아들 노릇하는 김봉선이라는 처녀와 대면시켜주었다.

처음 그녀와 악수를 나누는 순간 나는 감짝 놀랐다. 마치도 나무뿌리를 잡아쥔 감각이였다. 온몸이 ‘찡’해났다. 은행에서 붓을 놀리는 28살 총각의 두부살 같은 손과는 너무나도 큰 대조였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그 손이 그녀에 대한 소개를 실증해줬다.

‘고생을 많이 했기에 행복을 읽을 줄 알 것이고 돈만이 아닌 사랑을 앞세울 녀자이구나.’

그리하여 나는 그 손부터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그녀와 사귀였다. 그 ‘찡’하던 자극이 우리를 이어놓았다.

한번은 그녀가 간단한 선물을 부쳐왔는데 코바늘로 뜬 목깃이였다. 그 손으로 떴다고는 믿기 어렵게 곱게 뜬 것이였다. 그리고 그 뒤 날아오는 편지마다에는 고운 글발이 꽉 차군 하였는데 ‘그 손으로 썼을가?’ 하며 나는 읽고 또 읽군 했다.

봉선의 그 손도 또박또박 글공부할 때는 포동포동했을 터이고 가늘고 기다랗게 바이올린을 켤 수 있는 손가락이였을 테고 곱던 그 손을 탐내는 총각도 많았을 것이다

학교를 나와 농촌단련을 할 때부터 그 손은 거칠어지기 시작했단다. 부녀주임이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 밥 지으라고 종을 치고 집집이 깨워주어야 했고 기운 장갑 얻어끼고 대채식 농사일에 언 흙덩이 다루어야 했으니 그 손부터 변하게 되였다.

맏딸이다 보니 아버지 병구환에 애쓰다가 여의고, 다섯식솔의 호주 노릇을 하며 겨울에는 소수레를 끌고 산에 올라 땔나무를 찍어오던 손이다. 곱게 자리잡아야 할 처녀의 손이 때이르게 생활의 세파를 겪으며 남자들 손 넘치게 억세게 자리매김하였다.

1년간의 련애생활을 거쳐 1973년 1월 나는 나를 ‘찡’하게 만든 ‘미운 손’ 가진 봉선이를 안해로 맞아들여 그 손이 내 손으로 되였다. 뭇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부가 되자고 다짐하며, 마음도 돈도 더 큰 고생 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결혼 후 안해는 돈화의 식료품상점에서 그 손으로 5키로그람짜리 작두칼을 다루며 언 돼지고기를 찍어 팔았고 생활보탬을 위해 엄동설한에 눈 속의 사탕무우 다듬기도 하다 보니 그 손이 사탕무우보다도 더 험하게 거칠어졌다. 식료품공장의 종이사탕 감기 부업 때에도 손은 거칠어도 솜씨만은 너무 재여 수십명 녀성들 중 제일 많이, 제일 빨리, 제일 곱게 감는 사람이 되여 “조선족녀성이 다르다”는 평판도 받았다. 그러나 손가락끝이 사탕에 닳아 피가 터지는 고통까지 겪었다.

안해는 생활에 보태려고 밤시간을 타 세멘트공장의 세멘트포대 나르는 일도 찾아하였다. 50키로그람 되는 뜨거운 세멘트포대를 창고로 옮겨다 쌓는 일을, 뜨거운 열에 땀범벅, 세멘트먼지에 눈알만 판들거리는 먼지범벅이 되여 한포대에 10전을 버는 일, 남성들도 당해내기 어려운 일을 자식을 위해, 동생들을 위해, 남편의 부담을 덜려고 해내였다.

목기공장에 다닐 때에도 그 손은 여느 남자 못지 않게 막히는 일 없었다. 통나무 굴리기, 널판자밀차 밀기, 나무구슬 깎기… 림업국 묘포장에서 나무 심기, 나무 뽑기를 하였고 돌아오는 길에는 돼지풀도 한임씩 이고 왔다. 돼지풀 진에 ‘미용’된 거칠은 손은 색갈마저 변하였다. 새벽에 일어나 보일러 석탄재 속의 콕스를 주었으며 겨우내 식량보탬으로 10포대의 감자를 깎은 손이다. 식솔이 많고 로임이 적다 보니 생활난은 컸지만 그 날의 그 ‘찡’하던 추억이 나에게 행복하게 살아가려는 힘을 주고 또 주었다.

지난 세기 70년대, 그 손은 이처럼 험한 일들을 면치 못했다. 그토록 험하게 당하는 손이건만 그 세월에는 저녁에 20전짜리 ‘조개약’을 쓱 바르면 그만이였다.

남편을 살리려고 김이 나는 태반을 구해다 그 손으로 씻고 삼복의 찜통에서 화로불을 피워놓고 가공했으며 밤 새우며 식구들 털실옷 떠입히고 자기 아이들 옷은 기워입히며 친척집 아이들이 놀러 오면 새 옷견지 사입혔다. 시동생의 생일에 3원을 부쳐주라고 하였는데 안해는 그 손으로 5원을 부쳤다.

