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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품격 담은 '열차 안 살인사건'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24일 15시04분    조회: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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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개봉 '오리엔트 특급 살인'
크리스티 추리 소설 각색한 작품… 케네스 브래나 감독·주연 맡아
'캐리비안의 해적' 조니 뎁, '007' 주디 덴치 등 출연진 화려

 

"누가 뭐라고 해도 옳고 그름은 명확하지. 그 중간은 없는 거야."

 
1934년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의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성물(聖物) 도난 사건이 일어나자 종교적 갈등이 팽팽하게 고조된다. 하지만 멋진 콧수염을 기른 벨기에 출신 탐정이 통곡의 벽 앞에 모든 신도를 모아놓고 단칼에 사건을 해결한다. 코난 도일이 창조한 탐정 셜록 홈스와 더불어 추리소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명탐정 '에르퀼 포와로'(케네스 브래나)의 화려한 등장이다. 포와로는 언제나 자신을 "내 이름은 에르퀼 포와로.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탐정일 거요"라고 소개한다.

애거사 크리스티(1890~1976)의 원작 소설로 유명한 포와로가 21세기 스크린에서 부활했다. 29일 개봉하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유년 시절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팬들이라면 가슴 설렐 법한 영화다. 잉그리드 버그먼, 숀 코너리, 앤서니 퍼킨스 등이 출연했던 1974년 동명(同名) 영화를 비롯해 수차례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됐다. 이번 영화 역시 43년 전 못지않게 화려한 '열차 탑승객'의 면면 때문에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배우들. 왼쪽부터 탐정 에르퀼 포와로 역을 맡은 케네스 브래나, 윌럼 더포,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스, 미셸 페이퍼, 데이지 리들리, 조시 개드, 레슬리 오덤 주니어, 조니 뎁.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007 시리즈'의 'M국장'으로 유명한 주디 덴치, '캐리비안의 해적'의 선장 조니 뎁, 1990년대 '배트맨'에서 '캣우먼'을 맡았던 미셸 페이퍼, '스파이더맨'의 원조 악당 '그린 고블린'의 윌럼 더포, 21세기 '스타워즈'의 새로운 여주인공 데이지 리들리까지…. 이번 영화에서 승객이자 용의자 역을 맡은 배우들의 조합도 믿기지 않을 정도다. 제작비 5500만달러(약 600억원) 가운데 컴퓨터그래픽(CG) 비용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출연료로 나갔을 것 같다.

주인공의 화려한 등장에 이어 곧바로 범죄 현장으로 들어가는 고전적 이야기 흐름은 1934년 발표된 원작 소설에 대체로 충실한 편이다. 사이코패스의 연쇄 살인이나 현란한 액션에 길들여진 21세기 관객들에게는 다소 밋밋하고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다. 눈사태로 멈춰 선 열차라는 제한적인 시공간이나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의 피살이라는 사건은 무척 연극적이다.

감독과 주연을 맡은 케네스 브래나(57)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출신의 연극배우로 경력을 시작했다. 29세에 셰익스피어 원작의 '헨리 5세'를 영화로 각색·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아서 '제2의 로런스 올리비에'로 불렸다. 그 뒤에도 '헛소동'(1993)과 '햄릿'(1996), '당신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2006)'까지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영상으로 옮겼다. 이번 영화를 그는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역시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고전적 품격을 지니고 있다는 걸 입증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시체를 발견하는 초반 장면에서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식으로 피사체를 잡거나 열차 밖에서 주인공을 횡(橫)으로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카메라도 인상적이다.

추리소설은 날카로운 눈썰미와 추론 능력만 있다면 어떤 사건이든 해결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근대적 이성과 합리주의의 산물이다. 명탐정 포와로가 좌우대칭에 극도로 집착하는 괴팍한 성격이지만 상대가 벤치에 앉자마자 직업을 맞히는 남다른 추리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옳고 그름 사이에 중간은 없다던 포와로도 영화 막판의 따스한 반전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포와로의 성찰과 반성을 강조한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 곧이어 영화는 포와로가 다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이집트로 떠나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크리스티의 또 다른 소설 '나일강의 죽음'을 후속작으로 예고한다. 어쩌면 선배 세대와 지금 세대를 이어주는 명탐정 시리즈가 탄생한 걸지도 모른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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