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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03]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4월17일 01시58분    조회: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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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03]인생을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2-04-15 20:40:27 ] 클릭: [ ]

인생은 홀로서기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자신의 강인한 힘으로 인생을 창조해야 한다는 말이겠다. 손에 손 잡고 가자는 말도 있다. 이는 함께 살아가는 동조의 뜻이다.

나는 손에 손 잡고 가자는 말을 더 선호한다. 인생을 살면서 서로 돕고 이끌어가는 것은 이 세상을 함께 하는 지혜이다. 내게는 젊어서 뜻을 함께 하면서 꿈의 나래를 펼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오랜 세월 나와 함께 어깨 나란히 살아오면서 혈육같은 정과 떨어질 수 없는 우정을 나눠왔다.

 필자 최만수

내가 하향지식 청년으로 집체호 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다.

연길현 광개공사 회경대대에 이불짐을 풀고 집체호 생활을 시작했던 것은 벌써 50년전의 일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내 가슴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이 밤 나를 잠 못들게 한다.

우리 집체호에는 15명의 지식청년들이 있었는데 내가 호장이였다. 도시에서 자란 내가 좀 빠릿빠릿해보였던지 대대에서는 나에게 민병 부련장 겸 대대 문예선전대 대장 책임을 맡겼다.

청년 조직의 여러가지 책임을 맡고 조석으로 동분서주하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고 일도 재미있었다. 민병 훈련을 하거나 대대 문예선전대 활동을 할 때면 아주 신이 났다. 특히 집체호 용운이와 생산대의 진규형이 내 권위를 수립해주고 내 뜻을 받들어주어 일을 하는데 한결 쉬워졌다. 문학에 취미가 있었던 나는 〈삼로인〉 극본도 쓰고 재담도 하고 노래 가사도 쓰면서 골간 역할을 했다.

학교 때부터 글쓰기에 흥취가 있은 나는 많은 책을 읽었는데 큰형님의 영향도 있었다. 큰형님은 연변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하고 주정부에서 사업하고 있었는데 문학에 심취했다.

그때 형님은 이미 한어문 소설을 조선어로 번역했다. 간혹 번역 초고를 들고 와서 정리해 달라고 부탁할 때도 있었으며 초고를 정리할 때 주제가 무엇이고 인물형상이 어떻다며 형님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학에 어섯눈이 뜨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여러가지 쟝르의 작품을 쓸 수 있었고 무대에 올라가 공연하기도 하였다. 나는 농촌생활이 재미나고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무대라고 생각했다.

문예선전대 활동을 하면서(세번째 줄 오른쪽  세번째가 필자임)

그때 나와 한방을 쓰던 친구 용운이는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잃고 삼촌집에서 자란 용운이는 마음은 착하지만 내성적이여서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였다. 신체도 허약하고 농촌 일에 적응하기 힘들어 저녁이면 잠자리에서 끙끙 신음소리까지 내며 한숨을 풀풀 쉬였다. 그는 민병 활동과 문예선전대 활동에 바삐 돌아치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용운이의 꿈은 하루빨리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집체호 호장이고 민병련 사업에 열정을 보인 나였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도시로 돌아가고 싶었다. 먹는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집보다 형편없었다. 때마다 옥수수떡에 멀 건 국물과 김치 밖에 없었다.

나는 큰형님이 손을 써 빨리 농촌에서 벗어났으면 했다. 하지만 형님만을 기다릴 수 없어 모든 일에 열성스레 나섰다. 그리고 짬짬이 시간을 내여 소식을 써서 《연변일보》와 연변라지오방송국에 원고를 보내 발표되기도 했다. 후에 내가 쓴 장편 통신이 《연변일보》 톱기사로 발표됐다.

나의 노력은 결실을 보게 되였다. 나는 1년 만에 로동자 모집으로 농촌을 떠나게 되였다. 대대에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가봐 잠시 비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친구 용운이한테만은 말하고 싶었지만 하루빨리 농촌을 떠나고 싶었고 또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가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도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저녁이면 궁싯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 용운이가 무척 측은했다.

나는 대대 민병련 사업과 문예선전대 활동 그리고 통신보도도 쓰고 하면서 농촌생활에 재미를 느꼈다. 정작 농촌을 떠나려고 하니 아쉬움도 있었다. 내가 벌여놓았던 청년 활동이 무산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나는 용운이한테 양보하기로 했다.

