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등장하는 ‘황해’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의 범인들은 늘 어설픈 수법으로 범죄에 실패한 뒤 이런 말을 반복한다. “고객님, 당황하셨어요?”

　그러나 현실에는 더 이상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는 엉성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없다. 최근엔 범죄 대상의 특성을 자세히 파악한 뒤 공략하는 ‘타깃 피싱’이 유행하고 있다.

　직장인 윤모(32)씨는 지난달 21일 대출 권유 전화를 받았다. 상담원은 윤씨의 대출만기일은 물론 대출 금액, 신용등급, 직장까지도 알고 있었다. 카드대금 상환일이 닥친 윤씨는 공증 비용, 공탁금의 명목으로 342만원을 선입금했다. 하지만 이는 모두 보이스피싱 수법이었다. 그는 “상담원이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고, 보이스피싱 차단 앱도 정상으로 표시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타깃형 피싱 조직은 피해자들의 이름·주소·직업은 물론 대출 금액과 월급, 주거 상황까지 자세히 알고 사기를 벌인다. 최근 몇 년 새 무더기로 유출된 개인정보가 이를 가능케 했다. 본지가 입수한 ‘보이스피싱용 DB’에는 ▶이름 ▶고용 형태 ▶부서명 등 50여 종의 개인정보가 들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찰관 가족이 범죄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서울 S경찰서 수사관의 아내 이모씨는 지난해 12월 검찰을 사칭한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다짜고짜 주민번호를 부르더니 ‘OO씨 맞죠?’라고 했다”면서 “집주소까지 자세히 말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빙자해 상황극을 연출하는 신종 수법도 있다. 김모씨는 지난해 7월 “어머니가 길에서 다쳤으니 치료비 200만원을 보내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사기 의심이 들었지만 옆에서 어머니를 위장한 여자가 아픈 목소리로 얘기해 속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엔 일명 ‘작업 멘트’를 연구하는 조직도 따로 두는 추세다. 어눌한 조선족 말투 대신 표준어로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연습까지 하고 있다는 얘기다. 허승원 시흥경찰서 대출사기전담팀장은 “ 사기 수법이 정교해지면서 전문직 등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수사기관·은행이라도 전화로 돈이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으니 의심스러우면 일단 전화를 끊고 사칭 기관에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