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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 안 합니다”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 [2023 연애·결혼 리포트]
조글로미디어(ZOGLO) 2023년3월16일 04시13분    조회: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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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세계 최저 한국의 젊은 세대는 왜 결혼하지 않으려 할까. 〈시사IN〉은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심층 조사했다.
©시사IN 조남진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2월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숫자 하나에 온 세상이 놀랐다.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아이의 숫자가 0.78명이라는 얘기다. 외국인 유입 없이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2.1명을 넘어야 한다. OECD 가입 국가 중 합계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마저 한국의 합계출산율을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정부는 3월 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를 대통령이 직접 주재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호들갑이 필요한 수준이긴 하다. 2017년 1.05명이던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2년 48만4550명이던 출생아 수는 지난해 24만9000명으로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숫자에 집착하면 당면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 핵심은 한국 사회에서 ‘연애하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아 기르는’ 생애 모델 전반이 붕괴되었다는 것이다.

2030 젊은 세대는 아이는커녕 결혼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다. 2019년 23만9159건이던 혼인 건수는 2020년 21만3502건으로 약 10% 감소했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팬데믹 때문에 일시적으로 결혼 건수가 줄었다고 생각했다. 오판이다. 팬데믹이 해소된 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1697건까지 줄었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사회’라고 지칭했다. 이 말에는 청년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애 과정을 포기할 만큼 한국 사회가 병리적인 위기에 처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온갖 평가와 진단, 그리고 정책이 등장한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명쾌하게 답하지 못한다. 그저 ‘요즘 젊은이들은 다들 그렇더라’는 투로 일관한다. 정책의 대상이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생애 경험을 했으며,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시사IN〉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는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생애 모델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감정과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조사했다.

결혼과 출산은 ‘의향’에서 비롯된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지 않겠다는 ‘의향’이 공고해졌다면, 그 의향을 구성하게 된 감정과 가치판단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질문의 수를 211문항으로 늘렸다. 일반적인 설문조사로는 묻기 어려웠다. 방대한 질문을 소화하기 위해 ‘웹조사’ 방식을 동원했다. 〈시사IN〉은 2019년 20대 남자 현상, 2021년 반중 정서와 20대 여자 현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도 ‘웹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2월10일부터 2월14일까지 닷새간 만 18~49세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이 조사에 응해주었다. 응답률은 5.4%,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 전체 응답자 1000명 가운데 미혼은 579명, 결혼 경험이 있는 사람은 421명이다. 단순히 이들에게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책망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인생의 어느 측면을 걱정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 한국 사회의 생애 모델을 거부하다



우선 결혼할 ‘의향’을 물었다(〈그림 1〉 참조). 미혼 응답자 579명 중 결혼 의향이 있다는 사람은 56.5%, 의향이 없다는 사람은 43.5%였다. 그런데 여기서 남녀 성별 격차가 나타난다. 미혼 남성은 65.7%가 결혼하고 싶다고 답한다. 그러나 여성은 54.5%가 결혼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다. 남녀 간 ‘미스매치’가 일어난다. 이 성별 격차는 결혼 적령기인 30대에서 가장 크다. 30대 미혼 남성은 71.1%가 결혼 의향이 있지만, 30대 미혼 여성 55.3%는 결혼 의향이 없다. 20대 역시 남성 64.6%가 결혼할 의향이 있지만, 여성은 52.7%가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서도 성별 격차는 나타난다(〈그림 2〉 참조). 전체 응답자(1000명) 가운데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문항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들은 71.8%다. 여성들의 거부반응이 평균을 더 키웠다. 20대 여성은 86.1%, 30대 여성은 85.7%가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고 답했다. 20대 남성 60.1%, 30대 남성 59.2%보다 높은 수준이다.

흥미로운 것은, 결혼뿐 아니라 ‘연애’에 대해서도 이러한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연애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문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전체 응답자의 57.3%가 ‘그렇다’고, 39.7%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결혼은 신중한 생애 의사결정이다. 반면 연애는 좀 더 자연스러운 감정에 가깝다. 어쩌면 본능에 가까울 수 있는 이 ‘관계 형성’을 부정하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20대 여성은 전체 응답 평균과 역행하는 결과를 보여준다. 20대 여성 응답자(160명) 가운데 68.7%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집단은 전체 성별·세대 가운데 20대 여성이 유일하다.

