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중, 상류층의 위선에 방아쇠를 당기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5월8일 08시42분    조회:9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1930년대 소설 ‘찔레꽃’의 가치 재조명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폭로는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형적인 문법 중 하나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인 SKY캐슬에서 교육을 매개로 돈과 권력을 독점하려고 발버둥치는 상류층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폭로했다. 시청자들은 입시에 집착하는 상류층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대중이 상류층의 이면을 다룬 이야기에 열광하는 건 비단 최근에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1937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소설 ‘찔레꽃’ 역시 상류층의 위선과 부도덕을 폭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안타깝게도 찔레꽃은 당시 대중의 큰 성원을 얻은 베스트셀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한국 문학사에서 잊혀져 왔다. 오늘날 김말봉이라는 작가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듯, 찔레꽃 역시 ‘여류(女流) 작가가 쓴 통속소설’이라고 폄하되며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진 탓이다. 

하지만 찔레꽃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상류층의 이야기에 열광하는 대중의 숨은 욕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할 만하다. 동아비즈니스리뷰(DBR) 271호(4월 15일자)가 불운의 베스트셀러였던 찔레꽃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찔레꽃,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하다

찔레꽃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성 안정순이 은행장 조만호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면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주 복잡한 애정 관계에 이중삼중으로 얽힌다. 가령, 정순은 조만호 부자(父子)의 구애를 동시에 받고, 정순의 약혼자 민수는 조만호의 딸 경애의 애정 공세를 받는 식이다. 오늘날의 시선에서 봐도 상당히 자극적인 설정이다. 

 
찔레꽃처럼 희고 순결한 정순을 중심에 두고 진흙탕처럼 엉클어진 관계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사건으로 치달으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당대 독자들은 번개 치듯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사랑의 화살표의 마지막이 궁금해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이 복잡한 애정 관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드러낸 것은 상류층으로 행세하는 조만호 일가의 ‘민낯’이다. 본처에 기생첩까지 거느리고 미모의 가정교사까지 삼키려 하는 조만호의 뻔뻔한 탐욕, 책상물림으로 자라나 사회운동을 하겠답시고 떠들지만 실제로는 아버지 말 한마디에 꼼짝하지 못하는 아들 조경구의 유약함, 유학까지 마치고 온 잘난 여자처럼 보이는 조경애의 경박함은 지식인 청년 정순과 민수의 시선으로 낱낱이 폭로된다. 대중은 조만호처럼 현실 사회에서 위세를 떠는 인물들을 씹고 뜯는 데 흥분했다.

○ 타락한 상류층과 도덕적인 대중

이처럼 가난하지만 정직한 청년의 시선을 통해 상류층의 이면을 폭로하는 방식의 문법은 오늘날 SKY캐슬 같은 드라마가 상류층의 이야기를 폭로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의 호기심은 일정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순결하고 고귀한 노블레스(noblesse), 즉 대중보다 우월한 상류층의 이미지가 아니라 대중보다 못한, 그래서 씹고 뜯을 수 있는 상류층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대신 부와 사회적 지위, 사회적 영향력 등 여러 측면에서 명백하게 상류층에 뒤떨어지는 대중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도덕성이다. 이런 이야기는 상류층의 민낯을 폭로할 권위를 가진 도덕적인 인물, 돈과 권력과 욕망을 둘러싼 그들의 게임에 매혹당할지언정 결코 게임에 빠져들어 타락하지는 않는 인물, 상류층이 판을 짜는 사회를 당당히 거부할 수 있는 인물을 앞세운다.

1930년대 소설 찔레꽃이 이 자리에 내세운 것은 가난하지만 학식과 도덕을 갖춘 지식인 청년 정순과 민수였다. 당대 대중 독자들의 생활수준은 소설에 묘사된 조만호 일가와 한참 거리가 멀었을 뿐 아니라 지식인 청년인 정순, 민수와도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이 서고 싶은 위치는 상류층의 부도덕을 문제 삼음으로써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부와 지위의 정당성을 심문할 수 있는 위치, 바로 정순과 민수의 자리였다. 대중은 이 자리에 자신들을 위치시킴으로써 기득권층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을 정당화하고 그들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우리’라는 자기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 우리 혹은 그들, 구분 짓기의 욕망

소설에서 나타나는 상류층과 대중의 구분 짓기는 역사적으로 근대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한 부르주아가 스스로를 귀족과 구분 지은 방식과 비슷하다. 부르주아 세력은 기존 사회를 지배하던 귀족을 문란하고 타락한 계층으로 규정하면서 문화적, 상징적인 혁명을 수행했다. 예컨대 일생 동안 한 사람에게만 순결하고 고귀한 사랑을 바친다는 ‘낭만적 사랑’의 관념은 이런 문화적 혁명의 일환으로 형성됐다. 당시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통해 부의 분산을 막고 지위와 권력을 세습했는데 공공연히 애인과 정부를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져 있었다. 부르주아는 이런 점을 꼬집어 귀족의 성적 문란, 타락을 비판하며 스스로를 귀족과 반대되는 정결하고 도덕적인 계층으로 표상했다.

