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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기 동지 영생 빛내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6월27일 09시37분    조회: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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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8월, 조남기 동지(왼쪽 두번째)가 연변조선족자치주당위 상무위원회의를 사회하여 연변 경제발전의 장원한 전망계획을 연구하고 있다.  신화사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며 오랜 시련을 겪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이며 무산계급 혁명가이며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이며 우리 군 현대 후근 건설의 지도자이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9기 전국위원회 부주석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원 위원이며 중국인민해방군 원 총후근부 부장이며 원 군사과학원 원장인 조남기 동지가 병환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2018년 6월 17일 23시 12분에 91세를 일기로 북경에서 서거했다.
 

조남기동지는 조선족으로서 1927년 4월 20일에 출생했으며 길림 영길사람이다. 1945년 9월 길림시에서 해방동맹에 가입하고 련락사업에 참여함과 아울러 군중들을 발동하여 부대에 식량을 헌납하였다. 같은해 12월부터 선후하여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 학생, 반장, 길림성민족운동사업대 대원을 맡았다. 1947년 2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고 같은 해 12월 선후로 중공 길림성 연변지위 조직부 문서, 간사직을 맡았다. 1948년 3월부터 선후하여 중공 길림성 연변지위 총무과 부과장, 지위 비서직을 맡았고 중공길림성당위 판공실 연구원직을 력임했다. 기층투쟁과 혁명사업의 단련과 경험 루적은 그로 하여금 재빨리 우수한 청년간부로 성장하게 하였다.

 

1999년, 조남기 동지가 전국정협 황막화 예방퇴치 조사연구팀을 거느리고 신강타림사막 도로에서 조사연구하고 있다. 신화사

 

1950년 10월, 조남기동지는 중국인민지원군 사령부 정보처, 작전처 참모직을 력임했으며 제1진 지원군부대를 따라 조선에 가 참전하여 지원군 최고지휘관의 조선어통역을 맡았다.1952년 5월부터 선후하여 지원군 후근사령부 참모처 참모, 운수과 부과장, 계획과 부과장직을 력임하였다. 그사이 1955년부터 1957년까지 해방군후근학원 지휘학부에서 공부함과 아울러 후근학원 교원직을 담임했다. 1957년 11월에는 지원군 후근 사령부 조직계획처 계획과 과장직을 맡았다. 조선전장에서 그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피와 불의 세례를 겪으며 각항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였다. 그는 자동차수송계획 및 총지령사업을 감당하고 참답게 책임지고 용감하게 중임을 맡으면서 지원군 후방계획수송체계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특히는 미군이 지원군 후방 보급선 차단 전략을 실시할때 그는 많은 의견과 건의를 제기하여 "공격해도 끊지 못하고 폭격해도 망가지지 않으며 충격해도 무너지지 않는" 강철수송선로를 구축하여 미군의 지원군 후방 보급선 차단 전략을 분쇄하는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전선작전과 장병생활의 물자공급을 보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1958년 10월 그는 제일 마지막 한패의 지원군부대와 함께 조선에서 철수하여 모택동주석의 친절한 접견을 받았다.
 

1959년부터 조남기동지는 선후하여 길림성 연변군부구 정치부 부주임, 주임직과 길림성 연변군분구 부정치위원, 제2정치위원직을 력임했다. 그는 민병건설의 특점과 법칙을 적극 탐색하고 전형수립에 중시를 돌렸으며 점으로 면을 이끌어 군분구 민병사업으로 하여금 길림성군구와 심양군구의 선진전형으로 되게 하였다.1963년 10월, 길림성 사회주의 교육운동사업에 참가하여 훈춘현 경신공사 사회주의 교육운동사업대 서기직을 맡았다. 그 사이 군중들을 조직하여 두만강 출해입구에 자리잡은 방천에 이주하게 하였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후 그는 연변지구의 안정을 수호하고 공농업생산을 진행하기 위해 많은 사업을 하고 기여했다.1968년부터 충격을 받았다. 1973년 4월에 사업을 회복한후 길림성 통화군분구 정치위원직을 맡았다.