남성들은 전반적으로 ‘연애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남성들 사이에서도 연령에 따라 동의하는 정도가 다르다. 연애가 필수라는 20대 남성은 56%다. 30대 남성(66.9%), 40대 남성(69.1%)에 비해 오히려 연애에 적극적일 것 같은 20대 남성이 연애에 더 시큰둥하다. 남성과 여성 모두 젊을수록 연애에 대한 집착이 약하다. 20대는 누구보다 연애를 갈망할 것이라는 통념, 미혼일수록 연애에 적극적일 것이라는 통념 모두 무기력해진다.

연애도, 결혼도 필수가 아닌데 출산이 필수일 리 없다. ‘자녀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문항에 대해서도 20대 여성은 강하게 반발한다. 20대 여성의 ‘그렇다’는 응답은 10.2%인 반면, 86.3%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30대 여성(71.1%), 40대 여성(67.3%)도 자녀가 의무는 아니라고 답한다. 성별을 떠나 결혼 의향이 없는 미혼 남녀(252명) 집단 역시 ‘자녀는 반드시 낳아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그렇다’는 응답은 7.1%에 불과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87.4%에 달한다.

연애·결혼·출산에 대한 ‘의향’ 조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두 집단이 있다. 첫째, 20대 여성 160명이다. 성별·세대 기준으로 결혼과 출산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이들이다. 여타 질문에서도 이들의 응답이 유독 튀는 경우가 잦다. 둘째, 미혼 응답자 가운데 결혼할 의향이 없는 252명이다. 세대·성별과 상관없이 순전히 ‘결혼 의향’에 따라 구분한 군집이다. 편의상 이들을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이라고 지칭하겠다. 지금부터는 이 두 집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거부하며, 어떤 생각을 갖는지 살펴보자.

■ 20대 여성이 겪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고도성장기 한국 사회는 결혼과 출산, 육아 전 과정에서 여성의 희생을 전제하는 경향이 강했다. 아이나 노약자, 아픈 사람을 돌보는 노동은 가정이 수행했고, 각 가정에서 이 같은 돌봄 노동의 주체는 보통 여성이었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여성 개인’은 더 이상 ‘손해’를 감수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20대 여성 응답자일수록 개인의 희생에 대해 비관적이다(〈그림 3〉 참조).



‘결혼 관계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어느 정도 희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문항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살펴보자. 전체 응답자(1000명) 가운데 59.3%가 ‘그렇다’고, 36.3%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그러나 20대 여성의 경우 ‘그렇다’는 의견이 40.5%,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54.3%로 역전했다. ‘그렇다’는 의견이 53.6%인 30대 여성에 비해서도 확연히 다른 경향이다. 유독 20대 여성이 ‘희생’이라는 단어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희생되는 것은 무엇일까? 200여 개 질문 가운데 20대 여성의 응답이 유독 도드라지는 질문을 추려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집단이 가장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적 성취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면 결혼 후 여성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될까? 응답자 전체의 의견은 반반이다. 44.3%가 ‘그렇다’고, 50%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하지만 20대 여성은 노동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으로 여긴다. 20대 여성 67.8%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넉넉하더라도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답한다. 30대 여성의 응답(51%)보다도 높은 수치다.

노동은 이들에게 사회적 성취에 가깝다. 문제는 이들이 ‘결혼-출산’이라는 생애 모델과 사회적 성취가 양립하기 어렵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질문에 대해 20대 여성 47.5%가, 30대 여성 50.4%가 ‘그렇다’고 답한다. 출산이나 육아를 전제하지 않고, 순전히 ‘결혼’만 물었을 뿐인데도 ‘사회적 성취가 가로막힌다’고 인식한다. ‘자녀가 생기면 나의 사회적 성취를 이루기 어렵다’는 문항 역시 상당수 동의한다. 응답자 전체 평균은 ‘그렇다’ 45.8%, ‘그렇지 않다’ 49.5%이지만 20대 여성은 전체 평균을 훌쩍 뛰어넘어 68.7%가 ‘그렇다’고 답했다. 30대 여성의 동일 응답(57.5%)보다 더 강한 반응이다.

20대 여성에게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자녀가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도 아니다. 이들이 딱히 자녀라는 존재 자체를 싫어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자녀와 나 둘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이때는 아직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존재, 태어나지 않은 ‘자녀’라는 존재의 성공보다 나의 성공과 행복이 우선한다.

