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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기록에 "고환 ↓↓"이라고 적혀 있다면?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6월26일 09시36분    조회: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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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20년 경력 의사가 말하는 <의사의 감정>

[오마이뉴스 임윤수 기자]

의사는 냉정하고 감정이 무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필자만의 선입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자가 겪은 최소한의 경험만으로 볼 때, 의사는 분명 여느 사람들보다는 차갑고 감정이 무딘 부류의 사람들이라 생각됩니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우리 식구들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표정 변화 없는 얼굴로 연월일에 이어 시분까지를 또박또박 말하고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걸 사망 선고하던 그 의사는 매일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뿐 별다른 감정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전에도 그런 의사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여느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헛구역질이 날 만큼 심한 상처, 살점이 너덜너덜 해진 상처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피를 닦아내고, 소독을 하고, 생살을 꿰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어쩌면 저럴 수 있지 하는 반문을 가졌던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의사도 분명 인간인데 어찌 그토록 심한 상처를 보고도 헛구역질 한 번 하지 않고 성큼 치료만 하고, 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어찌 저토록 사무적인 태도로 선고할 수 있지? 의사들에게는 감정이란 게 없는 건지를 의심해본 적이 한두 번 아닙니다.   

의사도 흔들린다

▲  <의사의 감정> / 지은이 다니엘 오프리 / 옮긴이 강명신 / 펴낸곳 페가수스 / 2018년 6월 5일 / 값 18,000원
ⓒ 페가수스
<의사의 감정>(지은이 다니엘 오프리, 옮긴이 강명신, 펴낸곳 페가수스)은 의사 경력 20년인 저자가 의사가 되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좌충우돌, 의사로서 경험하고, 갈등하고, 고민하며 겪은 산전수전의 감정 들을 수기형식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의사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감정이 있는 인간이고, 감정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친절한 의사가 한때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차가운 청진기를 가슴에 들이대던 그들은 무표정했습니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에게도 하대를 하는 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보고 있어도 읽을 수 없는 영어로 뭔가를 빠르게 휙휙 갈겨쓰는 그들은 거만하고 차갑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의사가 되기까지 겪거나 극복해야 하는 과정은 여느 부류의 사람들이 겪는 산전수전이나 좌충우돌에 못지않은가 봅니다.   

아마 그런 일을 경험하는 일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 비뇨기과 치료를 받던 중 병원기록부에서 (?)라는 표시를 읽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라는 표시는 환자의 고환은 지극히 정상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인턴들은 양쪽 고환이 잘 내려와 있다는 뜻으로 임상기록에 화살표 두 개를 아래쪽으로 표시(?)하고 고환이라고 적는다. 그걸 읽을 때는 "양쪽 고환이 잘 내려와 있다."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이 학생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 환자는 양쪽 고환이 너무 작다"고 읽어버렸다. <의사의 감정>, 66쪽


새내기 의대생도 혼돈하거나 헷갈려 할 만큼 그들끼리만 통하는 용어, 난수표 같은 약어나 음어로 기록되는 게 인턴들이 기록하고 있는 임상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병원에서 만날 때마다 초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내 눈은 건강한 젊은 엄마를 보고 있었지만, 내 가슴은 그녀가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에서 들리는 가느다란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심장을 쥐어짜는 것만 같았다. 헤어질 때마다 "잘 가요."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이게 마지막이 아닐까 늘 두려웠다. <의사의 감정>, 100쪽

슬픔은 의사들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세상의 다른 사람들처럼 의사들도 인간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우리가 형성하는 관계의 상대방은 다른 어느 관계의 상대방보다 많이 죽는다. 슬픔의 실타래는 의학 안에서, 심지어 일상적인 만남 속에서도 얽히고설킨다. 우리가 다루는 건 질병이다. 경범죄나 철학이나 건문의 기초공사 같은 게 아니다. <의사의 감정>, 185쪽


의사도 공포, 수치심, 슬픔, 분노, 압박감을 느끼는 감정이 있는 인간입니다. 사람들 중에도 감정이 더 풍부하고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만 의사라는 직업상 감정을 절제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가슴에서 일렁이는 감정 중에도 드러내도 좋은 때와 경우가 있는가 하면 드러내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은 게 될 수도 있으니, 의사라는 직업은 감정을 드러내거나 표현하는 것조차 고민하고 갈등해야 하는 절제된 직업이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의 감정 펌프질 할 수 있는 감정 마중물

물론 감정에도 내성이 생길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도 처음으로 맞닥뜨릴 때와 직업적으로 반복해 맞닥뜨리는 경우에 생기는 감정은 강도만 달라지는 게 아니라 감정 그 자체가 갖는 프리즘까지도 달라질 거라 생각됩니다.

의사의 감정이 환자의 치료효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어쩌면 의사가 환자에게 갖는 연민은 의사 개인만의 감정이 아니라 의사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자 소양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을 통해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물론 의료소송에 휩싸이고, 좌절감까지 극복해야만 하는 의사의 감정까지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제 동네병원에서 만나는 의사의 감정까지도 역지사지로 어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인 나의 감정을 헤아려주길 바라기 전에 내가 먼저 의사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면, 치료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의 감정을 펌프질해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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