 

2008년 3월, 호금도 동지가 조남기 동지와 악수하고 있다. 신화사

 

1977년 4월, 조남기동지는 길림성군분구 정치부 주임을 임직하고 1978년 10월에 길림성 연변군분구 제1정치위원을 임직하였으며 1979년 6월 길림성군분구 부정치위원 겸 연변군분구 제1정치위원을 임직했고 1984년 3월, 길림성군분구 정치위원을 임직했다. 그 기간 1978년 4월부터 1985년 3월까지 중공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제1서기, 주혁명위원회 주임, 주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길림성 부성장, 중공길림성위 부서기, 서기(그당시 제1서기를 설치)를 력임했다. 그는 연변지역의 혼란한 국면을 바로잡는 사업을 주관하는 과정에 민족단결을 첫자리에 놓았고 다른 민족의 간부를 대함에 있어서 “공평”했으며 억울한 사건, 날조된 사건, 잘못 판결된 사건 시정사업을 적극적으로 추동하고 최선을 다해 민족단결을 수호함으로써 반년이 좀 넘는 동안에 연변지역의 정세를 안정시켰다. 그는 연변지역의 당의 사업중심을 현대화건설에로 전환을 견결히 추동하고 농촌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며 “당지 실정에 맞게 대책을 세우고 류형별로 지도하며 구별해서 상대”하는 사업방침을 제기하고 연변지역의 가정별 생산도급제실시를 추동했다. 그는 연변지역의 경제진흥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는 자원우세를 경제우세와 현실적인 생산력으로 전환시키는 “내함과 외연”을 동등시하는 새로운 경제발전구상을 제기했으며 공업을 적극 발전시키고 청도 등 도시와의 경제기술협력관계를 구축할데 대해 주장했으며 일련의 효익이 높고 영향범위가 넓은 기업을 조직, 건설하여 연변지역의 경제가 쾌속발전하는 시기에 들어서도록 추동했다. 그는 립법사업에 중시를 돌리고 력량을 묶어세워 민족사업의 리론과 실천을 총화하고 탐색했다. 그가 주관하여 작성한 《연변조선족자치주자치조례(초안)》는 제5기 전국인대 민족위원회 제2차회의에서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민족구역자치의 립법사업에 중요한 경험과 범례를 제공했고 연변지역의 정치안정과 경제, 문화, 교육 등 사업발전을 촉진하는데 량호한 영향을 조성했다. 농업주관 성급 지도자로 있는 동안 가정별 생산도급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여 길림성의 농촌발전이 활기로 차넘치게 하였고 1983년에는 알곡생산 성장률, 알곡상품 제공량, 인구당 알곡 점유량, 투입산출 비률 성장률 등 네가지 모두 “전국 제1”을 창조해 길림성이 주요 상품알곡기지로 되게 하였다. 그는 벼생산을 적극 발전시켜 길림성의 인민들이 입쌀과 밀가루를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전문호, 중점호 발전을 고무격려하였고 농촌의 다종경영발전을 촉진했다. 그는 “길림성농업발전전략”을 제기하고 “농업생태공정”을 가동했으며 그가 주관하여 제정한 “동부산간지대의 페경육림, 서부초원의 페경육초, 중부지역의 토지비옥제도 구축” 등 관리조치는 경작지의 사막화, 알칼리화, 퇴화를 종합적으로 다스려 길림성이 솔선하여 전국생태성에 진입하는데 튼튼한 기초를 닦아놓았다.