오늘날 과거와 같은 신분 질서는 폐지됐다. 그러나 자본주의 질서 아래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새로운 신분 사회로 진입한 대중은 문화적 투쟁을 통해 기득권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그들’과 다른 ‘우리’라는 자기상을 정립해 나간다. 상류층의 부도덕은 기득권층의 존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강렬한 방아쇠로 작동한다. 단순히 자극적인 것처럼만 보이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사실 이 같은 구분 짓기의 욕망을 건드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업 경영진의 ‘갑질’ 또한 상류층의 민낯을 드러내면서 대중의 적대적인 감정을 결집시키는 지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기업이 윤리적 모범을 보임으로써 기업의 구성원이자 소비자인 대중과 함께 ‘우리’의 입장에 서는 데 더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이경림 서울대 국문학과 박사
동아일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4
  • 인생 만필 1   한 장수할머니의 일화가 잔잔한 봄비처럼 지구촌을 적시고 있다. 흔히 인생의 전성기가 20세에서 50세까지라고 하는데 백세에서 시작된 그녀의 전성기는 106세인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하니 그 누군들 놀라지 않겠는가. 안무, 모델 등 여러 령역에서 인기절정을 치달으며 눈부신 활약상을 보이는 녀자. ...
  • 2021-08-06
  • 출처 : 픽사베이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첫 행동이 바뀌기 시작했다. 물 한 잔, 세면, TV, 신문이 아니라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은 스마트폰을 아이에게서 떼어놓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20세기 컴퓨터혁명으로 시작된 인류 문명이 21세기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
  • 2021-06-28
  • 뇌파 측정 결과, 의식불명 상태서도 소리에 반응 사람의 뇌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변의 소리에 반응한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제공 통상 청각은 사람이 죽기 전 마지막까지 작동하는 감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로 의료 현장의 경험에서 나온 추정이지,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부족했다. 보통 심장박동이 정지...
  • 2020-07-14
  •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쓴 케이틀린 도티 미국서도 드문 30대 여성 장의사 유족들이 시신 씻기고 입히는 등 죽음과 삶 연결하는 장례 추구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의 저자 케이틀린 도티가 관에 누워 있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반비 제공 이 혼란한 시국에 ‘죽음’에 관한...
  • 2020-04-06
  • '이상의 집'서 열린 문화유산국민신탁 행사 암 투병 이어령 전 장관 '이상의 세계' 강연 "순간이지만 영원한 문화유전자 남겼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17일 서울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송년 모임을 겸해 마련한 '이상과의 만남' 행사에서 강연자로 모습을 드러낸 이어...
  • 2019-12-22
  • "자아도취자, 불안과 우울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정신적 강인함 지녀" (서울=연합뉴스) 안용수 기자 = 자기애가 강한 자아도취 성향의 사람들이 일반인들보다 더 행복한 경향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벨파스트 퀸스대학의 코스타스 파파게오르기우 박사는 "나르시시즘(자기애)의 특정한 측면이 긍정적인 결과를...
  • 2019-10-31
  •  [직원들과 '저녁번개' 행복토크…"행복은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거란 믿음"]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8일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대중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번개 행복토크를 열고 구성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사진=SK그룹"회장님 팔뚝이 왜 그리 굵으세요. 어떻게 관리하세요?" 최태원 SK그룹 ...
  • 2019-10-29
  • 행복한 성 전도사 배정원 '노콘노섹'은 콘돔이 없으면 섹스도 없다는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이 단어를 구호처럼 외친다는 게 행복한 성(性)문화센터 배정원 대표의 설명이다. 그만큼 콘돔이 건강한 성(性)을 위한 필수품이라는 의미다.      행복한 성(性)문화센터 배정원 대표,    그...