‘나’와 ‘자녀’를 비교하는 질문에서 20대 여성의 응답이 눈에 띈다. ‘자녀의 성공은 나의 성공보다 중요하다’는 문항에 전체 응답자 평균 44.1%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질문에서 20대 여성만 유독 동의율이 낮다. 20대 여성 가운데 불과 23%만 ‘그렇다’고 답한 반면, 64.9%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30대 여성의 응답(‘그렇다’ 42.3%)보다 자신의 성공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20대 여성 67.8%는 경제적으로 아무리 넉넉해도 일을 그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시사IN 신선영


‘아이가 있어도 내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혼할 수 있다’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전체 응답자 기준, 이 문항에 대해 ‘그렇다’는 비율은 38.8%, ‘그렇지 않다’는 비율은 49.8%다. 하지만 20대 여성은 58.8%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그렇지 않다’고 답한 비율은 27.2%에 불과하다. 이 질문에서 남성들은 ‘그렇다’는 반응이 26.9%, ‘그렇지 않다’는 반응이 60.6%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가치판단에서 성별 격차가 나타나고 있다.

자녀에게 희생하지 않는 대신 자녀에게 기대지 않으려 한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자녀가 내 노후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낮다. ‘자녀가 없으면 내 노후가 쓸쓸할 것 같다’는 문항에 20대 여성들은 부정적이다. 20대 여성 31.3%만 ‘그렇다’고, 59.6%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51.9%가 ‘그렇다’고 답한 것과 차이가 크다. 같은 세대인 20대 남성의 경우 55.7%가 ‘그렇다’고 답한 점을 감안하면 외로움과 자녀를 연관 짓는 방식에서 성별 격차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대 여성이 유독 외로움을 못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20대 여성의 경우 자녀를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는 삶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독립적인 개인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응답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난다. ‘여가 시간에는 가급적 혼자 보내고 싶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20대 여성은 80.5%가 ‘그렇다’고 답했다.



‘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과거 생애 모델이 유지되려면 이성 간 결합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분석에 따르면, 결혼한 이후의 삶에 대해 남녀는 다른 인식을 보이고 있다. 젠더 인식 측면에서 삶의 방향성이 다른 셈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과연 결혼과 출산에 대해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시사IN〉은 2019년과 2021년, 각각 ‘20대 남자’와 ‘20대 여자’ 현상을 좇으며 ‘페미니즘 지수(〈그림 4〉 참조)’를 측정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6가지 질문을 통해 응답자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긍정’ ‘보통’ ‘부정’으로 분류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같은 질문을 던져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지수화하고, 이들이 페미니즘을 결혼 상대방의 조건으로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를 추가로 물었다.

■ 젠더 인식의 불균형이 미치는 영향



응답자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 분포는 〈그림 5〉와 같다. 20대 여성의 49.2%, 30대 여성의 21.4%가 페미니즘에 긍정적 모습을 보인다. 반면 남성의 경우, 20대 9.5%, 30대 6.2%만 페미니즘에 긍정적 태도를 가진다. 페미니즘은 결혼 의향과 상당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응답자 가운데 70.1%가 결혼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페미니즘에 ‘보통’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들은 각각 63.5%, 65.2%가 결혼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진 응답자 가운데 63.3%는 연애에 대해서도 ‘반드시 할 필요 없다’는 응답을 보였다.

흥미로운 지점은 연애나 결혼 상대방을 고르는 과정에서 페미니즘이 강한 변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남녀 모두에게 그렇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방이 페미니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하다’는 질문에 대한 응답을 살펴보자(〈그림 6〉 참조). 페미니즘에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사람들 중 54.5%가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배우자 선택의 조건으로 꼽았다. 반대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응답을 한 사람들 가운데 58.6%가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배우자 선택의 조건으로 꼽는다. 페미니즘에 대해 ‘보통’ 의견을 갖고 있는 경우, 배우자 선택 기준으로 페미니즘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17.9%).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의견(긍정 또는 부정)을 가질수록, 결혼 상대방의 태도를 민감하게 여긴다. 페미니즘에 대한 ‘긍정’ ‘부정’ 의견은 크게 성별로 나뉜다.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여성은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남성을 원하지 않고,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남성은 마찬가지로 페미니즘에 긍정적인 여성을 원하지 않는다. 20대일수록, 이러한 경향성은 강화되고 있다.