그 손으로 회계실무를 배워내였기에 은행구좌행표를 떼거나 로동자들의 로임 발급으로 많은 돈을 다루었지만 한번도 차실이 생긴 일이 없었다.

그 손으로 1986년에 입당지원서을 썼고 주먹을 굳게 쥐고 당기아래에서 선서하였다.

거칠은 그 손으로 아이를 문질러주면 너무너무 시원하여 곧잘 잠들었고 그 손으로 나와 애무하면 나도 너무너무 즐거웠다. 고무장갑 한짝 없어 맨손으로 양념을 다루어 열 나는 손을 밤새껏 찬물에 불구며 담근 김치는 해마다 일찍 거덜났고 그 손으로 주물러 만들어주는 안주는 그렇게도 맛있었다.

그 손으로 시어머니 등 밀어드렸고 미음을 떠넣어드렸으며 대소변 시중도 알뜰히 하였다. 또 그 손으로 며느리 출산간호를 하여주고 사위가 좋아하는 료리도 즐겨 볶았다.

그 손이 있었기에 아들딸 출세하고 손군들도 총명하게 잘 자란다. 그 손의 보살핌에 남편이 나이보다 젊게 살아가며 고부간 소문 높게 화목했으며 형제들이 다정하고 사돈간에 형제처럼 지내고 동네에서도 서로 도우며 행복하게 산다. ‘찡’하게 놀랍도록 ‘거칠은 손’과의 악수가 언제나 우리 삶의 힘이 되였다.

우리 둘은 두 손 마주잡고 사교무를 배워냈으며 금강산 유람길도 손잡고 함께 톺았고 조선 원산 앞바다에서 물장구도 쳤다. 일본 아까와온천에서 둘이 두 손 꼭 잡고 1박2일의 귀족대우생활의 즐거움도 만긱하였다. 무거운 짐에는 언제나 함께 내미는 우리 두 사람의 두 손이다.

안해가 지역사회 주임 겸 당지부서기 사업을 하는 7년간 그 손은 더욱 쉴 새 없었다. 손은 거칠어도 마음만은 부드러워 서민들의 아픔을 덜어주려고 동분서주하며 상급에 보고서를 써올리고 그 손으로 길가에 쓰러진 로인을 인중 안마하며 구급하고 전국 문명도시건설에서‘5호문명가정’의 영예를 따냈으며 거칠어진 그 손으로 ‘자치주민족단결진보모범’ 상패를 받아안았다.

지금도 안해의 손은 쉴 새가 별로 없다. 빨래질, 장판 닦기, 밥짓기… 손에 물 마를 새가 없고 아직도 해야 할 일 많다며 두 손을 비비며 자아안마한다. 영원히 퇴직휴양할 줄 모르는 안해의 ‘거칠은 손’은 행복을 키우고 재부를 모으며 기적을 쌓는다. 인젠 험한 일은 없으니 손바닥 장알은 풀어졌어도 굳어진 손마디는 그루박았고 손등에는 때이르게 불청객이 찾아와 고운 검버섯이 내리여 수놓아졌다.

지금도 때때로 고단히 잠든 안해의 그 거치른 손을 살며시 잡아볼 때면 처음 잡아보던 그 날의 그 ‘찡’함이 생생히 감각된다.

살아오다 보면 고달플 때도 있었고 불쾌할 때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 ‘찡’하던 첫날의 악수에서 놀라던 일이 떠오르면 모든 일이 다시 사랑으로 변하군 한다. 그 날의 그 감각이 나를 45년 지켜주었고 우리의 혼인을 떠밀어주고 있다. 이 생애에는 사라질 수 없는 너무도 보귀한 ‘거칠은 손’ 추억이다. 그 추억이 우리 사랑의 시작이였고 그 추억으로 45년 손잡고 나란히 걸었으며 그 추억이 우리의 석양을 진붉게 진붉게 물들여가고 있다.

그 날의 그 추억 속에 우리는 꼭 잡은 두 손으로 자식들의 효도를 받으며 금은보화를 관리하고 두 손 함께 내밀어 손군들의 명문대학 입학통지서를 받아보며 시대를 따르는 ‘잉꼬’부부로 살아가리라!

회혼례의 술잔도 함께 받아마시자는 약속을 지키며 이 세상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도록 열심히 풍요롭게 로후를 장식하며 오래오래 살리라!

언젠가 내가 이 세상 먼저 간다면 봉선이는 그 손으로 내 눈을 쓸어줄 것이고 만일 당신이 먼저 간다면 나는 우리 사랑이 시작되고 애정이 슴배여 굳어진, 나를 ‘찡’하게 놀래운 그 거치른 손부터 잡아주리라.

나는 인젠 손이 거친 녀자면 좋은 녀자라는 관념까지 선다.

나는 ‘거치른 손’에 반한, ‘거치른 손’을 가진 봉선의 남편이다.

짜릿하던 그 날의 ‘거치른 손’ 잡던 추억은 우리 행복을 쌓아가는 비방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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