내가 농촌에 한두 해 더 있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큰형님이 주정부에 있으니 언제든지 떠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심이 굳어지자 대대위원회를 찾아가 로동자 모집 명액을 용운에게 양보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모두 놀라와했다. 모두 하루빨리 농촌을 떠나고 싶어 하고 또 결정된 일을 양보하다니! 나는 용운이가 빨리 시내에 돌아가야 하는 리유를 밝히고 이미 굳은 결심을 내렸다고 말했다.

며칠 후 용운이는 이불짐을 꿍져 메고 기쁘게 도시로 돌아갔다. 용운이는 내가 양보한 것을 몰랐다. 그런데 몇달 후 용운이는 내가 양보했다는 것을 알고 만장같이 편지를 써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해왔고 친구의 우정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맹세했다.

그 후 용운이는 직장에서 어찌나 열심이 일했는지 해마다 선진생산자로 되였고 생기발랄한 청년으로 탈바꿈했다. 용운이는 편지를 보낼 때마다 일을 잘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면 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곱절 더해진다고 했다.

우리는 자주 서신 왕래를 하면서 고무격려했다. 용운이가 떠난 후 나는 의외로 심정이 홀가분해졌다. 용운이가 잘되니 어찌 보면 나한테도 좋은 일인 것 같았다.

그 후 형님은 내가 로동자 모집 명액을 용운한테 양보한 일을 알게 되였다. 형님은 나를 나무라 하지 않았고 되려 잘했다고 칭찬했다. 앞으로 또 기회가 생기면 그때 다시 보자고 했다.

용운이가 남기고 간 빈자리는 한 마을의 귀향청년 김진규 형이 메워줬다. 고중을 졸업한 진규형은 지식도 많고 착했다. 나는 그를 많이 따랐다. 진규형은 시간 날 때마다 집체호에 와서 일손을 도와주었고 그의 어머니도 집체호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대학에 갈 기회를 잃었지만 진규형은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원고를 쓰는데 이것 저 것 선색도 제공해주기도 했다.


 

농촌을 떠나  로동자로 된 후의 필자(뒤줄 왼쪽 첫번째)

우리 둘은 여름밤이면 함께 앉아 별을 바라보면서 앞날에 대한 희망 이야기도 했다. 진규형은 혼기가 다 차갔다. 농촌에서 스물다섯이면 장가갈 때도 됐다. 진규의 어머니는 며느리 비위도 하며 돌아다녔다. 진규는 장가 가면 자기 전도는 농촌에서 끝을 본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렇다고 해서 앞길이 묘연한데 장가를 안 갈 수도 없고 답답해했다.

나는 시내에 갔다 올 때면 늘 장기 환자인 진규 아버지의 약을 사드렸다. 오는 정 가는 정에 진규네와 우리 집체호는 아주 좋은 사이로 되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우리 마을에 연길재정학교 학생 명액이 하나 내려왔다. 대대에서는 집체호를 대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한테 이 명액을 주기로 했다.

진규형은 이 소식을 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고 또 부러워했다. 나는 언젠가 꼭 도시로 돌아갈 수 있지만 진규형에게는 이런 기회가 차려질 수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이 기회를 진규형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이런 기회에 내가 진규형을 돕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농촌에 있어야 했다. 이번에도 내가 진규형한테 양보하자 대대에서도 모두 찬성했다. 이런 기회가 농촌 사람들에게 차려진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중등전문학교에 가는 명액을 양보하자 진규형은 내 두손을 잡고 눈물이 글썽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고맙다는 말로 순박한 자기 마음을 대신했다.

진규형은 내 마음이 바뀔가봐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시름 놓고 학교에 갈 준비하라고 안심시켰다. 진규형은 가끔 링게르 병에 술을 얻어가지고 와서는 파에 된장을 찍으며 술을 마시자고 했다. 이것이 진규형이 내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접대였다.

학교에 간 진규형은 학교에서의 성적이 제일 우수하다고 했다. 워낙 기초가 있고 농촌에 있을 때도 자습을 많이 해왔기 때문이였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도 밤을 새며 공부했다 한다. 해마다 명절 때면 우리 부모를 찾아 인사를 다녔는데 우리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도시로 돌아가는 기회를 두번이나 친구들에게 양보한 까닭에 세번째로 로동자를 모집할 때에는 내가 모르게 대대에서 토론, 결정하여 나를 보내기로 했다.

나는 두번의 선행을 통해 영원한 친구를 얻었고 함께 손 잡고 인생을 걸어가는 동반자를 얻었다. 나는 이들과 기쁜 일 슬픈 일 함께 겪으면서 수십년 호형호제하며 친근하게 보냈다.

/ 최만수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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