소득이나 학력, 상대방의 집안 같은 전통적인 ‘결혼 요건’과 비교했을 때, 페미니즘은 얼마나 중요한 요건으로 작동하고 있을까? 〈시사IN〉과 한국리서치는 응답자들에게 연애·결혼 상대방의 성장환경, 소득, 정치적 성향, 학력, 부모의 부와 사회적 지위 등 5가지 조건이 얼마나 중요한지 물었다. 페미니즘은 이 중에서 ‘정치적 성향’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설문 결과, 연애와 결혼 모두 정치적 성향이 학력이나 상대방 부모의 사회적 지위보다 더 중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연애의 경우, 성장환경(77.7%), 소득(63.9%), 정치적 성향(44.8%), 학력(34%), 상대방 부모의 부와 사회적 지위(31.4%) 순이다. 결혼 역시 성장환경(79.1%), 소득(68.3%), 정치적 성향(45.9%), 학력(37.3%), 상대방 부모의 부와 사회적 지위(34%) 순이다.



20대 여성에게 특히 정치적 성향은 중요한 요건이다. 20대 여성 응답자 가운데 58.1%가 연애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이 중요하다고 답했고, 66%는 결혼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같은 기준 20대 남성의 응답이 연애의 경우 42.2%, 결혼의 경우 40.9%라는 점을 감안하면 20대에서도 특히 여성들이 페미니즘과 같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태도를 파트너 선택의 중요한 요건으로 삼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페미니즘은 출생률, 합계출산율, 혼인율 문제의 핵심에 놓여 있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때때로 이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취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정치는 그 자체로 갈등을 키우고 결혼에 대한 의향을 떨어뜨리는 효과로 이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 2021년 8월2일, 당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발언이다. 윤 전 총장은 이날 국민의힘 초선의원들과의 모임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너무 정치적으로 악용돼서 남녀 간 건전한 교제 같은 것도 정서적으로 막는 역할을 많이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 발언 이후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정책 노선을 강화하며 여성 유권자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렀다. 일종의 성별 갈라치기 정치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통령이 된 정치인 윤석열의 과거 발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 묻자, 성별에 따라 극과 극 반응이 나왔다. 남성 응답자는 54.7%가 당시 발언에 동의한다고 답한 반면, 여성 응답자는 15.2%만이 동의한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남녀의 반응이 극과 극이다. 20대 남성은 동의 59.9%, 동의하지 않음 26.8%인 반면, 20대 여성은 동의 11.8%, 동의하지 않음 72.2%를 보였다. 저출생의 원인을 페미니즘에서 찾는 대통령의 인식은 정부에 대한 여성들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결혼을 거부하는 인구’의 핵심은 20대 여성이다. 페미니즘을 저출생 원인으로 지목하려 할수록, 정부의 저출생 대책에 대한 호응 역시 감소할 수밖에 없다.

■ 불안하다, 그리고 자신이 없다



젠더 문제는 저출생과 결혼 기피를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지만,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남성 중에도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있고, 20대 여성 중에도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범주를 조금 더 넓혀보자. ‘결혼에 대한 의향이 없다’고 답한 미혼 응답자 252명의 ‘감정’을 살펴보았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어떻게 기대하느냐다. ‘연애-결혼-출산’ 생애 모델에 대한 불신과 거부는 결혼 이후의 생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다. 여러 질문 가운데 특히 ‘불안감’과 ‘자신감’에 대한 응답에서 이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응답자들의 답변이 도드라졌다.



〈그림 7〉을 살펴보자. 성별과 상관없이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응답자들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불안감은 시간과 돈이다. 이들 252명 중 69%는 시간 활용에, 50.1%는 돈 활용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결혼을 할 경우 나를 위한 시간이나 돈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다. 통상 결혼은 개인의 시간과 돈을 배우자와 함께 관리하고 공유하는 일이다. 이들의 응답에서는 결혼으로 획득할 수 있는 유무형의 이익보다 개인이 포기해야 하는 물질적이고 시간적인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유독 ‘결혼 의향 없는 미혼’ 군집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녀’를 가질 경우에도 비슷한 불안감이 표출된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 ‘자녀 때문에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는 응답은 58.6%를 차지한다. 전체 평균이 39.5%라는 점을 감안하면 확실히 이들 집단의 불안감이 유독 크다고 볼 수 있다. ‘자녀 때문에 돈을 자유롭게 쓰지 못할 것 같아 우려된다’는 응답도 이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 49.2%를 기록했다. 이 질문에 대해서도 전체 응답자 평균은 34.4%에 불과하다.

