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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88]농부로 살아온 재미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6월15일 00시00분    조회: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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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6)

▩김덕운(장춘)

1966년 민병패장으로 있은 필자(중간줄 왼쪽 첫 사람) 등이 입대하는 청년을 환송하며 남긴 사진

나는 흑룡강성 오상현 향양공사(지금은 향양진) 중원 3대에 살았다. 그 지대는 수전지구로서 아무리 곤난한 년대에도 주식은 입쌀밥이였다. 그래서 시내 월급쟁이들도 흠모하는 곳이였다. 지금도 오상입쌀은 이름이 있다.

때는 1963년, 내가 생산대에서 일을 시작한 해였다. 아버지가 조선으로 나가고 어머니 혼자 우리 일곱식솔을 먹여살리기 힘들었기에 나는 중학교 3학년에서 중퇴하고 농사일에 참가하였다. 원래 대대병원에서 일했던 아버지를 따라 공급량이였던 나의 호구도 농촌호구로 영원히 정착했다.

당시 우리 민족은 한자가 짧아 저녁에는 한자공부를 하였는데 내가 한족학교를 다녀 한어를 좀 한다고 야학에서 한자를 가르치게 하였다. 열심히 한 데서 이듬해인 64년 봄에는 현 문맹퇴치 적극분자 대회에 감창극 단지부서기와 함께 참가하게 되였다.

그 후부터 나의 열정은 더 높아져 낮에는 생산대 일에, 밤에는 대대 청년단지부에서 조직하는 청년활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러니 친구들도 많아지고 수집던 아이가 양기도 늘어나고 대대에선 뜨문뜨문 이 일 저 일 책임지워 보내기까지 하였다.

1963년도 우리 지방엔 엄중한 도열병이 돌아 벼품종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 봄에 대대에선 각 대소차를 동원하고 나를 공사 농기참 참장과 같이 우리 마을에서 50여리 떨어진 산하진 중심량고에 가 벼종자를 실어오게 하였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산하에 도착하니 봄비가 추적추적 내려 종자고에선 문을 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우리 일행 10여명은 마차점에 묵게 되였다. 그런데 사람보다 소들이 문제였다. 사람은 굶어도 소들은 한때도 굶기면 안되였기에 양참장과 토론하고 부근 생산대에 가서 여물과 사료를 얻어오기로 했다. 한 생산대에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니 그들은 썰어놓은 여물을 마대에 가득가득 담아주며 가져가라고 하는 것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시 사양원들도 고마왔지만 비록 고난의 년대였지만 그 사회 그 풍토 민심이 얼마나 후하였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날 저녁 나는 각 대에서 온 차부들과 함께 마차점에 묵으며 그들에게 식사를 마련했다. 차부들은 다 40~50대 어르신들이라 술도 사드렸더니 같이 한잔 하자고 하였지만 당시 열아홉살이였던 나는 술 마실 줄 모른다며 내 밥만 먹던 일이 어제 같다.

이튿날 날이 개여 종자창고에서 종자를 싣고 돌아왔다. 그 해부터 옛날 몇십년 심어오던 아오모리 일본벼종자가 종적을 감추기 시작하고 해마다 새로운 벼종자가 논판에 퍼지기 시작했다…

10년 동란 때도 우리 대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량식생산을 위주로 한 농토기본건설, 가정을 단위로 한 부업, 주택건설 등을 틀어쥐여 농사는 해마다 풍작을 거두어 나라에 량식을 많이 바쳤다.

자금이 있게 되니 손잡이뜨락또르, 거기에 련결된 농기계 설비를 마련하고 봄엔 비닐박막모를 키워 건실한 모를 심어 풍작을 보장했다. 화학제초가 보급되니 여유로동력이 있게 되여 더 많은 로동력이 퇴비를 장만할 수 있었다. 하여 42쌍의 면적에 매 3년에 한번씩 전면 퇴비를 깔도록 하니 땅은 걸어지고 수확은 올라갔다.

자금도 올라가고 로동력도 여유로우니 철목공소, 량식가공소, 국수가공소 등 부업장을 만들어 대외돈도 벌고 본 대의 농기계도 수리해 사원들에게 편리를 주었다.

기계는 있다 하여도 소는 그래도 논농사에선 필요한 존재이다. 그리하여 소사양실을 벽돌집으로 크게 지어 여름에 비가 오면 질척질척하던 우사는 배수가 잘되고 차가 들어가 직접 소똥도 실어내게 만들었고 나무 패서 불 때던 부엌을 석탄에 불을 붙여 전기만 누르면 되는 신식 부엌으로 만들었다.

오상현 통신원학습반 기념(앞줄 왼쪽 첫 사람이 필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집체살림은 나날이 불어나고 사원들의 생활도 의식주가 풍요롭게 되였다.

그런데 세상은 더 잘살라는 정책이 왔다. 더 풍요롭고 다채로운 삶을 기원하며 몇십년의 집체체제는 해체되였다.

나도 더 잘살아보자고 고향을 떠나 장춘 근교로 와 새로운 개척자의 기분으로 억척같이 일하며 해마다 풍작을 거두었다. 남들이 모두 돈 벌려고 한국행을 할 때도 나는 2012년까지 줄곧 농사를 지었다.

생각해보니 평생을 농사를 지었어도 집체생산대 시절에 사원들과 함께 사시장철 함께 일하며 계절 따라 웃고 떠들며 총화 짓고 하던 때가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기음철엔 노래자랑 하다 싶이 노래 부르며 노래 넘기기도 하고 년말총화 땐 돼지를 잡아놓고 대잔치를 벌리며 춤추고 노래하며 새해를 기약하던 일, 개혁개방 후에는 농호도급제를 실시하였지만 서로 만나 농사계획을 토론하고 서로 방조하면서 만원호를 향해 일하던 그 세월들.

농민은 세상에서 제일 마음이 후하고 또한 자유로운 군체이다. 그 계급투쟁이 심할 때에도 고향사람들은 서로 믿고 지지해주었다. 아버지가 조선에 간 연고로 동생이 중학교에서 교원직을 박탈당하고 집에 왔을 때도 기시하거나 비웃지 않았으며 생산대 회계까지 맡겨주었다. 동생은 반년 후 단위에서 다시 불러갔다. 나도 비록 당원은 아니여도 대장, 회계로 수년간 선거해주어 사회에서 기가 죽지 않고 살았으며 장춘으로 떠날 때에도 대대에서 대장을 선거해놓고 가라고 하여 대장을 선거해놓고 떠났다.

나는 지금도 당시 대장을 하면서 사원들을 굶기지 않았고 그리 풍부하지는 못하여도 국가 ‘전시량’을 먹이지 않았으며 해마다 꼭꼭 국가에 공량 임무를 초과완성해 바쳤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이 어디에서든 자기를 이 사회에 융합시키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된다.

오늘까지 평생 농부로 어머님 모시고 동생 넷, 아들 삼형제 모두 공부시켜 성가시켰으니 마음의 부자라 할가! 그간 로고가 있다 해도 농부의 한생 무한 일이 좋았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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