 

1988년 9월, 등소평 동지가 상장군사계급을 수여받은 조남기 동지와 악수하고 있는 장면. 신화사

 

1985년 3월, 조남기동지는 해방군총후근부 부부장 겸 부정치위원, 총후근부 당위 부서기(1985년 4월부터)를 임직하고 1987년 11월에 해방군총후근부 부장, 총후근부 당위 서기를 임직했으며 1988년 4월 해방군총후근부 부장, 총후근부 당위 서기,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을 임직했다. 총후근부에서 사업할 때 그는 “개혁으로 전반국면을 총람”할데 대해 제기하였으며 군대후근개혁을 전면적으로 추동했다. 《군대후근보장체제개혁의 총체적 방안》, 《전군후근개혁 5년 전망계획》, 《”8.5”기간 전군후근사업의 기본구상》을 주관하여 제정하고 10년내에 세단계로 나뉘여 전군 후근보장사업을 근본적으로 호전시키는 목표를 실현하기로 확정했다. 이와 같이 우리 군의 후근건설 목표와 요구를 제기하고 실시하였기에 전군 후근개혁이 질서있게 전개되고 전반적으로 추진되고 건전하게 발전할수 있었다. 전군 후근건설에서 이룩한 뚜렷한 성과와 긍정적인 “인내”속에서 보여준 성공적인 사업들은 군사경제효익과 군사효익 향상을 확보하였고 후근보장능력과 군대전투력을 증강하였다.

 

1990년 12월, 조남기 동지가 강택민 동지를 안내하여 전군 후근사업회의 대표들을 접견하고 있다. 신화사

 

 

1992년 10월, 조남기동지는 해방군군사과학원 원장, 당위 서기, 중화인민공화국 중앙군사위원회 위원(1993년 3월까지)직을 담임하였다. 1998년 3월, 조남기동지는 정협 제9기 전국위원회 부주석으로 당선되였다. 그는 전반 국면을 념두에 두고 진리를 추구하고 실효를 강조하였으며 민생을 마음에 두고 개척진취하였으며 사업중점을 국가의 경제와 국민의 생활과 관계되는 전반적이고 중대한 문제의 전문적인 조사연구와 대책성 연구에 두었으며 조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료녕성 물절약농업전개 문제에 관한 조사연구보고" 등 16부의 주제보고 작성을 주관하여 당중앙의 깊은 중시를 불러일으켰으며 조국의 수려한 산천을 재건하는데 자신의 심혈과 지혜를 몰부었다. 그는 여러차례 팀을 거느리고 외국을 방문함과 아울러 중국을 방문한 외국의 정계 요인을 접대하면서 전국정협과 각국 의회간의 련계를 강화하고 중국인민과 각국 인민의 우호적인 래왕을 촉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기여를 하였다.
 

조남기동지는 2003년 3월 지도직에서 물러난후에도 여전히 당과 국가 사업을 관심하고 국제국내 형세의 변화를 주시했으며 국방과 군대의 개혁심화 진척을 주목하고 인민군중의 질고와 생활을 관심했으며 조국통일 대업을 관심하면서 한 공산당원의 일편단심을 보여주었다. 로일대 무산계급혁명가들의 숭고한 품격을 찬미 선전하고 홍색유전인자를 전승하며 우량한 전통을 고양하기 위하여 그는 "팽덕회원수" 등 영화, 텔레비죤 작품을 제작을 건의하여 좋은 사회영향을 일으켰다.
 

조남기동지는 중국공산당 제12기, 제13기, 제14기 중앙위원회 위원이며 제5기, 제6기,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이며 제5기 전국인대 민족위원회 부주임위원이다. 1988년 9월 상장 군사계급을 수여받았다.
 

조남기 동지는 확고한 공산주의 리상과 강렬한 혁명사업심을 갖고있다. 70여년간의 혁명생에서 그는 당과 인민에 대하여 무한히 충성하고 생사고비에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투쟁하면서 필생의 정력을 중국인민해방사업, 사회주의건설사업과 군대현대화건설사업에 바쳤다. 그는 당의 로선방침정책과 중앙군위의 결책과 지시를 견결히 집행하고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 “세가지 대표”중요사상, 과학적발전관,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사상을 참답게 학습실천했으며 시종 자각적으로 사상상, 정치상, 행동상에서 당중앙, 중앙군위와 고도의 일치를 유지했다. 원칙적인 시비 앞에서 그는 정치립장이 확고하고 정치민감성이 강하며 기치선명하게 진리를 견지하면서 여러가지 큰 풍랑의 실현을 이겨냈으며 한 공산당원의 우수한 품질을 보여주었다.
 