‘커리어’에 대한 불안도 표출된다. 앞서 20대 여성들이 사회적 성취에 민감하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이번에도 ‘결혼’과 ‘자녀’라는 변수를 적용해 불안감을 측정했다. ‘결혼할 경우 내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 ‘자녀가 내 커리어에 악영향을 미칠까 봐 불안감을 느낀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44%, 28.6%다. 여기서 다소 흥미로운 것은 ‘자녀’보다 ‘결혼’의 악영향을 더 크게 느낀다는 점이다. 결혼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 아이의 존재 자체를 거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애들에게는 문제가 없다. 커리어를 망칠지 모른다는 불안의 근원은 아이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시스템에 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거리 숍에 드레스가 진열되어 있다.©연합뉴스


그렇다면 결혼하지 않는 삶에 대한 불안감은 없을까? 미혼 응답자(579명)에게 결혼하지 않는 삶이 주는 불안감을 물었다. ‘나이를 먹었을 때 외로움’ ‘주변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불이익’ ‘경제적 불이익’ 네 측면에서 불안감을 측정했다. 결과는 각각 48.4%, 29.3%, 24.4%, 24.1%. 네 가지 응답에서 특별히 성별·세대별 특징은 도출되지 않았다. 외로울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을 제외하면, 나머지 불안감은 전반적으로 약한 수준이다.

사회의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결혼을 택하는 시대는 지났다. 결혼할 경우 생기는 불안은 크고 확실하지만, 결혼하지 않았을 때 생기는 불안은 미미하다. 결혼하지 않을 때 생기는 손해(불안)는 작지만, 결혼할 경우 생기는 손해(불안)는 크다. 이런 상황에서 결혼은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 된다. 위험을 감수했을 때 기대되는 이익이라도 커야, 결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자신감’은 상당히 결여되어 있다(〈그림 8〉 참조).

특히 자녀를 기르고 책임지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낮다. ‘나는 자녀와 함께 행복할 자신이 있다’는 문항에 응답자 전체 평균 62.1%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 유독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 이 자신감은 33.6%까지 떨어진다. ‘나는 자녀를 잘 교육시킬 자신이 있다’는 문항에 대해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응답자 전체 평균 45.1%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는 그렇다는 응답이 23.8%에 그친다.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자신감도 떨어진다. ‘나는 자녀가 경제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것 같아 불안감을 느낀다’는 문항에 대해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의 63.5%가 ‘그렇다’고 답했다. 응답자 전체 평균 52.8%보다 높은 수치다. 행복할 자신감, 잘 교육시킬 자신감, 경제적인 자신감 모두 결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은 어불성설이다. ‘나는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라는 질문에도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은 79.8%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81%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했다.

불안이 크고, 자신감이 낮다면 자연스럽게 리스크 회피 성향도 강해진다. 결혼 의향이 없는 미혼 남녀의 리스크 회피 성향을 확인하기 위해 두 가지 질문을 더 준비했다. 하나는 이혼에 대한 양자택일 질문이다. 이혼은 생애 과정에서 대표적인 리스크다. 자신과 맞지 않은 짝을 만났을 경우,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최종적인 선택 중 하나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혼’을 감안하고 결혼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발생할지 모르는 이혼 때문에 지레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마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것처럼 인식되었다.



하지만 리스크를 미리 염두에 두고, 애초에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이들이 있다. 〈시사IN〉은 ‘훗날 이혼할 가능성이 있다면 결혼을 아예 피하는 편이 낫다’와 ‘훗날 이혼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결혼을 피할 필요는 없다’는 양자택일 질문을 던졌다. 전체 응답자의 39.3%가 피하는 게 낫다고, 60.7%는 굳이 피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상대적으로 이혼이 두려워 결혼을 피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대세에 가깝다. 그러나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절반 이상인 58.2%가 ‘결혼을 피하는 게 낫다’고 답했다.