  • 2019-08-04
  • '로저 비비에' 총괄 디자이너 게라르도 펠로니   턱을 거뭇거뭇하게 덮은 수염만 아니었다면 "프레디 머큐리!"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전매특허인 콧수염에 고풍스러운 목걸이를 치렁치렁하게 곁들인 모습이 영락없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별명이 '슈즈계의 프레디 머큐리'. 프랑스 신발 브랜드...
  • 2019-07-18
  • 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1930년대 소설 ‘찔레꽃’의 가치 재조명   상류층의 타락과 부패의 폭로는 국내 대중문화 콘텐츠의 전형적인 문법 중 하나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SKY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인 SKY캐슬에서 교육을 매개로 돈과 권력을 독점하려고 발버둥치는 상류층의 비...
  • 2019-05-08
  • 나를 키우며 일할 수 있을까?…'일하는 마음'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나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잘하는 게 아니라 계속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
  • 2019-03-31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14일 "관점을 달리하면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무꾼은 성폭행범이자 여성 납치범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이날 사단법인 거버넌스센터 주최로 열린 '성평등 사회 비전과 거버넌스' 포럼에서 "성평등을 위해 관점을 바꿔나가야 한다"며 "저는 초등학교 때까...
  • 2018-07-16
  • 신입사원 10%만 "사장되겠다"… 출세보다는 작은 행복에 방점   일본생산성본부가 전국 신입사원 1644명을 대상으로 목표를 물었더니 장차 '사장까지 올라가고 싶다'는 응답(10.3%)이 196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역대 최저치를 찍었다. 사장을 꿈꾸는 사람이 임원(14.2%)·부장(16.3%)을 노리는 ...
  • 2018-06-24
  •   지난해 큰아들을 장가보낸 정모 씨(56·여)는 초대를 받기 전에는 아들 부부 집에 함부로 찾아가지 않는다. 며느리에게 ‘시월드’의 부담을 주는 것도, 독립한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다. 정 씨는 요즘 보육교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산후 도우미...
  • 2018-06-20
  • [상의탈의 시위 후기] 여성의 몸을 바라보는 남성중심 시선에 대한 저항... 페북은 사과했다  [오마이뉴스 글:이가현, 편집:김예지] 지난 2일 '불꽃페미액션'은 여성의 상의 탈의 사진을 삭제한 페이스북에 항의하기 위해 페이스북 코리아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는 해당 시위에 참여한 이가현씨의 의...
  • 2018-06-04
  • [더,오래] 김길태의 91세 왕언니의 레슨(15)  나는 삶을 살아가는 데 행복과 불행은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믿는다. [일러스트 김회룡]    마음가짐이 나를 만든다. 행복도 불행도 내 마음가짐에 있다고 믿는다. 삶을 살아가는 데 마음가짐은 정말 중요하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 2018-05-28
  • 욜로 더 이상 젊은이 전유물 아냐 / 중·노년, 자기계발위해 지갑 열어 / 오페라 공연 찾고 해외여행 떠나 / 삼성카드 빅데이터 분석 결과 / 미용 소비 등 40∼60대 증가율 커 / 교육 업종선 되레 20대 뛰어넘어 / 경제적 기반 갖추고 자식 성장하면 / 제2의 인생 향한 열망 적극적 표출 / 100세 시대 가속화 되며...
  • 2018-05-19
  • ㆍ공감 부르는 ‘배려의 말기술’ 예전에는 ‘눈치 없다’고 가볍게 지적당했을 말이 이제는 ‘무례하다’고 엄중히 경고받는다. 쉽게 던지는 말들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시대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한 지방 박물관 관장이 여남은 명의 기자를 초대했다. 방문객에 대...
  • 2018-05-19
  • [한겨레] [ESC] 커버스토리 간섭·잔소리 심한 모녀 관계 애정은 참견과는 다른 것 때로는 편지 한 장이 큰 도움 솔직한 대화가 관계 회복 지름길 딸은 엄마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결코 엄마의 분신도 소유물도 아니다. 딸에게 엄마 역시 스트레스의 발산구도 아닐뿐더러 자신의 고충을 덜어주는 존재도 아...
  • 2018-05-03
  • [더,오래] 김성희의 어쩌다 꼰대(41)  11일은 모친의 생신이었다. 1928년생이니 꼭 아흔. 환갑이며 칠순 등에 ‘잔치’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는 나름 성대하게 축하하고 싶었다. 동생과 뜻을 모았지만, 어머니는 “집에 우환이 있는데 무슨 잔치냐”며 가족끼리 조촐하게 밥이나 먹자고 했다.&nb...
  • 2018-04-1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