조남기 동지는 무산계급혁명가의 담략과 뛰여난 정치, 군사경제 지도재능을 갖고있다. 그는 과감히 바른말을 하고 당, 국가와 군대의 중대결책 참여에서 큰 실적을 쌓았다. 그는 도량과 식견을 갖고있으며 중대한 군사행동에서 과감히 감당하고 과감히 도전하며 과감히 승리하면서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천방백계로 사명과 임무를 완수했다. 항미원조 전장의 운수보장 과정에 그는 비범한 용기로 어려움을 맞받아 나아가면서 두려움을 모르는 혁명정신과 뛰여난 사업능력을 보여주었다.
 

조남기 동지는 공산주의자의 숭고한 풍채를 갖고있다. 그는 나라를 위해 당을 건설하고 인민을 위해 책임을 다했으며 나라를 마음에 두고 군대에 감정을 쏟았다. 시종 공산당원의 표준을 견지하고 공적인 마음으로 사업을 최고 위치에 올려놓고 큰국면을 돌보았으며 명리를 따지지 않았다. 그는 시종 빈틈과 실수 없는 사업표준을 고수하고 시종 용의주도하고 깊이 타산하는 전략적 의식을 유지했다. 그는 “실사구시, 혁신, 군중근본, 사업최고”를 자신의 사업준칙과 평생추구로 삼았다. 총후근부 지도직위를 담임한 7년 남짓한 동안에 해마다 계속 고원, 바다섬과 변방을 찾아 기층장병속에 심입하여 조사연구하고 착실히 실제적인 일을 하면서 난제를 해결했다. 그는 정직하고 공명정대했으며 사심과 두려움이 없고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으며 청렴결백하고 작풍이 신중했으며 그는 공산당원의 선진성과 순결성을 유지한 본보기이다.

 

2014년 9월 21일,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설립 65돐 경축대회가 북경에서 거행되였다. 습근평 동지가 조남기 동지와 악수하고 있다.  신화사

 

조남기 동지는 무산계급 혁명가의 흉금과 인민충복의 본색을 갖고있다. 그가 겪은 모든 일터에서 시종 당, 군대의 사업과 인민의 리익을 가장 높은 지위와 가장 중요한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군중과 병사를 근본으로 하는것을 견지하고 군중과 밀접히 련계하고 마음을 기층에 두고 전심전력 인민과 장병들을 위해 봉사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 당을 건설하고 인민을 위해 집권하는것을 견지하고 종래로 권력을 람용하거나 권력으로 사리를 도모하지 않앗다. 그는 지식과 인재를 존중하고 전문가의 장점과 역할을 발휘하는데 중시를 돌림과 동시에 중청년인재들의 성장을 관심했다. 그는 생활이 검소하고 시종 우리 당, 우리 군의 간고분투 우량전통을 유지하여 전군장병과 인민군중들의 존경과 애대를 받았다.
 

조남기 동지의 일생은 혁명의 일생이고 전투의 일생이고 빛나는 일생이며 당, 군대와 인민을 위해 사심없이 기여한 일생이다. 그의 서거는 우리 당, 국가와 군대의 중대한 손실이다. 그가 인민의 해방사업을 위해,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국방과 군대 건설을 위해 세운 위대한 업적은 영원히 사책에 기록될것이다! 우리는 그의 확고한 당성, 숭고한 품덕과 우량한 작풍을 견지하고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습근평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중앙의 두리에 더욱 굳게 뭉쳐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 맑스-레닌주의, 모택동사상, 등소평리론, “세가지 대표”중요사상, 과학적발전관, 습근평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지침으로 하는 것을 견지하며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이룩하고 새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위대한 승리를 전취하며 중화민족 위대한 부흥의 중국꿈을 실현하고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인민의 동경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분투해야 한다.
 

조남기 동지는 영생불멸하리!

신화통신/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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