이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실패했을 때 재기하기 어렵다는 인식과도 궤를 같이한다. ‘한국에서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어렵다’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도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의 답변이 튄다. 전체 응답자는 ‘그렇다’ 50.4%, ‘그렇지 않다’ 44.4%로 비등비등하다. 하지만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는 61.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 집단은 실패의 여파에 민감하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실패로 인한 위험을 사전에 통제하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결정 역시, 통제해야 할 위험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 ‘현생’이 나아져야 다음 생도 꿈꾼다



늘어난 불안감, 결여된 자신감, 위험 회피 성향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될까? 〈시사IN〉과 한국리서치는 응답자들의 다양한 지층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추가 설문을 진행했다. 경쟁에 대한 수용도, 물질주의 성향, 타인과의 비교 성향, 제도에 대한 신뢰도, 지역, 온라인 결혼 콘텐츠의 영향, 계급과 성장 경험까지 폭넓은 질문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결혼 의향과 강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요소가 세 가지 발견됐다.

첫째는 주관적 계층 인식이다. 미혼 응답자 가운데 자신을 상위층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73.1%가 결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중간층이라고 답한 이들도 62.8%가 결혼에 의향이 있었다. 반면 중하위층(50.3%)과 최하위층(51.8%)은 상대적으로 결혼에 대한 의향이 떨어졌다. 다만 이것은 소득과 재산을 기준으로 나눈 계급과 다르다. 실제 경제적 여유와는 별개로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 결혼 의향이 다르게 나타났다. 이번 설문에는 순재산(자산-부채)이 얼마인지도 물었는데, 순재산에 따른 ‘결혼 의향 차이’는 유의미하게 발견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순재산이 2억원이 넘는 사람도 스스로를 ‘중하위층’이나 ‘최하위층’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이 경우 결혼 의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실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지가 아니다. 타인과 비교해서 자신의 계층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두 번째는 경쟁에 대한 피로감이다. 한국 사회에서 경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결혼 의향이 달라졌다.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현생’인데, 현생을 피로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이 바로 경쟁이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30.8%가 ‘경쟁이 나에게 활력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반면, 64.2%는 ‘경쟁이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고 답한다. 그런데 이 질문은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에서 더 기울어진다. 이들 사이에서 ‘경쟁이 나를 피로하게 만든다’는 응답은 75.1%까지 증가하고, ‘경쟁은 활력이 된다’는 응답은 18.6%으로 감소한다. 이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은 경쟁이 한국 사회에 끼치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지적한다. 이들 집단에서 ‘우리 사회에서 경쟁은 삶의 질을 악화시킨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60.4%에 달했다.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부모’다(〈그림 9〉 참조). 특히 청소년기 경험에 따라 결혼 의향은 판이하게 갈린다. 청소년기에 부모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수록, 청소년기에 자신이 행복할수록, 청소년기에 부모와 관계가 좋을수록 모두 결혼 의향이 높게 나타난다. 반면 청소년기에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다고 답한 미혼 응답자(117명)는 결혼 의향이 45.3%로 떨어지고, 청소년기에 행복하지 않았다는 미혼 응답자(157명)도 결혼 의향이 42.2%였다.

청소년기에 직접 겪은, 눈으로 본 부모의 결혼 생활도 격차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부모가 ‘행복해 보였다’는 미혼 응답자(190명)는 결혼 의향이 66.9%였지만, ‘보통’이라고 답한 경우(176명)는 결혼 의향이 54.4%,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응답자(213명)는 결혼 의향이 49.1% 수준으로 점차 떨어졌다. 특히 여성 응답자들에게서 부모의 결혼 생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 20대 여성은 46.6%가, 30대 여성은 46.5%가 부모의 결혼 생활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행복해 보였다’는 응답은 20대 여성 30%, 30대 여성 24.4%에 불과했다. ‘행복해 보였다’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는 응답보다 더 많은 남성들과 달리, 2030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대한 반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에 대한 오해



저출생 현상이 심각해지자 혐오도 뒤따른다. 기성세대 중 일부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이 혐오는 여성에게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저출생의 원인을 페미니즘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한 것도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의 문제 제기다. 그러나 여성은 물론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일수록 오히려 인생의 선택에 따른 책임감을 무겁게 여긴다. 이들을 이기적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남녀 간 역할 분담에 대한 질문을 살펴보자(〈그림 10〉 참조). 〈시사IN〉은 결혼 후 가족의 생계는 남성과 여성 중 누가 더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응답은 60.3%, 남성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답은 37.3%, 여성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답은 1.2%였다. 그런데 여성일수록, 결혼 의향이 없을수록 ‘동등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 비중이 더 높았다. 20대 남성은 이 응답이 59.9%인 반면, 20대 여성은 76.1%가 생계 책임이 동등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도 ‘동등하게 해야 한다’는 응답이 72.7%로 높았다.

자녀에 대한 책임감도 마찬가지다. 결혼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 무책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녀’에 대한 일반적인 책임감은 결혼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 더 강하다. 낳으려면 제대로 기르고 책임져야 하는데, 그럴 자신감이 부족하고 불안 요소가 많으니 아예 안 낳고 안 기르겠다는 의사에 가깝다. 〈그림 11〉을 살펴보자. ‘자녀는 내가 책임져야 할 대상이다’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6.8%가 그렇다고 답했다. 20대 여성은 전체 평균보다 높은 93.2%,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 역시 평균보다 높은 87.4%가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달라지는 것은 ‘배우자’와 ‘배우자의 부모’에 대한 응답이다. 20대 여성의 경우, 배우자를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59.3%, 배우자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32.9%에 불과했다. ‘결혼 의향 없는 미혼’ 집단도 각각 61.4%, 34.7%로 전체 응답자 평균(배우자 71.9%, 배우자 부모 49.9%)보다 낮은 수치다.

자녀를 키우려면 제대로 키워야 한다는 강박이 지출 의향에서 드러난다. 〈시사IN〉은 응답자들에게 ‘자녀 한 명을 양육하기 위해 가구 월 소득 중 몇 %를 지출할 의향이 있는지’를 주관식으로 물었다. 0부터 100까지 응답자들이 직접 ‘비율’을 기재하는 방식이다. 전체 응답자의 평균 지출 의향 비율은 43.2%였다. 그런데 모든 세대·성별 가운데 20대 여성(48.5%)의 지출 의향 비율이 높았다. 자녀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성취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지만, 막상 자녀를 키워야 한다면 얼마든지 지갑을 열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할 거라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 높은 기준이 오히려 강박이 되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을 더 키우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결혼 의향이 없는 이들은 자녀를 기르고 책임지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낮았다.©시사IN 포토

■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시그널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많은 청년들이 ‘연애-결혼-출산’이라는 생애 모델을 거부하고 있을까? 과중된 불안감, 결여된 자신감, 리스크 회피 성향, 남녀 간 젠더 인식 격차, 할 거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 경쟁에 대한 피로감 따위가 지금 청년의 삶을 복합적으로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이 깊어지면 결단을 내리기 어렵다. 스스로 ‘결혼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미혼 응답자 579명 중 75.7%는 자신이 사회경제적으로 ‘결혼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준비해야 할 것’은 늘어난다. 우리는 이번 설문에서 청년들이 ‘결혼의 자격 기준’을 높게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하나라도 건사할 수준은 되어야 결혼이든 출산이든 고려해볼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다는 것은, ‘나 자신의 커리어와 사회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일이 된다. 그래서 결혼이 늦거나, 아예 하지 않는다.

고도성장기에 결혼한 기성세대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그들은 단칸방에서도 살림을 차렸다. 경제적으로 부족해도 아이를 낳았다. ‘준비의 여부’가 사회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렇게 형성된 가족은 대개 어느 한쪽(주로 여성)이 개인의 성취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유지되었다. 그런 가정을 청소년기에 겪었던 지금의 2030은 부모와는 다른 생을 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합계출산율 발표와 함께 지난해 3월 한 통계청 관계자가 남긴 발언이 뒤늦게 화제를 모았다. 당시 이 관계자는 “1990년대생 초반 인구가, 출생아 수가 70만명대로 회복했던 그 인구대다. 그래서 이 인구대(1990~1995년생)가 향후 주 출산 연령으로 진입하면 출생아 수는 더 긍정적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 후반, 매년 60만명 수준이던 출생아 수는 1990~1995년에 70만명 수준으로 소폭 상승·유지됐다. 통계적으로 이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1980년대 후반생이 낳는 아이들보다 많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번 조사를 살펴보면, 통계청 관계자의 기대가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93년생부터 2005년생까지, 20대일수록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의향은 더 떨어진다. 단순히 ‘1990년대생이 뭔가 해줄 것이다’라는 기대는 무책임하다. 오히려 사회가 이들에게 보내야 할 메시지는 이런 것들이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만들겠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길러도 ‘나’를 포기할 필요가 없도록 고쳐 나가겠다.” 연애를, 결혼을, 출산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가 청년에게 결혼과 출산을 권유하고 설득하길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들의 불안을 경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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